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공포증 확산에도 매뉴얼조차 없어

입력 : 2018-11-14 19:42:45 수정 : 2018-11-14 23: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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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생리대, 식탁에 이어 신축 아파트에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라돈이 기준 이상으로 검출(본보 14일 자 9면 보도)되면서 '라돈 포비아(공포증)'가 확산되고 있다. 라돈에 대한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지만, 정작 행정기관의 애매모호하고 기준 없는 대응책이 시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보 취재진이 부산 16개 구·군의 라돈 측정기(라돈아이·사진) 대여 현황을 파악한 결과, 206개 동에서 2213명이 라돈 측정기를 빌리려고 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부산시가 나눠준 측정기 341개를 각 동에서 무료로 빌려주고 있지만, 일부 동에서는 신청자가 몰려 올해 안에 측정기 대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측정기 무료 대여 신청 폭주
부산 206개 동 2213명 대기
기준치 초과 신고도 254건

시민들 초과 검출 문의에
지자체, 외부기관 안내만
법 개정·매뉴얼 확립 필요


올 6월 라돈 측정기 무료 대여사업이 시작된 이후 모두 6449건이 접수됐고, 이 가운데 측정기 대여 이후 기준인 1베크렐을 넘는 수치가 측정됐다는 신고는 254건에 이른다. 대부분이 침대, 베개 등에서 라돈이 대량 검출됐다.

시민들의 라돈 포비아로 측정기 신청이 이어지고 있지만, 측정기에서 라돈이 검출된 뒤 부산시나 구·군의 대처는 전문기관을 안내하는 데 그치고 있다. 구·군에서 조치해야 할 대응 매뉴얼이나 컨트롤타워도 없다.

전문기관인 한국환경공단과 한국원자력상담센터도 특별한 대책은 없다. 한국환경공단은 14일 "라돈 정밀조사 신청이 쇄도해 현재는 추가접수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상담센터는 "물질과 측정기 종류에 따라 라돈 측정값이 다 다르다. 지자체에 라돈 관련 내용을 문의하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지자체와 방사선 관리 기관이 떠넘기기를 사이에 시민들의 공포감만 더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라돈이 검출된 물건의 처리도 불안감을 더욱 부추긴다. 방사능 폐기물로 처리되지 않고 일반 폐기물로 처리되는 탓이다. 시민이 라돈이 나오는 물건을 처리하려고 문의하면 방호비닐만 주고 처리는 시민 개개인이 한다. 환경부는 현재 폐기물관리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라돈 수거 기준(1베크렐)을 명시해 라돈을 폐기물로 수거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지만, 개정 시기는 내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사실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법 개정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라돈측정기로 태국에서 사 온 베개에서 나오는 라돈을 확인한 김 모(33·사상구 삼락동) 씨는 "구청에 전화했더니 그냥 버리시면 된다는 식의 안내였다. 자세한 검사를 받고 싶다 하니 여러 군데 전화번호만 알려주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라돈 포비아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조속한 법 개정과 지자체의 매뉴얼 확립이 당장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이성진 사무국장은 "시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해 환경부나 지자체가 선제적인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며 "당장 국민 안전을 위해 법 이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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