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맛 돼 제주도 맛] 국가대표 돼지고기 '자존심 대결'

입력 : 2017-05-10 19:29:39 수정 : 2017-05-11 1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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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익은 이베리코 고기 표면은 풍성한 육즙이 번져 나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한국인이 부담 없이 찾는 외식 메뉴 가운데 돼지고기는 항상 수위권에 든다. 대중화 다음은 차별화! 더 맛있고, 더 깨끗한 고기를 찾기 마련이다. 스페인 흑돼지인 이베리코와 청정 제주 돼지고기가 더 맛있는 고기를 찾는 마니아들의 입맛을 당기고 있다.

흑공탄 - 스페인 흑돼지 '이베리코'

육즙 뿜어내며 고소한 맛 '최고'
큼직한 새송이버섯·생파인애플
고기와 함께 구워 먹는 맛도 별미
목살 넣은 된장찌개, 정성 가득

염지한 돼지고기 뒷다리를 오래 건조한 뒤 살을 얇게 썰어 먹는 스페인 전통 음식 하몽은 국내에선 아직 귀한 메뉴다.

이 하몽을 만드는 돼지고기가 흑돼지인 이베리코다. 상수리나무 숲에서 자유롭게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가둬 키우지 않기에 스트레스가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많다. 고급 레스토랑에는 이베리코를 활용한 돼지고기 요리 종류가 많다.

친구가 사온 이베리코 구이를 우연히 먹어 본 김진원 대표는 육즙이 풍부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이 고기에 반했다. '세계 4대 진미'라는 홍보가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침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그는 국내 이베리코 유통 현황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시작했다. 맛은 확실한데 아직 보급이 활발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김 대표는 가게 자리를 물색하다 양산 덕계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11월 일이다. 흑돼지에서 '흑'을, 연료인 연탄에서 '공탄'을 따와 가게 이름을 '흑공탄'이라 지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베리코에도 등급이 있다. 이베리코 이외 다른 종자가 얼마나 섞였는지, 도토리 외 사료를 얼마나 먹느냐에 따라 베요타-세보데캄포-세보 순으로 나눈다. 흑공탄에서 쓰는 이베리코는 중간 등급인 세보데캄포다. 합리적인 가격에 떨어지지 않는 품질을 보장받을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익힌 고기는 콩가루와 소금, 막장 중 기호에 맞게 찍어 먹으면 된다.
흑공탄에서는 주문을 하면 밑반찬과 함께 생파인애플 한 조각이 나오는데 손대면 안 된다. 구운 뒤 고기와 함께 먹어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콩가루와 소금, 막장 세트는 1인당 한 종지씩 나온다.
고기가 나오기 전에는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쿠킹호일로 싼 새송이버섯을 연탄불 위에서 먼저 익힌다.
고기가 나오기 전 쿠킹포일에 싼 뭔가를 불판 위에 얹기에 정체를 물으니 새송이버섯이라고 했다. "보통 고깃집에서는 송이버섯을 얇게 썰어 몇 점 내놓는데 고기를 굽거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타서 못 먹고 버리는 경우가 많잖습니까. 저는 맛있고 큼직한 새송이를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더 맛있게 드실 수 있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김 대표는 육즙을 잃지 않으면서 고루 익히는 방법으로 쿠킹포일을 선택했다. 목살과 갈빗살, 항정살 세트가 나오고 은근한 연탄불 위에서 고기는 얼마 안 가 노릇한 빛깔로 바뀌며 반지르르한 육즙을 뿜어냈다. 큼직하게 자른 새송이와 파인애플도 적당히 익었다. 콩가루에 살짝 묻힌 목살과 파인애플을 함께 입에 넣었다. 고기가 이렇게 달고 고소할 수 있나, 당혹감에 파무침을 씹었다. 익은 새송이를 아무것도 찍지 않고 씹어보니 풍미 넘치는 즙이 물컹거리며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얄팍한 버섯에선 못 보던 맛이다.

고기 외식의 완성은 된장찌개다. 흑공탄 된장찌개는 북어 대가리, 멸치, 무, 양파, 새우 등으로 육수를 내고, 좋은 된장을 적정 비율로 섞어 끓인다. 여기에 이베리코 목살, 표고버섯이 양껏 들어간다. 된장 속 이베리코 목살을 건져 먹어보면 쇠고기 차돌박이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김 대표는 "좋은 고기와 맛있는 된장찌개에 집중한다"고 했다. 냉면 같은 부가 메뉴도 없고, 반찬도 소박하다. 그러나 고기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부가 재료는 충분하고, 된장찌개에도 정성이 가득하다. 가격도 부산 시내에서 먹는 것보다 확실히 저렴하다는 느낌이었다.

이베리코 목살·갈빗살·항정살 각 120g 7000원, 산청 지리산흑돼지 120g 8000원. 된장찌개 소 3000원, 대 4000원. 영업시간 오후 5시~오전 1시. 경남 양산시 평산남3길 8(평산동). 055-382-3332.

더포프 - 제주 청정돼지
노릇한 제주 오겹살과 목살, 삼겹살 옆에서 씻은 묵은지가 함께 익고 있다. 둘의 조합은 구수하면서도 깔끔하다.
서귀포축협 관리 최고급 돼지
화산석 불판에 원적외선으로 구워
순태젓에 찍어 먹으면 환상 조합
당귀·갓으로 만든 장아찌 '깔끔'

국내에서 청정지역을 꼽으라면 제주도만 한 데가 없다. 제주도 흑돼지가 유명하지만 내륙으로 반출되는 양은 많지 않다. 서귀포축협이 엄정하게 관리하는 '제주촌 포크'를, 그것도 1~1+ 등급만 받아 내놓는 집이 있다기에 찾아가 봤다.

수영구 일대에서 경양식과 커피숍, 고깃집을 고루 운영한 베테랑 윤성호 대표가 1년 6개월 전 수영구청 앞에 차린 '더포프'라는 고깃집이었다. 직전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이름을 패러디한 목살집을 열어 줄 서는 맛집으로 만든 노하우를 더포프에 쏟았다. 이때부터 윤 대표는 제주 청정 돼지에 '꽂혔다'.

"제주도는 공기가 맑으니까 거기서 키운 고기는 잡내가 없고 육질이 부드럽습니다. 손님들이 좋은 고기를 알아봐 주신 거죠." 윤 대표는 더포프를 열면서 몇 가지 무기를 더 장착했다. 하나는 제주도 화산석으로 만든 불판이다. 원적외선 복사열로 구워 육질을 더 부드럽게 만든다.
양파 장아찌
목살과 오겹살, 삼겹살을 골고루 시키니 잠시 후 여느 고깃집처럼 마늘 양파 단호박 젓국 등이 화산석 불판 위에 올려졌다. 절반쯤 익을 무렵, 특이하게도 씻은 묵은지가 또 불판에 올랐다. 윤 대표는 "양념이 묻은 김치를 그대로 불판에 얹으면 쉽게 타고 먹기도 불편한데 묵은지를 깨끗이 씻어 익히면 훨씬 깔끔하게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갓·당귀 장아찌는 입과 속의 평정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
육즙과 기름을 중화시키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장아찌다. 당귀와 갓으로 만든 장아찌는 달짝지근하면서도 깔끔하다. 윤 대표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법을 그대로 발휘했다. 쫀득한 껍데기까지 붙은 오겹살의 구수한 맛을 느끼고 나서 짭짤한 묵은지와 함께 먹으면 '단짠'의 조합이 완성된다.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열무 물김치.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려면 불판 위에서 함께 끓는 젓국에 살짝 찍어 먹으면 된다. 갈치속젓인 순태젓이다. 고기를 씹을 때 나오는 구수한 육즙과 젓국의 옹골진 맛이 기막히게 어울린다.

젊은이들은 이 집에서 꽃삼겹을 즐겨 찾는다고 윤 대표는 말했다. 살얼음이 살짝 끼도록 냉장한 삼겹살을 얇게 저며 구워 먹는데, 모양은 대패 삼겹살, 맛은 쇠고기 차돌박이와 유사하다.

평일 낮에는 과거 경양식집에서 먹던 스타일의 포크커틀릿도 점심 특선으로 먹을 수 있다. 윤 대표가 운영했던 식당에서 체득한 노하우다. 하루 30인분 한정 판매한다.

제주 청정돼지 생오겹살·삼겹살·목살·꽃삼겹 각 130g 9000원, 된장찌개 2000원, 김치찌개 3000원, 점심특선(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수제 돈가스 65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주말 오후 4시)~오후 11시. 부산 수영구 남천동로9번길 49(남천동). 051-937-9292.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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