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간장게장에 밥 비벼 '꿀꺽' 제철 남도밥상에 침 '꼴깍'

입력 : 2018-02-21 19:07:57 수정 : 2018-02-21 22: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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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규 부산 YWCA 명예이사와 부산 중앙동 어머니간장게장

먹음직스럽고 큼지막한 간장게장.

'혼밥'이 뜨고 있긴 하지만, 혼자 먹는 밥은 왠지 쓸쓸하다. 식사는 음식의 맛 자체보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늘 웃음 띤 얼굴에 남을 배려하는 매너와 용기를 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과 밥을 먹는 것은 축복이다. 잠시 생각해 본다. 내 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선규 부산 YWCA(이하 부산Y) 명예이사와 함께한 모임에서 "혹시 단골집이 있습니까? 저하고 밥이나 한 끼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하 이사가 15년 다닌 단골집

전남 목포 출신 대표가 24년째 영업
남도 구첩반상 한정식 옮겨 놓은 듯
황석어·갈치속젓 찰밥에 얹으니
입맛 돌아… 간장게장은 감칠맛 마

무리 숭늉 게장의 비린맛 잡아줘

환하게 웃으며 식사하는 하선규 부산YWCA 명예이사.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단골집이 있다고 했다. 좀 허름해 보여도 내용은 꽉 찬 집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라면 믿을 만하다. 평생 시민운동에 헌신해왔고, 더욱이 친환경 먹거리 운동에 열정을 불태워 온 그가 아닌가. 그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을 정도의 밥상이라면 독자들에게 소개해도 그리 큰 허물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부산 중구 중앙동 '어머니간장게장'. 좀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왁자했다. 하선규 부산Y 명예이사는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하 이사는 귀한 분이라며 사람을 소개해줬다. 미국에서 세계적인 주차빌딩 설계 회사 팀하스(TimHaahs)를 경영하는 하형록 회장이었다. 그분은 TV나 언론매체를 통해 한국에도 잘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

하 회장과 잠시 인터뷰를 하고 배가 슬슬 고플 즈음에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 이사는 이 집의 15년 단골이라고 했다. 이곳은 음식의 가짓수가 어마어마하다. '간장게장' 집이라고 해서 게장이 주(主)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문 한정식이나 마찬가지다. 하나, 둘, 셋, 넷…. 세다가 멈춘다. 가짓수만 많은 게 아니다. 반찬 하나하나가 다 젓가락을 끌어당긴다. 남도의 구첩반상 한정식을 부산으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전남 목포 출신인 조영례(64·여) 사장은 식당 문을 연 지 올해로 24년째란다.

"이것 좀 드셔 보시오잉."

조 사장은 음식에 자신 있다는 듯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이것저것을 권한다. 먼저 따뜻한 찰밥에다 황석어·갈치속젓을 얹어 한 입 뜬다. 별로 짜지 않고 달짝지근한 젓갈이 입맛을 일으켜 세운다. 이어 제철인 매생이 부침과 조기구이, 버섯 장아찌로 손이 절로 옮겨 간다. 
하나하나가 맛깔스러운 밑반찬.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 이사는 부산 시민운동의 대모다. 부산Y 간사로 들어가 사무국장, 사무총장, 회장, 명예이사까지 50년을 한결같이 부산Y를 지켜 왔고, 시민운동의 중심축으로 활동해왔다. 한국 소비자운동 1세대인 그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활동이 왕성하다. 지난해 최초로 Y 반핵 대사까지 맡아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영원한 숙제는 생명·환경 사랑이다. 그의 리더십은 저서 <생명사랑 하선규의 리더십 이야기>에 잘 정리돼 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밥도둑'이 나온다.

"이상하게 이 집 게장은 짜지가 않아요. 들척지근하면서도 감칠맛이 있고, 비린 맛이 전혀 없어요."

하 이사가 직접 게 다리를 집어 준다. 조 사장이 간장게장 조리법을 자세히 일러 주었는데, 아뿔싸,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모조리 까먹었다.

하 이사는 식사 중에도 예의 배려와 나눔을 잊지 않는다. 사장이 '아껴둔 것'이라며 묵은지를 가지고 나오자, 팔을 걷어붙이고 쭉쭉 찢어 다른 손님들의 숟가락 위에 척 얹어 준다.
쌀밥을 넣어 비빈 게딱지.

김병집 선임기자 bjk@
조 사장의 지시(?)에 따라 큼지막한 게딱지에 밥을 쓱쓱 비벼 식사를 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숭늉이 나온다. 밥을 푹 삶은 숭늉 맛이 웅숭깊다. 입안에 남아 있는 게장과 생선의 비린내를 말끔히 잡아 준다.

평소 소식을 한다는 하형록 회장도 밥그릇을 뚝딱 비우며 한마디 거든다. "게장을 이렇게 맛있게 먹은 적은 난생처음인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을 묻자 "별로 없다"는 하 이사. 다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벽돌처럼 꼭 들어맞는 소임이 생기면 뭐든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힘이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밥으로 배부르고 서로의 관심과 배려로 마음마저 불룩해진 한 끼 식사였다.

▶어머니간장게장/간장게장 정식 (2인 이상) 1만 7000원(점심)·2만 원(저녁), 오늘의 집밥 1만 원, 전복죽 1만 5000원, 매생이 전 1만 원. 051-254-1150.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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