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회, 혀끝에 착 감기는 이 고소함

입력 : 2011-04-14 15:49:00 수정 : 2011-04-14 16: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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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푸른생선인 고등어에서 이렇게 붉은 기운이 도는 횟살이 떠진다. 신기한 일이다.


4년 전 경남 통영 욕지도 포구에서 고등어회란 것을 처음 봤을 때, 머릿속에선 참 많은 생각이 일었다. 그 생각이란 것이, 얼굴 시커먼 동네 청년의 칼질을 믿을 수 있을까, 흐물흐물한 고등어란 놈이 횟감이 될까, 기름기 많다는 저놈을 먹고는 탈 나지 않을까…, 뭐 그런 것이었다.

미적대는 모습을 보다 못한 '얼굴 시커먼' 청년, 한 마디 던졌다. "아, 안 드실라믄 저리 가소 마. 이 끝내주는 맛을 모르는갑네. 어디서 오셨소? 부산? 그라믄 고등어회 맛을 모르제. 아는 사람만 아는기라!"

울컥! 당차게 한 접시 시켜 눈 질끈 감고 한 입 넣었겠다. 어라! 꽤 두꺼운 한 점이었는데도 혀에 착 내려앉으면서 사르릇 녹는 느낌, 씹어서 느끼는 부드러운 질감, 혀 뒤로 넘어갈 때 입안 전체로 퍼지는 고소함. 비려야 마땅한 고등어에서 미처 기대치 못한 맛이었다. 잠시 멍하니 있는데, 그 청년의 다그침이 귀에 들어왔다. "빨리 드소. 고등어회는 금방 살이 풀어져 그냥 놔두믄 맛 베립니다." 언밸런스? 어긋남? 여하튼 묘하게 불일치하고 아슬아슬한 맛이었다. 고등어회의 맛은 그랬다.

다른 생선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진한 맛
"살이 빨리 물러지니 대화하지 말고 퍼뜩 드이소"

해운대 '수미가' 통영 욕지도 고등어 고집
새콤한 전용 소스 개발 부산 사람 입맛 잡아


잊고 있었던 그 맛에 대한 기억이 최근 되살아 났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수미가'. 부산에선 드문, 고등어회 전문점이다. 3개월 전에 문을 열었다. 수미가 김지우 대표는, 고향이 통영이고, 고등어를 통영 욕지도에서 가져온다고 했다. 반가웠다.

그의 첫 마디. "일본산은 전혀 안 씁니다." 일본 방사성 물질 확산의 여파가 신경 쓰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산 고등어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람들이 지레 겁먹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가게 안에 유리 수조가 둘이다. 하나는 여느 횟집에서 평범한, 사각의 것이다. 광어 등 일반 횟감을 위한 생선을 넣어둔다. 다른 하나는 원통형이다. 고등어 전용이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하다. 한곳에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계속 움직여야 산다. 원통형의 수조는 그래서 필요하다.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돌고 돌아야 한다. 수조에 각이 져 있으면 도는 흐름이 끊기고 그럼 서로 부딪쳐 죽는다.

요컨대, 고등어는 횟감으론 좋은 생선이 아니다. 낚아올리면 금방 죽어버리고, 죽으면 또 쉽게 부패해 버린다. 쉽게 부패하는 건 육질에 기름기가 많기 때문이다. 기름기가 많으면 비린내도 심하다. 잘 죽고, 부패하기 쉽고, 비린내도 심하니, 보통은 고등어를 횟감으로 쓰지 않는 것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욕지도에서 부산으로 고등어를 활어차로 수송할 때 엄청 신경 써요. 활어차 물도 일반 생선의 것과는 달리 특별하게 정제된 물을 사용해야 한답니다. 일단 수조에 넣어 놓아도 3일 이상은 못살죠. 그래서 이틀에 한 번씩은 고등어를 날라와야 해요.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아 누가 수조를 심하게 두드리면 죽어 버려요."



이 까다로운 고등어를 가지고 그는 왜 장사하려 했을까. 맛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고등어회 맛을 알게 되면 분명 열렬한 고등어 애호가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단다.

"어려서부터 회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도 고등어회는 특별했습니다. 어느 날 일반회와 고등어회를 한 접시에 놓고 비교를 해본 적이 있어요. 일반회는 싱겁더라고요. 광어, 우럭, 돔 같은 것들을 고등어와 비교해 봤는데, 고등어회에 훨씬 많이 손이 많이 갔어요. 표현해 보라고요? 하하, 뭐라고 하면 좋을까. 첫째는 진한 맛이죠. 다른 생선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그 다음은 고소한 맛."

그냥 먹어도 좋지만, 그는 부산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고등어회 전용 소스도 개발했다. 식초, 레몬즙, 간장 등이 들어가는데, 간장은 직접 직접 달여서 사용한다고 했다. 소스는 새콤하면서도 싸한 느낌을 주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은 저작 '자산어보'에서 '고등어는 국을 끓이거나 젓을 만들 수는 있으나 회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적었다. 회로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수미가의 강태욱 조리사는 "고등어의 싱싱함도 싱싱함이지만 회를 뜰 때 그 살을 굳히는 게 관건"이라 했다. 강 조리사는 껍질을 벗긴 고등어를 식초 한 방울 정도 탄 얼음물에 2~3초 담갔다 건지는 방법을 쓴다고 했다. 그러면 연한 살이 갑자기 냉각되면서 살이 굳어져 탄탄해질 뿐만 아니라 고등어 특유의 기름기와 비린내도 적당히 빠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등어회는 참 삭막한 음식이라 하겠다. 김 대표의 말이 그랬다. "다른 음식은 여럿이 둘러 앉아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먹는 게 맛있잖아요. 근데 고등어회는 안 그래요. 좀 심하게 말하면 대화 없이 먹는 데 집중해야 해요. 빨리 물러지니까 빨리 먹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집에 가서 먹겠다고 포장해 달라는 손님들이 있는데, 우린 절대 포장 안 내 줍니다. 포장해 가면 고등어 맛을 망칩니다."

김 대표는 등쪽 살과 배쪽 살을 따로 음미해 보라고 했다. 보통 그렇게 두 가지로 나뉘어 나온다고 했다. 고소한 맛은 등쪽, 부드럽고 진한 맛은 배쪽 살이 낫다고 했다. 실제 그러했다.

여하튼, 잘 만들어진 고등어회는 비리지 않고 부드럽고 고소했다. 그럼 가격은? 수미가의 차림표를 보니, 고등어회는 대·중·소로 나뉜다. 2~3명이 먹으면 적당한 '중'이 6만 원이다. 고등어구이, 고등어조림도 있는데 2만~3만 원 정도다. 고등어로서는 싸지 않은 느낌이나, 별미로 생각하면 용서 못할 가격은 아니겠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292의 1 부산도시철도 장산역 인근 하이마트 뒤편. 051-746-9621.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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