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건축물에 눈이 번쩍, 입장료 5만 원에 입이 떠억

입력 : 2024-05-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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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군위군 산지공원 ‘사유원’]
알바로 시자·승효상·정영선 등 참여
전망대 ‘소대’, 층마다 변화무쌍 풍경
콘크리트·예술작품 어우러진 ‘소요헌’

‘풍설기천년’ 수백 년 된 모과나무 천국
알람브라 궁전처럼 미로 같은 ‘명정’
곳곳에 철판 건축물·작은 예배당 등도

대구 군위군은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또 네티즌에게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알려진 화본역이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이곳에 3년 전 아주 이색적인 수목원 겸 산지공원이 문을 열었다. 세계적 건축가, 조경가 여럿이 참여해 만든 놀라운 공간이다. 올해 초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눈물의 여왕’ 촬영지로도 유명한 ‘사유원’이 바로 그곳이다.

알바로 시자의 ‘소대’에서 바라본 ‘소요헌’. 콘크리트 덩어리가 주변 자연과 환상적 조화를 이룬다. 남태우 기자 알바로 시자의 ‘소대’에서 바라본 ‘소요헌’. 콘크리트 덩어리가 주변 자연과 환상적 조화를 이룬다. 남태우 기자

평일인데도 사유원 주차장은 만원이어서 맞은편 도로변에 ‘불법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사유원 앞은 창평 저수지인데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편안한 느낌이 일품이다. 벤치에 앉아 ‘멍때리기’ 하거나 가볍게 산책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유원을 찾아가면 두 가지 때문에 놀란다는데, 모두 사실이었다. 먼저 깊은 산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은 환상적인 건축물 때문에 두 눈이 번쩍 뜨인다. 또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보다 배나 비싼 1인당 5만 원의 입장료 탓에 입이 떠억 벌어진다. ‘엄청난’ 입장료를 낼 가치가 있다는 사람도 있고, 너무하다는 사람도 있으니 판단은 관람해본 각자의 몫이다.

사유원 곳곳을 다 돌아보려면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두루 오가면서 꽤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둬야 한다. 매표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꼬부랑길’을 택했다.

알바로 시자가 만든 기울어진 전망대 ‘소대’. 올라갈수록 변화무쌍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남태우 기자 알바로 시자가 만든 기울어진 전망대 ‘소대’. 올라갈수록 변화무쌍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남태우 기자

등에서 적당히 땀이 흐르게 만드는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 먼저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연상케 하는 기울어진 ‘소대’가 나타난다. 포르투갈의 유명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만든 전망대다. 포르투갈어로 ‘작은 탑’이라는 뜻인 ‘미라도로’라는 이름을 가진 소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층마다 변화무쌍한 풍경이다. 때로는 구조물 및 빛과 어울려, 때로는 전망 그 자체로 눈부시게 화려한 풍경을 연출한다.

소대에서 산 쪽을 바라보면 연한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가 나타난다. 역시 알바로 시자가 건축한 ‘소요헌’이다. 시자는 피카소의 대작 ‘임신한 여인’과 ‘게르니카’를 전시할 스페인 마드리드 오에스테스 공원의 가상 프로젝트를 사유원에 창조했는데 그것이 소요헌이라고 한다.

‘소요헌’ 내부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휴식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남태우 기자 ‘소요헌’ 내부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휴식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남태우 기자

소요헌은 회색 콘크리트와 하얀 빛 그리고 일부 예술작품과 푸른 정원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어디에서 보더라도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맞은편 공간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액자 속의 그림처럼 보이게 만드는 특이한 구성은 정말 인상적이다. 긴 콘크리트 벽은 ‘게르니카’를 걸기에 최적지라는 생각도 든다.

소요헌 뒤편 ‘초하루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속에 이런 공간이 있나’라고 놀랄 만한 정원이 나타난다. 수백 년 된 모과나무 108그루와 붉게 녹슨 철근 구조물이 가족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어우러진 ‘풍설기천년’이다. 조경가 정영선, 박승진 씨가 설계한 이곳은 ‘천국에 정원이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시원하고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수백 년 된 모과나무 100여 그루로 조성된 정원 ‘풍설기천년’에서 한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남태우 기자 수백 년 된 모과나무 100여 그루로 조성된 정원 ‘풍설기천년’에서 한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남태우 기자

풍설기천년을 지나 숲길을 걷다 보면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명정’이 등장한다. 벽이 사방을 에워싸는 바람에 파란 하늘과 정원 가운데를 가득 메운 연못만 보이게 만든 공간인데,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의 아라야네스 정원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다.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좁은 복도를 지나다녀야 하는 게 미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유원에는 이 밖에도 붉은 철판 건축물인 승효상 씨의 ‘와사’와 ‘사담’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 지어진 작은 집인 ‘현암’, 알바로 시자가 만든 작은 예배당인 ‘내심낙원’ 등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곳곳에 숨어 있다.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다리는 약간 풀린 느낌이지만 눈과 가슴에는 한동안 지울 수 없는 훌륭한 건축물의 흔적이 깊이 새겨졌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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