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가득 머금은 한 상 받으세요

입력 : 2009-03-19 15:21:00 수정 : 2009-03-19 15: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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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와 쑥이 만나 '봄의 향연' - 미정

'미정'에서는 제철을 맞은 도다리회가 정겨운 밑반찬과 함께 나온다.

'미정'에서는 제철을 맞은 도다리회가 정겨운 밑반찬과 함께 나온다.
 


'수미'에서는 봄을 상징하는 멸치회와 멸치찌개를 맛볼 수 있다.

봄이 되니 싱숭생숭하다. 봄바람이 나서 그런가? '고 못된 바람이 그랬을 거야/ 시건방진 바람이 그 어린 진달래를 꼬드겼을 거야/ 인적없는 호젓한 산길로 꼬여내/ 살금살금 만졌을 거야/ 철없는 진달래/ 속옷 한 장 걸치지 않고 나긋나긋 웃으며/ 맵고 시게 건드릴 때마다 수줍어하다니/ 고 어린 것이 바람 시키는대로/ 애처로운 입술로 저렇게 흔들어대다니/ 진달래 고년도 여간 화냥기 있는 게 아니었어'(한미성의 '꽃샘바람3'). 봄을 느껴볼 맛집 두 곳을 소개한다. 한 곳은 '미정(味庭)', 또 한 곳은 '수미(秀味)'다. 봄바람에 옥호마저 살랑거린다.

 도다리는 넙치와 생김새나 맛이 비슷하다. 그러나 봄바람을 쐬면 180도 달라진다. 3월 넙치는 개도 먹지 않는다. 반면에 '봄 도다리'라고 할 만큼 도다리 맛은 좋아진다. 봄 도다리회가 먹고 싶어 국제시장에서 20년 된 맛집인 부산 중구 신창동 '미정'으로 향했다. 미정에는 각종 요리책이 빼곡해 요리에 대한 주인장의 애정이 엿보인다. 도다리회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제철 음식이 알아서 척척 나온다.

직접 담근 멍게젓, 고추장에 절인 매실 장아찌가 마중을 나왔다. 단호박과 배추잎은 아이돌 스타처럼 빛이 난다. 회라면 으레 동반 출연하는 줄 알았던 상추와 깻잎은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시시껄렁한 고정 출연이 빠진 자리에 오래 되어도 변하지 않는 묵은지가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처럼 은근하게 자리를 빛낸다.

도다리회를 직접 썰어서 가져온 미정의 박옥희(51) 사장이 회초밥을 빚으며 묵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묵은지는 영도구 청학동에서 나왔다. 박 사장은 나중에 음식점을 할 요량으로 산 영도의 땅에 포클레인을 이용해 김칫독 10개를 파묻었단다. 사장은 역시 배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태평양을 바라보고 익은 묵은지에다 도다리 회와 멍게젓을 살짝 얹어서 입에 넣었다. 이 복합적이고 오묘한 맛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겨울이 가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맛이다. 글쎄, 그게 무슨 맛이냐고 다시 묻지는 마시라. 도다리는 길게도 썰고, 뼈째도 썰어 취향대로 먹기에 좋다. 좋은 것은 몸이 저절로 알아 매실 장아찌, 멍게젓, 묵은지에 자꾸 손이 간다. 회초밥용 밥도 따로 나와 심심하면 싸먹기에 좋다. 달착지근한 가자미조림도 맛이 있다. 가자미는 가짜어미라는 뜻이다. 전처의 자식에게 눈을 흘기고 미워했던 계모가 그 죄로 눈이 한쪽으로 몰려 태어났단다. 봄에는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방안이 향긋해지더니 도다리 쑥국이 들어온다. 햇쑥을 넣어 파란 국물에 허연 도다리의 속살, 그 속에 빨간색 고추로 점을 찍은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도다리 쑥국은 결국 봄을 먹는 일이다.

박 사장은 "음식은 종합예술로 맛, 색깔, 모양이 다 중요하다. 음식 만드는 게 즐거워서 즐기면서 일을 한다"고 말한다. 즐기는데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생선회 코스 일인당 2만∼2만5천원. 영업은 낮 12시∼오후 10시. 일요일은 쉰다. 중구 광복동 먹자골목 동명칼국수 골목 안쪽. 051-242-6100.

부산일보에 입사한 날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간 곳이 동구 수정동 수미식당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출입한 지도 벌써 15년이 넘는다. 미역국에 생선이 빠진 걸 처음 보고 놀란 집도 여기다. 두어 번 이사를 다녔지만 여전히 수정동 일대를 지키고 있는 맛집이다. 맛집 담당이 되어 다른 집 다 소개하고 다니며 정작 이 집만 빼놓은 게 공연히 미안했다.

남해 출신인 수미식당 이순자(50) 사장은 손맛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 먹는 밥과 반찬 같아서 질리지가 않는다. 입에 착착 붙는 느낌이라고 할까. 고향의 맛을 쉽게 맛볼 수 없게 된 지금,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사장에게 전화했더니 용원시장에 다녀와야 한다며 오후 5시쯤 오라고 한다. 오래된 친구 한 명을 불러 수미식당으로 출발했다. 맛이나 보라며 새조개 수육을 한 접시 내놓는다. 초장에 부리를 박은 새조개가 달콤하다. 3월이면 새조개 철의 끝자락, 새조개는 새가 되어 고향으로 날아가는 걸까? 아직까지는 이렇게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이 공존한다.

계절은 바뀌어 봄의 상징인 멸치회가 나왔다. 올해 들어 멸치회를 처음 맛본다. 멸치가 이렇게 몸이 컸던가? 멸치는 싱싱하고 미나리는 향긋하다. 상추에다 멸치회를 넣고 크게 한 입 싸먹었다. 봄이 몸 속으로 '쑥'하고 들어간다. 멸치찌개는 고소하다. 밥하고 같이 먹으면 한 그릇이 뚝딱이다. 멸치회를 먹으러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장은 매일같이 새조개, 호래기, 주꾸미를 용원에서 직접 사 가지고 온단다. 지하철로 하단까지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갔다 오는데 3시간은 족히 걸린다. 극성이다.

철따라 보통 3가지 종류의 메뉴가 있다. 요즘에는 바지락국, 쑥국, 생멸치시락국(각 5천원). 미리 주문만 하면 뭐든지 척척 만들어주는 솜씨를 가졌다. 이 사장은 "회는 항상 자연산만 쓰고 회가 안 좋으면 아예 수족관을 비워둔다. 활어보다 선어를 선호하는 게 우리 집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굴을 넣고 끓인 쑥국이 나온다. 사람 되라고 그런가, 쑥을 어찌나 많이 넣었는지 한약 같다. 예전에는 쑥국도 많이 먹었는데 요즘은 쑥국 구경 하기가 힘들다. 쑥국으로 봄 맞이가 향긋하게 마무리됐다. 낮 12시부터 영업. 일요일에는 쉰다. 정식 5천원. 동구 수정동우체국 맞은편. 051-467-9509.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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