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나지 않은 재료의 별난 즐거움

입력 : 2009-10-29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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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를 이용한 회, 숙회, 무침 등 다양한 요리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어디서 만날까?" "뭐 좀 특별한 곳 없나?" 마땅한 곳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데서나 먹을까? 밖에서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왜 중요한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쳇바퀴를 돌듯이 비슷한 생활에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맛있는 식사는 그 평범한 일상에 찍는 하나의 방점이 아닐까. 특별한 음식을 하는 곳이 있는지 둘러봤다. 이번 주에는 부산에서 좀처럼 맛보기 힘든 초계탕과 골뱅이 회를 찾아갔다.

전복보다 좋은 골뱅이 회

'혼자 외롭게 살던 총각이 커다란 우렁이를 집에 가져왔다. 그날 이후, 집에 돌아와 보면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총각이 숨어서 지켜보니 우렁이가 예쁜 색시로 변해서 밥을 차렸다. 총각은 우렁이 각시 손을 덥석 잡고…." 골뱅이 회를 하는 연제구 연산동 '골뱅이랑 대게'에 갔다 우렁 각시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렁이는 골뱅이의 다른 말이다. 골뱅이는 무침만 하는 줄로 알았다. 골뱅이를 이렇게 다양하게 먹는다. 가게 벽에 걸린 영양 비교표를 보니 골뱅이가 전복보다 단백질, 칼슘, 철분, 비타민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 골뱅이 만세!

강도환 대표가 살아있는 골뱅이를 보여주는데 그 크기가 담뱃갑만하다. 일단 숙회부터 맛보기로 하자. 삶은 골뱅이를 살짝 돌려서 발라내자 허연 게 서서히 나온다. 은은하면서도 섹시한 자태가 드러난다. 우렁이 각시가 고개를 내미는 것 같다. 침이 넘어가고, 덩달아 술도 넘어갔다. 우렁이 각시만큼 기다렸던 골뱅이 회가 나왔다. 눈부시게 흰 골뱅이의 속살이 깻잎 위에 누워 있다. 맛도 양식 전복보다 훨씬 낫다. 소라에 비하면 육질이 단단해 오도독하고 씹히는 식감이 참 좋다. 졸깃졸깃한 느낌이 일반 생선회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소주 안주로는 세상에 이만한 것이 없다. 생회보다 숙회가 더 낫다고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회를 먹다 숙회를 먹으니 별로다. 신선하지 않으면 골뱅이 회를 먹을 수 없다. 신선한 골뱅이를 사용했으니 무침 또한 맛은 보장되었다. 여기다 국수 소면을 추가해 비벼먹었더니 그 맛이 또 끝내준다

강 대표는 "처음에는 무침만 하다 도전 정신을 가지고 회를 해보게 되었다. 일을 하는 아줌마들이 조미료를 많이 써서 마음에 안 들어 혼자 일한다"고 말한다. 혼자 일하면 뭐 어떨까. 조개탕, 문어탕도 괜찮다니 한번 먹어보고 싶다. 연산동 한창정보타운 앞 편의점에서 안락동 방향. 골뱅이 무침 소(小) 1만5천원, 골뱅이 숙회 소 1만5천원, 문어탕 중(中) 2만원, 영업시간은 오후 6시∼다음날 오전 6시. 051-853-2235.


궁중 연회상에 올랐던 초계탕

담백한 초계탕에 막국수를 넣어 먹고 나면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초계탕(醋鷄湯)이 뭘까? 초계탕은 닭육수를 차게 식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다음 살코기를 잘게 찢어서 넣고 먹는 전통음식이다.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추운 겨울에 먹던 별미. 아무래도 북쪽에서 먹다 보니 부산에서 만나기가 힘들었다. 궁중 연회에도 올렸던 초계탕, 닭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신선한 채소와 약재를 이용한 저칼로리 음식이어서 더 좋다. 초계탕을 하는 사상구 덕포동 '모닭불'로 향했다. 모밀(메밀)막국수, 닭, 숯불이 결합해서 '모닭불'이다. 초계탕 외에도 닭갈비, 닭날개, 닭개장 등 닭요리가 꽤 다양하다. 닭갈비로 발동을 걸었다. 가만 보니 조용록 대표가 닭갈비를 굽는 동작이 재미있다. 왼손은 뒷짐을 진 채 오른손으로 고기를 들었다가 다시 놓고는 뒤로 한발 살짝 뺀다. 펜싱 선수의 동작 같은데 이래야 맛이 있단다. 부드러운 고기가 상당히 맵다.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초벌구이한 닭갈비에 매운 불닭 소스를 찍어서 다시 굽고, 여기다 매운 소스를 찍어서 먹어보란다. 그만 눈물이 났다. 여자들이 이렇게 맵게 먹는단다. 겨울이 되면 매운 음식을 더 많이 찾는단다. 독해서 그럴까, 험한 세상에 독해지려고 그러는 걸까.

예전에 즐겨먹었던 닭개장, 부산에서는 이 또한 흔치않다. 닭개장은 칼칼하게 시원해서 좋다. 기다리던 초계탕이 나왔다. 닭고기는 잘게 찢어 갖은 양념에 무쳤고, 육수에는 간장·식초·소금·겨자가 들어갔다. 오이, 달걀, 적채, 달걀 고명도 곱게 들어 있다. 냉채족발과 비슷하면서 아주 담백하다. 주인장이 고백한 게 있다. 초계탕에 쓰는 닭은 약간 나이가 있는(?) 닭이라는 사실. 영계를 썼더니 기름기가 많아서 도저히 안 되겠더란다. 영계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니 늘 유념하시길. 초계탕과 함께 주는 매콤한 닭무침도 괜찮다.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다. 막국수를 초계탕에 부어 먹으며 마무리했다. 음식이 산뜻하니 기분도 산뜻해진다. 닭개장 5천원, 초계탕 1인분에 1만원(2인분 이상), 닭갈비 300g 8천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자정. 지하철 2호선 덕포역 2번 출구. 051-303-0993.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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