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을 찾아서] 부산 모라동 '베리노제과점'

입력 : 2018-07-11 19: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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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빵이라 더 정겨운 34년 '동네 터줏대감'

이나카(시골빵)

세 명이 돌아가며 차례로 34년간 지켜 온 빵집이 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세월 동안 동네의 흥망성쇠를 조용히 봐 온 곳이다. 많은 주민에게 간식이나 식사를 제공하면서 사랑방 역할을 했던 장소이기도 이다. 부산 사상구 모라동 베리노제과점(대표 이기중)이 바로 그곳이다.

이 대표가 제과제빵을 시작한 건 제대한 이후부터다. 사직동에서 동네빵집을 하던 지인 소개로 남포동 '고려당'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게 1994년의 일이었다. 빵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그는 이후 사직동 '황태자제과점', 서면 '백송', 해운대 '빠리지앵' 등에서 골고루 근무했다.

1998년 IMF 금융 위기 직전 사하구 신평동의 제과점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그는 이듬해 자신의 첫 가게를 차렸다. 북구 금곡동 '파미올라스'였다. 

이기중 베리노제과점 대표가 빵을 진열하고 있다.
제과점을 직접 운영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는 실패를 맛봤다. 가게를 접고 3년간 남의 빵집에서 기술자로 일한 그는 2003년 양산에서 빵집을 다시 차렸다. 부인과 함께 열심히 일한 덕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2년 뒤 현재 위치로 가게를 옮겼다.

이 대표가 빵집을 열기 전 이미 그곳에는 제과점이 있었다. 1984년부터 영업하던 곳이었다. 이름은 베리노제과점이었다. 첫 번째 주인이 10년간, 두 번째 주인도 똑같이 10년간 가게를 운영했다. 그도 제과점을 인수해 벌써 14년째 일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다른 이름을 사용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베리노라는 이름이 지역 주민들에게 이미 깊이 인식돼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그대로 갖고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베리노제과점 고객은 대부분 지역 주민 단골이다. 이 대표가 매일 빵집에 오는 한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는 매일 고무신을 신고 와서 먼저 물 한 잔을 달라고 한다. '돈 많이 벌라'고 덕담한 뒤 빵을 사서 들고 간다. 노인 부부 단골도 있다. 부부는 가게 테이블에 앉아 빵을 먹고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간다.

베리노제과점에서 만드는 빵은 대략 60여 가지다. 오전 8시 30분쯤 첫 빵이 나오기 시작해 11시 30분쯤이면 모든 작업이 끝난다. 이 대표는 "동네빵집이라서 카스텔라, 팥빵 같은 옛날 빵이 잘 팔린다. 지난해 가게에 변화를 주려고 컨설팅을 받아 새로운 빵을 도입했다. 처음에는 제법 팔리는 듯하더니 결국 옛날 빵으로 다시 돌아왔다"며 웃었다.

이 대표가 가장 자랑하는 빵은 우유식빵과 밤식빵, 프렌치토스트다. 부산 시내 어느 제과점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맛이라는 게 그의 자평이다.

우유식빵을 만들 때는 밀가루 1㎏에 생크림 50㏄, 우유 450㏄, 물 400㏄를 넣는다. 다른 제과점보다 수분 함량이 많은 편이다. 수분을 한꺼번에 넣으면 죽처럼 되기 때문에 나눠 넣는다. 반죽을 여러 번 나눠 오랜 시간에 걸쳐 치기 때문에 수분이 많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수분이 많은 덕에 빵은 매우 부드럽고, 시간이 제법 오래 지나더라도 촉촉함을 유지한다. 이 대표는 여기에 호밀종을 넣어 잡냄새를 없앤다.

밤식빵에는 추가로 계란을 첨가한다. 밀가루 1㎏에 계란 6개를 넣는다. 계란 1개가 평균 50㏄ 정도이므로 총 300㏄인 셈이다. 여기에 물 500~600㏄를 붓고, 생크림과 우유도 넣는다. 이 대표는 "계란을 넣으면 약간 노르스름하게 색이 좋아진다. 빵의 풍미도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프렌치토스트는 바게트로 만든다. 바게트를 잘라 우유, 생크림, 계란, 설탕 등으로 만든 소스에 담가뒀다가 오븐에 구워낸다. 바삭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은 게 특징이다. 고소하면서도 제법 단 게 손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단팥빵에 사용하는 팥은 장인이 시골에서 농사지은 걸 가져다 쓴다. 팥은 생크림을 넣어 두 번 삶는다. 생크림을 넣으면 팥이 부드러워진다. 단팥빵을 먹어봤다. 팥 맛이 제법 독특했다.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자연스러운 맛이었다. 빵도 쫄깃한 게 제법이었다.
뽀로로 쿠키.
베리노제과점을 처음 열 때만 해도 인근 공장에서 빵을 간식 등으로 많이 사 갔다고 한다. 그게 조금씩 줄더니 지금은 사 가는 업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대표는 경기 침체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두 주인이 하던 시절까지 합치면 사상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대접하기 위해 양심껏 일해왔다.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제과점의 자리를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베리노제과점/부산 사상구 사상로 483의 1(모라동). 051-302-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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