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반응하는 말복 보양식

입력 : 2017-08-09 19:15:41 수정 : 2017-08-09 22: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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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 위에서 용천토종민물장어의 대표 메뉴인 장어 소금구이가 노랗게 익어가며 육즙을 내뿜고 있다.

최고 35도, 최저 25도 이상. '이상 기온'이 일상이다. 매일 지나며 바라보는 부산 회동수원지는 물에 잠겨 감춰졌던 능선 밑동이 하얀 속살을 드러낸 지 오래다. 입추도 지났고 오는 11일은 말복이라. 체감 더위와 절기는 이렇게 또 어긋난다. 무더위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달아올라 메말라 가는 대지를 시원한 비가 흠뻑 적셔줬으면 하는 이 계절, 우리 몸에도 영양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용천토종민물장어

뽀얀 속살과 바삭하게 익은 장어 소금구이 한 점.
수도권에 비해 부산 울산 경남 사람들은 민물장어(뱀장어)를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가 가까이 있어 붕장어(아나고), 갯장어(하모), 먹장어(곰장어)가 흔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값비싼 음식이라는 인식도 한몫한다.

한 번에 260명이 식사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주차장, 부산 시내 중심가인 서면과 가까운 접근성, 게다가 1인분 2만 원을 넘지 않는 가격. 민물장어구이 식당으로 이만하면 대중에게 인기를 얻을 조건은 충분하다. 2015년 12월 간판을 올린 용천토종민물장어 얘기다.

한 번 구워 나온 소금구이 잡내 없어
좋은 재료·많은 양 '박리다매' 원칙
'명품 하이포크 통삼겹구이' 별미


하지만 이런 조건을 갖추고도 오래가지 못하는 식당 많다. 서비스와 환경도 중요하지만 재료와 맛이 음식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집에 가서 양념구이와 소금구이를 먹어봤다. 잡내를 잡기 위해 주방에서 한 번 구워 나오는 소금구이는 담백하고 쫄깃했다. 달큼하면서도 짭짤한 양념은 장어의 풍성한 육즙을 더 진하게 느끼게 해줬다. 맛을 보고 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기본기에도 충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어구이에 대한 선입견도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다.

적게는 2만 원 초반, 보통 3만 원 전후인 장어구이가 어떻게 이 가격에 나올 수 있을까. 품질이 떨어지는 장어를 쓰는 것 아닐까.

"토종 민물장어는 굵고 짧지요. 내수면 오염 때문에 요즘은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전 들여와 국내에서 키운 자포니카와 북미산 정도는 맛과 영양에서 토종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업계에서 인정해 줍니다. 가격으로 치면 자포니카>북미>유럽>필리핀 순이거든요." 김문창 대표의 목소리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전남 지역에서 키운 최고급 자포니카 종만 산 채로 가져와 쓴다는 얘기였다. 신선하지 않으면 결코 내놓을 수 없는 장어 내장무침을 메뉴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은 데서도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양념구이는 달콤하고 짭짤한 양념이 질 좋은 장어의 풍미를 돋운다.
결국 박리다매 외에는 전략을 설명할 방법이 없을 듯싶었다. "가게 규모가 크고 직원도 많기 때문에 기본 경비가 많습니다. 하지만 비용 부담이 크다고 재료 질을 떨어뜨리는 건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손해를 보더라도 가장 좋은 재료로 많은 손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음식점과 다른 사업체를 함께 운영하며 손실 보전이 가능한 김 대표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지면 더 갖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아무튼 좋은 재료라는 점은 인정. 그 위에 맛을 위한 방책이 더해졌다. 김 대표가 2015년 12월 이 가게를 인수한 뒤 양념구이 하나였던 메뉴를 소금구이와 생장어구이로 늘렸다. 맛을 돋우는 소스와 굽는 절차도 다양하게 개발했다. 장어를 못 먹는 손님을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명품 하이포크 통삼겹구이도 구비했다.

양념구이(110g)·소금구이(130g)·생장어구이(130g) 각 1만 9000원, 점심특선 장어구이(월~금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 1만 6000원, 장어 내장무침 2만 원, 하이포크 맥반석 통삼겹구이(120g) 9000원(3인분 이상 주문).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부산 부산진구 신천대로 287(부암동). 051-807-1092.

큐미정
퀄리티에서 Q를 따오고, 맛 미(味), 정자 정(亭)을 합쳐 이름 지은 큐미정. 이집 대표 메뉴인 황칠나무 오리해신탕에서는 전복, 돌문어, 산낙지 모두가 살아 움직이며 시각부터 장악한다.
오리, 문어, 전복. 보양 음식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한 데서 자족하지 않고 뭔가를 더해 실험하는 사람들로 인해 역사는 발전해 왔다. 전통적인 황칠나무 자생지이자 인공 종묘장으로 이름 높은 전남 해안지역에서는 이 나무를 종종 요리에 활용하지만, 최소한 부산에서는 아직도 드물다. 옻닭은 알아도 황칠닭은 낯설다. 이런 도시에서 2년 전부터 조용히 황칠을 전문으로 내세운 보양식 전문점이 있다. 문현금융단지와 가까운 '큐미정'이다.

이 집은 외가가 전남인 김겸주 대표가 외삼촌으로부터 받는 야생 황칠나무로 탕국을 끓인다. 가지와 열매, 잎을 말려 잘게 썬 뒤 오리와 함께 푹 우려 국물을 낸다. 해신탕과 백숙, 문어탕 등 모든 탕이 이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전남 고흥서 가져온 황칠나무 써
오리·문어·전복으로 보양식 만들어
국물, 구수하고 시원해 '깊은 맛'


점심 메뉴로 인기 높은 황칠오리 전복문어탕을 먹어봤다. 뚝배기 속에서 덩치 큰 전복이 꿈틀거렸다. 국물 속을 헤집어 보니 살점만 발라낸 오리고기와 문어가 가득 걸려 올라왔다.
영양 가득한 황칠나무 전복문어탕 한 숟가락.
김 대표는 전복을 뒤집어 국물 속에 깊이 담가 두라고 했다. 손님들에게 싱싱한 전복을 보여주려고 마지막에 얹어 나오지만 제대로 익혀 먹으려면 국물 속에 넣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닭이나 오리를 잘못 고면 비린내가 난다. 문어나 전복도 마찬가지다. 이 재료들의 자질구레한 냄새를 잡고, 깊은 맛은 더 깊게 하는 것이 황칠나무의 역할이다.

국물을 한 술 떠먹어 보니 과연 담백하고 시원하면서도 진한 맛이 깊었다. 오리고기 살점은 부드럽고, 문어는 쫄깃했다. 이런 국물은 먹다가 식으면 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황칠나무 덕인지 식어도 그 구수함과 시원함은 바래지 않았다.

"맛도 더 좋게 하지만, '옻칠천년 황칠만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칠나무는 건강에 이로운 성분이 많습니다." 김 대표의 설명과 함께 벽에 붙여둔 '황칠나무의 효능' 홍보 글을 보니 혈행과 간 기능 개선, 항산화 작용, 면역력 증진 등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아뿔싸, 황칠나무 학명이 '덴드로파낙스'다. 라틴어로 나무를 뜻하는 덴드로, 만병통치의 영약을 뜻하는 파낙스를 합쳐 만든 것이다.

2015년 12월 문을 연 큐미정은 골목 안집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런 맛과 영양을 알아본 사람들이 인근 금융단지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큐미정은 집밥이 그리운 손님들을 위해 탕 하나에도 반찬을 10가지 이상 손수 만들어 내놓는다.
이 집 대표 메뉴인 황칠나무 오리해신탕은 맛과 영양에 앞서 시각적인 화려함으로 유명하다. 토종 생오리, 돌문어, 산낙지, 전복 등이 황칠나무의 지휘 아래 한솥에서 끓는다. '맛과 영양의 육해공 합주'라 부를 만하다. 오리해신탕 역시 국물과 오리 외 모든 재료가 산 채로 솥에 얹혀 나온다. 익기 전에 사람들의 탄성과 카메라 세례를 한동안 받고서야 국물 속으로 잠긴다.

황칠오리 전복문어탕 2만 원, 황칠오리 문어탕·영양죽 각 1만 원, 황칠나무 오리해신탕 대(4인) 13만 원·소(2인) 7만 원, 황칠나무 오리백숙 8만 5000원(4인)·6만 5000원(2인).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부산 부산진구 중앙번영로 14-7(범천동). 051-647-0101.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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