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사이비 교주의 손아귀는 왜 이렇게 강한가

입력 : 2023-03-1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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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약점·선민사상 악용 헤어나지 못할 늪으로
개인 문제로 방치해선 안 돼…사회적 개입 논의를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실체를 폭로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한 장면. 화면 캡처 사이비 종교 교주들의 실체를 폭로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한 장면. 화면 캡처

■ 다큐 ‘나는 신이다’가 던진 파문

거대한 충격파다. 온통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얘기들 뿐이다.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로 사이비 교주들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파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번 다큐 콘텐츠의 핵심은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 정명석이다. 그래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그는 ‘가스라이팅’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신도들에게 주입했다. 이게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치밀한 노력 덕분이다. 1980년대부터 구축한 새로운 교리 해석과 인맥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힘이 컸다. 그 결과는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과 성 착취였다. 측근들은 ‘메시아의 구원’이라는 명분으로 암묵적 묵인을 거들었다. 한 증언에 따르면 정명석은 “1만 명의 여성과 성적 관계를 통해 하늘의 애인으로 만드는 것이 하늘의 지상명령”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밖에 공개된 이재록(만민중앙교회), 김기순(아가동산), 박순자(오대양) 같은 사이비 교주들의 기행과 악행도 끔찍하다. 폭행, 원정 도박, 노동 착취, 살인, 심지어 집단자살까지 포함돼 있다. 다큐의 표현 수위는 전례 없을 정도로 과감했다. 제작진은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많은 언론과 방송이 사건을 다뤘지만 해당 종교단체는 건재했고 범죄는 반복됐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이단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종.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 사회 구석구석 퍼진 사이비 종교

우리나라에는 100만 명 이상이 200여 종의 사이비와 이단 집단에 빠져 있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자료다. 기독교로 한정하면, 변질된 교리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단체가 30개 정도 존재한다. 자신을 재림 예수, 다시 말해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이들만 30명이 넘는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추정치를 본다. 국내 개신교 신자는 총 545만 명에 이르는데 이 중 이단 신자는 최소 34만 명에서 최대 66만 명이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걸까. 사이비 교주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 병에 걸리면 낫고 싶고 미래가 불확실하면 안정된 내세를 보장받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병자들을 치료하고 예언을 통해 미래를 맞히는 ‘신기’를 발휘한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절실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남다른 능력이 마침 현실에서 통할 때 이는 ‘기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교주의 방패막이가 되는 신도들의 역할 또한 크다. 명문대 출신을 비롯한 판검사, 변호사, 의사, 교수 같은 전문직이 교단 안에 대거 포진해 있다. 정명석의 경우 그 주변에 이른바 SKY(서울대·고대·연대) 출신들이 즐비했다. 이들이 형성한 네트워크는 신도들의 탈출을 막는 촘촘한 거미줄이 된다. 전도 대상자 1명에게 적게는 3~4명, 많게는 20명까지 따라붙어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그렇게 내면화된 집단적 결속감은 헤어날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사이비 종교의 외모는 결코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는 다큐 방영 이후에도 증명됐다. 사이비 종교 신도들, 특히 JMS 조력자가 이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KBS와 MBC 같은 방송사를 비롯해 법조계와 언론계, 대학 등 엘리트 사회는 물론 국정원과 군대, 연예계까지 다양한 영역이 여기 포함된다. 최근 유명인들의 잇단 ‘탈교 고백’은 ‘학폭 논란’과 함께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 홈페이지. 화면 캡처 기독교복음선교회(JMS) 홈페이지. 화면 캡처

■ 사람들은 왜 헤어 나오지 못하나

미국 심리치료사 레이철 번스타인에 따르면, 이단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의 심리적 약점을 노린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의 애정 결핍과 정서적 공허는 악용의 손쉬운 대상이다. 외로운 사람들이 특히 사이비 종교의 가스라이팅에 취약하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적 결속과 소속감을 강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결국 같은 얘기다. 사이비 종교는 ‘존재 이유’와 ‘사회적 지지’를 무기 삼아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현대인일수록 사이비 종교에 쉬이 빠져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현재의 삶이 불안하고 미래 또한 불확실해서다. 인간관계나 진로 문제로 혼란을 겪고 사회경제적 기반이 약한 청년들이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이비 교주와 점쟁이, 무당 사이엔 공통적 특징이 있다. 경쟁 사회에서 얻지 못하는 친밀감과 따뜻함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 종교학과 신학에서 도입한 ‘종교 중독’ 개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현실을 강박적으로 회피하고 삶을 황폐화하는 악순환을 겪는다는 것이다. 종교 중독이 다른 중독보다 위험한 것은 ‘삶의 활력’을 느끼게 해 준다는 데 있다. 착각이지만 당사자는 전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사이비 이단의 또 다른 특징 중에는 선민사상도 있다. “내가 최고의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우월감을 느낀다”는 고백이 대표적이다.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다. 현실 부적응에 따른 좌절감이 거꾸로 드러난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릇된 종교관이요 병리적 망상이다. 끝내 이들을 제대로 품지 못한 기성종교의 책임도 크다 할 것이다.


최근 사이비 종교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종교계 전반에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일보DB 최근 사이비 종교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종교계 전반에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일보DB

■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

우리나라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종교 선택의 자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자유까지 포함된다. 반대로 사이비 종교를 비판할 자유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이비 종교의 실상은 실로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가정 윤리와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중대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일각에서 규제론을 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근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사이비 종교 처벌법 제정’을 내용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국민 59%가 ‘필요하다’고 답했는데, 찬성론자들은 사이비와 이단의 기준이 명확하다고 본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기준이 애매하고 판단 주체 역시 모호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향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이지만, 더는 사이비 종교 문제를 개인의 영역으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들과 소외감을 안고 사는 사회적 약자들이 특히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직장과 주거 문제를 비롯한 삶의 질, 이를 위한 정부 지원 정책 등 우리가 해결할 기본 문제들과 엮여 있는 사안인 만큼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종교계도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현대 종교의 비극은 진실한 신앙적 믿음이 현실을 왜곡하는 맹목적 믿음으로 변질된 데 있다. 종교의 본래 목적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끌어 나갈 세계관이나 초월적 진리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계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올바른 종교관에 대해 침묵했다. 그 결과가 사이비 이단의 활개다. 교계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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