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시장사람들] <10>해운대시장 칠암산곰장어 정영근 사장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22: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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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돌며 독특한 양념 개발 '부지런하면 뭘 해도 된다'

"1950년대에만 해도 해운대 해수욕장 옆 잔디밭 쪽에 판자촌들이 쭈욱 있었지요. 거기가 제 고향입니다. 1959년 추석 때 태풍 사라가 해운대를 덮치면서 거기에 살던 주민들이 다 해수욕장 건너편으로 넘어오게 됐지요. 그런데 1980년대만 해도 시장 골목엔 사람들이 어깨에 부딪혀 못 걸어다닐 정도로 많았어요. 씨클라우드 자리 지하상가에 있던 막횟집엔 1만원만 들고오면 아나고(붕장어)에 소주를 양껏 먹을 수 있었구요. 그러나 이젠 그 지하상가도 없어졌고 골목시장의 건물주 55명 중 12명만 계속 남아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다시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지요. 제가 나고 자라 성공한 고향이니까요."

해운대 시장의 골목을 따라 쭈욱 들어가다보면 곰장어 집들이 하나둘씩 눈에 띈다. 가장 안쪽에 잡은 것이 바로 칠암산곰장어다.

설 연휴가 끝난 21일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시장을 지키고 있는 토박이 상인 정영근(49)사장을 만나러 갔다. 설날인 18일이나 19일에도 해운대를 찾은 이들을 위해 자정까지 영업을 했다는 정사장은 낮 12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수족관에서 건져올린 곰장어를 다듬고 있다.

무게를 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껍질을 벗겨내고 토막을 쳐 주방으로 넘기니 부인 김복례(47)씨의 손길이 빨라진다. 양파와 당근을 썰어넣고 빻아놓은 마늘 등등을 넣고 양념을 한바가지 끼얹어 불판에 올리기까지 김씨의 손길엔 거침이 없다. 이내 풍겨오는 냄새와 소리가 맛있게 맵다.

곰장어장사 20여년째. 시장안에서 과일 도매상을 28년간 하셨던 어머니가 1980년대 곰장어집으로 전업하면서 일을 거들었던 게 시작이 됐다. 그리고 점포는 시장이 한산한 최근에도 평일 저녁이면 11개 테이블은 물론 뒤에 있는 5개의 방에 곰장어나 조개구이에 소주 한잔을 즐기려는 손님이 가득 찰 정도로 성업 중이다.

"도심에 큰 도매상들이나 청과조합 등이 생기면서 어머니가 시장에 서너곳에 불과하던 곰장어집으로 전업을 하셨지요. 어머니는 한약재를 달인 육수에다 양념장을 만들어 쓰셨어요. 그 양념장을 전라도가 고향인 처가 맛있다는 집을 다니면서 먹어보곤 다시 바꿨구요. 그걸 10여년째 쓰고 있는데요. 그 양념장엔 직접 담은 고추장이나 땡초를 갈아만든 고추가루 등등이 들어갑니다…."

양념장이 맛의 비결인 때문인지 말을 아끼는 정사장 옆에서 부인 김씨는 "시장안에 곰장어집이 일곱 군데고 다들 나름의 비법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 집에 와서 맛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 없었다. 매년 타지에서 오는 단골들도 많다"고 자부심을 내비친다.

그렇다고 정사장이 맛만으로 승부를 한 것은 아니다. 횟집까지 포함해 11개나 되는 곰장어집의 차별화 전략은 바로 점포 앞에 쫘악 늘어선 해물들.

1인분에 150g인 곰장어를 평일 하루 15㎏에서 주말엔 30㎏까지 판다는 그는 또 각종 조개류와 패류를 그 이상 판다고 덧붙였다. 조개구이를 찾는 손님들이나 반찬거리를 사러 오는 주부들도 적지 않다는 것.

"운때가 맞아야 성공을 한다고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대신 부지런하면 뭘 해도 된다"는 게 그의 인생철학이다. 그는 요즘도 매일 아침 4시30분이면 자갈치로 향한다. 조개류 경매를 보고 각종 해산물을 직접 구입해 오기 위해서다.

"처음엔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낯설었지만 가서 부딪치다 보니 좋은 이들을 만나 해물 보는 법을 익히게 됐다"는 게 그의 말.

그리고 시장에서 돌아온 그는 오전 9시 가게 문을 열고 해산물 장사를 시작한다. 또 낮 영업과 수족관 물갈이 등을 마치고 나면 자정까지 본격적인 저녁 장사에 돌입한다. 게다가 휴일이나 명절에도 해운대를 찾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없다니 그야말로 빡빡한 일정인 셈이다.

한가할 때 틈틈히 낮잠을 자면서 모자라는 잠을 보충한다는 그는 그러나 이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인 덕분에 먹고 사는 일엔 별 걱정이 없다면서 앞으로도 20년쯤은 더 할 생각이란다.

그 이후엔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라는 그는 그러기 위해서라도 시장을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 송해씨도 해운대에만 오면 들르곤 한다. 서울이나 일본,중국에서도 부산에만 오면 들르는 단골들이 여럿 있다. 시장이 관광특구에 있는 덕분"이라는 그는 "환경개선은 물론 곰장어 골목으로의 특화 등을 통해 외국인들이나 외지인들이 왔을 때 부끄럽지 않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갖춘 재래시장으로 탈바꿈한다면 시장 전체가 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아영기자 yeon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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