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추어탕] 경상도식 맑은 국물 “속이 시원합니다”

입력 : 2020-01-01 17: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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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갈이배추와 무청을 넣어 상큼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추어탕. 얼갈이배추와 무청을 넣어 상큼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추어탕.

부산의 택시 기사들이 단골로 가는 이른바 ‘기사 식당’ 중에 추어탕을 잘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0년을 훨씬 넘은 노포라고 했다. 택시 기사들의 맛집에 가면, 맛 탐방이 실패할 확률이 낮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추어탕 국물 한 그릇을 마시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30년 넘은 노포, 택시기사 ‘단골’

뼈 추려내고 살만 써서 만들어

무청·얼갈이배추로 만든 시래기

깔끔하고 시원한 맛 더해

김천서 온 메주로 만든 된장

30년 씨간장이 맛의 ‘비법’

2023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를 하는 동래더샵아파트 맞은편 ‘양산추어탕(대표 손인규·50)’이 바로 그곳이다. 식당 앞에는 택시 여러 대가 서 있었다. 식당 테이블에는 택시 기사들은 물론 여러 손님들이 따뜻한 추어탕으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양산추어탕은 2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식당이다. 초대 사장은 15년 전 별세한 박일순 씨였다. 그는 손 대표의 어머니였다. 남편과 함께 기사 식당을 운영하던 박 씨는 1985년 음식을 추어탕으로 특화했다. 부부의 고향이 경남 양산이어서 식당 이름도 양산추어탕으로 정했다. 손 대표는 “택시 기사들은 택시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소화가 잘돼 위장에 부담이 덜 가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게 추어탕”이라고 말했다.

고소한 맛이 좋은 검은 깻묵 고소한 맛이 좋은 검은 깻묵

추어탕에 앞서 밑반찬이 나왔다. 특이한 반찬이 보였다. 검은깨와 한천으로 만든 검은깻묵이었다. 맑은 색의 국물이 눈에 띄었다. 숟가락으로 떠먹어 보았다. 상큼하면서 깔끔하고, 짭짤하면서 약간 매콤했다. 밥에 비벼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귀, 감초 등 한약재를 달인 물로 만든 국물이라고 한다. 검은깻묵을 잘라 숟가락에 놓고 그 위에 파를 얹었다. 고소한 묵과 진한 파향이 뜻밖에 잘 어울렸다. 식당을 찾는 기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밑반찬이라고 한다.

추어탕이 나왔다. 경상도식 맑은 국물이었다. 산초가루, 마늘, 양념(다대기) 등을 넣기에 앞서 국물부터 맛을 보았다. 깔끔하면서도 맑고 시원한 맛이었다. 걸리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기분 좋은 향이 나는 것 같았다. 택시 기사들이 왜 이곳에서 추어탕을 먹는지 한 숟가락의 국물로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추어탕에 든 시래기는 일반 배추가 아니라 얼갈이배추와 무청을 넣었다. 그래서 상큼하면서 시원한 맛이 많이 난다. 얼큰한 국물을 원하면 다대기를 넣어 먹을 수 있다. 손 대표가 직접 담근 간장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추어탕을 먹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밥을 국물에 말아서 먹는 방법과 밥과 국물을 따로 먹는 방법이다. 손 대표는 “우리 집 추어탕은 밥을 말아 먹는 게 좋다. 밥의 전분이 국물에 퍼져 더 좋은 맛을 낸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2003년 부모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았다. 결혼하자마자 식당 부엌으로 직행해 음식을 배운 부인 최정순(49)과 함께였다. 최 씨는 시어머니로부터 추어탕 끓이는 법과 양념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았다. 최 씨는 “추어탕 맛은 변함이 없다. 시어머니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양산추어탕 맛의 비법은 간단하다. 바로 간장과 된장이다. 어떻게 보면 비법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굉장히 ‘기본에 충실한 비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최 씨는 “추어탕 국물 맛의 차이는 결국 된장, 간장의 차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된장, 간장은 김천에서 가져온 메주로 직접 만든다. 매년 메줏값만 1500만 원 이상 든다고 한다. 풍미를 더 하기 위해 한약재 다린 물과 말린 명태를 넣는다. 된장, 간장은 3년 정도 숙성시킨다. 양산추어탕에는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30년 넘은 씨 간장이 있다. 간장을 매년 만들 때마다 조금씩 넣어준다. 그래야 발효가 잘된다.

양산추어탕에서는 미꾸라지를 삶아 옛 방식대로 체에 걸러낸다. 뼈는 추려내고 살만 남기는 것이다. 손 대표는 “뼈까지 갈아서 넣으면 뼈의 텁텁한 맛이 남는다. 살만 넣으면 씹히는 게 없어 부드러운 데다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해진다”고 설명했다.

단골들이 좋아하는 비빔밥. 단골들이 좋아하는 비빔밥.

단골손님 중에는 추어탕 대신 비빔밥을 주문하는 이도 많다. 비빔밥에는 추어탕 국물이 딸려 나오기 때문에 밥은 물론 추어탕도 먹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양산추어탕에서는 장어구이도 판다.

한약재 양념을 바른 장어 한약재 양념을 바른 장어

양념은 김천에서 가져온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열 가지 한약재와 잣, 감초, 대추 등을 넣어 만든다. 국산 장어는 강원도 춘천에서, 수입 장어는 모로코에서 가져온다.

양산추어탕 앞에 늘어선 개인택시 양산추어탕 앞에 늘어선 개인택시

손 대표는 “우리 가게 손님은 대부분 단골이다. 30년 이상 고객도 많다. 문정수 전 부산시장도 오래된 단골이다. 가끔 와서 추어탕은 물론 장어도 먹는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아들은 대학교 조리학과에 다니고 있다. 손 대표는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아 3대를 잇는 식당이 되는 게 꿈이다. 아들이 할머니의 맛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양산추어탕/부산시 동래구 온천장로 50. 051-552-5473. 추어탕·비빔밥 7000원, 국산민물장어구이 3만 4000원, 수입 민물장어구이 2만 8000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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