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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AI 학습 자료와 저작권 논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성능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려면 방대한 양의 고품질 학습 자료가 필요하다. AI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학습시킬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I 기업이 별도의 계약 없이 대규모로 수집한 책과 전자책을 대규모 언어모델(LLM) 학습에 활용하면서 저작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AI 기업이 책 한 권 값만 내고 구매한 저작물이나 불법 유통 중인 출판물을 확보한 뒤 AI 학습에 활용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책을 무단 복제하거나 인터넷에 불법 유통하는 행위가 저작권 침해의 핵심이었지만 AI의 등장 이후 저작권 분쟁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 문학 작품들까지 AI 회사에 무단으로 확보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AI 학습에 사용한 출판물의 저작권을 둘러싼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 한국 작가 도서의 불법 복제본 다운로드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은 AI 학습을 위해 온라인 해적판 도서 사이트에서 700만 권 이상의 디지털 복제본을 다운로드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 논란은 결국 집단소송으로 비화됐다. 이후 앤트로픽은 약 48만 권의 합의 대상 저작물과 관련해 총 15억 달러(약 2조 원)를 지급하기로 합의했고, 미국 법원은 올해 7월 이 합의를 최종 승인했다.
그런데 앤트로픽 소송 관련 저작권 합의 사이트에 올라온 보상 대상 도서 목록에 한국 작가 책 21종이 등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앤트로픽이 불법 복제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김영하 <빛의 제국> 외 3종, 김숨 <한 명>,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외 2종, 한강 <소년이 온다> 외 2종,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석영 <손님> 등이다. 앤트로픽이 국내 작가들의 영문판 도서 등을 무단으로 확보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들 작품의 AI 학습 활용 여부와 저작권 침해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최근 해당 작가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한 데 이어 저작권 유관기관 등과 협력해 작가들이 정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한글 도서 대량 구매 움직임도 포착
국내 유명 작가뿐만 아니라 각종 한글 도서를 대량으로 구매하려는 의심스러운 움직임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교보문고에는 올해 초부터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업체들로부터 도서 종류별로 한 권씩 대량 구매하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교보문고는 AI 학습에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납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른 온라인 서점에도 이와 유사한 문의가 있었지만 실제 구매로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다른 곳에도 이런 구매 요청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 도서가 해외 AI 기업의 학습자료로 얼마나 확보됐는지조차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관련, 국내 출판업계의 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AI 학습용으로 사용할 것으로 의심되는 대량 구매 주문 현황 등을 파악하기 위해 각 서점과 유통사, 출판사 등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출판인회의도 최근 AI 학습에 이용한 출판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지난 15일 시작된 연명 운동에는 이미 출판사와 관련 기관 등 단체와 작가, 번역가, 출판 관계자 등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저작권자들이 자신의 책이 어떤 경로로 AI 기업에 확보됐으며, 실제 학습자료로 이용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피해 사례가 확인된다고 해도 거대 AI 기업에 문제를 제대로 제기하고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 가능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관련 제도 보완 서둘러야
일반적으로 책 한 권의 판매 가격에는 책을 소유하고 읽을 권리가 반영돼 있다. 하지만 해당 책의 내용을 상업용 AI 모델의 학습 자료로 이용할 권리까지 당연히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기업이 책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스캔해 학습자료로 전환할 경우 저작권자에게 추가 사용료를 지급해야 하는가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 AI 발전 속도가 워낙 빨라 제도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현재까지 제도적으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나라는 없다. 각국은 법률과 저작권 제한 규정에 따라 이 문제를 다르게 해석한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경우 AI 기술을 발전시키고, 저작권자의 권리도 명확히 보호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 3월 결의를 통해 AI 기업에 대해 저작권 보호와 정당한 보상, 학습 자료 투명성 강화를 촉구했다. 독일 출판업계는 지난 6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계기로 AI 학습에 대한 저작권 보호 강화를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장치가 미비해 AI 학습에 따른 저작권 침해 사례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AI 기업이 시중에서 판매하는 책을 구입해 스캔한 경우 합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반면 저작권자의 별도 허락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학습이 위법이라고도 판단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등은 현재 AI 학습 관련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입법화를 서두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해 보상금의 산정과 징수 등에 적용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AI 기업들이 현재처럼 적절한 보상을 지불하지 않고 저작물을 AI 학습에 무단 사용할 경우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동기와 환경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즉, 지식 생산 기반인 출판과 저술 환경이 위축되면 장기적으로 AI 발전에도 불리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려 한다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 모델 개발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작가와 연구자, 출판사 등 지식 생산 그룹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AI 시대, 국내 출판계와 작가들의 저작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의 발 빠른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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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삼성 이어 한화 R&D센터, 좋은 일자리가 해양수도 미래
삼성중공업에 이은 한화오션의 부산 설계·연구개발(R&D) 거점 확대는 동남권 해양경제권 구상이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한화오션은 지난 21일 부산시와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하고 136억 원 이상을 들여 부산진구 부전동에 엔지니어링센터를 추가로 조성하기로 했다. 2028년까지 상선·해양플랜트 분야 설계·R&D 전문 인력을 신규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중공업도 부산 R&D센터의 설계 인력을 2030년까지 130명 늘리기로 했다. 세계 조선업을 이끄는 두 기업은 부산에서 인재를 확보하고 R&D 역량을 키워 경남 거제의 생산 경쟁력을 높이는 구조를 선택했다. 이는 해양수도가 지향할 성장 모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투자는 부산과 거제의 산업 역량을 연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조선업은 설계부터 자재 조달, 제작과 조립, 시운전까지 긴밀하게 맞물리는 산업이다. 부산의 설계·R&D 역량이 높아지면 거제 조선소의 생산성과 납기 대응력이 강화된다. 한화오션도 부산 센터 확장과 함께 거제사업장의 채용과 생산 기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은 대학과 연구 기관, 조선기자재 산업의 강점을 살리고 거제는 건조 역량을 고도화하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산업 생태계를 행정구역의 경계로 기계적으로 구분해서는 상생의 길에 들어서기 어렵다. 연구와 생산, 인재 양성과 채용이 서로를 뒷받침하는 균형 잡힌 분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동남권의 과제다.
대기업의 투자 성과가 지역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일도 중요하다. 정부와 조선업계가 거제·부산에서 추진하는 5000억 원 규모의 M.AX(제조 공정 AI 전환) 투자는 그 기회다. 설계 정보와 기자재업체의 생산 공정을 연결해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함께 높여야 한다.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과의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 부산시가 참여하는 함정 MRO 방산혁신클러스터 사업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설계·R&D 역량의 고도화가 거제의 생산 기반과 부산의 수리조선·기자재업체의 시너지 효과를 낳고 다시 정비와 부품 개발, 품질 인증 분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해양수도의 위상은 기관과 시설의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업의 투자와 기술 혁신이 산업의 활력을 높이고 청년의 지역 정착을 뒷받침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때 명실상부한 해양수도가 된다. 삼성과 한화의 이번 선택을 일회성 호재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두 기업의 투자를 마중물 삼아 R&D와 생산, 인재 양성이 맞물리는 동남권 산업 협력 구조를 안착시켜야 한다. 정부와 부산시는 투자와 채용 계획의 이행을 점검하고, 대학 교육과 기업 수요를 연결해 지역 인재의 취업 기회를 넓혀야 한다. 기업의 투자로 좋은 일자리가 늘고 청년이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 그것이 해양수도 부산이 증명해야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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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울산 트램 1호선 결국 추진키로… 부작용에 따른 대책은
울산도시철도(트램) 1호선 건설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계획대로 추진된다. 울산시는 22일 “현 시점에서 사업을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권한과 수단이 없다”며 트램 1호선 건설을 계속 추진한다고 공식화했다. 지난 7월 취임한 김상욱 울산시장이 재정 부담과 운영 적자, 심각한 교통체증 우려를 들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지 석 달여 만이다. 그동안 사업 추진 여부를 다각도로 검토한 울산시는 무리하게 사업을 중단할 경우 국비 반납, 120억 원 이상의 매몰 비용, 시공사와의 손해배상 소송 우려 등을 피할 수 없다며 ‘추진’ 결론을 내렸다. 재정적·법적 피해도 시민 부담으로 돌아가는 만큼 서둘러 결단을 내린 점은 평가할 만하다.
사업 재검토 강수를 둘 만큼 울산시가 고심했던 문제들은 이제 숙제가 됐다. 사업 추진 여부와 별개로 트램 1호선을 둘러싼 본질적인 우려는 그대로라는 의미다. 울산시는 우선 20개에 달하는 교통 대책을 내놨다. 공사 중 정체가 가장 심할 문수로 일대에 집중적으로 대책을 세웠고, 4차로 우회도로도 조기에 개설하기로 했다. 공사 구간 교통 체계도 새로 짜기로 했다. 공사는 단계별로 진행해 불편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태화강역과 신복교차로를 잇는 트램 1호선 노선 자체가 울산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다. 대책을 잘 짜도 불편은 불가피하다. 향후 울산시의 유효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다.
장기적으로는 공사비 부담과 운영 적자 우려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 트램 1호선 건설에는 총 3814억 원이 들어간다. 울산시도 1500억 원 넘게 책임져야 한다. 물가 상승, 공사 지연 등 변수가 생기면 추가로 돈이 들 수 있다. 특히 재정 지출이 2028~2029년에 몰려 있어 이 기간 울산 공공 인프라 건설이나 복지 예산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면밀한 대응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개통 후 들어갈 연간 190억 원 넘는 운영비는 울산시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다. 실제 전국 도시철도들도 적자 신세다. 울산시가 서둘러 트램 1호선 운영 전반을 검토해 효율적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고심이 깊었지만 이제 안정적인 공사 진행에 매진해야 한다. 도시철도 건설은 변수가 많고, 사업 지연도 잦다. 대전 도시철도 2호선은 노선과 사업 방식 논란으로 30년 가까이 달리지 못하고 있다. 광주도 건설 방식 변경 논란으로 수십 년째 2호선 개통이 막혀 있다. 울산은 이런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 빠르게 도시가 커진 울산 대중교통은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전국 특별·광역시 중 유일하게 도시철도가 없다. 대중교통 여건 개선이 도시의 큰 고민이고 시간이 갈수록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사업 재검토로 인해 당초 목표인 2029년 개통은 어렵게 됐지만 공사를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이제는 조기 개통이 시민 불편을 줄일 최선의 방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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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의 세상톡톡] 동천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부산의 미래를 바꾸는 대형 사업인 부산 북항 재개발과 경부선 철도시설 이전은 상당 부분 국비로 진행중이다. 이들 사업의 천문학적 비용 상당 부분을 국비로 충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인자 부담 원칙이 그 이유다.
원인자 부담 원칙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원칙이다. 환경오염이나 훼손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방지와 회복, 피해구제 등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인자 부담 원칙이다. 항만과 철도를 환경오염이나 훼손과 직결되는 시설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도시환경의 차단 혹은 단절은 그에 버금가는 것이기에 원칙 적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부산이라는 공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만이 있었고 철도의 시종착역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해안 접근권 박탈과 도심 단절로 인한 비용이 엄청났기에 그 ‘복원’에 해당하는 재개발이나 시설 이전 사업에 국비를 들여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 적용은 환경오염이나 훼손보다는 공간적 불이익의 회복에다 원인자 부담 원칙을 적용한 것에 가깝다 할 것이다. 반면 부산에는 항만이나 철도 시설과 달리 진짜 환경적으로 훼손 문제가 심각한 존재가 있다. 바로 동천이다. 그럼 환경오염이나 훼손의 방지와 회복, 피해구제 등의 비용 산정에서 이 동천은 원인자 부담 원칙의 열외인 것일까.
현재 동천은 부산시가 지정한 지방하천으로서 부산시 예산만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하천으로 분류돼 있다. 하천법에 의하면 지방하천은 지방의 공공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하천을 의미한다. 부산을 가로지르는 동천이 지방하천으로 분류된다 함은 동천이 오롯이 지방의 공공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항만과 철도 시설처럼 국가 인프라가 아니니 복원 비용 부담 주체 운운할 이유조차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동천의 현재 모습이 있기까지 시대를 거슬러 조망해 보면 과연 동천이 지방의 공공이해만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인 하천이라 봐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동천의 오염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매축으로 우암동과 감만동 일대에 매립지가 생기고 인근이 공업지대로 개발된 뒤 해방과 6·25전쟁의 여파로 귀환동포와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생활하수와 공장폐수의 방류가 본격화했다. 하수도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으니 오염수가 곧장 유입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오염이 시작된 것은 산업화가 진행되던 1960~1970년대였다. 동천 유역은 신발·고무, 섬유, 식품(제당·제분·주조), 화학공장 등이 밀집한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부로 떠올랐다. 이들 공장이 폐수를 동천에 직방류하면서 1970년대에 이미 언론에는 동천을 ‘검은 물이 흐르는 죽은 하천’으로 일컫는 기사들이 등장한다. 이 같은 상황은 1980년대를 정점으로 1990년대 공장들이 대거 폐쇄하거나 이전할 때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 산업화 시기의 법적 미비 혹은 무관심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후 산업폐수는 줄었으나 물 흐름이 느린 감조하천 특성으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쌓인 오염 퇴적물이 날이 갈수록 썩어들어가는 통에 동천의 수질 회복은 엄두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점오염원(오염 물질 배출 지점을 식별할 수 있는 오염원)인 공장이 떠나고도 비점오염원으로 인한 오염과 분류식 하수관거 완비 부재 등으로 인해 동천은 썩은 물과 악취의 상징이 됐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동천의 오염 역사를 접하고도 동천을 지방하천으로만 바라보거나 동천의 복원을 지자체가 알아서 할 일로만 치부한다면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전쟁으로 인한 인구 급증과 산업화의 어두운 그늘로 발생한 구조적 오염을 원인자가 확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산시민만 고스란히 겪으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시작한 동천 복원 시도가 시 예산을 대거 투입하고도 제자리걸음인 현실에서 보듯 동천 복원은 그 까다로움만으로도 이미 지자체 수준을 넘는 일이다. 그동안 비점오염 저감시설 설치와 수계 분류식 하수관거 사업 등에 일부 국비가 투입되기도 했지만 정부의 여러 지원대상에 조금씩 포함되는 방식이어서 ‘언 발에 오줌누기’ 처방만 되풀이하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동천의 오염에는 대한민국 근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고스란히 드리워져 있다. 흑상어 ‘부캉이’가 노닐던 북항과 곧장 이어지는 그 동천을 되살리는 일은 지자체 수준을 넘어 국가 차원의 본격적인 하천 치유 시범사업이 돼야 옳다. 그것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된 전국 하천의 미래를 투영하는 일이기도 하다. 동천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미래가 돼야 한다. 비록 어둡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대한민국의 과거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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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탄소 중립 발걸음
지난 8월 네팔에서 벌어진 대홍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물과 섞인 토석류가 수십m 높이로 들이닥쳐 사람과 마을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모습에 경악했다. 이번 대참사로 중국과 네팔에서 8000명 넘게 숨지거나 실종됐다. 네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9명도 여전히 실종된 상태다.
이번 대참사는 네팔 중북부 국경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면서 대규모 토석류와 홍수가 발생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기후 변화가 이번 대홍수의 핵심이다. 물론 네팔 대홍수의 직접적 원인이 기후변화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유형의 재난이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한다.
네팔 정부는 대참사 이후 국제사회에 복구 재건 비용으로 50억 달러 무상 지원을 요청했다. 이번 사태를 기후변화에 따른 대참사로 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0.1%에 불과한 네팔 입장에선 기후변화의 원인 제공을 한 국제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네팔과 중국이 이번 사태의 공동조사단을 꾸려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조만간 구체적인 원인이 나오겠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대참사’가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 하다.
이달 초 부산 온천천에서 지구를 살리는 뜻깊은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세계생활체육연맹 한국위원회(TAFISA Korea·위원장 홍완식)가 부산대역 인근 온천천 문화광장에서 TAFISA 세계걷기의 날을 기념하는 ‘넷제로워크(탄소 중립 걷기) 부산 챌린지’를 개최했다. 건강을 위한 걷기를 일상 속 탄소 중립 기후행동으로 확산하자는 취지다. 이날 행사에 시민 수백 명이 참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부산대역 인근 문화광장을 출발해 온천천, 동래역을 지나 폭포수 지점에서 돌아오는 왕복 약 7km코스를 걸었다.
걷는 게 지구를 살리는 데 무슨 연관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가까운 거리를 자동차 대신 걷는 생활습관은 개인의 건강 향상은 물론 탄소배출 저감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건강을 위해 걷고, 지구를 위해 걷자’이다. 한 사람의 한 걸음이 지구를 위한 한 걸음이 되고, 시민 모두의 발걸음이 탄소중립을 향한 큰 변화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나 자신을 비롯해 수천, 수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발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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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의 개념 쌓기] "시간이 더 있었으면 잘했을 텐데"
‘완벽주의’라는 역병이 현대인을 갉아먹고 있다. 실제 소위 MZ로 분류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완벽주의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는 많다. 타인이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의 증가폭도 만만찮다. 그러니까 현대인은 스스로 완벽해지고 싶거나 혹은 사회적 관계를 위해 완벽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물론 완벽은 형이상학이다. 신발끈 묶기나 라면 끓이기 같은 단순한 일이라면 또 모를까,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엮이는 일들에 대한 완전한 통제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옛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이러한 음흉하고도 조악한 마음의 역량 밑으로 정치, 경제, 세대, 젠더, 기후 등 온갖 요인이 뒤엉킨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번잡하고도 역동적인 사건들은 사실상 통제 불능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 칼럼이나 국제외교 영역에서 쓰이는 ‘트럼프의 마음을 아무도 모른다’ 같은 말에는 어떤 환상이 깃들어 있다. 왜냐하면 저 ‘아무도’에서 트럼프 본인은 예외인 듯한 은밀한 환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트럼프 본인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냥, 그리하여 이 세계엔 최소한의 확실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보존된다.
그러나 진실은, 트럼프 마음은 트럼프 본인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매일 같이 쏟아내는 트윗들과 충동적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엔, 특유의 즉흥성과 강경한 외관을 제외한다면, 아무런 질서도 없다. 트럼프의 마음을 읽으려는 시도는, 트럼프에 대한 일종의 철학화로 귀결된다. 니체는 완벽한 확실성을 찾으려는 철학을 일종의 시체애호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이 다뤄온 모든 것은 개념적 미라다. 어떤 현실적인 것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산 채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개념적인 파악은 그 생동한 현실에 대한 살해이다. 개념적인 파악은 말 그대로 개념적인 파악일 뿐이다. 완벽주의도 이와 같다. 이를 정의하자면, 자신이나 타인에게 결점 없는 완벽한 상태를 요구하며,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집착하는 심리적 성향 정도일 터이다. 이러한 완벽주의의 파산은 그 등장과 동시에 예고됐음은 물론이다. 반복컨대 세계에 대한 완벽한 정돈은 허상이며, 이는 완벽주의자를 우울증으로 몰고간다. 완벽주의가 숨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시간이 더 있었으면 잘했을 텐데”라는 고전적인 변명 속이다. 트럼프의 마음처럼, 완벽주의의 환상은 오로지 저 가정법 안에서만 보존되기 때문이다. 마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완벽을 거머쥘 수 있다는 냥, 나도 모르게 믿게 되지 않나?
그러나 무언가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두 가지 의미인데, 첫째, 앞서 말한 인간 변덕과 세계의 복잡계적 속성 앞에 ‘충분하다’라는 형용사는 애당초 성립하지 않고, 둘째, 완벽주의적 환상은 주어진 시간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후자에 집중하자면, 애당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더라면, 주체는 완벽주의적 환상을 품지도 못했을 터이다. 그러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좀 더 정확히는 주체가 시간이 넉넉하다고 볼 때부터, 그 폭에 걸맞은 기대가 부푼다. 당연지사 이러한 거품은 기대를 높이게 되며, 이는 시작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그렇게 할 일을 미루는 걸로 헛되이 시간을 버리다가, 불안감 끝에 급하게 작업에 돌입하게 되고, 그런 뒤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을 보며 “시간이 더 있었으면 잘했을 텐데”라고 툴툴거리는 뻔하디 뻔한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
어쨌거나 짚고 싶은 건, 충분한 시간은 그 충분함을 모자람으로 바꿀 만큼의 완벽주의적 기대를 낳고, 그렇기에 완벽주의자에게 충분한 시간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자면, 어째서 지금 저 완벽주의자는 주어진 시간을 넘어서는 기대를 가지려고 하는가? 앞서 말했듯, 완벽주의자들은 매번 터무니없는 기준을 설정하며 이에 집착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실패가 예정된 길을 끊임없이 설계한다. 그런데 설계된 실패는 사실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이를 통해 얻는 이점이 있기에 저 기획과 재생산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통해 얻는 바는 무엇인가? 결과에 집중하자면, 이들이 반복해서 거두는 결과는 시간 속에서 충분성을 없애는 것이다. 묻건대 이것이 왜 즐길 거리가 되는 걸까?
여기서 마주하는 것은, 실제로 주어진 시간의 충분함이란 곧 주체의 지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충분한 시간은 시간이 넉넉히 주어졌음에도 속절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낼 위험성을 갖는다. 이 진실을 마주할 바엔 끊임없이 빠듯한 시간 속에서 소진되기를 택하며 웅얼거린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잘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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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감 도마에까지 오른 북항재개발 사업 지지부진
북항 1단계 재개발 사업은 총사업비 2조 9929억 원을 투입해 북항 1~4부두, 중앙부두, 여객부두 일원 155만㎡를 해양관광 거점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1단계 재개발 사업은 랜드마크 부지 활용 방안을 놓고 여전히 논란 중이다. 트램 및 상부 공공콘텐츠 개발도 사업 지연으로 당초 기한인 2027년까지 완료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 북항 2단계 재개발 사업은 총사업비 4조 636억 원을 들여 ‘항만-원도심-철도’ 통합 개발을 통해 신해양산업 중심지를 육성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자성대부두, 좌천·범일동, 부산역·진역 일원 228만㎡가 해당한다. 그러나 사업비 증가로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북항재개발 사업이 국감 도마에까지 올랐다. 임호선 민주당 의원은 21일 국회 행안위의 부산시 국감에서 북항재개발 사업의 늑장 행정을 지적하며 부산시 공무원 조직을 향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질책했다. 임 의원은 3조 원 규모의 북항 1단계 사업이 내년에 끝났으면 부산의 면모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또 2028년 착수한다는 2단계 사업 추진을 위해 컨소시엄을 새로 구성한다는 것은 삽 뜰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에 전재수 부산시장은 “비슷한 시기 시작한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는 글로벌 랜드마크가 되어 있는데 북항은 먼지만 날린다”며 “임기 내 북항 1단계를 끝내고 2단계도 속도를 내겠다”고 답했다.
북항재개발은 기존 항만 기능에서 해양산업·금융·연구개발(R&D)이 집적된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도약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국책사업이다. 하지만 공기 지연과 사업비 증가, 투자 유치 부진 등으로 1단계 부지와 이어지는 2단계 사업이 착공조차 못 하는 상황을 국감에서 지적받은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사업이 표류한 가장 큰 원인은 정책의 연속성 부족이다. 역대 부산시장들은 국제회의시설과 초고층 복합개발, 문화·관광시설 등 저마다 다른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사업은 번번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재수 시장이 국감에서 사업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한 만큼, 실행 가능한 로드맵 제시를 통해 정책 실행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임호선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부산시 행정을 시장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라며 공직사회의 책임감과 행정 의지를 촉구했다. 또 꿈과 목표의 차이를 거론하며 사업의 데드라인이 없으면 ‘꿈’이고, 데드라인이 있으면 ‘목표’라고 했다. 부산시는 해수부, 부산항만공사(BPA)와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북항재개발 사업의 속도를 내야 한다. 시는 컨트롤타워로서 사업계획의 현실화, 현장 주도의 실행력을 확보해 사업의 데드라인을 맞추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더는 책임 회피와 조율 실패에 대해 변명해서는 안 된다. 부산 시민에게 북항재개발이 꿈이 아닌 목표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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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수청 이제 수사 역량과 독립성 강화에 힘 쏟아야
21일 이재명 대통령이 X에 올린 ‘제미나이에 물어봤다’ 제목의 글이 논란이다. 이 대통령은 글에서 중대범죄수사청장과 공소청장의 국무회의 배석 비판에 대해 인공지능(AI) 답변을 근거로 “배석 불가론은 위헌적 억지”라고 반박했다. 대통령 글에 따르면 제미나이는 ‘대통령은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는 정부조직법 11조를 거론하며 “대통령이 지휘·감독하더라도 공식회의인 국무회의에는 참석시키지 말라는 것은 명맥한 모순”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김지용 중수청장이 취임 당일인 지난 20일 국무회의에 배석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자 또다시 옹호에 나선 형국이다.
AI 시대에 대통령이 AI를 국정에 활용하는 것을 무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국정 현안 해결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것과 그 답변을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생성형 AI는 질문자나 질문 내용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다. 얼마든지 틀린 답을 내놓을 수 있다. 가뜩이나 수사기관 수장의 국무회의 배석을 놓고 역대 정부에서 지켜지던 관행을 깼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 문제는 법과 규정을 따지면 시비가 가려질 일이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보는 법조인도 상당수다. 당장 야권에서는 “AI 답변으로 국정 운영이 정당화된다는 비상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제미나이에 같은 취지로 물었더니 전혀 다른 답이 나왔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지휘·감독 권한도 중요하다. 하지만 수사기관 독립성·중립성은 더 중요한 문제다. 국민 눈에는 “화이트칼라 범죄, 권력형 부패 중대범죄 등을 성역 없이 수사하고 엄단하라”는 대통령 말보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는 수사기관 수장의 모습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대통령과 장관들을 마주하며 지속적으로 지시를 받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아서다. 국무회의 배석이 정례화가 된다면 지속적인 시비를 낳을 수 있다. 대통령이 구체적인 수사 지시를 하지 않는다지만 향후 권력형 수사 때마다 논란이 예상된다. 오죽하면 진보 시민단체도 수사·공소 유지 기관장의 국무회의 정례 참석을 반대하겠는가.
중수청이 첫출발부터 독립성·중립성 논란에 휩싸인 것에 국민 불안감이 크다.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중수청 수사 역량 강화라는 본질적인 과제에 대한 논의도 후순위로 밀린 분위기다. 중수청은 아직 사건 분류나 처리 등 세부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조직 개편도 마무리 짓지 못해 많은 수사관들이 책상에 앉아 기다리는 처지다. 현장 수사를 지휘할 핵심인 중간 관리자 부족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초대 중수청장으로 김 청장은 중수청을 국민 신뢰를 받는 조직으로 만드는 일에 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논란이 계속 되는 만큼 대통령이 먼저 국무회의 출석 문제를 매듭짓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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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런던과 부산, 도시의 품격
밖에서 봐야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1년간 영국 런던에서 연수하면서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본 부산이 그랬다. 부산은 안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도시다.
겪어보니 과연 런던은 북유럽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생활비가 비싼 도시였다. 부산시 한 달 생활임금을 훌쩍 뛰어넘는 월세, 높은 외식비, 부산 택시 기본요금과 맞먹는 대중교통 요금까지 물가가 엄청났다. 그래서 지난 1년간 직접 마트에서 장을 봤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아픈 일이 있어도 의사를 만나려면 2주 정도는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고, 그마저도 ‘응급’이 아니면 예약이 밀리거나 취소되는 일도 잦았다. 특히 전문의를 만나려면 석 달쯤 대기할 각오를 해야 했다. 체감상 한 달에 한 번은 크고 작은 대중교통 파업이 있어서 외출할 때면 대중교통 동선부터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됐다.
‘느림’과 ‘기다림’에 익숙해질 즈음 돌아온 부산은, 부산 사람이 느끼기에도 꽤 괜찮았다. 혼자 밤에 돌아다녀도 대체로 괜찮은 치안 환경, 비교적 저렴한 대중교통 요금과 외식 물가, 동네에서 예약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전문의, 언제나 찾을 수 있는 산과 바다, 강….
1년 만에 돌아온 부산에서는 확 체감이 될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 부산을 한 번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또다시 부산을 방문하고 싶어 ‘부산병’을 앓는다는 신조어가 유행한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알게 됐다. 하지만 이런 생활의 편리함과 높은 생활의 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민의식 차원에서는 부끄러운 지점이 많다.
‘부산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서서 가는 승객이 휘청거릴 만큼 언제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난폭한 운전의 시내버스, 도시철도에서 부딪히고도 “미안하다”고 인사하지 않는 승객들 모습을 보고 낯이 뜨거워졌다. 도시철도 서면역에서는 외국인 커플이 길을 찾느라 서 있었을 뿐인데 주변 승객들에게 계속 부딪히자 당황해하는 모습도 봤다. 아무도 그 커플에게 “실례한다, 미안하다”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런던의 대중교통은 비록 느리고 파업이 잦을지언정 안전하게 운행됐다. 런던에서는 길이든 대중교통 안이든 옷깃이 조금이라도 스치면 누가 잘못했든 서로 “미안하다”고 외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성인이 아니라는 눈총을 받는다.
낯 뜨거워지는 일은 또 있었다. 지난 16일 밤 모처럼 광안리해수욕장을 찾았다. 해변을 걷다 보니 수영문화원에서 주최하는 ‘가을 클래식 음악회’가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터라 들뜬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가을밤, 해수욕장에서 듣는 클래식 음악이라니 기분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은 오후 7시 반부터 시작이었다. 그런데 수영구 내 각종 단체장과 이사의 이름이 스크린으로 10분 가까이 소개되더니 급기야 수영문화원장과 수영구청장, 수영구의회 의장이 무대에 올랐다. 돌아가면서 “존경하는~” 으로 시작되는, 으레 하는 인사말을 했다. 공연을 기다리던 관객들과 무대 위 오케스트라는 20분 가까이 들러리를 서야 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행사였을까. 얼마 전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순창장류축제 축하공연 중 가수가 준비한 노래를 다 끝내지 않았는데도 무대에 올라 구설에 올랐다.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또다시 런던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런던 연극·뮤지컬 업계는 매년 여름 런던 중심지인 트래펄가 광장에서 무료 공연인 ‘웨스트 엔드 라이브’를 연다. 현재 공연 중이거나 공연 예정인 작품의 주요 곡을 공연하고 홍보하는 자리다. 공연 사이 사이에 백스테이지에서 사회자가 공연자와 연출자 등을 인터뷰했는데, 이런 대형 공연을 열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협조한 런던 시의원도 인터뷰 대상 중 한 명이었다.
공연이 시작된 직후가 아니라 공연의 일부로 하는 자연스러운 인터뷰였고, 공연의 준비 과정과 올해 공연의 특징이 주 내용이었다. “존경하는 런던 시장” 같은 공치사는 없었다. 무엇보다 인터뷰 때문에 공연에 지장이 있지도 않았다.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부산은 살기 좋은 도시다. 하지만 이런 도시의 양적·질적 성장에도 여전히 시민 의식은 제자리걸음 같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어렵게 준비한 행사에서 주최자가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공연을 보는 관객이나 직접 참여하는 아티스트가 아닌 주최자에게 초점이 맞춰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품격 있는 도시에 살고 싶다.
조영미 사회부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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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다 때가 있다'는 목욕탕
‘다 때가 있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의 대중목욕탕 ‘금샘탕’ 입구에 호기심을 끄는 간판이 걸려 있다. 동네 마트에 다녀오던 중 궁금증을 못 참고 입장하려 했더니 웬걸, 여성 전용이다. 게다가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다. 평범한 직장인에겐 문턱이 높다. 그런데도 문전성시다. SNS에는 재밌는 공간이라는 찬사 일색의 후기가 넘쳐 난다.
〈부산일보〉는 고색창연하게 느껴질 법한 목욕탕에 Z세대가 몰리는 기현상을 19일 보도했다. 자체 굿즈와 제휴 밀크티를 판매하고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자 젊은 충성 고객이 늘었다는 게 금샘탕의 성공 스토리다. 기성세대라면 목욕탕이 ‘힙’한 공간으로 변했다는 데 고개를 갸웃할 테다. 개성과 희소성을 중시해서 복고풍이나 촌티까지 재해석해 내는 Z세대 특유의 감성일 것이다. 여기에 색다른 경험을 찾는 심리까지 살펴야 이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UX(사용자 경험)가 관건이다. UX는 웹과 앱을 이용할 때 편리함과 유용성뿐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하는 즐거움까지 아우른다. 어떤 경험을 남길 것인가는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을 좌우해서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UX의 영향력은 오프라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Z세대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 진심이다. 반면 시간과 감정을 들여야 하는 대인 관계가 취약해졌다. 정성을 다한 만큼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거절당할까 두려워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응답이 56%다. 친구가 가장 적은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향에 맞는 체험을 하면 정해진 시간과 비용으로 즐거움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관계의 불확실성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 경험 소비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이유다.
풍요의 시대에 ‘소유’로는 타인과 차별화할 수 없게 됐다. 무엇을 경험했는지로 나 자신을 설명하는 시대라는 의미로 ‘경험 수집가’라는 명명도 등장했다. 지난해 영화를 관람하면서 뜨개질하는 CGV ‘뜨개상영회’가 인기를 얻어 정례화된 것도 남다른 경험을 찾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K팝의 글로벌 인기도 참여하고 교류하는 쌍방향 팬덤 경험의 확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존중과 공정, 선택의 자유와 취향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Z세대가 조용히 우리 사회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관계를 위해 개인의 시간과 감정을 희생하는 일을 당연시했던 과거의 잣대로 재단해선 안 된다. 지금의 청춘에게는 그들의 문법이 있다. 그들의 때가 오고 있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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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이토록 괴랄한 파국이라니
매년 반복되는 기후 위기와 대형 참사, 무너지는 일상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누가 이런 사태를 불러왔는가?’ 그러나 책임을 따져 묻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책임자는 여럿인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사태가 지나가면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맴돈다.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디거’는 재난을 불러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추적한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는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법이다.
‘디거’는 3대째 석유 재벌로 살아온 ‘디거 록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최소한의 손실과 최대한의 이익만을 좇으며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인물이다.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 전 지구적 재앙
환경 파괴의 책임자를 찾는 추적기
현실 날카롭게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늘어진 뱃살과 괴팍한 표정의 톰 크루즈
그러던 어느 날, 그린란드 빙하 시추 시설에서 균열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디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재난보다 당장의 이익이 중요한 그에게 시추를 멈춘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리고 그가 외면한 균열은 거대한 빙하가 되어 유럽 전체를 덮치는 대재앙으로 번진다. 파국의 징후를 알고도 이익을 택한 사람이 바로 디거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디거의 모습은 미국 대통령과 장관들에게서도 반복된다. 대재앙을 수습해야 할 이들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말장난을 벌이고, 엉뚱한 기도를 올린다. 곳곳에 널린 죽음과 회의실의 소란이 교차하면서, 만나는 건 권력자들의 무능과 탐욕, 거짓말이다. 동물 박제와 모피가 곳곳에 놓인 공간 역시 이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헛웃음이 터지다가도 어느 순간 불편해지는데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현실의 재난 앞에서도 책임을 미루고 자기 이익부터 챙기는 이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영화는 조롱의 대상을 권력자들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디거와 권력자들을 비웃던 웃음은 어느새 객석으로 돌아온다. 편리함과 소비를 포기하지 못하고, 익숙한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연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값싼 물건을 고르고 편리함을 누리는 ‘우리’ 또한 한통속이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넘어, 그 잘못을 가능하게 한 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로 옮겨 온다.
다만 이 질문은 충분히 파고들지 못한다.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정치권력까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영화는 풍자와 소동이 쉼 없이 이어지고, 빠른 전개 속에서 객석의 우리를 향한 질문은 디거나 권력자들만큼 구체적인 장면을 얻지 못한다. 장면의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다음 소동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끌어내는 연출이 세계의 부조리를 선명하게 만들지만, 인물과 상황을 깊이 들여다볼 여지를 좁힌 점은 아쉽다.
이 소란의 한가운데 디거를 연기한 톰 크루즈가 있다. 짙은 남부 억양과 두꺼운 분장 때문에 첫눈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미션 임파서블’의 질주하는 몸도 없다. 무겁게 끌리는 걸음과 불룩한 배, 괴팍한 표정만 남아 있다. 딱딱하게 굳은 몸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인물의 오만함을 그대로 전한다.
또한 그 오만은 유엔 회의에서 긴 연설을 혼자 끌고 가는 대목에서 ‘말’의 힘으로 터져 나온다. 잘생기고 멋진 톰 크루즈는 없지만 몸의 속도와 표정, 목소리를 바꾸는 것만으로 인물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엔딩 크레딧에 비치는 것은 파괴된 세계의 잔상이다.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묵묵히 길을 걷는다. 대재앙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은 폐허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삶이 이어진다고 해서 책임의 문제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웃음 뒤에 남은 불편함 속에서 영화는 다시 묻는다. 재난을 불러온 사람을 찾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파국을 가능하게 한 세계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다음 재난을 또 어떻게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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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서울 집중'만 심화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이 88주 연속 상승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이 상승세가 90주, 100주를 넘어 150주도 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서울 평균 아파트값은 얼마 전 17억 원을 넘겼다. 강남뿐 아니라 그동안 부동산값 상승세가 주춤했던 지역에서도 매매·전세·월세가 동반 상승하는 ‘트리플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투기 수요가 아닌 실수요가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문제는 서울 민심을 뒤흔드는 중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6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9%에 그쳤다. 서울(29%)에서 특히 낮게 나타났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경북(27%)과 비슷한 수준이다. 부산, 울산, 경남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46%다. 부동산 문제가 서울 민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 긍정 평가 서울 29% 그쳐
서민 울리는 아파트 정책에 민심 싸늘
청년층 높은 부정 여론으로 분노 표출
주담대 한도 제한 등 규제 불신 눈덩이
'똘똘한 실거주'에 전월세 가격 폭등세
늦기 전에 서울 집중 해소 초점 맞춰야
청년층 민심도 싸늘하다. 18~29세와 30대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여론은 각각 31%, 32%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반면 부정 여론은 두 집단 모두 55%에 달했다. 최근 20대가 30대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서울 아파트값 상승에 30대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결혼·출산 등을 앞두고 집값에 민감할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 여권은 집권할 때마다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대출 규제와 증세라는 수단이 동원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집값이 폭등했다. 그래서인지 부동산 규제를 바라보는 청년층의 시선은 썩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첫 집값 대책으로 수도권과 규제 지역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최대 6억 원으로 일괄 제한했다. 당시 20~30대에선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자신들은 대출받아 집을 사놓고 왜 청년들은 못 하게 하느냐는 게 비판의 핵심이었다. 대출이 엄격하게 제한되니 부모의 지원 없이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해졌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청약통장 해지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약에 당첨되어도 집을 살 만큼의 현금이 없으니 해지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부동산 증세에 대한 여론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청년층에서 증세에 대한 저항이 크지 않았다. 부동산에 대한 과세는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다. 집 없는 청년들에게는 직접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정권마다 반복된 종합부동산세 논쟁은 2030에게 남 일처럼 여겨졌다. 요즘 여론은 다르다. 2030세대는 보유세·종부세 등에 대해 4050세대보다 더 부정적이다. 증세로 인한 금전적 손해는 4050이 더 클 텐데도 말이다. ‘어차피 세입자들에게 전가되는 비용’이라는 인식이 확대된 결과로 풀이된다.
부동산 규제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와 불신은 날로 커가고 있다. 이들이 다주택자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규제가 집값을 끌어올린 경험이 여러 차례 반복된 탓이다. 현재 아파트값 상승은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비수도권은 집값 상승은커녕 악성 미분양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문재인 정부는 ‘똘똘한 한 채’를 강조하며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다주택을 규제하니 똘똘한 한 채를 찾아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인기 지역으로 수요가 쏠렸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도 비수도권에 있는 자기 지역구 집을 팔고 서울 강남의 작은 아파트를 지키려다 빈축을 사지 않았던가. 문재인 정부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한층 심화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더 나아가 ‘똘똘한 실거주’를 강조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23일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똘똘한 한 채’가 우리나라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며 “효율적으로 투기할 기회를 줬다”고 지적했다. 비거주 1주택도 규제하니 집주인들은 ‘차라리 내가 들어가 살겠다’며 전월세를 거둔다. 전월세 가격이 치솟자, 세입자들은 ‘이럴 바엔 집을 사고 말지’라는 생각에 서울에서 그나마 집값이 덜 오른 지역 아파트를 찾아 나선다. 이러한 선택들이 누적되며 지금의 ‘트리플 강세’를 형성했다.
강력한 대출 규제와 증세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계속 오르는 건 서울로 향하는 수요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규제와 증세가 아니라 서울 집중을 해소하는 데 있어야 한다. 정부는 ‘세컨드홈’ 특례 대상 지역을 비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면서도 광역시를 포함하는 건 미적거린다. 5극 3특을 말하면서 광역시를 배제한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의 선택지를 제한하면 제한할수록 서울이라는 인기 상품으로 수요가 집중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똘똘한 한 채를 넘어 실거주까지 압박하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다시 한번 서울 집중만 심화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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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거꾸로 간다] 바다는 있는데 노인이 없다
곳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면 도시가 현재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해양도시 관련 국제회의, 특강, 정책 홍보 등 최근 많이 볼 수 있는 문구다. 부산만의 강점으로 탄생할 해양도시 부산의 전략은 도시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다. 바다로 향한 목표는 뚜렷한데, 부산의 또 하나의 자원인 노인에 대한 방향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도시의 미래를 논함에 있어 고령화 대응력은 우리 부산의 당면 과제이자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에 관한 정책 속도를 느낄 수 없다.
부산은 바다와 함께 성장해 온 도시다. 뱃고동과 “재첩국 싸이소!” 라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억척스러운 자갈치 아줌마, 새벽을 밝히는 어시장의 불빛, 컨테이너 부두 등 부산에서 살았다면 누구나 이러한 추억을 하나쯤은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추억을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은 노인이 아닐까 싶다.
부산은 노인인구가 26.2%로 7대 광역 도시 중에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부산의 16개 구·군의 노인인구는 이제 모두 25%가 넘었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가 빠른 부산의 노인정책은 어떤 목표를 두고 달려가고 있는지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되짚어봐야 한다.
전 세계는 돌봄경제, 고령친화산업, 과학기술과 노년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도시경쟁력으로 삼고 새로운 혁신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구와 산업을 활성화하여 도시이미지를 새롭게 하는데 분주하다.
부산의 노인정책과 서비스는 곧 기회와 도전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부산이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돌봄전략, 건강하고 활기찬 노인의 자원화, 노년이 행복한 도시 분위기, 장수 지역 만들기, 대학의 혁신적 변화, 과학기술의 적용, 문화 예술, 관광자원, 국제회의 등 무궁무진한 실버 경제가 움틀거리고 있음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노인 문제는 더 이상 긍휼의 돌봄 차원이 아니라 도시경쟁력과 직결되는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노인 인구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함을 인식한 다보스포럼에서도 올해 주요 의제로 실버경제를 논했다.
고령층 소비력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가 이미 19조 달러 규모의 소비를 주도하고 있으며, 2036년에는 34조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고령화 대응력을 키우는 전략이 곧 도시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부산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며 미래로 나아가듯이 부산의 고령화 대응력 역시 기회와 도전의 보이는 자원으로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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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 카말라 이브라힘 이스하그의 '기원'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나무.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굵은 줄기 곳곳에서 사람의 얼굴이 솟아나고, 몸은 나무와 뒤섞이며, 가지와 잎 사이로 또 다른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나무에 들어가 있는 것인지, 나무가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2026부산비엔날레에 전시된 카말라 이브라힘 이스하그의 ‘기원’은 바로 이 경계에서 시작된다.
근대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판단하고 행위하는 주체이고, 자연은 바라보고 이용하는 대상이었다. 생태미학은 바로 이 익숙한 경계를 의심하며, ‘기원’에서는 이런 구분이 무너진다. 인간은 자연을 바라보는 존재이기 전에, 이미 자연 속에서 다른 생명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 지점에서 이스하그의 작업은 에코페미니즘과도 만난다. 여성과 자연 모두가 오랫동안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다. 이스하그의 작업을 곧바로 에코페미니즘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몸과 공동체, 자연과 땅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그의 그림은 오늘의 에코페미니즘적 사유와도 깊이 공명한다.
그리고 이 점은 2026부산비엔날레의 주제인 ‘불협하는 합창’과도 연결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통일하기보다 “차이를 지우지 않은 채 관계를 맺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기원’ 속 나무 역시 그런 불협의 합창처럼 보인다. 수많은 얼굴이 하나의 줄기를 공유하지만 어느 얼굴도 같지 않다. 인간과 나무,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들이 서로 동일해지지 않은 채 한 화면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
한 그루의 나무라도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 뿌리는 땅속에서 물과 흙, 숱한 다른 생명들과 만난다. 인간 역시 그렇다. 생태란 결국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의 다른 이름이다. 한 사람의 몸과 기억 속에는 이미 수많은 타자와 장소와 시간이 스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라는 존재는 고정되고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들뢰즈가 말한 ‘다양체’에 가깝다. 하나의 중심에 종속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고 갈라지고 다시 이어지는 관계의 장이다. ‘기원’ 속 인간과 나무도 그렇다. 하나의 줄기 속에 수많은 얼굴이 있고, 각각의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자연을 인간 바깥의 자원으로 바라보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세계까지 함께 소모한다. 그림을 다시 바라본다. 수많은 얼굴이 한 그루 나무 안에서 살아 있다. 서로 다르지만 누구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이스하그가 말하는 ‘기원’일 것이다. 존재는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진다. 인간은 자연의 바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자연의 바깥에 있지 않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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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투자의 시대, 금융투자 교육은 선택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금융투자 대중화 시대를 넘어 ‘금융투자 일상화 시대’에 들어섰다. 코스피가 꿈의 5000P를 넘어 한때 9000P까지 돌파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주식시장에 쏠렸고, 국내 주식투자자는 이미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출근길에는 “삼전 있어?”, “하닉으로 얼마나 벌었어?”라는 대화가 오가고 점심시간 투자 이야기도 일상이 되었다. 금융투자는 더 이상 일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한 부분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레버리지 ETF와 각종 파생상품이 확산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단기간의 높은 수익률을 좇는 투자문화는 ‘빨리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급함까지 부추긴다.
여기에 퇴직연금(IRP)과 개인연금의 금융투자상품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저금리와 인플레이션 속에서 예금만으로 자산을 지키기 어려워지면서 금융투자는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필수 역량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투자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은 변동성에 대응하는 ‘위험관리’이다. 올해 1월 2일 4300선이던 코스피는 6월 19일 9300선을 돌파하며 6개월 만에 100%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상승의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7월 29일에는 장중 5300선마저 무너졌고, 7월 31일에는 다시 1000포인트가 급등하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이는 금융시장에서 탐욕과 공포가 얼마나 빠르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준다. 성공적인 투자의 출발점은 높은 수익률을 좇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관리하는 원칙을 지키는 데 있다. 위험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장기투자를 위한 기본적인 투자전략이다.
특히 과도한 레버리지와 단기매매는 성공투자의 지름길이 아니다. 레버리지는 수익뿐 아니라 손실까지 확대하고,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음(-)의 복리효과로 예상보다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레버리지는 지렛대이지 사다리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투자기법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는 ‘정석투자’이다. 기업의 본질가치를 보고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장기투자가 결국 가장 안정적인 투자전략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레버리지 투자를 지양해야 한다. 빚을 내거나 과도한 레버리지 상품에 의존하는 투자는 투기에 가까워질 수 있다.
둘째, 포트폴리오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시간·종목·지역분산은 수익률을 포기하는 전략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기본 원칙이다.
셋째, 금융투자교육을 앞당겨야 한다. 초·중·고교는 물론 2030세대까지 생애주기별 금융투자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는 한 번의 투자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자산은 현재의 종잣돈보다 앞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단기 고수익보다 장기적인 복리의 힘을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투자자 보호 역시 문제가 발생한 뒤의 사후 대응보다 올바른 금융교육을 통한 사전 예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금융투자교육은 돈 버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위험을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평생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금융 시대, 우리 사회는 투자 권유보다 투자 교육을, 단기 수익보다 장기 자산 형성을, 투기보다 금융문해력을 우선해야 한다. 더 많은 투자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더 현명한 투자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그 출발점은 금융투자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