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하면 이 집, 이 집 하면 반찬

입력 : 2016-03-23 19:09:37 수정 : 2016-03-27 15: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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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특선'이라는 이름으로 점심때만 맛볼 수 있는 메뉴가 있는 식당이 많다. 언제 찾아가도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는지 찾아봤다. 반찬을 뷔페처럼 담아 먹을 수 있는 '진양호식당', 매일 다른 계절 반찬이 나오는 '일미정'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바람 끝에 꽃향기가 묻어난다. 동래시장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선 길은 소풍을 가는 것처럼 신이 난다. 시장 안은 장을 보는 사람과 식사를 하려고 식당가를 찾아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동래시장이 자랑하는 '반찬 천국' 진양호식당

"흰밥? 보리밥? 밥만 골라요"
10가지도 넘는 뷔페식 반찬
잘 구운 생선에 강된장까지 척척


동래시장건물 1층으로 들어서면 비슷한 생김새의 식당이 이어진다. 시장 구경을 하며 '진양호식당'까지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가게에 도착하니 남은 자리는 한 자리였다.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정자 대표가 음식을 하는 주방 앞쪽으로는 여러 개의 냉면 그릇에 오늘의 반찬이 수북이 담겨 있다. 진양호식당의 메뉴는 세 가지이다. 정식, 비빔밥, 보리밥 중에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사실 의미가 없다. 흰밥을 선택하면 정식이 되고, 큰 그릇을 받아서 반찬과 비벼 먹으면 비빔밥, 보리밥을 선택하면 보리밥이 되는 시스템이다. 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 말고는 같은 메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흰밥과 보리밥을 함께 담아 달라고 했다. 밥을 뜨는 사이 백 대표는 작은 접시를 하나 내어준다. 먹고 싶은 반찬을 담으라는 거다. 뷔페식이다. 10가지가 넘는 반찬을 조금씩 담았다. 그 사이 프라이팬에서 잘 구워진 생선 한 마리, 쌈 채소, 된장국, 강된장, 젓갈을 자리에 놓아 준다. 5천 원짜리 시장표 뷔페가 너무나 푸짐하다.

한 남자 손님은 회를 안주로 소주를 한잔 중이다. 분명히 이 집에서는 회를 팔지 않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눈치 챈 것일까. 그 손님은 단골을 자처하며 "진양호 식당에서는 안 되는 것 없다"며 설명해 준다. 1인당 기본 반찬값 3천 원을 내면 어떤 메뉴도 먹을 수 있다. 삼겹살 구이, 한우 구이, 회 등 시장 안에서 파는 메뉴라면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직접 사 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하지만 진양호식당의 맛있는 반찬과 함께 먹을 수 있으니 좋다.

옆에 앉은 또 다른 단골은 저녁 늦게 마치는 시간쯤에 찾아왔더니 남은 반찬을 가득 싸 주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백 대표는 "어차피 내일 못 파는 거다. 인심이라도 쓰는 거지"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한다. 장사하면서 남는 건지 밑지는 건지 모르고 그냥 하고 있다며 웃는다. 일일이 셈하지 않는 여유가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해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양호식당의 밥은 그래서 소화가 잘되는 것일까.

정식 5천 원, 비빔밥 5천 원, 보리밥 5천 원. 영업시간 7:30~23:00. 1, 3주 일요일 휴무. 부산 동래구 동래시장길 14 동래시장 내 B-98. 010-6523-8290.

40년 단골이 줄 잇는 '가정식 명문' 일미정

"우리 언제 밥 한 끼 해요"라는 인사는 자주 한다. 하지만 막상 식사하려고 하면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하다. 

정성 가득한 반찬과 찌개
아침마다 손수 장 봐서 준비
묵은지 빼고 날마다 메뉴 바꿔
"단골 성원 많은 이유, 알겠죠?"


이때 이 집에 간다면 그날은 맛있는 밥 한 끼를 할 수 있는 날이 된다. 초량 인창병원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미정'이라는 식당이다. 4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이 주변에서 회사생활을 했던 직장인이라면 "아! 그 집"이라고 말하는 곳이다.

물론 좋은 의미다. 오랫동안 많은 단골의 지지를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단골이 자주 먹는 메뉴는 '일미 정식'이다. 시금치나물, 두부 조림, 샐러드, 멸치볶음, 미역 나물, 어묵볶음, 버섯나물 등과 생선구이, 된장찌개가 차려진다. 반찬이 10가지가 넘어간다. 기름지지 않게 잘 구워진 생선은 1인당 한 마리이다. 된장을 넣어 맛있게 끓인 시래깃국에는 매생이도 들어 별미다.

편안하게 식사하기가 좋아 며칠을 연달아 가게 되는 날도 있다. 기본 반찬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매일 달라지는 반찬 덕에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정식 메뉴 다음으로 즐겨 먹는 것은 '낚지볶음'이다. 생선과 된장찌개를 제외한 나머지 반찬은 같고, 대신 낚지 볶음이 나온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낙지와 당면이 먹음직스럽게 볶아져 나온다. 낚지 볶음 전문집이라고 해서 갔는데 양파만 가득한 여느 집의 메뉴보다 훨씬 좋다.

일미정은 김보금 대표가 가족과 함께 운영한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장보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직접 장을 보니 제철의 좋은 재료를 골라 온다. 그리고 가게로 출근해 그날 사용할 반찬을 만든다. 바로 만들어 상에 내놓으니 맛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반찬 중에 바로 만들어 내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묵은지이다. 그냥 보기에는 갓 담근 김치 같은 상큼함이 없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이 집에 올 때마다 찾게 되는 반찬이다. 겉보기와 달리 아삭함이 살아 있다. 묵은지의 깊은 맛이 좋은 한 끼의 깊이도 더해 준다. 김 대표의 여동생이 직접 담가서 보내 준다는 김치였다. 반찬의 가짓수만 채우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라도 맛있는 것을 내놓으려고 노력이 인기의 비결이라는 게 단골의 의견이다.

일미정의 음식은 간이나 양념이 세지 않아서 먹고 난 뒤 속이 더부룩하지 않다. 지나가는 길에 가게 안을 슬쩍 보고 1층에 자리가 없다고 실망하지 마시라. 2층에도 좌석이 있다.

일미 정식 7천 원, 낙지 볶음 9천 원, 간장게장 9천 원, 한정식 2만 원(하루 전 예약). 영업시간 11:30~23:00. 일요일, 공휴일 휴무. 부산 동구 고관로29번길 14-1. 인창병원에서 옛 성분도병원 방향. 051-468-6248.

글·사진=박나리 기자 nar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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