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만 하니, 부드럽기까지 하다 '고로케'

입력 : 2010-11-11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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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스낵'의 최우진(59) 사장이 고로케를 만들고 있다. 셔터 속도 1/40초로 찍은 사진. 최 사장의 손이 카메라 렌즈에 정확하게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오사카'의 감자고로케. '면옥향천'의 카레고로케.

'외강내유(外剛內柔)'란 말을 아시는지? '외유내강(外柔內剛)' 아니냐고? '외유내강'이 '겉으로는 부드럽고 순하게 보이나 속은 곧고 굳셈'을 뜻한다면, '외강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게 보이나 속은 부드러움'을 의미한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원주통신'에도 등장한다. '여성운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외강내유라고나 할까?'

여성운동가 만큼이나 '외강내유'한 것이 먹을거리에도 있다. 고로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고로케는 프랑스의 '크로켓(croquette)'이 일본에서 변한 이름. 야채 등을 다져 둥글게 모양을 낸 뒤 빵가루를 묻혀서 기름에 튀겨 만든 일종의 빵이다. 원래는 서양 음식이나 이제는 일본과 한국에서 더욱 익숙한 음식. 일본어 사용을 자제하는 우리나라에선 '고로케'를 '크로켓'으로 고쳐 사용하길 권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역시 '고로케'라고 해야 '말 맛'이 산다. '음식 맛'만 '맛'이 아니다.

갖은 속 넣어 기름에 튀긴 빵
프랑스어 크로켓의 일본식 이름
추운 날씨 출출한 배 채우기 딱


날씨가 쌀쌀해지면 기자는 고로케가 생각난다. 한 입 베어먹으면 그 속의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내 몸마저 따습게 한다. 겉도 부드럽고 속도 부드러운 '외유내유(外柔內柔)'의 찐빵과는 또 다른 맛이다. 부산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고로케집을 고르고 골라 찾아갔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마음과 몸을 모두 따습게 할 수 있으니 이 계절에 '딱'일 듯하다.



중구 보수동 '우진스낵' 야채고로케
'우진스낵'의 야채고로케.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낡은 책장을 펼치면 책갈피 켜켜이 묻어있는 낡은 종이 향기가 골목을 휘감는다. 그리고 골목 가득한 종이 향기에 더해 고소한 추억의 향기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골목 안쪽에 위치한 분식점의 야채고로케의 향이다.

가게 이름은 '우진스낵'. 그러나 보수동을 찾는 사람들은 '이름 없는 분식점'이라 부른다. 그러고 보면 간판 하나 없다. "현수막 간판이 있었는데, 세탁 하려고 집에 가지고 갔다가 안 가져온 지 꽤 됐지. 간판 없어도 알아서들 잘 찾아오는데 뭘." 최우진(59) 사장의 너스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도넛, 만두, 꽈배기 등 다른 먹을거리도 있지만 손님들이 찾는 것은 역시 야채고로케다. 속에 양파, 양배추, 당근 등 야채를 다져 넣어 만든 전형적인 한국식 고로케. 보기에는 기름져 보이는데 전혀 기름진 느낌이 없이 상큼하다는 게 이곳 고로케의 특징이다. 비결은? 비밀이다.

가게는 늘 문전성시. 그렇다보니 길거리 분식점 치곤 갓 튀겨낸 것을 먹을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 대신 조심할 것. 먹음직스러운 겉모습에 홀려 급하게 베어먹었다간 뜨거운 소에 입천장을 델지도 모른다. 한 개 500원.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안 커피숍 '人&Bean' 옆. 오전 11시~오후 9시 영업. 첫째, 셋째 일요일 휴무.


사하구 괴정동 '오사카' 감자고로케

앞선 야채고로케가 한국식이라면 '오사카' 감자고로케는 전형적인 일본식 고로케다. 뭐, 음식점 간판만 봐도 알겠다. 그러나 일본식 간판을 내걸고 어중간한 음식을 내어놓는 곳도 많다. 그런데 이곳 '오사카'는 다르다. 주인장부터 오사카 출신이다.
오사카'의 감자고로케.

이노우에 마스기(56) 사장이 말하는 감자고로케의 생명은 '속의 부드러움'이다. 바삭한 튀김옷 안으로 부드러움이 흘러내릴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곳 감자고로케가 바로 그랬다. 만약 차가운 맛이었다면 아이스크림이라고 해도 속을 정도로 부드럽다.

많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감자와 계란, 그리고 소금, 후추, 마요네즈 등 맛을 내는 부재료가 전부다. 대신 감자를 고르는 데 공을 들인다. 수분을 적당히 머금은 감자라야지만 부드러운 페이스트(갈거나 개어서 만든 음식 혹은 음식 재료)를 만들 수 있다고.

가게도 독특하다. 3층 건물에 1층은 이자카야, 2층은 회전초밥, 3층은 일본식 분식점이다. 혹시 가게에 들어섰다가 1층만 보고 '여기가 아니네'라며 되돌아 나가시는 일이 없길 바란다. 한 개 1천 원. 도시철도 1호선 사하역 1번 출구 앞 골목 안.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영업. 매주 월요일 휴무. 051-205-8408.


해운대구 우2동 '면옥향천' 카레고로케

'면옥향천'의 카레고로케.
'오사카'의 이노우에 사장이 부드러운 '속'에 승부를 건다면 '면옥향천'의 김정영(40) 사장은 바삭한 '겉'에 승부를 건다. '면옥향천'의 카레고로케는 전문 수제 고로케 업체에 의해 주문 제작된다. 물론 레시피는 김정영 사장의 것, 국산 카레와 일본산 카레의 혼합 비율까지 일일이 정해준다. 그러나 사장 본인이 정작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은 고로케를 튀기는 과정이다.

김 사장은 고로케를 튀기기 위해 콩기름과 카놀라유, 면실유, 참기름 등 네 가지 종류의 기름을 섞어 사용한다. 혼합 비율은 역시나 비밀. 네 가지 기름을 섞어 사용함으로써 기름의 발화점을 높여 보다 높은 온도에서 고로케를 튀길 수 있다. 바삭함의 비결이다. 또한 참기름의 향이 고로케에 그대로 입혀 고소함이 느껴진다. 카놀라유는 기름 빠짐을 좋게 해 고로케가 산뜻하다.

고로케의 크기를 일반 고로케의 절반 정도로 만든 것도 바삭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속맛이 덜하냐? 그건 아니다. 페이스트 사이로 은은하게 퍼지는 카레향이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속맛을 더욱 그윽하게 한다. 한 접시(네 개) 3천500원. 도시철도 2호선 시립미술관역 6번 출구 100m 인근 우2동 종합시장 입구 맞은편. 오전 11시~오후 8시30분 영업. 매주 일요일 휴무. 051-747-4601.

글·사진=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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