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부산서 맛보는 일본라면 '군침'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11: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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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일본 라면집이 뜨고 있다. 몇 년 전인가에도 일본 라면집들이 생겨났지만 부산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보인다. 부산대 앞과 같은 대학가나 서면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일본 라면집들이 속속 들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또 일본 라면이 부산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판단하에 분점을 내기 위해 분주하다. 일본 라면은 인스턴트 라면과 달리 기름에 튀기지 않아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부산시내 일본 라면집 5곳을 순례하며 일본 라면 따라잡기에 나섰다.

·우마이도(美味堂)
우마이도는 돈코츠라면(5천원) 단일 품목으로 승부, '돈코츠'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3월에 문을 연 우마이도는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해서 고급스럽다. 이준성(40) 사장의 말로는 이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라면집이다.

돈코츠라면은 하카다항의 부두 노동자들이 빨리 먹고 일을 하러 가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빨리 삶기 위해서는 면이 가늘어야 하고, 육수는 돼지국밥 국물과 흡사하다. 육수는 돼지의 등뼈와 머리뼈를 섞어서 만든다.

백화점에서 근무했던 이씨는 음식에 대한 고집이 있다. 이씨는 "우마이도는 단순한 라면을 파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팔고 있다. 그래서 손님들이 김치를 달라고 해도 절대 주지 않는다. 김치의 맵고 신 맛이 라면 고유의 맛을 망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치 없이 못 먹겠다고 해도 새로운 문화를 체험해 보라는 생각이다. 부인인 부산대 아동가족과 안정신 교수가 라면홍보대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왜 돈코츠라면인가? 돈코츠가 맛의 임팩트가 가장 강하다고 한다. 서울 건대 입구에서도 이씨의 동생이 같은 이름의 라면집을 하고 있다. 부산대 정문 앞 먹자골목. 051-514-8785.

·삿포로 쿠마
서면에 있는 자그마한 가게에 들어서자 덩치 큰 청년 3명이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십시오)"라며 일본말로 큰 소리로 인사를 해 정신을 빼 놓는다. 이들은 모두 한국 청년. 장충표 사장은 "일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삼일절만 빼고 일본말로 인사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별명이 곰, 일본말로 '쿠마'이다. 종업원도 꼭 자기를 닮은 사람들을 뽑은 것 같다. 장 사장의 나이를 묻자 "계란 한 판(30개)"이라며 라면집 사장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이곳에서는 '미소라면'과 '매운 미소라면'(각각 4천500원), 딱 두 종류만 판매한다. 부산사람의 입맛에는 미소라면이 잘 맞고, 한 가지라도 맛있게 하자는 생각이다. 매운 미소라면에는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이 더 들어갔다. '매운 미소라면'의 맛을 보았더니 얼큰해서 해장하는 데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술 먹고 해장라면 한 그릇 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루에 200그릇 한정판매. 일본 맥주도 함께 판다. 라면과 맥주, 의외로 궁합이 잘 맞다. 카드 결제도 가능. 서면 쥬디스태화 신관 후문 골목 안. 051-805-8882.

·닌자라면
왜 하필 닌자일까? 백순명(44) 사장이 일본에서 라면을 배운 곳의 상호가 '닌자라면'이란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닌자라면에서는 시오라면(3천500원), 쇼유라면(3천500원), 미소라면(4천원)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취재하러 간 날 공교롭게도 한국 손님은 없고 미국인 한 사람과 일본인 커플만이 라면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일본 라면 맛을 아는 이들은 "일본에서 먹었던 맛과 같지는 않지만 맛있다"고 말했다. 혼자 와서 식사하며 창밖을 볼 수 있게 만든 카페 같은 분위기이다. 백씨는 "하루 전 가게에서 직접 면을 뽑아 숙성시켜, 면발을 쫄깃하게 만드는 게 우리 집의 특징"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쇼유라면을 자랑하는데, 기자의 입맛에는 담백한 시오라면이 더 맞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조금 짧게 삶아 약간 딱딱하게 느껴지는 면을 좋아한단다. 일본 라면만 계속 먹으면 살이 빠져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백씨는 "가끔 인스턴트 라면 생각이 나서 먹지만 다음날 속이 쓰려 고생한다"고 일본 라면 애찬론을 펼친다. 부산대 지하철역 3번 출구로 나와 라퓨타 아일랜드 건물 맞은편 건물 2층에 있다. 051-516-0949.

·오사카
오사카의 박종민(55) 사장은 재일교포로 부인 박도점씨와 같이 일본 라면뿐만 아니라 돈가스 카레라이스 등을 파는 분식점 오사카를 운영하고 있다. 라면은 쇼유라면(4천원) 한 종류만 한다. 지난 2001년 개업해 8년째에 접어들며, 가게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분식점 근처에는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과 회전초밥집까지 확장해 가게가 3곳이나 된다.

그가 건네는 명함에는 '이노우에 마스기'라는 일본 이름이 적혀 있다. 아직까지도 한국말이 서툰 게 일본 사람 같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 중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단다. 박씨는 일본에서 금속가공, 광고디자인, 인테리어, 초밥집, 레스토랑, 술집 등 안 해 본 일이 없지만 특히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에서 들여온 기계로 면도 직접 뽑고 육수도 만든다. 그는 "일본의 라면은 역사가 길다. 어린 시절부터 즐겨 먹었던 포장마차 라면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쇼유라면에 대해 "오사카 라면의 맛을 내가 알고 있고, 그 기본은 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자카야에서 판매하는 일본 아사히 생맥주의 맛도 훌륭하다. 쇼유라면을 안주 삼아 먹어도 괜찮다. 지하철 1호선 사하역에서 나와 사하중학교를 지나 주택가에 있다. 051-205-8408.

·라면 이찌방
부산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일본 라면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라면 종류만 해도 이찌방미소라면 미소라면 쇼유라면 차슈라면 카레라면 돈까스라면, 모두 6가지다. 가격은 미소라면과 쇼유라면이 3천500원에서 돈까스라면 5천원까지이다.

이찌방미소라면은 미소라면에 각종 해산물을 첨가해 푸짐하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프라이팬으로 해산물 같은 재료를 볶은 뒤 라면 위에 올려 라면에서 '불 맛'도 난다고 한다.

박성환(43) 사장은 하와이에 대학원 과정을 공부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라면에 맛을 들인 뒤 이쪽이 더 비전 있는 것 같아 전공을 바꾸었다. 그가 보기에 화학조미료와 트랜스지방이 든 인스턴트 라면이 인스턴트 커피라면, 일본 라면은 원두커피이다. 육수는 돼지사골 소뼈 채소 약재 등을 넣고 하루 전에 8시간 동안 우려낸 것이다. 박씨는 앞으로도 매운라면, 마포라면 등 메뉴를 다양하게 늘릴 계획이다. 부산대 정문 파리바게뜨에서 구서동 방향. 051-516-3981.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ilbo.com


일본 라면 종류 수천가지...분식이 아닌 '한끼의 식사'
우리나라에서 파는 일본 라면을 먹고는 일본에 갔을 때 먹었던 맛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말이 반드시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지방마다 가게마다 맛이 다른 수백 가지, 수천 가지도 넘는 종류의 라면이 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와 규슈의 면과 수프가 전혀 다르고, 도쿄에서도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

일본 라면은 크게 쇼유(간장), 시오(소금), 미소(된장), 돈코츠(돼지뼈)의 네 가지로 분류된다. 여기에 돼지고기를 올리면 차수라면으로 응용이 된다. 날씨가 추운 홋카이도지방은 쇼유라면,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과 중부지방은 시오라면, 남부지방인 규슈지방은 돈코츠라면이 발달했다. 대개 삿포로의 미소라면, 하카다의 돈코츠라면, 기타카타의 쇼유라면을 일본의 3대 라면으로 친다.참고로 일본에서 라면은 식사 대용의 분식이 아니라 어엿한 한 끼의 식사이다. 일본 사람들은 밥을 갖다 줘도 라면에 밥을 말아먹지 않는다. 일본에서 제일 비싼 라면은 요코하마에서 파는 것으로 가격은 1만엔이다. 한 네티즌은 "우리나라에도 냉면에서부터 국수까지 좋은 면 요리가 많은데, 가게마다 다른 맛으로 외국에 체인까지 내는 일본 라면과 대조적으로 국내에 안주해 버린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하고 있다. 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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