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 직격탄 맞은 울산 "이런 물폭탄 처음…15분 만에 지하주차장 물에 잠겼다"

입력 : 2016-10-06 23:02:26 수정 : 2016-10-09 13: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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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천리 반천현대아파트에서 6일 오전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이 뻘에 뒤덮힌 차량과 도로를 청소하고 있다.

제18호 태풍 '차바'는 전국에서 울산에 가장 깊은 상처를 입혔다. 울산 도심은 차바가 지나가면서 온통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시민들은 재기를 위해 자원봉사자들과 힘겨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80평생을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야, 500대를 넘게 댈 수 있는 지하주차장이 불과 15분 만에 물에 잠겼어."

1명 숨지고 차량 840대 침수
울주 반천현대아파트 한숨뿐
대형양수기로 물빼기 한창
전기·수도 다 끊겨 '발 동동'

중구 태화종합시장
사람·물건 죄다 흙투성이
저지대 폭우 겹쳐 큰 피해

6일 오전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천리 반천현대아파트(6개 동 998가구)에서 만난 80대 입주민은 아직도 이번 물난리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 아파트에서는 현재 주민 1명이 숨지고, 차량 840여 대가 침수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1000명이 넘는 아파트 입주민과 지역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은 이날 아침부터 수마가 할퀴고 간 아파트 피해 복구 작업에 바쁜 손놀림을 보였다. 울주군도 이날 새벽부터 대형 양수기 수십 대를 동원해 지하주차장 물 빼내기에 나섰다. 

하지만 수십 대의 양수기가 동원됐음에도, 지하주차장 수위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지하주차장은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3분의 1가량 물이 빠진 지하주차장에는 수백 대의 차량이 이곳저곳에서 누런 뻘과 뒤엉겨 물에 둥둥 떠 있었다.

지하주차장 밖에서도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가 물 호스로 뻘을 씻어내기에 분주했지만, 침수 차량을 밖으로 끌어낸 뒤 세척 작업을 하다 보니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뒤집힌 차량은 아파트 주변 도로변과 인근 논에서도 곳곳에 보였다.

태화강 변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1994년에 건립됐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침수 피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입주민들은 "이번 피해는 자연재해에다 인재가 겹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장열 군수도 이날 현장을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아파트 주변에 280㎜가량의 집중호우가 쏟아진 데다, 인근 산단에서 유입된 빗물과 2㎞가량 떨어진 대암댐의 수문 개방이 더욱 침수 피해를 키웠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의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하주차장이 완전히 침수되면서 전기와 수도가 끊겼기 때문이다. 수돗물 공급도 빨라야 7일 오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6일 오전 울산 중구 태화종합시장에서 침수 차량을 옮기고 있다. 권승혁 기자
같은 시각, 울산 중구 태화종합시장. "이기 시장입니꺼, 차라리 쓰레기장이 따로 없지예." 군인과 경찰, 자원봉사자까지 수백 명이 뒤섞여 복구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흙탕물 범벅인 가게를 청소하던 신발가게 주인은 "장화 한 켤레 살 수 있느냐"는 한 시민의 질문에 "이 판국에 장사할 정신이 어디 있느냐, 아무거나 하나 신고 가라"며 애써 웃음지었다. 얼굴과 온몸이 흙투성이인 상인들에게 이름조차 묻기 민망한 상황이었다. 
6일 오전 울산 중구 태화종합시장이 태풍으로 폐허나 다름없이 변했다.
과일과 나물, 건어물 좌판이 즐비했던 시장길은 하루 사이에 온갖 잡동사니와 고철더미가 뒤섞인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전날 성인 남자의 가슴까지 차올랐던 빗물이 빠지자 상가 100여 곳은 이름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칼국숫집도, 횟집도, 철물상도, 과일가게도 성한 물건 하나 없었다. 토마토, 배, 가을 전어는 길바닥에 나뒹굴었고, 미처 주인의 손길이 닿지 못한 장어 한 마리는 부서진 수족관에서 흙탕물에 머리를 박은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방문할 만큼 울산에서 가장 활기찼던 시장은 한순간에 폐허처럼 바뀌었다.

옷가게 주인 정도남(63) 씨는 "먹고살 거라고는 이 가게뿐인데,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과일가게를 하는 류춘옥(51·여) 씨도 "상인 중 손해보험을 들어 놓은 곳이 얼마나 되겠냐. 하늘도 무심하지, 어떻게 이렇게 (물건이) 깨지고 부서질 수 있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상인들은 이날 거짓말처럼 청명하게 갠 하늘을 보며 "시장이 생긴 이래 30년 넘게 이 같은 물난리는 처음"이라며 "너무 속이 상해 눈물도 안 나온다"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태풍이 불어 닥친 5일은 마침 장날이어서 피해가 막심했다. 상인들은 최근 시장 위쪽에 조성된 우정혁신도시 때문에 더 피해가 컸다고 주장했다. 이곳을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의 위로에도 태화시장 상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가시지 않았다.

글·사진=김태권·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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