<불꽃의 여자 시몬 베유>.
열네 살 되던 때였다. 우연히 펼쳐 든 한 권의 책에서 시몬 베유를 만났다. 그녀는 병약한 몸으로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스페인 내전의 전선에도 자원했다. 서른넷의 짧은 생애는 온통 가난한 이들의 눈물과, 신과 진리를 위해 바친 치열한 사랑의 시간이었다. 나는 한동안 책장을 덮고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댔다. 그리고 어느덧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베유는 뛰어난 철학자였지만 지식인의 특권을 믿지 않았다. 철학 교사의 자리를 뒤로하고 르노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잃어가는지를 몸소 겪었다. 그 체험을 통해 약자들의 고통을 자신의 몸과 영혼으로 끌어안았다. 그녀에게 사유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앎은 언제나 삶을 통과해야 했고, 진리는 타인의 고통 곁에서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오랫동안 붙든 것은 그녀의 영성이었다. 베유는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했지만 끝내 세례를 받지 않았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도, 완전히 떠나지도 않은 채 그 경계에서 신을 기다렸다. 그녀에게 신을 맞이하는 가장 긴요한 방법은 ‘주의(attention)’였다. 애써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세계와 타인의 고통 앞에 온 존재를 기울여 머무는 일. 그녀는 은총이 그러한 침묵 속으로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철학과 신학 사이를 떠돌며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결핍처럼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베유는 그 ‘사이’를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견디며, 끝내 가장 정직한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머뭇거림이나 유예가 아니라 세계와 타인의 부름 앞에 자신을 열어 두는 가장 치열한 응답의 방식임을 나는 그녀를 통해 배웠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삶의 품위 역시 바로 그 자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쉰아홉의 나는 여전히 그녀처럼 살지 못한다. 그러나 흔들릴 때마다 열네 살 그때의 멈춤을 떠올린다. 사람은 끝내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존재일까. 나는 오늘도 내 삶의 방향키를 그녀에게 고정시킨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