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털털 구닥다리 술은 가라!' 막걸리 르네상스

입력 : 2014-08-21 07:55:04 수정 : 2014-08-22 1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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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텀시티 '다반'은 프리미엄급 막걸리를 5잔씩 미리 맛을 보는 '샘플러'를 선보인다. 김단아(오른쪽) 막걸리학교 부산분교장과 정원희(가운데) 마산대 음료문화학부 교수가 약밥 틀을 응용한 샘플러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 술에 이런 맛과 향이 있었다니…!" 명품으로 꼽히는 막걸리들이 전국적으로 많아졌다. 은근한 과일향, 입안에 여운을 남기는 감칠맛….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니 골라 즐기는 마니아층도 제법 두터워지고 있다. 문제는 병입한 뒤에도 계속 발효가 진행되니 유통에 애로가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인 것이다.

이 와중에 한식에 맞춘 막걸리, 젊은층에도 호소력이 짙은 막걸리를 주제로 한 카페가 잇따라 생기고 있다. 센텀시티의 '다반', 서면의 '닭갈비와 파전'도 그중의 일부다. 그곳에 가면 전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막걸리를 감각적으로 즐길 수 있다. 막걸리 열풍이 식었다지만 의미있는 변화의 조짐으로 읽힌다. 김단아 막걸리학교 부산분교장은 "전통이 트렌드가 되는 과정으로 보면 의미가 있다"고 했다. 시금털털, 두통, 아저씨의 장르…. 이런 구닥다리 이미지를 잊게 만드는 막걸리 르네상스의 현장을 맛봤다.



■한식에 어울리는 막걸리 센텀시티 '다반'

한식과 막걸리의 새로운 어울림
최고 재료, 장기 숙성시킨 고급 탁주


'다반'은 '새로운 가정식'을 내걸고 있다. 쌀국수 전문점 '더포' 등 여러 외식브랜드를 경영하고 있는 '더푸드시스템'의 신규 브랜드다. 정식을 비롯해, 양념멍게젓갈밥과 명태회비빔국수, 냉메밀 등속의 메뉴를 갖췄다. 김포의 고시히카리 쌀, 당일 도정한 오분도미, 제주산 돼지고기, 남도의 김치를 요리해서 유기 수저와 도자기 그릇에 담아 낸다. 재료와 차림새에 신경을 쓴 표시가 역력하다.

물론, 여기까지만이었다면 여느 깔끔한 한식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남다른 점은 비장의 프리미엄급 막걸리 리스트다. 한식과 막걸리의 새로운 어울림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로 작정을 했다는 소문에 귀가 솔깃했다.

'만강에 비친 달 막걸리'(홍천), '자희향'(함평), '봇뜰 십칠주 막걸리'(남양주), '사미인주'(장성), '복순도가 손막걸리'(울주).

눈이 휘둥그레졌다. 침을 꿀꺽 삼켰다. 국산 햅쌀 등 최고의 재료로 빚어 항아리에서 장기 발효숙성시킨 국가 대표급 '고급 탁주'들이다. 정원희 마산대 음료문화학부 교수는 "인공감미료 따위로 억지로 내지 않은 복합적인 향과 맛이 자연스럽게 입안에서 균형을 이루고, 여운을 남기는게 좋은 술"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아도 모두 주문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런 난처한 표정을 읽었는지 임기남 요리실장이 빙그레 웃으며 '샘플러'를 권했다. 긴 나무판 위에 5가지 프리미엄급 막걸리를 한 잔씩 담아 왔다. 약밥 틀에 구멍을 내고 그 위에 잔을 끼운 것이다. 수제맥주 전문점에서 흔한 맛보기 술 방식을 운치있게 살린 재치가 돋보인다. 이렇게 '막걸리 잔술'로 시음한 뒤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술을 주문하면 된다. 

작은 도기잔에 담은 '다반'의 막걸리.

"와인처럼 막걸리도 맛과 향이 다양하니까요!" 재료와 물, 발효·숙성에 따라 다 다른 맛을 내는 막걸리의 매력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 '샘플러'를 접목했다고 했다. 그는 '다반'을 열기에 앞서 부산막걸리학교를 다녔다. 그때 줄곧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게 있었다. 서양사람들이 피자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듯이 한식에 자연스럽게 막걸리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 그의 바람을 듣고 보니 그가 차려낸 음식 메뉴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닭발편육, 새우부추전, 애호박전, 돼지고기 김치찜…. 갑자기 막걸리가 당겼다. 그런데 다 주문할 수도 없고. "안주도 샘플러로 안 될까요? 하하하…."

※부산 해운대구 센텀중앙로 66 센텀T타워 101호. 051-731-2627. 샘플러 5천 원 내외(9월 1일 정식 서비스). 사미인주 1만 2천 원. 자희향 나비 1만 5천 원. 만강에 비친 달 막걸리 1만 6천 원. 복순도가 손막걸리 1만 6천 원. 매콤 닭발편육 1만 6천500원, 차돌구이와 영양 부추무침 2만 2천 원, 새우부추전 1만 2천 원, 애호박전 1만 원. 오전 11시 30분~자정. 일요일 휴무.


과일즙을 섞은 '칵테일 막걸리'는 젊은층에게 막걸리 입문 역할을 한다. 서면의 막걸리카페 '닭갈비와 파전'에서 와인잔으로 '칵테일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
■젊은 느낌의 막걸리카페 서면 '닭갈비와 파전'

젊은 층 입맛까지 맞춘 감각적 막걸리
과일즙 섞은 칵테일 "캬! 맛 좋다"


서면 쥬디스태화 신관 뒷골목.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비가 제법 내리는 날 오후에 '닭갈비와 파전'에 앉아서 입장하는 손님들을 보다가 내심 놀랐다. 20대 커플이나 여성끼리 제법 들어와 낮술로 막걸리를 즐기고 있다. 때마침 가게 입구에는 '낮술 환영'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막걸리 낮술이라!

하지만 시금털털한 막걸리를 주전자로 부어 대포잔에 들이켜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생과일을 간 것이나 과일주스를 섞은 '칵테일 막걸리 '. 이걸 유리병에 담아 내니 알록달록해서 튄다. 게다가 와인잔에 따라 홀짝홀짝 들이켜기까지. 도수가 낮아지고 달짝지근해졌으니 아저씨의 입맛에는 주스나 다름없을 것이다. 서울 홍대 앞의 '월향본색'이 '낮술 환영'을 내걸고 젊은층의 입맛까지 맞춰내는 감각적인 막걸리 개발로 성공을 거둔 이래로 '젊은 막걸리'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하고 있다. 
주스처럼 다양한 색을 낸 '닭갈비와 파전'의 칵테일 막걸리.
진짜 막걸리는 없냐고? 왜 없겠나. '닭갈비와 파전'은 '껍데기와 소금구이' 등 여러 외식브랜드를 가진 부산의 마당쇠가 '팔도막걸리카페'를 내걸고 새로 선보인 브랜드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막걸리를 두루 갖춰 막걸리 마니아들에겐 선택지를 넓혔다.

만화 '식객'의 허영만 화백이 극찬했다는 덕산막걸리(충북), 청와대 만찬주로 쓰여 이름을 알린 백련막걸리(충남), 3대째 내려오는 지평막걸리(경기)…. 지역의 금정산성막걸리와 함께 모두 9종의 전국 막걸리를 즐길 수 있다.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680번가길 34. 051-817-8844. 오전 11시30분~오전 2시. 무휴. 칵테일 막걸리(500mL) 6천 원, 지평막걸리·덕산막걸리·옥수수막걸리·금정산성막걸리 각각 4천 원, 공주알밤막걸리·하얀연꽃백련막걸리 각각 5천 원. 철판닭갈비 1인분 8천 원, 옛날 손두부 김치 1만2천 원, 김치 녹두전 1만 원, 야채해물파전 1만 2천 원.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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