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락국밥] 쌀쌀한 가을, 시래氣 충전

입력 : 2019-10-02 18: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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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깃국은 느낌은 서정적이고 맛은 구수한, 매우 익숙한 음식이다. 그렇지만 막상 찾아보면 시래깃국 전문 식당은 흔치 않다. 시래깃국 식당이 흔치 않은 건 웬만해선 손님에게 맛을 각인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친숙한 음식일수록 사람의 혀는 까칠해지기 마련이다. 잘 아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람들은 칭찬에 인색하고 단점을 크게 느낀다.

해운대구 좌동재래시장 입구 쪽 위치

오전 6시 문 열어 등산객 아침으로 인기

사천에서 직접 재배한 무청 시래기

부드럽진 않지만 탱탱한 식감 매력적

단골들, 들깻가루·계피 섞어 먹기도

국산 콩으로 갓 만든 두부구이도 ‘별미’

시래깃국을 가볍게 보는 경향도 이유일 듯하다. 익숙한 음식일수록 가볍게 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래깃국은 보통은 메인 음식에 딸린 국 정도로만 취급된다.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을 때나 시래깃국이 온전히 식사의 중심으로 취급받는다. ‘김밥을 시켜도 시래깃국을 덤으로 주는데, 굳이 돈 주고 시래깃국을 사 먹어야 하나’는 생각하는 이도 있을 거다. 어쨌든 시래깃국 전문점을 하려면 웬만한 자신감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산 해운대구 좌동재래시장 입구 쪽의 ‘사천시락국밥’은 2013년 11월 문을 열었다. 흔치 않은 시래깃국 전문집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 5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전 6시에 문을 열기에 장산을 찾는 등산객이나 이른 아침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른 아침이나 혹은 식사 시간 때가 아니어도 무겁지는 않으면서도 든든하게 배를 채우려 시래깃국을 찾는 이들도 많다.

문기완 대표는 “경기가 안 좋기는 하지만 괜찮다. 처음 문을 열고 꾸준히 손님이 늘고 있다”며 “시락국이 부담되지 않은 맛이면서 건강해지는 느낌이라고 평해주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경상도 방언이지만, 오히려 어감이 훨씬 부드럽다.

‘무청시락국’이 한 그릇 가득 나왔다. 시래기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게, ‘오늘 식이섬유는 충분히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몸에 좋다는 식이섬유로 배를 채우고 싶을 때가 간혹 있는데, 그런 날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벌써 든다. 연갈색의 국은 구수하면서도 삼삼하다. 반면 시래기의 억센 맛은 없다. 주방에서 염도계를 써서, 늘 일정한 국물을 낸다고 한다.

시래기의 질감이 독특하다. 부드러운 편은 아니고 오히려 씹는 맛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시래기가 탱탱한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이는 질기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억지로 부드럽게 만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질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삼삼한 국물에 시래기와 밥을 한 숟갈 함께 떠먹으면, 건강해지는 느낌을 절로 받는다.

문 대표는 “물론 국물은 새우, 멸치, 양파 등 11가지 재료로 우려낸 것이다. 잡스러운 맛은 잡고 은은한 맛이 더해진다”며 “단골들은 들깻가루와 계피가루를 기호에 맞게 국에 섞어 먹는다”고 설명했다. ‘다슬기시락국’은 국 자체에 들깻가루와 땡초가 첨가돼, 감칠맛과 약간의 얼큰함이 추가된다. 다슬기가 씹히는 맛이 국과 시래기와 어우러져 전체적인 맛이 풍성하다.

시래기는 문 대표가 직접 재배한 것들이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이지만 시래기가 가득 담길 수 있고, 자연 상태에서 커 시래기가 부들부들하지 않다고 한다. 문 대표는 매년 사천에서 노모와 함께 700~800평 규모로 무 농사를 직접 짓고 있다. 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래기를 얻기 위해 하는 농사이다. 이렇게 얻은 시래기를 직접 말리고 밭 인근의 대형 냉동창고에 보관해 두면서 쓰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저렴한 단가를 맞출 수 있다는 거다. 또 문 대표는 “감자탕 등에 쓰이는 시래기가 워낙에 부드러워, 이와 비슷한 질감을 찾는 손님도 있다”며 “아무리 해도 자연 상태에서 서리를 맞고 큰 무청은 그렇게 부드러워질 수가 없더라”고 설명했다.

이 집의 별미도 있는데, 단골손님은 시래깃국과 함께 두부를 빼놓지 않고 주문한다. 두부만 먹고 가는 손님도 있다. 국산콩으로 만들었다는 두부는 신선한 맛이 가득하다. 삼삼하지만 은은한 간이 배 계속 젓가락이 간다. 두부김치는 아삭한 김치와의 조화가 좋다. 특히 두부구이가 별미다. 노릇노릇 익힌 것이 고소하면서도 입에 감긴다. 국산콩으로 만든 두부를 집에서 구워 먹어도 웬만해선 이 맛을 내기 어려울 듯하다.

문 대표는 “특별하게 두부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굽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며 “신선함의 차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사천시락국밥의 두부는 주방에서 직접 만들기 때문에 갓 제조된 두부가 그대로 테이블에 올라오는 셈이다. “아무리 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라고 해도 보통은 이미 시간이 흐른 것들이라 우리 두부와 맛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는 문 대표의 추측은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의외로 열무비빔밥도 꽤 많이 팔리는 메뉴다. 신선한 채소에 비벼 먹는 것이야 다른 식당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노모가 만든 삼삼한 된장과 함께 구수한 시락국이 곁들여지면서, 맛깔스러움이 더해지는 듯하다.

▶사천시락국밥/부산 해운대구 대천로 100(좌동)/무청시락국밥 4500원, 시락다슬기탕·시락떡만두국 5000원, 시락갈비탕 6000원, 열무비빔밥 5500원, 즉석두부 4000원, 두부김치 5000원, 두부구이 6000원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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