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비는 세상을 적시고 그곳은 나를 달랜다

입력 : 2012-08-30 06:27:35 수정 : 2012-08-30 14: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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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잔이면 마음은 벌써 푸근해진다. 잔 부딪고 말 섞고 온기 나누는 그런 자리. 결국은 술보다 사람이 좋은 것이다.

띵땅띵땅 뚜웅 띵땅 띵땅띵땅 뚜웅 띵땅….

비 듣는 소리가 그리 들린다. 가슴을 두드린다. 가슴 밑바닥에 무언가 가라 앉는다. 괜스레 우울해져볼까? 아니, 이런 때는 그냥 비에 젖어들어야 한다. 비로 마음을 적셔야 한다.

막걸리가 있다. "하루치 막걸리와 담배만 있으면 행복하다"던 시인이 외쳤던바, 비 내려 스산한 날, "막걸리 한 잔으로 속을 지지면 기분은 몹시도 좋아질 터"이다. 지짐은 곧 적심이다. 기분 좋은 젖음! 문제는 '어디로 갈까'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막걸리 전문점? 번잡하다. 알코올을 들이켜러 가자는 게 아니다. 마음을 적시자는 게다. 주기(酒氣)는 눈동자 약간 풀어지고 입에서 슬슬 웃음 스며나오는, 딱 그만큼이면 충분하다. '막걸리'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

번철 위에서 자글자글 부쳐지는 빈대떡? 파전? 좋겠지. 그러나 역시 번잡하다. 비에 온전히 젖기에는 너무 평범하다. 막걸리 한 사발에 얹어 말을 섞고 호흡을 나누는, 그래서 사람 냄새가 더 좋다 느껴지는, 그런 곳이 필요하다.

비가 흩뿌리는 날 마시는 막걸리. 비에 젖는 것인지 막걸리에 젖는 것인지 모를 일이나, 흥은 높아지고 높아져서 겨워해야 할 정도다.

아차! 그러기에 앞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말을 섞고 호흡을 나누며 막걸리 한 사발 함께 들이켤, 그래서 빗속에서 온기를 느끼게 해 줄 사람. 오시면 밤비 내리고 가시면 밤비 그치는, 또 어쩌면 밤비 따라 왔다가 밤비 따라 돌아가는, 임이라도 있으면 좋을 테지.

그렇게 '비의 나그네' 같은 사람을 청한다. 비 오는 날 막걸리 한 잔에 촉촉하게 젖자면 결코 마다하지 않는 이. "막걸리로도 족히 3차쯤은 가야 한다"고 외치는 이. 그와 어깨를 겯고 나선다. 비 맞으러, 막걸리 마시러, 그래서 젖으러. 올 가을엔 비가 유난히 많을 거라고 한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사진=정종회 기자 j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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