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계절 와인 좋은 날

입력 : 2012-11-01 07:56:16 수정 : 2012-11-01 14: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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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한 오렌지 소스가 이색적인 '달미꼬꼬'의 페토 디 폴로.

쌀쌀한 가을바람에 술 한 잔의 위로가 간절해진다. 굳이 와인을 마시기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가을이 아닐까? 매혹적인 숙성의 빛깔이 가을과 닮았으니 말이다. 부산에서 와인 마시기 좋은 곳을 소개한다. 소박한 이탈리아 가정식을 선보이는 곳과 본격적으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와인바다.


부산대 앞 달미꼬꼬

엄마 손맛 닮은 이탈리아 요리
'수수한 맛' 소금·허브로 간 맞춰

처음 가게 이름을 듣고는 무슨 통닭집인 줄 알았다. '달미꼬꼬(dal mi cocco)'.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역의 사투리로, '내 친구의 집'이라는 뜻이란다. 움브리아는 오너 셰프인 윤지애 씨가 요리 공부를 했던 곳 중 하나. 친구에게 만들어주는 음식처럼 정성을 쏟겠다는 뜻을 담았다. 요리를 못해 요리사 친구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곳에서 꽤 믿음직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산뜻한 맛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 와인 '키안티 루피나'와 어울릴 만한 음식으로 베지테리안 라자냐를 주문했다. 여성이라면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라자냐가 좋다는 윤 셰프의 추천이었다.

라자냐는 일종의 파스타로, 파전처럼 넓은 밀가루 반죽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 양파 등 채소를 올려 놓는 것을 여러 겹 해서 오븐에 익힌 음식이다. '달미꼬꼬'의 라자냐는 힘을 쫙 뺐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면이 라자냐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가지 등의 채소는 식감과 풍미를 더했다. 경쾌한 맛의 와인과 찰떡궁합이었다.

좀 생뚱맞게도 라자냐에서 소금 간만 해도 감칠맛 제대로 나는 나물 무침이 연상됐다. 퓨전도 아닌데, 이탈리아 음식에서 한국 어머니들의 손맛이 떠오르다니. 윤 셰프의 고향이 전라도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그는 음식 좀 한다는 집안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패션을 공부하러 떠난 이탈리아에서 요리로 전공을 바꾼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운명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최초의 호텔학교인 '이 마지아(E. MAGGIA)'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도 근무했다.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는 훌륭하긴 하나 매일 먹으면 질리는 맛이라 소박한 요리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단다. 그래서인지 모든 요리 맛은 수수하다. 연애할 때는 재미없지만(?) 일등 며느릿감인 여성을 닮았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부산에 정착해 가게를 낸 것이 '달미꼬꼬'다.

닭고기를 그릴에 구워 오렌지 소소를 얹은 페토 디 폴로도 인기 메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닭고기의 식감에 달콤새콤한 소스의 조합이 색다르다. 모든 요리에는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소금과 허브로만 간을 한다. 면과 소스는 손으로 직접 만든다. 수제의 맛과 정성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도 매력 포인트.

이곳의 디저트도 맛나다. 크림을 이용해 만든 크램브룰레는 환상적이다. 설탕을 구운 바삭한 표면을 톡 깨뜨리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이 나온다. 머랭은 바스라지며 사라지는 아련한 맛이 일품이다. 음식과 어울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와인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베지테리안 라자냐 1만 5천 원, 페토 디 폴로 1만 4천 원. 크램브룰레 4천5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오후 3~5시 쉼·일요일 휴무). 부산 금정구 장전동 419의 24. 부산대 정문 인근 카페 드롭탑 옆 골목 안. 070-4116-7545.



와인 바 '비움'에서는 고급 치즈와 신선한 과일, 그리고 흑백영화가 와인 맛을 돋운다.
해운대 우동 비움

손님 취향따라 술 내는 주인장
홀로 흑백영화 보며 비우기 좋아

여성 혼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곳이 부산에 몇 군데나 될까?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는 곳이 센텀시티의 와인 바 '비움'이다.

와인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비움'은 전설적인 존재다. 음식점이 아닌 술집이, 그것도 와인을 팔면서 8년 동안 운영됐다는 점 때문이다. 강윤성 대표는 '일본에는 100년 술집도 있는데, 한국에 없으라는 법 있느냐'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모두 얼마 못 갈 거라고 했다. 술 시중 드는 여성 종업원 한 명 없이 어찌 장사를 할거냐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비움'의 단명을 점쳤던 근처의 술집은 모두 사라지고 '비움'은 살아남았다.

'비움'이라는 상호는 이곳의 매력을 응축했다. '술잔을 비우며, 내 안의 것도 비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강 대표는 부단히 노력한다. 가게를 열 때부터 고객의 취향을 기록한 다이어리가 대표적인 증거다. 고객이 마셨던 술, 취미, 관심 분야 등을 매일 기록한다.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 술을 추천하고 안주를 내놓는다. 고객의 주 관심사를 함께 나누며 말벗이 되기도 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에 누구는 편안함을 느끼고, 누구는 감동을 받는다.

강 대표의 서비스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호텔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도 한몫했다. 특급 호텔의 바와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에서 식음료 파트를 두루 거치고, 일본 연수도 다녀왔다.

일본에서 바텐더 자격을 취득했는데, 그때 얼음을 공처럼 둥글게 깎는 카빙 기술도 익혔다. 카빙한 얼음에 양주를 부어 마시면, 얼음이 빨리 녹지 않아 술 고유의 맛을 오래 즐길 수 있다. 강 대표는 하루에 15개 정도의 얼음을 카빙한다.

밤 12시 이전에는 대형 스크린을 내려 흑백 영화나 유명 공연 영상을 상영한다. 방문한 날에는 험프리 보거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카사블랑카'가 나오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에 삶의 고뇌를 덤덤하게 새긴 험프리 보거트의 표정이 술을 더욱 불렀다. 눈이 스크린으로 향해 있을 때, 혀끝에서는 최고급 치즈와 화이트 와인 킴 크로포드 소비뇽 블랑의 풍미가 춤을 췄다. 술맛 제대로다.

라임과 오이를 넣은 강 대표의 특제 진토닉도 입에 착 달라붙는다. 프리미엄 진 '헨드릭스'로 만든다. 술이 써서 못 먹겠다는 여성에게, '술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줄 것이다.

와인 맛을 돋우는 파스타 '알리오올리오', 고급 치즈 등 안주도 다양하다. 자녀들이 파스타를 먹는 동안 부모는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풍경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진토닉 1만 3천 원. 와인 5만 원대부터. 파스타 1만 2천 원. 모둠 치즈 3만 원. 영업시간 오후 6시~오전 3시(연중 무휴). 부산 해운대구 우동 1459. 퍼스트인센텀 1층. 051-747-3555.

글·사진=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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