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쫄깃… 감칠맛 입안 가득 갯내음이 춤춘다

입력 : 2013-02-28 07:54:35 수정 : 2013-02-28 14: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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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별미 새조개 샤부샤부

제철 채소를 넣어 함께 끓여내는 민락동 '하모횟집'의 새조개 샤부샤부(왼쪽)와 푸짐한 해물들을 곁들이기 좋은 남항동 '현미해물천국'의 새조개 샤부샤부(오른쪽).

갑자기 새조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찬바람이 잠시 불었는데, 그때 문득 새조개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껍질을 까 놓으면 마치 새처럼 생긴 도톰한 조갯살, 그리고 달짝지근한 조갯국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지 미소를 지었다. 새조개는 1년 중 지금이 가장 맛이 있을 때라고, 지금이 아니면 올해 다신 먹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겨울 새조개의 맛은 '조개의 왕'으로 손꼽히는 백합을 능가한다면서 연신 강조하는 지인의 눈빛은 간절했다. 그래서 부산 시내에서 새조개를 내놓는 계절 해산물 집들을 수소문했다.

뜻밖에 새조개 샤부샤부를 먹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물량이 달려 언제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한 집은 처음에 헛걸음했다가 두 번째 가서야 비로소 맛을 보았고, 다른 집은 예약을 넣어 놓고 며칠을 기다렸다.

남해, 서해안 갯벌에 지천으로 널린 새조개는 초밥용으로 일본에 대량 수출되는 효자 품종이었다. 몸통을 살짝 데친 뒤 초밥에 올린 것을 일본인들은 사족을 못 쓰고 좋아한다. 회나 초절임용으로도 인기가 있다. 지금은 환경 오염 때문에 더 귀하신 몸이 됐다. 경남 연안의 생산 물량은 품귀라 부산 사람들에게 돌아올 몫이 없다.

전남 여수 가막만에서 잡힌 게 주로 부산의 식탁에 오른다. 이 또한 최상의 맛을 내려면 반나절 만에 고속버스로 특송하고, 신선한 해수에 넣어 보살펴야 이튿날 산 채로 손님상에 나갈 수 있다.

선도 유지가 까다롭고, 비용도 많지만 그래도 어쩔 것인가. 겨울의 끝자락에 새조개를 꼭 먹어야겠다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4월까지 새조개가 나온다는 것. 기다리면 맛볼 기회는 있다.

수영구의 '하모횟집'과 영도구의 '현미해물천국'에서 새조개 샤부샤부를 음미했다. 육수를 내는 방식, 조갯살을 데쳐 식감을 살리는 방법이 미세하게 달랐지만 두 곳 모두 계절의 풍미를 즐기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새조개 샤부샤부 상차림.
■ 수영구 민락동 하모횟집

민락회센터에 위치한 하모횟집은 무, 파, 다시마로 육수를 낸다. 조금은 멀겋게 보이는데, 주인장 왈 "육수 맛이 강하면 조갯살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없어서"란다. 일리가 있다. 최상의 맛이 나도록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쓴 게 느껴졌다.

조갯살 풍미 살리는 맑은 육수
데치는 시간 따라 식감·맛 달라져
면으로 마무리하면 구수함 절정


인삼과 대추를 비롯해 제철 배추와 팽이버섯 등 야채를 넣은 국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부리처럼 생긴, 혹은 낫처럼도 보이는 새조개 살을 넣고 흔드는 방식으로 살짝 데쳐 먹으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데치는 시간에 따라 식감과 맛이 달라진다. 데치는 시간이 짧을수록 육질이 부드러워져 먹기에 좋다. 하지만 순식간에 꺼내면 비린 맛이 남을 수도 있다. 오래 데칠수록 쫄깃함이 강해진다. 삶다시피 빠트려 놓으면 자칫 질겅질겅 찝어야할 만큼 질겨질 수 있다. 데치는 요령에 따라 식감과 감칠맛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게에서 제시한 최선책은 10초 정도 설렁설렁 흔들었다가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다.

새조개의 속살 맛은 역시 명불허전! 쫄깃한 씹는 맛도, 입에 착 감기는 감찰맛도 일품이다. 간장과 초장 소스 어느 쪽과도 잘 어울렸다. 배추와 시금치, 팽이버섯과 함께 먹으니 찰떡 궁합. 어느새 조갯살의 육즙이 빠져나왔는지 국물은 구수한 진국으로 변했다. 보통의 조갯국물과 차원이 다른 웅숭깊은 맛이다. 
새처럼 생긴 새조개의 속살. 색이 검을 수록 신선하고 맛있다.

함께 나온 정갈한 반찬들도 구미를 당긴다.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닷가 바위에 붙어 사는 조류인 꼬시래기. 이것도 샤부샤부 국물에 넣어 데쳐 먹었더니 갯가의 향내가 입안 한가득 몰려왔다.

샤부샤부의 종착역은 끓는 육수로 면이나 죽을 만들어 식사용으로 먹는 것이다. 선택지는 칼국수, 죽, 라면. 이 중 라면 사리를 골랐다. 이름하여 새조개 국물 라면! 화학조미료 국물과 비교할 수 없는 담백함, 구수함의 결정체다. 자꾸 젓가락이 갔다.

사리가 담긴 그릇을 비울 즈음 주인 아주머니가 생물 새조개를 들고나와 까는 법을 직접 시연한다. 손질이 까다롭다. 버스로 특송된 것을 깨끗한 해수에 넣어 하루 저녁 해감해야 이튿날 손님상에 올릴 수 있단다. 새조개를 맛있게 먹기까지 너무 많은 정성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모횟집은 사계절해산물집이다. 12월부터 4월까지 새조개를 취급하다가 봄이 오면 도다리와 갯장어(하모)를, 가을이 되면 넙치(광어)를 내놓는다. 다시 찬바람이 불면 새조개로 돌아간다.

※ 부산 수영구 민락동 153의 7. 진로비치아파트 도로 건너편. 051-757-0205. 새조개 샤부샤부 1인분 3만 5천 원. 사리 2천 원. 


샤부샤부 요리에 들어갈 새조갯살.

■영도구 남항동 현미해물천국
 
현미해물천국은 12가지의 해물, 채소류 반찬과 함께 내놓는 생선구이 정식과 푸짐한 해물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점심 시간부터 멀리 시내에서 찾아오는 열혈 단골도 많다. 철 따라 갯내음 가득한 해산물 요리도 내놓는데, 이 계절의 으뜸은 단연 새조개 샤부샤부와 숙회다.

채소에다 띠포리 넣은 진한 육수
주꾸미·문어·호래기 함께 맛보는 즐거움
부요리 직접 만든 주인장 손맛 느껴져


팔팔 끓는 샤부샤부 육수를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더니 벌써 진한 맛이 터져 나온다. 다른 곳과 달리 채소류 외에도 띠포리까지 넣어 깊은 맛을 냈다.

조갯살을 데쳐 먹는 방식도 조금 달랐는데, "삶기면 고무처럼 질겨지니까 조갯살을 담갔다가 바로 건져 먹으라"고 했다. 3초 정도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짧은 시간에 데쳐야 속살의 부드러움이 유지되고 씹는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란다. 육수도 처음부터 진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안주 삼아 국물을 들이켜면 술도, 국물도 술술 들어간다.

새조개 스스로가 '자체발광'이지만, 샤부샤부 국물에 다른 제철 해산물을 넣어서 함께 맛 볼 수 있는 것도 이 집의 미덕이다. 해물탕 전문집 답게 주문 즉시 주꾸미, 문어, 호래기가 바로 대령된다. 살아 있는 생물들이라 맛이 보장되는 것도 이 집의 장점.

이 집의 부요리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제대로 곰삭은 젓갈류. 삶은 배추에 찍어 먹으라고 내놓은 멸치젓갈에 자꾸 손이 갔다. 아이가 코를 흘리는 듯 하다 해서 우스운 이름이 붙은 코고동이 삶겨 나왔는데, 제법 살이 통통 올라 씹는 맛이 좋았다. 

라면 사리를 넣으니 '새조개 국물 라면'이 됐다.
모든 부요리는 좋은 재료를 써서 가게에서 직접 손으로 만든단다. 예컨대 기계로 마늘을 찧으면 제대로 맛이 나지 않아 손으로만 다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리마다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다.

현미해물천국의 새조개 샤부샤부도 라면 사리로 마무리했다. 조개에서 배어나온 육즙으로 육수는 한층 진해졌다. 새조개 육수로 끓인 라면, 이거 먹어 보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힘들다. 뇌는 포만감의 신호를 계속 보내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젓가락이 오갔다.

※부산 영도구 남항동1가 95. 제주은행 건너편 골목. 051- 413-5570. 새조개 숙회 2만 원, 샤부샤부 2만 5천 원, 사리 2천 원, 생선구이 정식 6천 원, 호래기 2만 원, 해물탕 소 2만 5천 원·대 3만 5천 원, 물메기찜 2만 5천 원.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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