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통닭] 치킨집 같지 않은 이 깔끔함

입력 : 2019-08-14 18: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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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들이 이어진다. 무더위는 잠을 앗아가고, 깨어 있는 뇌는 배를 출출하게 만든다. 다행히 ‘치맥’이 있어 이 밤의 공허함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사실 열대야가 치킨과 맥주에 끌리게 한다는 건, 여름 밤에도 치맥을 먹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치맥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언제나 대한민국의 대표 야식이다.

하얀 톤·아기자기한 소품 실내 장식

커피숍 분위기에 개방형 주방서 요리

밝은 노란색 ‘옛날식 통닭’ ‘프라이드’

고소하면서도 느끼함 없는 맛 ‘매력’

위생·가성비 좋은 ‘동네 닭집’ 입소문

부산 해운대구 좌동재래시장 인근 ‘오후의통닭’은 규모만 보면 흔한 동네 닭집이다. 매장이 13평 규모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게 분위기만큼은 상당히 독창적이다. 실내는 하얀 톤으로 꾸며져 있고, 조명은 은은하며,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걸려있다. 깔끔한 커피숍이나 베이커리 분위기다. 무엇보다 주방이 개방형이라는 게 눈길을 끈다. 주방과 홀 사이엔 허리 높이 만한 담장만 있을 뿐이다. 주문할 때도, 음식을 기다릴 때도 통닭이 튀겨지는 걸 감상하게 된다. 통닭집에서 개방형 주방은 매우 귀하다.

오후의통닭 김수한 대표는 “깨끗함이 가게의 모토다”며 “통닭집의 위생 상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어 개방형 주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치킨 요리는 필연적으로 기름때를 부른다. 그렇다고 그 기름때를 손님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 김 대표는 청소와 위생에 많은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통닭 한 마리를 주문했다. 요즘 대세라는 손질된 닭을 통째로 굽는 ‘옛날식 통닭’이다. 사각 철판 위 황톳빛 종이에 싸인 통닭은 밝은 노란색이다. 튀김옷의 색이 고루 퍼져 있고 검은 부분이 없어, 깔끔한 안주의 느낌이다. 튀김옷의 색을 보면 튀김 기름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한 손에 위생장갑을 끼고 다른 손에 집게를 들고, 통닭의 뒷다리를 뜯었다. 통닭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향이 퍼진다. 튀김옷은 그리 두껍지 않으면서도 바삭한 식감이 살아있다. 닭다리 살은 수분이 빠지지 않아 촉촉한 느낌이 있다. 가슴 살 부위도 퍼석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다. 튀긴 정도가 과하면 촉촉한 기운이 사라지고 약하면 물러지는 법인데, 적절하게 튀겨졌다. 특히 끝 맛이 매콤하도록 처리된 양념이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동시에 맛깔스러움을 더한다. 무엇보다 이 통닭이 매력적인 건 가격이다. 6000원에 준수한 맛의 통닭 한 마리를 먹을 수 있으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프라이드 치킨 역시 마찬가지다. 프라이드는 옛날식 통닭과 양은 비슷하면서도 먹기 편하다. 다만 조각을 내 튀겨야 하기 때문에 주방에서 손이 많이 가 더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가게에선 9000원이다. 여전히 가성비가 좋다. 프라이드는 바삭한 느낌이 강하고, 맵싸한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김 대표는 “일단 닭 상태가 나쁘면 어떻게 해도 맛이 안 난다”며 “괜찮은 닭 공장과 함께 해, 국내산닭도 이 가격에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낮은 가격으로도 좋은 맛을 내는 식당은 하나같이 괜찮은 재료를 싸게 받아오는 공급선이 있는데, 오후의통닭도 마찬가지였다.

광고대행 사업 등에 종사했던 김 대표는 10여 년 전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서 통닭집을 운영했었다. 그 당시 여름 백사장 내 해수욕장 피서객에게 전화 주문으로 닭을 배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꽤 히트를 친 적이 있다. 그때 통닭 요리의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한다. 물론 닭을 그냥 튀긴다고 통닭이 되는 건 아니다. 김 대표는 “기름의 온도, 튀기는 시간, 닭에 칼집을 내는 정도 등이 적당하지 않으면 퍼석해지거나 골고루 익지 않아 제대로 된 통닭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오후의통닭은 오래된 가게가 아니다. 광고대행업 종사자답게 시장과 트렌드를 분석하고 괜찮은 공급선을 확보한 뒤, 사람들이 원하는 통닭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가게 문을 연 건 올 2월이다. 그럼에도 빠르게 입소문이 나면서, 해운대 좌동 일대에선 꽤 유명한 동네통닭집이 됐다. 평일이든 일요일이든 영업시간엔 오가는 손님들로 가게가 붐비고, 주문을 위한 전화가 계속 울린다. 요즘엔 SNS 등을 보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꽤 있다. 젊은 층이나 학생들은 달짝지근한 소스가 버무려진 닭강정을 간식용으로 많이 사 간다.

김 대표는 “통닭이 국민 먹거리다 보니 너무 쉽게 통닭집 문을 열고, 또 폐업이 잦다”며 “다행히 손님 반응이 좋은데, 위생을 철저히 챙기면서도 가성비가 뛰어난 통닭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알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의통닭/부산 해운대구 좌동로91번길 39(좌동)/통닭 한 마리 6000원, 조각 프라이드 9000원, 양념 프라이드 1만 원, 기타양념 1만 1000원, 순살 닭강정 한 박스 7000원, 뼈닭강정 한 마리 1만 1000원.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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