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새해, 이거 먹고 "말 달리자~"

입력 : 2014-01-02 08:01:23 수정 : 2014-01-02 14: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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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해' 말고기 요리를 찾아서

(사진 왼쪽) 서면 일식당 '길스시'에서 차려낸 '말고기 스테이크와 자연송이의 만남'. 말고기 사이에 조린 자연송이를 끼우고 깨 소스를 뿌려 낸다. (사진 오른쪽) 김해의 말고기 전문점 '사또마말고기'의 소금구이. 비육된 말고기라 소고기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혹시 질기거나 냄새 나지 않아요?" 말고기에는 꼭 이런 질문이 따라다닌다. 선입견이 꺼림칙함과 결합된 경우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예전부터 말고기를 즐겼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조선시대에는 임금님에게 진상되는 고급음식이었다. 연산군은 양기를 돕는다는 이유로 즐겼다. 높으신 나으리들이 너도나도 보양식으로 찾으면서 사달이 생겼다. 군마가 모자랄 지경에 이르자 식용 도축을 금지하고 어기면 엄벌하기에 이른 것이다.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이때 생겼다. '그림의 떡'을 두고 억지도 생겨났다. 맛이 없다, 재수 없다…. 그렇다면 말고기, 먹을까 말까? 2014년 갑오년 말의 해를 맞아 말고기의 세계로 달려가 보자.


■서면 '길스시' 말고기 초밥과 스테이크

초밥 코스에 한 점씩 제공
입안 가득 고소한 여운
송이 만난 스테이크 요리도 별미

말고기를 얹은 초밥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요!"설명 없이 말고기를 얹은 초밥을 먹고나면 십중팔구 긍정적인 반응이다. 억세거나 역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랐다는 뜻이다. 반면 말고기임을 미리 알려주면 상당수는 입에 가져가지도 않고 접시에 남긴다. 말고기를 대하는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다.

부산진구 부전동 '길스시'의 이길수(53) 오너셰프는 일식 말고기 요리를 11년째 내고 있다. 처음엔 일식집에서 왜 말고기를 내느냐는 거부감이 많았다. 그러는 사이 해외에서 입맛을 들인 분들이 하나둘 찾더란다.

역시 고기는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지금은 꾸준히 저변을 넓혀온 덕분에 마니아층이 꽤 늘었다. 초밥과 회를 내다가 지금은 마니아들의 성화에 부응해 스테이크까지 개발했다.

길스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말고기 요리는 초밥이다. 초밥 코스에 한 점씩 들어간다. 바질소스에 절여 일체의 잡내가 나지 않고 깔끔한 게 특징. 회는 깨 소스에 찍어 먹는데 고소함의 여운이 입안 가득 남았다. 안심과 둔육(볼깃살) 부위를 골라 쓴다.

아는 사람만 즐긴다는 스테이크. '말고기 스테이크와 자연송이의 만남'이라는 이름 그대로다. 말고기 사이에 조린 자연송이를 가지런히 끼우고 깨 소스를 뿌려서 낸다. 송이와 깨 소스의 향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입속에서 뜀박질로 내달렸다. 특별한 미각의 경험이다.

맛있는 말을 먹고 나선지 기분좋은 말들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이 셰프는 일본에선 말고기를 먹으면 '잘 달린다', 즉 운세가 풀린다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말고기 드셨으니 새해에는 달리셔야지요!" 듣는 것만으로 기분은 상승가도를 달렸다. "아! 네, 이 셰프님도 잘 달리세요!"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512의3 정산빌딩 2층. 051-804-3690. 말고기 스시세트는 코스(3만 원 이상)에 포함, 회 1인분 5만 원부터, '말고기 스테이크와 자연송이의 만남' 시가.


■김해 '사또마말고기' 소금구이와 불고기

소금구이용 등심·갈빗살 '특미'
버섯주물럭불고기는 달짝지근
과일 소스로 절여 비릿함 없어
말고기를 넣은 버섯주물럭불고기

김해 '사또마말고기'는 다른 육류를 취급하지 않는 8년차 말고기 전문점이다. 제주에서야 이런 곳이 차고 넘치지만 육지에서는 드둘다. 김영도(59) 사장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제주와 동네의 단골 장사 차이라고 설명했다.

맛을 보면 알게 될 거라며 소금구이용 등심과 갈빗살을 차려내 왔다. 선홍색 살점 사이로 마블링이 박혀 있다. 겉으로는 소고기와 비슷하게 보인다. 방목한 말의 육질은 질기다. 그러니 비육이 잘 돼 소고기처럼 기름기가 흐르는 고기를 쓰는 게 중요하단다. 말의 살코기는 퍼석해서 닭가슴살 같은데, 이걸 구워먹고 나면 실망한다고. 관광지에선 몰라도 동네에서 그렇게 하면 단골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력은 버섯주물럭불고기. 과일소스로 절여서 달짝지근하게 입에 맞다. 역한 냄새나 비릿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바닥이 드러날 즈음 부인 김상란(59) 씨가 밥을 들고 오더니 자작한 국물에 밥을 볶기 시작했다. 말고기 국물에 볶음밥이라니! 낯설고 거리감이 있는 말고기를 동네 식당에서 편하게 먹는 한식 밥상처럼 만들었다!

구이와 불고기를 서빙해주며 '말에 대한 모든 것'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끔 설명해주는 김 씨의 말 솜씨가 제법이다. 말뼈를 우린 곰탕이나 육개장을 개발했다가 손님들의 선입견 때문에 접은 이야기로 시작해, 예민하고 깔끔을 떠는 말의 습성까지 청산유수다. 승마를 하면서 말들과 겪은 은밀한 밀당(밀고당기기) 경험까지 흥미진진한 말의 성찬이다.

"좋은 음식인데 선입견 때문에 많은 분들이 즐기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건강식이라거나, '비아그라 물렀거라 말고기 납신다' 같은 자극적인 선전 보다 진솔한 말이 설득력이 훨씬 더 강하다.

※경남 김해시 흥동 914의11. 서김해IC 부근. 055-323-0207. 코스 1인분 5만 원. 버섯주물럭불고기 1인분(150g) 2만 원, 소금구이 1인분(등심, 갈빗살 200g) 4만 5천 원.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an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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