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벚꽃 흐드러질 때 도다리 맛도 '절정'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4: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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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장횟집 여주인이 봄도다리를 뼈째썰기하고 있다. 뼈가 들어 있는 회를 썰기 때문에 회칼은 좀 두껍다. 칼날 아래 쌓이는 하얗고 반투명한 도다리회는 봄의 큰맛을 농익은 채로 품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봄도다리 가을전어'라는 말을 실감했다. 봄과 도다리의 완벽한 결합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봄도다리 회 한 점이 입속에서 피우는 향기는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득했다. 4~5월이 제맛이란다.

진해가 군항제의 벚꽃으로 흐드러질 무렵, 진해 용원에서는 "벚꽃이 피고 질 때 도다리는 진짜 맛이 든다"는 말이 오간다. 벚꽃의 개화와 봄도다리 맛의 동행! 낚시꾼이자 도선장횟집의 김영철(43) 실장이 도다리 회를 치면서 그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세상의 불을 밝히듯 환하게 피어 가장 육감적으로 난분분 지는 벚꽃의 꽃비처럼 봄도다리의 맛은 화려하고 육감적이었다.

벚꽃뿐만이겠는가? 목련이 향기롭게 피고 지고, 개나리가 노랗게 눈을 뜨고 감는 봄꽃의 모든 조화가 봄도다리의 맛 속에 깃들어 있었다. 봄도다리, 라는 범상했던 한마디가 입속에서 머리끝까지, 그리고 발끝까지 환하게 꽃처럼 불을 켰다. 꽃이었는데 웬걸, 고소한 참기름 맛이었다.


# 달고도 달다, 도다리 봄맛

경남 진해 용원의 도선장횟집(055-552-2244)은 소설가 백파 홍성유의 '한국의 맛있는 집'이란 책에 소개된 집이다. 시어머니를 이은 2대째 여주인 이양숙(42)씨는 용원 공판장의 중매인도 하고 있다. 이씨는 "우리집에 도다리를 낚시로 잡아 대주는 너댓 명의 어민이 있다"고 했다. 상품(上品) 자연산이라는 말이다.

올해 용원의 도다리는 지난해에 비해 50~60%밖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도다리가 아니라 '금(金)다리'라는 소문이 나 있다. 도선장횟집의 바깥주인 최병학(49)씨는 "차라리 '다이아몬드다리'일 정도"라고 한 술 더 떴다.

수족관에서 건져 올린 길이 20cm가량의 작은 놈 세 마리는 살이 통통했다. 저것들이 봄맛을 한껏 품었으렷다.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니 등 무늬의 진하고 연하기가 저마다 달랐다. 도다리는 아가미를 벌름거렸다. 껍질이 벗겨졌고, 도다리의 투명한 맨몸뚱어리가 백일하에 하얗게 드러났다. 슬프고 침이 넘어갔다.

칼이 도다리의 몸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빛이 산산조각나듯 도다리 몸뚱어리는 싸각싸각 칼날에 낱낱이 부서졌다. 봄의 연한 뼈가 뼈째썰기(세꼬시)를 하고 있는 칼날 아래 부서지고 있는 것이었다. 부서진 횟점 조각의 면에 바다 속의 조류가 결을 새겨 놓았다. 물결 같은 살결이었다. 횟점은 속이 들여다보일 듯 투명했다.

봄이 되면 찾아오는 서울 단골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몇십만원 주고도 못 먹으니 비행기를 타고 온다고 했다. 그래도 본전이 빠진다는데 이건 숫제 '맛으로의 회귀'를 부르는 봄도다리의 강력한 맛이었다.

접시 위에 꿈틀거리듯 뒤엉켜 있는 세꼬시의 회들이 대낮의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기름이 흐르는 듯했다. 젓가락을 들기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좀 달라졌다. 미식에 대한 예찬은 머릿속을 맴도는데 혀는 아~, 하는 늘어진 감탄사를 머금고 봄도다리 횟점과 뒤섞인 채 뒹굴고 있었다. 도대체가 알 수가 없었다. 봄의 한가운데서 벚꽃은 난만하여 꽃잎을 흩뿌리는데 이 맛의 정체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고소한 맛의 알갱이들이 쏟아졌다. '봄도다리'라는 밋밋한 관용어가 좀체 드러내지 않는 내밀한 소식을 들었다. 과연 봄도다리로구나. 봄도다리의 화살이 날아와 맛의 과녁 정중앙에 꽂혔다.


# 용원, 도다리 맛으로 봄꽃 피우다

도다리 중에서 크고 알이 찬 것들은 맛이 없단다. 도다리쑥국 같은 것을 끓이는 데 쓰인다. 도다리도 다 같은 도다리가 아닌 것이다. 어떤 도다리인가에 따라 맛이 다르다. 용원 일대의 바다 속은 자갈이 많다고 했다. 거친 바다 속에 사는 도다리의 등 무늬는 진하고 알록달록하다. 바다가 거칠수록, 등 무늬가 알록달록할수록 도다리의 맛은 더 깊다.

그런데 자연산이라도 모래 바닥의 바다에서 나는 도다리의 등 무늬는 연하고 반질반질하다. 물론 맛은 덜하단다.

또 낚시를 한 것과, 정치망 그물로 잡는 것의 맛은 차이가 난다. 물론 낚시로 바로 건져 올리는 것의 맛이 더 낫다. 맛은 섬세하고 민감한 것이었다.

봄도다리를 먹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겠다. 이 집에서는 다진마늘을 얹은 촌 된장, 초고추장, 고추냉이(와사비) 따위의 양념장이 나왔다. 상추 깻잎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씻어낸 묵은 김치와 함께 먹는 맛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이 있다. 회는 회대로 따로 먹은 뒤 채소를 먹어야 회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 회 자체의 맛을 곰곰이 음미한 다음, 푸성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음식의 맛은 재료 자체에서 다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뭘 요리를 한다는 것은 군더더기와 수식일 뿐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도다리의 회 맛이 그러했다. 재료 자체의 맛을 자연의 맛이라고 하고 그것을 다르게는 '큰 맛'이라는데 봄도다리는 '큰 맛'을 느끼게 했다. 2~3인이 먹을 수 있는 한 접시 6만원. 도다리 매운탕이 시원하고 덤으로 주는 이집 40년 전통의 게된장국도 감칠맛이다. 모둠회(4만원부터), 졸복탕(1만3천원)도 많이 찾는 메뉴다.

지금 이 일대는 상전벽해 중이다. 부산신항이 들어서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있다. 허황옥이 배를 타고 들어왔다는 용원 일대의 파란 바다는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용원 공판장의 해물들은 여전히 싱싱했다. 용원 봄도다리의 맛이 변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최학림 기자 theos@busanilbo.com



봄도다리 맛집

△만월정횟집(부산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051-724-6357)=기장 앞바다에서 나는 도다리. 뼈째썰기의 제맛. 2~3인 한 접시 6만~7만원.

△금오횟집(부산 해운대구 중2동, 051-742-0011)=묵은 김치에 뼈째썰기한 도다리 회가 별미. 도다리의 생선 뼈를 이용한 양념장이 특징. 시원한 도다리 미역국. 1인 4만~5만원.

△녹산횟집(부산 동래구 온천동, 051-555-7404)=비법의 막장과 어울린 뼈째썰기 도다리. 머리를 푹 곤 도다리매운탕이 별미. 5만원, 7만원.

△동해횟집(부산 서구 아미동, 051-244-7271)=비법의 재래식 된장에 찍어먹는 뼈째썰기 도다리 회가 특징. 도다리미역국이 시원하다. 2~3인 한 접시 6만원.

※자료 제공=한국조리사회중앙회 부산지회


좌광우도

도다리와 광어의 구분이 헷갈린다고들 한다. 마주 본다는 것은 상대를 탐색하는 것, 즉 맛본다는 것이다. 도다리와 광어를 맛볼 때는 마주보아야 한다. 마주볼 때 '좌광우도'이다. 눈이 왼쪽에 몰려 있는 것은 광어, 오른쪽에 몰려 있는 것은 도다리다. 그래도 헷갈릴 때는 '광어'와 '왼쪽'은 2글자로 같고, '도다리'와 '오른쪽'은 3글자로 같다. 마주볼 때 글자 수가 같은 쪽에 눈이 몰려 있다. 기억하는 방법도 갖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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