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길 일번가'를 아시나요? '구둣방 골목' 어디 갔느냐고요? 이제는 '카페 골목'이랍니다

입력 : 2014-01-16 07:58:50 수정 : 2014-01-16 14: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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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에는 다양한 테마 골목이 있다. 그중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골목도 있지만, 가게 수가 줄어들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골목도 적지 않다. 구둣방골목은 후자에 속한다. 한때 신사·숙녀 구두 패션의 일번지로 통했지만 구둣방이 하나둘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폐업하면서 골목 이름도 함께 증발했다.

구둣방골목의 새 주소 도로명은 '남포길'. 부산극장 앞 비프광장로와 닿는 지점에서 부산도시철도 남포역(구덕로)과 만나는 지점까지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이 지하로 지나는 구덕로의 뒷골목이기도 하다. 남포길 뒤쪽은 패션거리로 유명한 광복로다.

남포길은 부산국제영화제로 구도심이 재조명을 받은 1990년대 이후에도 비프광장로, 광복로, 구덕로 등 주변 큰 도로의 상권에 가려 '죽은' 골목으로 치부됐다. 이로 인해 건물 공실률이 70∼80%에 달하기도 했다. 1층도 겨우 장사할 정도였고, 2층 이상은 아예 빈 공간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비프광장로~구덕로 34번길 높은 
공실률로 죽은 골목 '옛말' 
430m에 카페 20여 곳 밀집 
아메리카노 한 잔에 1천~2천 원 
힐링카페부터 무한리필까지


그 구둣방골목이 최근 '카페골목'이라는 새 별칭을 얻고 있다. 카페골목을 정확하게 설정하면 남포길 중 부산극장 앞 비프광장로 접점부터 서울깎두기 옆의 구덕로34번길 접점까지다. 골목 길이가 430m가량 되는데, 1월 현재 20개의 크고 작은 카페가 경쟁하고, 때로는 상생하면서 새로운 골목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상당수가 최근 1∼2년 사이에 문을 열었다.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룸카페, 2∼3개 테이블로 운영하는 테이크 아웃 카페, 빵이나 케이크, 아이스크림을 함께 파는 디저트카페, 생두를 직접 갈아 주는 커피전문점, 건물 전체를 카페로 활용하는 카페빌딩까지 운영 방식도 다양하다.

이곳 카페의 커피(아메리카노 한 잔 기준)값은 1천∼2천 원대. 주로 20대를 겨냥하니 커피값을 내릴 수밖에 없다. 덕분에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주변에 들어왔다가 가격 경쟁력에 밀려 문을 닫은 사례도 있다.


■구둣방 대신 카페 20여 곳 포진

포장마차와 이동식 매대가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부산극장 앞 비프광장로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 사이를 비집고 오른쪽의 남포길로 들어서면 골목 입구의 오른쪽 모서리 건물 2층에 '카페 가비'가 있다. 좁은 입구를 원목 재료로 마감해 낡은 건물 이미지를 희석시킨 것이 먼저 눈길을 끈다. 2층 계단 벽면에는 사슴 뿔을 닮은 장식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계단 끝에서는 작은 사슴이 손님을 맞는다.

카페 가비의 골목 맞은편 건물은 '카페 아망떼' '프렌즈 카푸치노' '이쿠' 등 카페 3곳이 경쟁하고 있다. 2, 3, 4층에 각각 자리잡은 이들 카페는 커피만 팔지 않는다. 이른바 커피전문점을 표방한 가게가 아니다. 아망떼(2층)는 요즘 20∼30대를 유혹하는 사계절 빙수를, 프렌즈 카푸치노 2호점(3층)은 와인을, 이쿠는 맥주를 커피와 함께 팔고 있다. 특히 부산에 본점을 둔 프랜차이즈 카페인 아망떼는 젊은 고객을 유치하려는 전략으로 테이크 아웃 커피에 한해 50% 할인하고 있다.

이들 카페의 옆 건물 2층에는 '달콤한 아지트'가 포진하고 있다.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연인들이 즐겨 찾는 룸카페로, 쿠키와 캐러멜팝콘을 무제한 리필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달콤한 아지트란 상호에서처럼 개별 공간에는 연인들만 따로 볼 수 있는 TV가 설치됐다. 달콤한 아지트에서 서울깍두기 방향으로 열 걸음 정도 더 들어가면 왼편에 팔색삼겹살집이 있고, 그 옆 건물 3층에서 '카페 쉐이드'를 만날 수 있다. 카페 쉐이드도 룸카페다. 방별 TV는 물론이고 노트북도 빌려 준다. 평일 3시간,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2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먼스터.
카페 쉐이드 앞 건물에는 '버블퐁'과 '먼스터'가 있다. 버블퐁은 서울에 본사를 둔 프렌차이즈로, 이곳은 남포8호점이 입주했다. 버블퐁은 자체 개발한 블랙티 커피 한 잔을 1천900원에 팔고 있다. 먼스터는 커피를 팔지만 본업은 술집이다. 카페보다 아이리시 펍에 가깝다. 커피 메뉴도 다양하지 않다.

아마스빈.
먼스터 옆에는 '아마스빈'이 있다. 벽 대신 큰 투명 유리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는데, 커피와 밀크티, 와플을 주력 상품으로 내걸고 있다. 2천∼3천 원대의 가격대가 많아 젊은층에서 인기가 높다. 아마스빈 옆에는 '코지플레이스'도 있다.

카페 스위트룸.
구덕로48번길이 관통하는 지점을 지나면 두 번째 블록의 남포길이 나타난다. 이 길을 사이에 두고 같은 이름의 카페가 두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카페 스위트룸'으로, 하나는 광복로 쪽 건물 2층, 다른 하나는 길 건너 건물의 지하에 터를 잡았다. 주인은 같고, 상호에서 짐작하듯이 룸카페다. TV, 과자, 쿠키는 물론이고 셀프바도 설치했다. 광복로 쪽의 카페 스위트룸 옆에는 '쉼표'와 '카페 디아떼' '프렌즈 카페 앨리' '커피리나'가 똬리를 틀고 있다. 또 길 건너에는 '라비아' '노크' '코트도르' '다운타운'이 있다. 카페골목에서 가장 많은 카페가 집중된 공간이기도 하다.

쉼표는 힐링카페를 표방하며, 노크는 룸카페, 카페 디아떼는 이탈리아산 아이스크림인 젤라토가 유명하다. 1층과 지하층을 함께 쓰는 디아떼는 유자, 파인애플, 사과 등의 과일스무디를 추천하고 있다. 유자차와 자몽티는 각 2천 원에 판다. 프렌즈 카페 앨리는 아메리카노 2천 원, 카페라떼 2천500원, 딸기스무디 2천800원에 팔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와 비교하면 가격 차이가 제법 난다. 심지어 아이스티는 1천800원. 프렌즈 카페 앨리는 1∼3층 모두 78석을 두고 있는 대형 카페다. 흰색 외관이 돋보인다.

라비아는 카페골목에서 몇 안 되는 원두커피 전문점이다. 3층짜리 건물 중 2, 3층은 카페, 1층은 맥줏집으로 만들었다. 코트도르는 커피와 레몬네이드를 팔지만 주 상품은 수제 빵과 케이크다. 하얗게 치장된 내부 인테리어는 특급 호텔 같은 느낌을 준다. 다운타운은 카페골목에서 규모가 가장 큰 카페빌딩이다. 1, 2, 3층 전체를 카페로 사용하며 잿빛 콘크리트 외관이 상호와 잘 어울린다. 카페골목 끝자락에는 커피와 맥주를 함께 파는 아지트도 있다. 부산극장 쪽에 있는 룸카페 '달콤한 아지트'와는 다르다.


■남포길 일번가의 부활… 사계절 축제

카페골목은 상인들 사이에서 '남포길 일번가'로 통한다. 남포길은 행정 명칭인데, 여기에 '중심' 혹은 '최고'를 상징하는 '일번가'란 단어를 붙였다. 이곳에는 10여 년 전부터 '남포길 일번가 상가발전위원회'가 결성돼 있었다. 그러나 상권이 급속도로 약화되면서 위원회의 역할도 줄어 존재감이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에 크고 작은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골목이 다시 생기를 되찾자, 이에 자극을 받은 상인들이 지난 2012년부터 골목 재생 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중구청에 예산을 신청해 광복로와 비프광장로에서만 열리던 크리스마스 축제를 카페골목까지 연장했고, 올해에는 골목 내 모든 간판을 새로 정비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상인들은 내친김에 사계절 축제 일정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 4월 봄에는 들꽃축제, 여름을 앞둔 6월에는 장미축제, 가을인 10월에는 국화축제, 그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축제를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들꽃과 장미축제는 새해부터 시작된다. 남포길 일번가가 카페골목을 디딤돌 삼아 부활의 꿈을 꾸고 있다.

글·사진=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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