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변신은 '유죄'… 특별하다는 걸 보여 준 죄

입력 : 2017-05-17 19:06:50 수정 : 2017-05-18 10: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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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귀하던 옛적, 좋은 일 있을 때 '길(吉)'하라고 먹었다는 길쭉한 밀가루 국수는 지금 너무 흔하다. 흔한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은 어렵다. 국수의 틀은 지키되 변화를 추구하며 더 맛있는 국수를 내놓는 두 집을 찾았다.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 일하고,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 화목하고 건강한 국숫집이라는 점이 닮았다.

국수와보쌈 - 돼지수육

수육 10점·무말랭이·겉절이 김치
국수와 함께 먹는 보쌈 '찰떡 궁합'
건강·맛 위해 소스·쌈장에도 정성

많은 사람은 국수를 만들기 쉬운 메뉴로 여긴다. 햄버거보다 싼 국수도 제법 많다. 맛도 양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후루룩 때우듯 먹는 국수 말이다.

하지만 맛은 드러나지 않는 작은 것에 실력과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에 달렸다. 면발과 육수, 양념, 간단한 반찬 같은 디테일이 모여 맛을 결정한다.

8년째 대연동 못골시장 인근에서 맛있는 국숫집으로 소문난 '국수와보쌈'이 바로 이런 집이다. 가게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다. 꾸미지 않았으나 정갈하다.

다른 종업원 없이 전원수·한채숙 씨 부부와 자녀들로 이뤄진 가족 체제로 운영되는 이 집은 원래 제주도 향토음식인 고기국수로 유명했다. 전 대표는 "돼지고기 사골만 써서 하루 정도 푹 우려낸 육수가 깔끔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고 자랑했다. 닭 뼈를 섞어 국물이 눅진하게 만들거나, 저렴한 돼지 잡뼈를 쓰지 않고 정석대로 돼지 사골만 쓴다는 얘기다.

점심때 찾아간 이 집에선 점심 특선을 꼭 먹어보고 싶었다. 보쌈 1인분을 기본으로 멸치국수(국보 1호)나 고기국수(국보 2호)를 선택할 수 있는 특선 메뉴였다. 고기국수에 보쌈을 또 먹기는 부담스러울 것 같아 국보1호를 주문했다. 이 집 점심 특선은 주말·공휴일에도 오후 5시까지 먹을 수 있다.

잠시 기다리다 나온 보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말랭이, 겉절이 김치와 함께 수육이 10점이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이걸 혼자 어떻게 다 먹지?' 이런 걱정을 하며 국수를 보니 딱 고기와 함께 먹기 적당한 양이다 싶었다. 따로 접시에 담겨 나온 양파를 국수 국물에 부어 면과 함께 먹어봤다. 국수로는 약간 굵은 면을 썼는데 아삭거리는 양파와 조화가 좋았다. 멸치와 청어를 우려낸 국물 끝 맛은 시원하고 칼칼했다. 보쌈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수육도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섞여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났고, 접시를 비울 때까지 촉촉함을 잃지 않았다.

전 대표는 "겉절이 김치 양념은 1주일 치를 만들어 숙성시키고, 매일 먹을 양만큼 치댑니다. 물론 화학조미료는 일절 쓰지 않죠"라고 말한다.

간단하게 스쳐 지날 수 있는 소스 하나에도 정성을 쏟았다. 국수와 함께 나오는 양파, 반찬으로 나오는 무장아찌에 상쾌한 단맛을 내기 위해 매실청을 넣는데 이 매실이 특별했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에 있는 한 매실농원과 계약을 맺고 매년 전량 받아와 만든다는 것이다. "덜 익은 매실을 따 숙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지에 달린 채 익을 때까지 뒀다가 수확하기 때문에 향과 단맛이 훨씬 진하다"고 전 대표는 말했다.

풋고추를 찍어 먹는 쌈장도 그냥 내놓지 않는다. 잔파 마늘 검은깨 등을 섞어 건강에 유익한 성분을 더하고 염도도 낮추려고 노력했다.멸치국수 3000원, 고기국수 5000원, 점심특선 국보1호(멸치국수, 보쌈) 8000원, 국보2호(고기국수, 보쌈) 9000원, 보쌈 2만 3000원(소)·3만 4000원(중).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월요일 휴무. 부산 남구 수영로219번길 29(대연동). 070-4102-8253.

다옴 - 차돌박이비빔국수

비빔국수 양념과 차돌박이 구이
새콤달콤함과 고소한 불맛 조화
비빔손칼국수, 탱탱한 면발 자랑

처음 차돌박이국수라는 메뉴를 듣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돌박이는 야들야들 씹히는 맛과 함께 지방이 많아 구우면 고소한 맛이 더 짙어지는 쇠고기 부위다. 국수와 이 차돌박이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도시철도 2호선 금련산역 인근에 있는 '다옴'은 지난해 12월 주택가 이면도로 빌라 1층 상가에 자리 잡았다. 실내 분위기와 인테리어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 집은 3년간 옷가게를 운영하던 오상지 대표가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어머니는 경남 진해에서 5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다. 오래 떨어져 지내던 모자가 각자의 장점을 살려 모던한 분위기의 밥집을 만드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는 오 대표 누나도 힘을 보탰다. 가게 인테리어 콘셉트를 함께 잡았고, 기존 메뉴에는 없던 차돌박이비빔국수가 그녀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독특한 이 메뉴 덕분에 개업 직후부터 입소문을 탈 수 있었다. 미국산 초이스 등급(2등급) 쇠고기 차돌박이를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구워 비빔국수와 함께 내놓는다. 새콤달콤한 양념, 차돌박이 구이의 고소함과 불맛이 기막히게 어울렸다. 오 대표는 양념장의 비결을 묻자 "과일과 각종 채소를 숙성시켜 만든다"고 했다.

비빔손칼국수는 탱탱한 탄력이 압권이었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린다 싶었는데 메뉴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매일 직접 손 반죽하여 주문과 동시에 제면하기에 조리시간이 다소 지연될 수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이렇게 만든 면을 삶아 얼음냉각수로 마지막에 헹궈 탄력을 유지한다. 기계의 편리함과 효율 대신 오로지 사람의 힘에만 기댄 투박한 고집, 아니 정성이 기다리는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했다.

다옴 대표 메뉴에는 비빔밥과 부추전도 있다. 비빔밥은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물이 많았다. 저마다 개성 있는 맛을 가진 표고버섯 애호박 고사리 콩나물 무 등을 쓱쓱 비벼 한 술 떠먹었다. 고소한 참기름과 통깨 향기, 아삭하고 몽글한 식감,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양념장이 입안에서 한바탕 봄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듯했다.

"비빔 양념장은 고추장에다 여러 가지 채소와 잘게 썬 쇠고기를 넣고 2시간가량 볶아서 만든다"는 설명을 들으니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수만으로는 양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곁들이용 메뉴로 준비한 부추전도 꽤 인기다. 이런 모던한 밥집 분위기에서 찾아보기 힘든 부추전을 발견한 일부 손님들이 막걸리를 찾았고, 오 대표는 2인당 1병으로 제한해 얼마 전부터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다옴은 '화학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는 간결한 밥집'이 콘셉트다. 여기에 가족이 함께여서 더 정겨운 다옴이었다.

차돌박이비빔국수 7000원, 비빔손칼국수 6000원, 비빔밥 5000원, 부추전 5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부산 수영구 남천바다로22번길 25(남천동). 070-4207-0372.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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