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드시죠… 잘 먹고 힘내서 일어서야죠!

입력 : 2014-04-24 07:51:46 수정 : 2014-04-24 1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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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 요리전문점 '원주옻오리삼계탕' 이은주 사장이 옻나무 수액으로 끓인 오리백숙을 차려내고 있다.

기운을 차리고 싶다! 먹고 나면 힘이 나는 따뜻한 음식이 간절하다. 술추렴 탓에 쓰린 속을 달래고 싶거나, 춘곤증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 싶을 때. 세월호 침몰 비보에 우울증이 찾아오고, 생체리듬도 축 처진다고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다. 펄펄 끓는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고 나면 뱃구레가 후끈 달아오르고, 한 바가지 쏟아낸 땀과 함께 스트레스도 날아가 버리는 그런 비장의 메뉴 말이다. 그래서 보양식으로, 복달임으로 손꼽히는 옻오리, 삼계탕을 찾아 나섰다. 먹고 힘을 내야 하고, 다시 일어서야 하지 않는가.


■ 태종대 '원주옻오리삼계탕'

30년 옻 연구한 전문가의 솜씨
옻 순부터 나물·지짐이·백숙까지


태종대온천 맞은편 '원주옻오리삼계탕'은 영도 마을기업 '태종대식품' 이은주(55) 대표가 운영하는 옻 요리전문점이다. 태종대 자갈마당 근처에 참옻 재배단지를 두고 30년간 옻을 연구했다. 명함에 쓰인 '옻요리전문가'는 공연한 말이 아니다. 까다로운 옻을 다루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오리와 닭을 요리할 때 수액을 쓴다.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받아낸 수액을 물에 희석한 것이다. 여느 백숙집에서는 대체로 옻나무 토막을 그대로 넣어 우린다.

"고로쇠와 비교해 볼까요. 수액과 나무를 삶아 우린 것, 어느 쪽이 좋겠어요?" 혹은 생피와 선지쯤의 차이라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란다.

수액이건, 나무토막이건 옻이 오르지 않아야 하는데 이 분야도 독보적인 기술을 갖췄다. 발효 공정을 통해 독을 분해시키고, 고압추출과 동결건조를 통해 쉽게 요리로 쓸 수 있게끔 만든다.

상차림도 옻이 응용된 것들로 빼곡하다. 옻물로 12번 쪄서 갈색을 띠는 소금은 짜지 않고 은근하다. 이 옻소금이 들어간 된장과, 간장 역시 염도가 낮은 데다 옻의 향미 덕분인지 누린내가 없다.

연둣빛 파릇한 옻순은 상차림에서 단연 으뜸의 존재감을 자랑한다. 태종대 해풍을 맞고 돋아난 새순이다. 옻 마니아들은 옻순을 회나 고기 쌈으로 즐기거나, 옻백숙에 넣어 달라고 청한다고. 이 계절에만 즐길 수 있다는 옻순 지짐이가 나오더니, 조물조물 무친 나물로도 나와 입맛을 돋웠다. 숫제 옻코스 요리라고 부르는게 좋겠다! 

태종대 해풍을 받고 돋아난 옻나무 새순 부침개.

입맛의 기대치가 한껏 높아지는 사이 큼직한 게르마늄 솥에 40분 끓인 옻오리백숙이 등장했다. 옻나무 수액을 넣으면 국물이 뽀얀 것이 특징이다. 옻나무토막을 쓰면 노란색을 띠는 것과 다르다.

거세게 끓어 넘치는 뽀얀 육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 시원하다~!" 자꾸자꾸 그릇이 비었다. 물수건으로 연신 목덜미를 닦아 내야 할 정도로 땀을 한 바가지나 흘렸다. 소매를 걷고,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문득 어릴 때 먹던 백숙이 떠올랐다. 복달임으로 끓여 꼭 토실토실한 다리를 챙겨 먹이던 어머니. 그 따뜻한 기억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를 모시고 꼭 와야겠네, 하고 다짐했다.

※부산 영도구 태종로 805. 옻오리 3만 5천 원. 옻삼계탕 1만 3천 원. 옻오리국밥 7천 원, 한방오리백숙 3만 원. 051-403-5858.


'유나삼계탕왕갈비탕'이세연 사장이 국물이 뽀얀 삼계탕을 차려내고 있다.
■ 장산역 '유나삼계탕왕갈비탕'

뽀얀 국물엔 인삼의 은근한 향기
갈비탕·육개장도 만만찮은 내공

닭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통째로 끓는 물에 투하됐을 때다. 자극적인 양념 뒤범벅이나 튀김옷을 입지 않은 채 온몸을 다 바쳐 눅진하면서도 깊은 구수함이 우러났을 때 닭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절정의 완성미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다.

그런 맑고 구수한 닭육수를 30년째 뽑아낸 곳이 있다. 연산 토곡의 '유나삼계탕'. 구금현(75) 여사가 1983년 삼계탕집을 차렸는데, 그 맛의 전통을 둘째딸 이세연(47) 사장이 물림했다.

올 초에 장산역 5번 출구 쪽에 장산역점('유나삼계탕왕갈비탕')을 차리면서는 남편 한준부(53) 전 부산CBS 보도국장이 25년 기자생활을 접고는 뛰어들었다. 부부가 함께 앞치마를 두른 채 삼계탕을 비롯해 왕갈비탕, 육개장을 끓여내면서 탕 전문점으로 진화를 모색 중이다.
왕갈비탕은 세 번 삶은 갈비를 뚝배기에 끓여낸다.

"음식은 잔 멋을 부리면 본질이 죽어 버립니다." 인삼과 닭이 제대로 어우러졌을 때 나는 본연의, 전통적인 맛을 고수하겠다는 뜻이다. 갖가지 곡물이나 열매 따위로 치장하거나 죽 비슷하게 바뀌어 본래 모습을 잃는 걸 경계한다고.

뚝배기에 담겨 나온 삼계탕은 국물이 뽀얀 게 특징이다. 6년근 인삼의 웅숭깊고 은근한 향내가 배어 있다. 뽀얗고 구수한 국물의 비결을 물으니 "닭과 인삼의 조화에 바탕을 두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라며 빙그레 웃고 만다.

실은 오랜 세월 동안에 쌓인 제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닭고기 특유의 비릿함은 잡고, 맛의 미덕은 최대한 살리는 비법 말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연거푸 닭국물을 들이켜니 이내 바닥이 드러났다. 그러니, 30년 전통은 시쳇말로 살아 있다!

삼계탕으로 출발해서 '삼계탕 전문점'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갈비탕과 육개장에 들이는 공도 만만치 않다.

갈비탕은 세 번 삶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든다. 커다란 대접에 담아내면 국처럼 비쳤을텐데 뚝배기에 담아 다시 끓여내니 제대로 된 탕 느낌을 준다. 한우양지를 쓰는 육개장은 7시간 끓여 완성한다. 모든 탕 요리는 그날 재료를 손질해서 끓인 것을 그날 차려낸다.

"재료 손질에 등골이 휠 정도이지만 역시 음식의 맛은 정성에서 나온다는 걸 절감합니다." 30년 이어진 손맛과 사회 현안을 요리했던 경험이 한데 어우러져 뚝배기에서 펄펄 끓었다. 전통과 정성을 밑천으로 부부는 오늘도 탕을 끓이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로814(좌동 세종월드프라자B동 169호). 051-704-4677. 삼계탕 1만 1천 원, 전복삼계탕 1만 4천 원, 왕갈비탕 8천 원, 한우육개장 6천 원, 고추장찜닭 소 2만 원·중 2만 5천 원. 연산본점 051-759-4690.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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