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맛집]'어묵탕 떼고 전골 떼면' 포차 음식 아니죠

입력 : 2017-10-11 19:05:27 수정 : 2017-10-12 00: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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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현재 세계를 가늠하는 예술과 지성의 향연일 터. 사람들은 잘 모르는 BIFF의 숨은 공신은 남포동과 해운대 포장마차촌이다. 세계 영화인도 감동한 우리 포장마차 음식을 업그레이드해 내놓는 맛집을 찾아봤다. 해가 짧아지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맘때가 딱이다.

공순대

당면 없는 순대에다 부평깡통시장 인기 메뉴 유부 보따리, 갖가지 채소가 풍성하게 들어간 공순대의 순대전골.
당면 대신 고기·갖은 채소로 속 채워
전골 육수, 돼지 사골 우려 구수한 맛
돼지껍데기묵·소고기허파전 '별미'

부산 중구 부평동 족발골목 인근 '공순대'에서 순대전골을 먹으며, 문득 대학 졸업반 시절 종일 책에 파묻혀 지내다 늦은 귀갓길 소주 한 잔 걸치며 먹었던 순대가 떠올랐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 피란 3세대 공명철 대표가 운영하는 이 가게가 부산을 대표하는 순대 맛집으로 부각된 것을 보면, 이 집 음식에는 추억을 소환하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국내산 돼지 소창과 막창을 직접 손질하고, 사골을 우려 전골 육수로 쓴다는 것은 익히 알려졌다. 공 대표는 1년 전 깡통야시장에서 현재 위치로 가게를 옮기면서 순대 속 당면을 없앴다. "원조 밀가루에 겨우 의존하던 피란시절 당면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예전 어머니가 만들던 방식대로 순대 본연의 맛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갖가지 채소와 찹쌀, 고기가 당면을 대신해 순대 속을 채우는 일은 그러잖아도 번거로운 공정을 더 까다롭게 했다. 재료비도 급등했다. 하지만 먹는 이는 좋다. 값은 변함없고 훨씬 다채로운 맛을 볼 수 있다.

전골 속 순대를 집어 먹어 보니 과연 미끌하게 씹히고 넘어가던 당면과는 차원이 달랐다. 양배추와 시래기 등 채소와 돼지고기, 찹쌀이 꽉찬 맛을 선사했다. 잘 우러난 사골 덕에 처음부터 구수한 전골 국물은 들깨를 넉넉하게 풀어 토속적인 뒷맛을 남겼다.

묵묵히 받쳐주는 조연 없이 주연이 빛나는 경우는 없다. 공순대가 또 하나 공을 들인 것이 밑반찬이다. 공순대를 상징하던 이북식 가자미식해 외에 두 가지를 더 개발했다. 돼지껍데기묵과 소고기허파전이다. 이 메뉴 역시 공 대표 어머니가 종종 해주던 음식이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돼지껍데기묵.
소주 안주로 흔히 구워 먹는 돼지껍데기를 묵으로 만들어냈는데, 콜라겐이 녹아 옅은 갈색을 띠는 부분과 껍데기의 흰 부분이 쫀득하고 야들야들한 식감을 선사했다. 손님들이 흔히 '육전'으로 부르는 소고기허파전은 살코기 육전에 비해 훨씬 고소하고 쫄깃했다. 밑반찬 중 소고기허파전은 추가로 제공되지 않는다. 부족한 일손에 결정적으로 버너가 2개뿐이어서 전을 풍족하게 구워낼 수 없다는 이유다.
소고기허파전.
이 모든 음식의 뿌리였던 공 대표 어머니 최옥순 여사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공 대표 조카 권영 씨가 4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비법을 배우고 있다. 맛의 계보는 이렇게 또 이어진다.

순대전골 2만 5000원(소)·3만 원(중)·3만 5000원(대), 순대사리 추가 1만 원. 막창순대 2만 5000원, 모둠순대 1만 5000원(소)·2만 원(대). 가자미식해 1만 5000원. 영업시간 오후 4시~자정. 부산 중구 중구로29번길 18-5(부평동1가). 051-231-9209.

땡초우동in포차
지역 고급 어묵에다 칼칼하고 시원한 육수로 입맛을 돋우는 어묵탕.
강원도 영월産 최고급 태양초 써
알싸하고 깔끔한 '건강한 매운맛'
시원한 어묵탕, 술안주 겸 해장국

육류 전문업체 행복한한점 대표로 부산 덕천동과 범일동 등지에서 12년 동안 OK목장, 세가지식당 등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김도형 씨가 뜬금없이 '포차'를 차렸다기에 궁금했다.

초저녁 부산 토곡에 있는 '땡초우동in포차'를 찾아가 봤다. 깔끔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에 정감이 갔다. 메뉴판은 간단했다. 어묵탕, 탕수육, 국물떡볶이, 우동, 닭똥집과 닭발이 전부였다.

가게 이름에도 내세운 '땡초'(청양고추)를 국물 있는 모든 메뉴와 탕수육 앞에 모두 붙인 것으로 미뤄 고추 대한 특별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김 대표는 "강원도 영월에서 계약재배하는 최고급 태양초만 사용하기 때문에 매운맛을 더 내려고 캡사이신을 넣는 것과는 질적으로 맛이 다르고, 건강에도 해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깔끔하게 매운 국물떡볶이.
우선 국물떡볶이를 먹어보고는 그 매운맛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첫맛은 매콤하지만 목을 넘어간 뒤까지 입안이 얼얼하지는 않았다. 깔끔하게 맵다. 
쫄깃하고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에 매콤달콤한 맛까지 선사하는 땡초우동in포차의 눈꽃탕수육.
이렇게 매운맛이 한층 위력을 발휘하는 메뉴가 눈꽃탕수육이다. 이 집은 돼지 등심에 고구마·감자 전분을 입힌 뒤 눈꽃 모양으로 튀겨낸 탕수육에다 태양초 소스를 부어준다. 두툼한 등심이 쫄깃한 전분 튀김옷과 함께 씹히는 바삭하고 쫀득한 느낌도 좋지만, 알싸한 매운맛을 더한 새콤달콤한 소스가 금상첨화를 이룬다.

뭐니 뭐니 해도 부산의 포장마차에서는 어묵탕을 빼놓을 수 없다. 땡초우동in포차에서 맛본 어묵탕 국물은 시원하고 칼칼했다.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김 대표에게 물어보니 노가리와 황태, 양파, 대파, 감초, 다시마, 무, 여기에 이 집 대표 식재료인 영월산 태양초를 넣어 5시간 이상 푹 우려낸다고 했다. 이 정도면 술 안주인 동시에 해장국인 셈이다. 고구마·감자 전분과 찹쌀가루 반죽으로 뽑아낸 사리를 건져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 대표는 "술손님도 있지만, 가족 단위로 어르신과 어린이들까지 함께 오는 경우도 많다"며 "저희가 잘 할 수 있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메뉴에 집중하는 미니멀리즘이 우리 가게의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저성장이 대세인 뉴노멀시대, 서민 친화형 미니멀리즘은 꽤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땡초어묵탕 1만 3000원, 땡초눈꽃탕수육 9000원(소)·1만 6000원(대), 땡초국물떡볶이 1만 원, 반반똥집튀김·땡초뼈없는닭발 각 1만 2000원, 땡초우동 5000원, 땡초어묵우동 6000원. 영업시간 오후 6시~오전 3시. 부산 연제구 고분로 236(연산9동). 051-752-0023.

글·사진=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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