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기자의 쫄깃한 회 스토리] ② 도다리는 어디 있나?

입력 : 2013-03-21 07:47:14 수정 : 2013-03-25 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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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 문치가자미? 횟집 사장님도 헛갈려

고급 횟감에 속하는 줄가자미(속칭 이시가리). 생선살은 분홍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 안 먹으면 왠지 봄마중을 못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 이제 도다리는 봄의 미각을 자극하는 전령사로서의 입지가 확고하다.

그런데, 우리가 도다리로 알고 먹는 생선의 학명, 즉 표준명칭은 가자미들이다. 진짜 도다리는 어획량이 적어 존재감이 없는 반면 40여 종에 달하는 가자미들 중 일부가 도다리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남해안에서는 문치가자미를, 동해 쪽에서는 용가자미(포항가자미)를 도다리로 부르며 회로도 먹고, 쑥을 곁들여 국으로도 끓인다. 진짜 도다리는 현장에서 '담배도다리' 혹은 '담배쟁이'로 불린다.

명칭이 혼용되고 중국산과 양식까지 뒤섞이니 잡는 사람, 파는 사람, 먹는 사람 모두가 헛갈린다.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는 일반인들은 그렇다치고, 업계 종사자들조차 동명이종, 이명동종의 혼란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즐겨 먹는 봄도다리 '뼈째회'(국립국어원의 '세꼬시'순화어)와 쑥국에는 대체 어떤 생선이 들어가고 있을까? 혼선을 막을 방법, 알고 먹을 수는 없을까? 그래서 당최 궁금증 덩어리인 봄도다리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진짜 도다리는 "담배도다리"
흔히 먹는 것은 문치가자미
명칭 혼용 업계 종사자도 혼란

12~2월 산란철, 4월부터 감소
일부 종류에 따라 제철 논란도

■문치가자미 해프닝


최근 한 단골 횟집에서 봄도다리 뼈째회를 주문했다. 주인에게는 일종의 블라인드 테스트 형식으로 상을 차려 달라고 부탁했다. 부산을 비롯해 거제와 통영 등 남해안에서 도다리로 불리는 문치가자미와, 양식 넙치(광어)를 뼈째회로 나란히 놓아 달라고 했다. 넙치 치어와 도다리 살의 색감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만약 섞어 냈다면 일반인들이 구별하기 어려울 듯 싶었다.

시식이 끝난 뒤 생선회전문 블로거 '몽' 최홍석 씨를 비롯해 3명의 참가자들이 수조를 둘러보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주인은 중국산이라 써 놓은 수족관에 든 돌가자미를 문치가자미로 오해하고 있었고, 옆 수조의 문치가자미를 참가자미로 알고 있었다. 즉, 실제 횟감으로 나온 건 돌가자미-넙치 뼈째회였던 것이다. 단순한 오해가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문치가자미는 양식이 안 되니 자연산밖에 없다. 한국에선 돌가자미 대량 양식에 갓 성공했을 뿐이어서 시중에 유통되는 돌가자미는 대부분 중국 양식산이다. 당연 문치가자미 가격이 비싸다.

문치가자미를 주문했는데 돌가자미가 나온 해프닝은 '도다리'를 둘러싼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날 저녁에는 해운대의 한 고급 횟집을 찾았다. 자연산 줄가자미와 도다리 뼈째회가 나왔다. 수조를 둘러보니 상어처럼 등껍질이 까칠한 줄가자미가 한가득 들어있고 '국산 이시가리'로 표기되어 있다. '국산 도다리'라고 쓰인 아래 수족관에는 문치가자미들이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국내 자연산임을 확인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문치가자미의 산지가 어디냐?'고 묻자 주인은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도다리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추궁한 모양새가 되어 버려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처음부터 표준명을 썼으면 이런 난처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름 때문에 가장 억울한 생선은 고급횟감 줄가자미다. 일본어로 돌은 '이시', 가자미는 '가레이'다. 이 둘이 붙은 '이시가레이'가 '이시가리'로 변해 돌가자미도 아닌 줄가자미(일본어로 사메가레이)의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현장에서는 돌가자미-이시가리-줄가자미를 섞어 쓰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혼란이 종종 발생한다.

이날 겪은 두 사례로 짐작하건대, 흔하고 저렴한 넙치(광어)에서부터 고급 횟감 줄가자미까지 명칭 혼란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돌가자미와 국내 양식 넙치(광어)의 뼈째회.

■도다리의 제철은?

봄도다리의 소식이 가장 먼저 들려오는 통영을 찾았다. 지난 18일 오전 5시 통영수협 견유위판장. 제철을 맞아 값도 잘 쳐 주고 위판량도 많으니 모두들 싱글벙글이다. 이날 하루만 800㎏이 위판됐다. 먼바다에서 산란을 위해 근해로 들어왔다가 잡힌 문치가자미들이다. 난(알)을 갖고 있다 해서 난도다리라고도 불리는 이 싱싱한 문치가자미들은 위판이 끝나자마자 부산과 마산(창원), 대구 쪽에서 온 물차들에 실려 나갔다. 대도시의 활어집에 가서 뼈째회로 상에 오를 것이다.

문치가자미는 산란을 하고 난 4월 이후면 먼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어획량이 확 줄어든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철 논란이 있다. 문치가자미의 산란철이 12∼2월이라 산란 전후 육질이 퍼석해서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횟감보다는 쑥국으로 끓여 먹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그래서 '봄도다리는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량 어획되는 봄이 제철일까? 아니면 산란기를 한참 지나 살이 올라 맛이 최상일 때가 제철일까.

하지만 도다리쑥국의 또 다른 주역인 용가자미(포항가자미)는 남해보다 온도가 낮은 바다에서 살면서 여름철까지 산란한다. 자신의 이름을 빼앗긴 진짜 도다리(담배도다리)도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산란한다. 우리나라 모든 수역에서 사는 가자미들이 사는 바다에 따라, 종에 따라 산란철이 조금씩 다르고, 사시사철 잡히니 어찌 보면 제철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통영수협 견유위판장에서 도다리(문치가자미)가 위판되고 있다.

■도다리, 가자미 알고 먹을 수밖에!

그렇다면 대체 자기 이름을 빼앗긴 진짜 도다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해답을 찾으려 부산시수협 자갈치공판장을 찾았다. 가자미 수백 상자가 밤 10시 위판을 앞두고 즐비하게 놓여 있는데, 거기서 진짜 도다리를 발견했다. 동해산 포항가자미(용가자미), 제주에서 온 참가자미 수백 상자가 모두 '도다리'로 호칭되며 놓여 있었고, 그 한편에 진짜 도다리가 겨우 5상자 있었다.

그나마 '도다리'로 부르면 찾을 수 없고 '담배도다리'라고 해야 알아들었다. 어획량이 미미해 존재감이 없으니 시중에서 담배도다리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도다리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사시사철 상 위에 오르는 가자미류를 잘 구별하면서 먹는 게 상책인 것이다.

가자미를 둘러싼 혼선을 없애려면 우선 표준어 명칭 정착이 급선무다. 위판할 때, 시중에 유통할 때 명칭이 통일되면 오해와 무지로 인한 해프닝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야 선의의 피해를 없애고 활어 문화의 선진화에도 도움이 된다.

동시에 소비자 스스로도 어종을 구별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제공하는 사진 자료를 휴대전화기에 저장해 놓고 시내 수조를 돌아보면서 판독해 본 결과 몇 차례의 시행착오만 거치면 어렵지 않게 가자미류를 구별해 낼 수 있었다.(가자미 구별법 참조)

알고 먹느냐, 모르고 먹느냐, 그 차이는 크다. 도다리의 종적을 찾아 떠난 여행 끝에 내린 결론이다.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 가자미 구별법



도다리(담배도다리)①가 마름모꼴인데 비해 가자미는 대체로 타원형 몸체를 갖고 있다. 가장 많이 접하는 문치가자미②는 갈색 또는 황갈색 바탕의 타원형 몸체에 얼룩반점이 퍼져 있다. 몸체에 투명감이 있고 눈이 있는 반대편은 흰데 점액이 묻어난다.

돌가자미③는 물집처럼 생긴 돌기가 눈 있는 쪽 옆줄 아래위에 나란히 이어진 게 특징이다. 중국산 치어가 시중에 유통된다. 용가자미④는 몸은 길쭉하고 입이 큰 편이며 위쪽 눈이 가장자리에 쏠려 있다. 눈 반대편이 완전히 희지 않고 가장자리에 잿빛이 도는 것으로 다른 가자미들과 구분된다.

줄가자미(이시가리)⑤는 엠보싱 같은 돌기가 몸통 전부를 뒤덮고 있어 일부 지역에선 '옴도다리'라고도 불린다. 양식 강도다리⑥는 지느러미에 검은색 줄무늬가 확연해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참가자미는 눈 반대쪽 꼬리 가까운 부위가 황색을 띤다.

김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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