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원두커피와의 데이트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2: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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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커피구경 못한 이가 처음 마시는 커피가 최고"
■ 한국 원두커피 1세대 정동웅 씨


정동웅(57)씨는 많은 걸 훌훌 털고 넘어서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식구들에게 자신의 삶을 "실패한 성공"이라는 모순 어법으로 말한다고 했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그는 통달한 듯이 말했다. 부산 서면 교차로 인근의 호프 레스토랑 '가미'(서면지하철역 14번 출구 나와 외환은행 맞은편)에 들렀을 오후 4시, 그는 장만한 '돈까스' 재료를 주방으로 들이고 있었다. 첫눈에 커피와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슴에 묻어놓은 커피 향기는 진하고 깊었다. 그는 '한국의 원두 커피 1세대'로 일컬어진다. '가비방'은 1990년대 부산 경남에 40여개에 달했던 원두커피 전문 프렌차이즈점으로 한국의 커피 문화를 뒤바꾸었다. '가비방 신드롬', '부산의 원두커피 문화'를 주도한 이가 그였다.

-'한국 원두커피의 1세대'라고 들었다.

△"그렇지는 않다. 부산에서는 제 앞에 부산호텔 출신의 김증규, 피닉스호텔 출신의 손세징 선배가 있었다. 두 분은 지금 생존해 계시다. 서울에서는 박희추 박원준 같은 분이 계셨다. 하지만 부산은 일본과 가까워 원두커피가 일찍 도입됐다. 저는 79년 일본에 가서 가라사와 선생에게 커피를 배웠다."

-커피는 무엇인가?

△"커피는 음식의 모든 것이 아니라 일부일 뿐이다. 지금의 커피 바람은 지나친 감이 있다. 교육기관이 많이 생기고 '바리스타'라는 인증제도가 생긴 것은 과열된 것이다. 얄팍하고 무게가 실리지 않았으며 커피를 좋아하는 척 하는 것 같다. 커피가 돈이 되지 않으면 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면 왜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는가?

△"각 세대의 몫이 있다. '커피로 한반도를 통일하자'는 젊은 혈기의 구호를 내건 '가비방'과 '한국커피경영학원'(90년 시작한 부산 최초의 커피아카데미)의 결속에 금이 간 이후 프리랜서로 나서 월 1천만원을 벌었던 적도 있다. 거기까지가 내몫이었다. 이후 고생을 많이 했고 건강 때문에 생명의 고비도 넘겼다. 후배들이 도와줘 지금 이 호프 레스토랑을 차렸고 10년째 소소하게 꾸리고 있다."

-가장 좋은 커피는 어떤 것인가?

△"평생 커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처음 마셔보고는 '맛있다'고 말하는 커피가 최고의 커피다. 전문가가 맛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차피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지 않겠는가?"

-커피에서 또 중요한 것은 없나?

△"무엇보다 커피의 신선도가 중요하다. 커피의 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커피의 신선도이다. 볶은 커피 콩을 개봉하면 1달 이내, 볶은 커피 콩을 갈아서는 1주일 이내, 추출한 뒤에는 15분 이내에 먹어야 신선하다. 그러니 볶아서 3~4개월, 갈아서 또 몇 개월 지나고, 추출한 것을 몇 시간 지나서 먹는 커피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미리 내려놓은 원두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의 커피는 신선도 기준으로 볼 때 좋은 커피가 아닐 공산이 크다. 그것은 커피 맛 때문이 아니라 마케팅 전략 때문에 한국에 뿌리내렸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 제대로의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지금 에스프레소 커피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금방 내려서 먹는 신선한 커피이기 때문이다."

그는 커피에 대한 숱한 상식과 얘기를 들려줬다. 자꾸 그는 "이런 상식 별거 아니다. 커피 또한 별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별게 아니다"라는 그의 말이 노리는 것은 그런 경계였다. 그가 직접 갈아서 가져온 커피 가루에서는 신선하고 구수한 향이 눈에 보이듯이 올라왔다. 그 가루에 물을 내린 향긋한 커피들을 연거푸 맛보았다. 기자는 그날 밤에 잠을 못잤다.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원두커피의 세계는 작은 세계다. 5~10g씩 갈아 핸드 드립하여 커피를 낼 수 있는 것은 소규모 업소에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자가 주창한 소국과민(小國寡民, 적은 나라의 적은 백성)의 이상이 떠올랐다. 거대 세계화로 내닫는 이 세상을 깨는 바늘의 전략이 원두커피에 들어 있을 것 같았다. 정씨가 운영하는 호프 레스토랑은 지하 1층 40석으로 적은 규모였다. 그는 그곳을 그의 식구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낮에는 3천500원, 밤에는 4천원 하는 돈까스 등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원하는 이들에게 '콜롬비아 슈프리모' 커피 100g을 4천원에 팔고 있었다. 그곳은 완벽하게 작은 그만의 원두커피 세상이었다. 커피 향이 짙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이 지금 나의 신조다. 커피에서 정통은 없다. 오직 변할 뿐이다." 그가 만드는 돈까스 맛은 과연 어떨까? 051-808-7645.

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커피는 취향껏 즐기는것 설탕도 원하는대로…"
■ 커피전문점 '하가빈' 하오용 대표


커피 전문점 '하가빈'의 하오용(56) 대표는 "커피는 기호식품"이라고 말했다. 취향에 따라 진하게, 연하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원두 커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도이다. 커피도 사람 몸에 들어가는 식품이다. 모든 식품은 무엇보다 신선해야 한다." 그 역시 커피의 신선도를 강조했다.

"숙성시킨 원두를 볶은 뒤 24~30시간이 지나면 커피 원두 자체의 성격이 우러나기 시작한다"고 그는 슬쩍 말했다. 커피 원두의 포장 상태에 따라 사정은 다르지만, 포장지에 적혀 있는 '유통기한 2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말하기 위한 서두였다.

그는 1981년부터 부산의 커피 유통계에 발을 들였으며 이후 커피 기계, 커피 교육까지 아울렀다. 2004년 부산의 한 대학에서 최초의 커피교육을 했다. 이후 부산의 각 대학 따위에서 커피 강좌 바람이 불었고 지금도 불고 있다. 현재 커피 창업 강좌를 열고 있는 그는 부산의 커피계를 나름대로 다 꿰고 있었다. "젊은 층의 열정 고집이 세다. 그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젊은 층'이라는 말은 부산에서 지금 전문 커피점을 운영하는 이들은 대개 5~10년 안쪽이라는 의미다.

부산의 새로운 커피 바람은 서울에 견줄 때 어느 정도일까? 그는 비근한 다른 예를 들었다. "서울에서 1만2천원 정도 하는 커피 원두 100g이 부산에서는 4천~5천원 정도다." 비유컨대 서울의 3분의 1쯤이라는 것이다. 물론 서울이 과열됐을 수 있다.

그는 "원두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와 다르다"고 했다. 커피의 품종 자체가 다르다. 원두 커피는 아라비카(Arabica)종, 인스턴트 커피는 로부스터(Robusta)종이다. 일반적으로 아라비카종은 해발 800m 이상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품종이며, 로부스터종은 해발 600m 이하에서 생산되는 저급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터'의 품질과 가격 차이는 각각 '참깨'와 '들깨'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제껏 인스턴트 커피가 한국의 시장을 장악하여 나름대로 이익을 많이 남겼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커피보다 더 많이 넣는 '프림'의 시장을 합치면 그 이익은 더 크다는 것이 커피업계의 관측이다. 현재 한국의 원두 커피와 인스턴트 커피의 시장은 2 대 8 정도의 비율로 추산되고 있다.

이날 '하가빈'에서 커피를 여러 잔 마셨다. 하 대표는 "원두 커피에 설탕을 타지 말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말"이라고 했다. "유럽 쪽은 진한 커피에 설탕을 가미하는 식이고, 미국 쪽은 설탕을 넣지 않고 연한 블랙으로 먹는 식인데 한국은 미국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듬뿍 타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마신다"며 "에스프레소의 풍미를 느껴봐라"고 권했다. 이 집 커피는 대개 2천원이며, 가장 비싼 게 3천200원으로 샀다. 부산 남구 대연1동 대연비치상가 1층. 051-622-4118. 최학림 기자


커피 맛있는 집

부산에 핸드 드립으로 원두 커피를 판매하는 커피점은 많다. 모두 50~60군데를 헤아린다. 이들 커피점에서는 볶은 커피 원두도 팔고 커피를 내리는 각종 기구들도 팔고 있다. 울산 경주의 커피점을 포함해 알려진 몇 군데를 소개한다.

△디아트=화가들의 미술작품도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카페/ 부산 중구 남포동 고려당 건물 2층/ 051-256-7801

△커피나무=커피와 맛있는 케익 쿠기 등/ 부산 사하구 하단동 동아대 입구/ 051-202-2814

△휴고=커피 애호가 박명자·김호영 부부가 운영/ 부산 서구 지하철 동대신동역 4번 출구 앞/ 051-256-0258

△커피이야기=커피 강의를 하는 전승예 대표가 운영/ 부산 수영구 남천동 KBS 뒤 동여고 근처/ 051-622-0721

△커피애=마일드한 맛의 커피, 편안한 사랑방 표방/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협진태양아파트 옆/ 051-612-8889

△앨리스 2046=1~3층 커피아카데미, 원두 숍, 카페. 추재호 대표가 운영/ 부산 광안리 해변 중간 지점/ 051-761-2046

△블루커피 코리아=산지별 원두 커피와 각종 커피 기계 등 판매/ 부산 해운대구 우1동/ 051-741-3034

△모닝 캄=바다가재, 해물 스파게티도 있는 양식 레스토랑/ 부산 해운대구 송정동/ 051-701-7000

△오페라=달맞이 언덕에 해운대 전경이 들어오는 카페 바/부산 해운대구 중2동/ 051-746-6672

△빈앤솔=신선한 원두 커피 제공, 10층에 부산커피교육센터/ 부산 해운대구 중1동 이마트 맞은편/ 051-731-1300

△산타바바라=사진과 CD 1천장의 음악이 있는 사랑방/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옛 부산진구청 인근/ 051-919-8979

△빈스톡=커피 장인으로 알려진 박윤혁 대표가 운영/ 울산 남구 삼산동/ 052-267-7847

△슈만과 클라라=애호가에게 널리 알려진 커피 전문점/ 경북 경주시 성건동 동국대 의대 사거리 인근/ 054-749-9449


커피 상식

△에스프레소 커피는 핸드 드립한 커피가 아니다. 강하게 로스팅한 원두 6~8g을 곱게 갈아 10~13kg의 압력으로 다지고, 90~95도의 뜨거운 물을 9기압의 압력으로 25~30초 통과시켜 추출한 25~30ml의 진한 커피액이다. 커피 원두가 가진 맛과 향의 농축액이다. 에스프레소의 생명은 3~4mm 두께의 거품으로 잔 위쪽에 얹히는 황금빛 크레마다.

△베리에이션 커피는 에스프레소 커피에 거품우유를 첨가해 변주한 것으로 카페오레, 카페라테, 카푸치노 등으로 아주 다양하다.

△일반 원두 커피를 말하는 '레귤러 커피'에 대응하는 것이 '향 커피', 일명 '화장 커피'다. 향에 따라 헤즐넛, 아이리쉬, 초코-헤즐넛, 바닐라 넛 크림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레귤러보다 저급하지만 한국에서는 독특하게 인기가 더 많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에서 생산되는 커피가 더 좋다. 일반적으로 600m 이하에서 나는 것을 로부스터 커피(인스턴트 커피 원료), 600~800m는 저급 아라비카 커피, 800~1500m는 중·고급 아라비카 커피, 1500m 이상은 최고급 아라비카 커피로 분류한다.

△스트레이트 커피(단종單種 커피)가 있다. 콜롬비아 슈프리모, 케나AA, 자메이카 블루마우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등이 유명하다. 이중 '자메이카 블루 마우틴'은 세계 최고의 커피로 통하며 1잔에 8천~1만원. 최학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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