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맛을 들이면 잊기 어려운 맛이 있다. 특히나 그게 한 철만 나온다면 안 먹고는 견디기가 도저히 힘들다. 과메기의 철이 돌아왔다. 과메기는 전국 미식가들의 입맛을 확실히 사로잡았다. 전국 과메기의 80%가 경북 포항 구룡포에서 생산되는데, 택배업계가 과메기 덕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부산에서 과메기 좀 한다는 곳을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들 바빠서 그런지 맛집 담당 기자 전화를 놀부 마누라가 흥부 보듯이 대한다. 과메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녀석은 맛이 어떻게 들었을까 생각했다. 쇠는 담금질을 통해 단련되고, 과메기는 꽁치가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맛이 든다. 우리 같은 사람은 시련을 통해 철이 들고….
허름한 골목에 자리한 아주 작은 선술집
명륜동 '대짱'
허름한 골목에 자리 잡은 아주 작은 선술집 '대짱'. 여기까지 알고 찾아온 사람들도 참 용하다. 이 허름한 집 덕분에 골목 상권이 살아났다니 무슨 비결이 있을 것 같다. '대짱' 문을 열고 들어가니 1970년대쯤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휘갈겨 쓴 낙서 하며 정겨운 다락방…. "맞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이모님'으로 통하는 김승애 대표, 먼저 떡부터 내놓는다. 이게 웬 떡? 술에 지지 않으려면 뭐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우리 집을 찾아준 귀한 손님에게 밥 한 공기 대접한다는 뜻도 담았다. 장사를 시작한 지 13년째 변함이 없다. 떡을 꿀에 찍으니 달콤한 추억의 맛이 난다.
이날의 주인공 과메기가 상에 올랐다. 2만 원이라는 가격이 미안할 정도로 푸짐하다. 꽁치가 뛰어놀던 미역을 잘 깔고, 초고추장에 찍은 과메기 한 토막,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미나리를 올렸다. 겨울이 한 움큼 입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은 이렇게 꽉 차야 든든하다.
과메기가 궁금해 따로 먹어봤다. 다른 데서 먹던 것과 달리 과메기가 아주 존득존득, 아니 쫀득쫀득하다. 잠시 뒤 약간 물컹한 듯 부드럽게 입 안에서 풀린다. 아주 청결한 꽁치인지 기름내가 맑고 살코기는 씹을수록 고소하다. 이런 과메기, 부산에서 쉽게 보지 못했다. 과메기는 잘못하면 비린 맛이 나서 평생 멀리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이다.
사실 과메기는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공장에서 건조기로 말리는 것이 최하질, 반으로 갈라 말린 '짜배기'가 그 다음이다. 최상의 과메기는 통째로 말린 '통말이'이다. 하지만 요즘 포항에서도 이런 과메기를 구할 수 없다고 하니 아쉽다(황교익 저 '미각의 제국' 참조). 과메기와 따로 시킨 굴을 한데 싸서 먹어도 좋다. 은은한 굴 향이 뒤에 오래 남는다.
맛의 비결은 재료에 있다. '대짱'은 건조가 아주 잘 된 과메기를 쓴다. 과메기가 좋지 않으면 아예 취급을 안 해 이곳의 과메기 철은 다른 곳보다 늘 늦은 편이다.
'대짱' 의 김승애 대표가 이렇게 잘 말린 과메기로 한 쌈을 싸주며 맛있게 먹고 겨울을 잘 견디라고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