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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번 월드컵 우승국이 스페인이라고?
인류는 오래전부터 미래를 알고 싶어했다. 내일 비가 올지, 농사가 풍년일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러한 욕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거철이면 여론조사에 귀 기울이고, 경제 전망에 귀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만 과거에는 점성술과 주술에 의존했다면, 오늘날에는 통계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스포츠는 인간의 예측 본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영역 중 하나다. 무릇 승부의 향방이 안갯속에 가려져 있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열정적으로 결과를 점친다. 특히 FIFA 월드컵은 전 세계가 참여하는 거대한 예측 실험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승국을 맞히려는 전문가와 팬들의 경쟁은 때로는 그라운드 위 승부 못지않게 관심을 끌어모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2026 북중미 월드컵이 막을 올린 지금, 팬들의 시선은 이미 결승전과 우승 트로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개막 전부터 전 세계에서는 우승 후보를 둘러싼 각종 예측과 베팅이 뜨겁게 이어졌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저마다의 전망과 분석이 쏟아졌다. 과연 AI와 빅데이터는 축구의 불확실성마저 읽어낼 수 있을까.
■스페인·프랑스… 엇갈리는 우승국 전망
월드컵 예측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는 단연 독일의 문어 ‘폴(Paul)’이다. 독일의 한 해양생물관에 살던 폴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 경기와 스페인-네덜란드 결승전 결과 등을 잇달아 맞혀 대회 기간 내내 화제가 됐다. 폴의 예언 방식은 단순했다. 경기를 앞둔 두 나라의 국기가 붙은 유리 상자에 홍합을 넣어두고, 폴이 먼저 선택한 상자의 국가가 승리한다고 보는 것이었다. 과학적 근거는 없었지만 적중이 거듭되자 사람들은 폴의 선택에 열광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우승국 예측 경쟁도 뜨겁다. 독일 경제학자 요아힘 클레멘트는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국을 연속으로 맞힌 인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이번 대회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한 국가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다. 클레멘트는 월드컵 준우승만 세 차례 경험한 네덜란드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일본이 32강에서 브라질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고, 한국은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스페인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다. 체스의 순위 평가 방식인 '엘로(Elo) 평점'에 공격력과 최근 경기력, 지리적 요인 등을 결합한 분석 모델에서 스페인의 우승 확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스포츠 데이터 분석업체 옵타의 슈퍼컴퓨터 역시 스페인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했으며,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도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영국 레딩대학교 경제학자 제임스 리드 연구팀이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한 결과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예측도 있다. 2010년 스페인, 2014년 독일, 2018년 프랑스의 우승을 맞히며 '족집게 예언가'로 불린 브라질 출신 마이클 브루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이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은 프랑스를 우승 후보국으로 꼽았다.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 몰락을 일찍부터 예상했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프랑스를 우승국으로 뽑아 맞춘 바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도 옴바페의 프랑스를 우승 후보국 1위에 올려놓았다. 영국이나 브라질을 우승 후보국으로 꼽는 축구 전문가들도 있다. 이처럼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기관, 심지어 예언가들까지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축구공은 둥글다”… 예측 장담 못 해
이런 데이터도 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열린 11차례 월드컵 가운데 10번은 유럽 국가가 우승했고, 미주 대륙에서 개최된 8차례 대회에서는 7번이나 남미 국가가 정상에 올랐다. 개최 대륙과 우승국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런 통계는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전통의 강호 브라질에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과연 이번 대회에서도 이런 ‘대륙의 법칙’이 통할까.
물론 예측이 항상 적중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국을 연속으로 맞혀 주목받았던 마이클 브루노조차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프랑스의 우승을 예상했다가 아르헨티나가 정상에 오르면서 예측이 빗나간 바 있다.
골드만삭스 역시 2014년과 2018년 월드컵에서 예측 모델을 가동했지만, 2018년 브라질의 우승을 점쳤다가 8강 탈락이라는 결과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선수들의 컨디션과 부상, 감독의 전술, 경기 당일의 흐름 같은 변수까지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온라인 베팅 시장처럼 수많은 참가자의 정보와 판단이 집약된 예측이 오히려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우승국 예측이 아니라도 월드컵 역사는 예측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가득하다. 1954년 서독은 ‘무적 함대’로 불리던 헝가리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 한국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4강 신화를 썼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훗날 우승팀이 된 아르헨티나를 2-1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데이터와 통계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수를 계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축구는 수많은 기록보다 경기 당일 선수들의 투지와 몸 상태, 예상치 못한 변수 등이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다. 데이터는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독일의 명장 제프 헤르베르거는 “축구공은 둥글다”고 말했다. 우승 후보가 반드시 우승하는 것도 아니고, 약체가 끝까지 약체로 남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월드컵은 늘 흥미롭다. 어쩌면 사람들은 결과를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능성을 꿈꾸기 위해 예측하는지도 모른다.
북중미 월드컵은 이제 막 시작됐다. 스페인이든, 네덜란드든, 프랑스든, 아르헨티나든 지금 이 순간 우승팀을 100%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한국 대표팀이 다시 한번 기적 같은 여정을 써 내려가는 일이다. 우승국 예측은 전문가와 AI에게 맡겨두자. 한국의 16강, 나아가 8강 진출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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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항만공사법 개정 가시화, BPA 북항야구장 적극 협력해야
부산 북항 재개발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랜드마크 부지 활용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졌다.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시절 대표 발의한 항만공사법 개정안의 국회 상임위 통과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해당 개정안은 부산항만공사(BPA)가 재개발 부지를 조성·매각하는 데서 나아가 상부 시설 개발에도 참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북항야구장 건립이 새 국면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북항야구장은 사업 구조의 비효율과 막대한 재원 탓에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법 개정은 그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6·3 지방선거에서도 쟁점으로 떠오른 북항야구장 사업은 현실성의 벽에 부딪혀 추진 동력을 얻지 못했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사직구장과도 연계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토지와 건축 주체가 분리된 구조에 있다. 부지는 BPA의 소유, 야구장 건립 주체는 부산시로 나뉜 탓에 사업비 조달과 운영, 소유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법 개정으로 BPA가 시행자로 참여하면 사업 구조가 단순해진다. BPA가 부지를 제공하고 사업을 총괄하며, 부산시는 행정 지원과 운영 계획을 분담할 수도 있다. 여기에 민간 건설사가 공사비 일부를 야구장 지분으로 확보하는 방식의 투자 유치도 추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은 법 개정 이후 BPA가 시행자가 되어 야구장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BPA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한 대목이다. 또 북항야구장은 국가 항만 부지 위에 조성되는 만큼 해양수산부와 BPA, 부산시 간 권한 배분과 운영 체계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도 과제다. 특히 사업성 검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스포츠 시설에 그칠 때 막대한 투자비를 정당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양수도와 ‘바다 야구장’의 상징성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문화·관광·상업 복합 공간으로서의 비전이 마련돼야 한다. 도시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원도심의 부활까지 이끌겠다는 방향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북항은 전환점에 서 있다. 부산 국민의힘 소속 곽규택 의원과 조경태 의원도 BPA가 상부 개발까지 맡을 수 있도록 하는 같은 취지의 법 개정안을 냈으니 사업 구조에 대해 여야가 이견이 없다. 게다가 해수부 장관 출신이 부산 시정을 이끌게 된 것도 사업 추진에 청신호다. 북항 재개발은 부산의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드는 사업이며, 랜드마크 부지에서 성패가 좌우된다. 항만공사법이 개정되면 BPA는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하고, 부산시는 선거 공약을 넘어 실현할 수 있는 사업 구조와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된 북항을 미래 성장 거점으로 바꿔내는 과제가 지금 부산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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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BTS 부산 콘서트, 글로벌 도시의 품격 세계에 알릴 기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BTS 월드투어 아리랑 IN 부산’ 콘서트가 오늘부터 이틀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다. 팬덤인 아미 등이 대거 부산을 방문한다. 이번 콘서트는 BTS 데뷔 13주년 기념일과 맞물리면서 세계의 이목이 한층 집중되고 있다. 특히 멤버 지민과 정국의 고향에서 열리는 공연이다 보니 국내외 아미 등은 부산이라는 도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콘서트는 글로벌 해양도시와 관광도시 도약을 꿈꾸는 부산을 세계에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숙박업계 ‘바가지 상혼’ 등 도시 품격을 실추시키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각별한 준비가 필요하다.
군 복무 등을 마치고 올 상반기 완전체로 복귀한 BTS는 K팝 돌풍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달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데 이어 미국·멕시코 순회공연 등에서 연이어 매진 기록을 세웠다. BTS 부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더군다나 BTS는 부산에서 그동안의 히트곡을 총망라해 선보일 전망이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이다. 해외 팬 5만 명 등 10만 명이 넘는 팬들이 부산에서 먹고 자면서 곳곳을 누빌 것으로 기대된다. 또 공연 기간 동안 팬들의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부산의 진면목이 지구촌에 소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도시 인프라와 아름다운 해양관광 콘텐츠 등을 갖춘 부산은 이미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364만 명에 달한 데다 곧 500만 시대를 앞두고 있다. 더욱이 부산은 지민과 정국의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장소 등 다른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색적인 ‘성지순례’ 콘텐츠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팬덤 이름을 연상시키는 서구 아미동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더해 김해공항과 부산역, 해운대와 광안리 등에서 팬들을 위한 다양한 맞춤형 행사가 진행 중이다. 종교·대학시설과 시민 등이 관광객을 위한 공공숙박과 홈스테이에 적극적으로 참여, 부산의 저력을 보여준 것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이번 BTS 부산 공연을 관광과 지역 경제 활성화 동력으로 연결시키는 후속 작업도 중요하다. 부산 관광지와 호텔, 백화점, 카페 등은 현재 공연의 경제적 효과인 이른바 ‘아미노믹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특별 이벤트와 마케팅 상품을 내놓고 있다. 부산시와 관광공사 등은 BTS 공연과 관련해 시도된 콘텐츠의 효과를 분석, 새로운 관광 인프라로 자리매김시키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경찰과 소방 등은 많은 인원이 몰리는 공연장 등에서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BTS 부산 공연은 ‘글로벌 도시 도약’을 위한 시험대다. 시민 모두가 자긍심을 갖고 손님맞이에 적극 동참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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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포커스온] 부산대의 '이유 있는 변신'
부산대가 지난 4일 서울 강남에서 2027학년도 입학 설명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개교 8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서울에서 단독 입학 설명회를 연 것은 지역 대학으로선 이례적인 사례다. 이날 300여 명의 수도권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몰렸다고 한다. 정부의 국가 균형발전 정책 기조인 ‘5극 3특’ 체제 구축과 거점 국립대를 명문대 수준으로 육성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구체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정부 정책과 대학의 노력이 맞물리며 거점 국립대 위상이 확실히 달라진 느낌이 든다. 부산대가 ‘서울 단독 설명회’ 개최라는 과감한 결정을 한 배경에는 수도권 학생들의 지원 증가도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부산대 정시모집에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출신 학생 비중은 2024학년도 6.5%, 2025학년도 9.2%, 2026학년도 13.9%로 3년 연속 상승하는 추세다.
이번 설명회에서는 부산대가 올해 신설해 내년부터 학부 과정 신입생을 처음 모집하는 ‘스마트가전공학과’와 ‘X-모빌리티융합학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고 한다. 2027학년도 부산대 수시 모집 요강을 보면 ‘스마트가전공학과’는 LG전자 채용연계형 계약학과로 전체 신입생 대상 2년 등록금 전액 장학금 지급, LG전자 채용 보장의 혜택이 있다. 첨단조선, 국방, 우주항공 등 동남권 미래산업 분야에서 필요한 융합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X-모빌리티융합학부’는 신입생 전원에게 4년 등록금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대기업 인턴십 우선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부산대의 두 학과 신설은 교육부가 올 4월 발표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과 연관이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확정판인 이 방안을 통해 올 하반기 1차로 거점 국립대 3곳을 선정해 연간 1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교육부는 올해 3개 거점 국립대에 ‘성장엔진 브랜드 단과대 및 특성화 융합연구원’을 설립하고, 학부-대학원-연구소를 하나로 묶어 지원한다. 브랜드 단과대는 해당 지역의 성장엔진 분야 인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신설되는 단과대학이다. 특성화 융합연구원에는 기업, 정부 출연 연구기관,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외 유수 대학과의 협력체계가 구축된다. 이번 사업은 지역 인재 양성과 산업구조 재편을 동시에 겨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학 교육과 연구가 산업 현장과 직접 연결되는 구조를 구축해 지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청년 인재의 수도권 유출을 완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부산대뿐만 아니라 해양 분야 특성화 대학인 국립한국해양대와 국립부경대도 서울을 비롯해 전국 수험생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립한국해양대는 국립목포해양대와 함께 지난 6~7일 서울 한국해운협회에서 ‘2026년 해양인재 발굴을 위한 공동 입학설명회’를 열었다. 국립부경대도 영남, 충청, 호남, 서울에서 열리는 대형 진학 박람회에 참가해 입학 상담 부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균형발전 실현을 위한 해양수산부의 ‘해양수도권 육성 전략’이 막바지 단계에 도달한 것은 해양 특성화 대학을 비롯한 부산·울산·경남 소재 대학들엔 새로운 기회다. 이미 해양수산부와 SK해운, 에이치라인해운, HMM 본사 부산 이전이 완료된 상황이다. 여기에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 이전을 비롯해 동남권투자공사와 해사전문법원 설치, 북극항로 선점과 개발 등 해양 행정·사법·금융산업 집적이 본격화되면 부산에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가 창출된다. 지역 대학 졸업생들이 공공기관 채용 연계나 해양·물류 대기업 취업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비싼 학비 외에도 치솟는 거주 비용, 생활비를 추가 부담해야 하는 수도권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지역의 경쟁력 있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다면 훨씬 실리적이다.
지역 대학 경쟁력은 지역 산업 경쟁력이며, 지역 산업 경쟁력은 국가의 균형 잡힌 성장을 담보한다. 학령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이 심각한 현실에서 지역 대학이 배출한 인재가 지역 성장엔진 산업을 이끄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의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이 기업의 지방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지역 산업계가 인재 부족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또 부산 중심의 ‘해양수도권’ 완성은 수도권 집중과 반도체 산업 쏠림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부울경이 수도권에 맞서는 미래 성장산업의 축으로 자리 잡아야 인재 유출을 막고 기업, 지역 성장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지역 대학, 산업, 인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학습·취업·정주로 이어지는 통합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 그것이 지역 소멸을 막고 균형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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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시간 불평등
2024년 출간된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의 책 ‘시간 불평등’(The Politics of Time)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의 자유’가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배되며 특권이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책은 ‘왜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쫓기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20세기 초,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이 발전하면 2030년쯤엔 인류가 주당 15시간만 일하며 풍요로운 여가를 누릴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현실은 주 최대 50시간 근무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수많은 노동자가 밥벌이에 인생을 저당 잡힌 채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저자는 시간 빈곤의 원인이 단순히 개인의 시간 관리 문제를 넘어서, 현대 사회가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소수의 특권층과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자기 시간을 통제할 권리를 잃어버린 자들로 양극화됐기 때문이라고 봤다.
최근 부산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의 일상을 걱정하게 됐다.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대학생 기자가 던진 ‘시간 불평등’ 질문 때문이다.
“서울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심각한 시간 불평등을 겪고 있습니다. 값싼 월세를 구하기 위해 도심에서 외곽으로 멀어지며 이동 시간이 더 필요해졌고 주거비와 학비를 보태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니 공부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고스펙을 요구하는 취업시장에 내던져진 지방 출신 대학생들은 또다시 경쟁에서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해법이 있습니까?” 이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과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당위성을 역설할 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부푼 희망으로 인서울 대학에 합격했지만, 서울 수도권 생활은 팍팍하기만 하다. 지방 출신 학생들은 매일 왕복 2~3시간 이상을 대중교통에서 보내고, 주거비와 생활비 충당을 위해 학업 외에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주말이나 명절에 부산을 오가는 데 드는 시간 역시 엄청난 비용이다. 서울 토박이 학생들이 그 시간에 스펙을 쌓거나 휴식을 취할 때, 이들은 생존을 위해 보상이 낮은 단순 노동에 시간을 저당 잡히게 된다. 이는 졸업 후 다시 취업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대물림을 낳는다. 결국 돈의 불평등이 곧 시간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구조, 늘 시간에 쫓기는 20대 지방러에게 개인의 노력만으로 불평등을 극복하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김경희 해양수산부장 mi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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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의 개념 쌓기] 텅 빈 쇼룸의 공포, 시스템이 멈춘 현실
최근 영화 ‘백룸’이 저예산 영화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흥행 몰이 중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우연히 미지의 공간을 발견하고, 그곳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의 문법을 따른다. 흥미로운 것은 그 서사의 소재이자 무대, 즉 백룸 그 자체다. 영어권에서 백룸(Backroom)은 통상 일반인은 못 들어가는 매장 내 뒷공간을 일컫는다. 고객 입장에서 이 백룸은 분명 자신의 눈에 보이는 공간과 이어져 있는 곳이고, 더 나아가 자신을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토대이기까지 하다. 다시 말해 백룸은 가시적 공간을 떠받치는 비가시적 공간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백룸을 공포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탈바꿈시킬까? 먼저 주목할 점은 영화의 무대가 직원용 통로나 창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무대는 대형 가구점에서 고객들이 이용하는 가시적 공간인 쇼룸이다. 침대와 소파, 조명 등을 배치해 실제 생활공간처럼 꾸며 놓은 바로 그 쇼룸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쇼룸을 텅 비워버림으로써 백룸으로 전환한다. 몇몇 가구와 노란 단색 벽지, 윙윙거리는 형광등 등 익숙한 공간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완성된 인테리어는 철저히 사라져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쇼룸의 백룸화인가?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종종 마주한다. 이를테면 가구점에서 상품 진열을 바꾸기 위해 쇼룸을 모두 비워버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는 당연히 리뉴얼을 위해 가구점 문을 닫기 때문에 쇼룸이었던 곳 전체가 오로지 직원들만이 움직이는 백룸이 된다. 이삿짐이 들어가기 전의 아파트 역시 마찬가지다. 입주 전까지는 청소업체 직원이나 옵션 점검을 나온 관계자들만 출입하는 일종의 백룸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영화의 무대는 오픈을 준비하는 백룸화된 쇼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공간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설령 뭔가 있더라도, 뒤틀린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직원도, 고객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을 채워야 할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낯선 공허함이 생겨나고, 바로 그 공허함이 공포의 근원이 된다.
여기서 느껴지는 공포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극단적인 무력감이다. 앞서 살펴봤듯 백룸의 주체는 고객이 아니라 직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백룸은 노동자의 부재를 드러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비가시적 백룸이 떠받치고 있던 가시적 공간, 다시 말해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세계가 위태로워졌음을 의미한다. 식료품부터 의류, 안전, 의료, 심지어 커뮤니티까지 모든 것을 ‘구매’ 버튼 하나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현실이 통째로 소거된다면? 백룸에 빠진 주인공, 좀 더 정확히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바로 상품화된 현실이 삭제된 세계이다. 가구점의 쇼룸이나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사실상 현대인의 안방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오늘날 직접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주거 역시 하나의 상품이 된 지 오래다. 화폐를 지불해 필요한 것을 얻는 방식을 제외하면 현대인은 자신의 의식주를 스스로 마련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다. 결국 가장 사적인 공간인 안방에서조차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무력한 존재인 셈이다.
이제는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지만, 현대인은 소비를 통해 구성된 상품의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곧 쇼륨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쇼룸은 언제든 백룸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상품은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는 익명의 노동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상품들로 조립된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상품의 부재는 현실의 부재며, 현실의 부재는 삶의 부재,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 근원적인 공포가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영화 백룸의 소재가 된 ‘도시괴담’이 등장한 것은 2019년이지만, 이를 소재로 한 영상 시리즈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시점이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전 세계는 대규모 셧다운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공급망과 서비스, 그리고 일상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목격했다. 만일 익명의 노동에 의해 지탱해 온 세계가 갑자기 종결된다면 어떨까? 가도 가도 텅 빈 세계에 내던져지게 될 것이며, 여기서 굶어 죽게 될 것이란 불안감이 엄습한다.
결국 영화 백룸이 가시화한 공포의 본질은 미지의 괴물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라는 행위를 제외하면 생존에 필요한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생산할 수 없게 된 현대인의 철저한 무능과 고립이다. 백룸 특유의 서늘함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유리성 같은 취약함에 대한 반작용인 것이다. 백룸의 흥행이 현대인이 당연하게 여겨온 현실의 기반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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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채동선의 '고향', 서리서리 얽힌 역사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고향’이라는 오래된 시가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정지용(1902~1950)이 1930년대 초에 쓴 시로 알려져 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산꿩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산꿩, 뻐꾸기, 흰점꽃, 풀피리 소리를 나열하며 잃어버린 옛 고향의 정서를 새겨놓은 명작이다. 당대의 작곡가 채동선(1901~1953)은 이 아름다운 시에 곡을 붙였다. 도쿄 독창회에서 처음 발표한 후, 1933년 ‘채동선 가곡집’에 수록했다.
채동선은 한국 근대 음악사에서 홍난파와 함께 초기 예술가곡의 기초를 세운 1세대 작곡가다. 특히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 ‘향수’, ‘그리워’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01년 6월 11일 전남 벌교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에서 바이올린과 음악 이론을 공부한 정통 유학파 출신이다. 1929년에 귀국하여 이화여전 등에서 교육 활동을 펼쳤고, 여러 차례 바이올린 독주회도 열었다.
시인 정지용은 한국전쟁 기간에 행방불명되어 소식이 끊어졌다. 이를 두고 미군 폭격 사망설, 납북 중 사망설 등이 제기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문제는 전쟁 직후 정지용이 ‘월북·납북 작가’로 분류되면서 그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마저 금지곡이 될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출판사는 동요 작가 박화목에게 의뢰해 새 가사를 붙이고 ‘망향’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으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1964년 채동선 타계 12주기를 맞아 유족은 새 가사를 의뢰했다. 그렇게 태어난 곡이 이은상 작사의 ‘그리워’였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내 님은 뵈지 않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한동안 가장 많이 불린 가사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였던 소프라노 이관옥이 “내 정든 고향을 떠나와서~”로 시작하는 ‘고향 그리워’라는 곡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8년 7월 19일 자로 정지용을 비롯한 김기림, 임화, 백석 등 이른바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었다. 무려 네 개의 서로 다른 가사를 지녀야 했던 채동선의 곡은 그때서야 비로소 정지용의 원래 가사를 되찾아 불리기 시작했다. “좁쌀 한 톨에도 우주가 들어있다”라는 말처럼, 노래 한 곡에도 한국 현대사의 쓰디쓴 사연이 얽혀 있음을 증명하는 가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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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허술해도 너무 허술한 선관위,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국민 참정권 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선거관리위원회의 한심한 실태가 점입가경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상 유례 없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이후에도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하는 모습에서는 선관위라는 조직이 과연 제대로 작동은 하는 조직인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다. 이로 인해 선관위라는 조직의 무능을 기성세대의 민낯이라 여긴 2030 젊은 세대들은 대학을 중심으로 참정권 침해를 비판하는 전국적 시국선언에 나서는 지경이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은 해결책을 서둘러 제시하기보다 선동과 의혹을 부추기며 잇속만 챙기는 작태로 일관하는 중이다.
최근 드러난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산 동구 수정5동 제2투표소는 선거인수가 2197명이었지만 선관위가 인쇄한 투표용지는 1000매에 불과했다. 투표용지가 선거인수의 45.5%에 불과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인쇄 비율을 보였다. 이 투표소 뿐만이 아니라 투표용지 인쇄량이 유권자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투표소는 전국에서 1371곳에 달했다. 선관위는 최소 인쇄 비율을 50%로 정해 놓은 자체 지침조차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는 앞서 투표용지 부족 투표소 현황 파악에서도 처음엔 50곳이라 했다가 사흘만에 91곳이라고 발표하는 등 실태 파악에도 무능을 드러낸 바 있다.
지방선거 투표 당일 벌어진 투표소 현장의 실태는 더욱 가관이다. 〈부산일보〉는 부산 북구 화명1동 제7투표소에서는 본투표 당일 투표용지 부족으로 대기 행렬이 발생했는데도 용지 부족 사실은 오후 5시 50분에야 선관위에 알려졌다고 11일 보도했다. 선관위가 카톡으로만 현장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군별로 선관위 직원 1~2명이 현장의 구청 공무원과 카톡 단체방을 통해 특이 사항을 파악하다 보니 실시간 현장 상황 파악은 언감생심인 구조였던 것이다. 선관위는 뒤늦게 부산 전체 직원이 161명에 불과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 참정권을 다루는 기관의 해명으로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선관위의 무능은 기성세대가 그동안 쌓아온 시스템의 오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30 세대들이 거리에서 참정권 침해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항의에 가깝다. 그럼에도 정치권을 비롯한 기성세대는 현실과 괴리된 논리로 선동에 더 힘을 쏟으며 갈등 확산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선거 결과로 리더십에 금이 간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기성세대는 선관위로 상징되는 자신들의 무능을 시인할 줄 알아야 한다. 거기에 더해 이번 사태를 무능한 시스템의 근본 개혁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서둘러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선관위를 바닥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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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해군 인구 4만 명 반등… 인구 소멸 지역의 반란
경남 남해군 인구가 최근 4만 명을 넘어섰다. 지방소멸 고위험지역인 남해군 인구가 14년 만에 증가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해군이 경남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시범 실시한 농어촌 기본소득 제도가 인구 유입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꼽혔다. 농어촌 기본소득 제도는 거주하는 군민에게 매월 15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남해군은 특히 로컬푸드 직매장 등 정주 의식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인프라를 확충, 기본소득 제도의 파급 효과를 높였다. 농어촌 기본소득 제도가 유의미한 인구 유입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남해군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표준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남해군 인구는 2011년 5만 242명을 기록한 뒤 계속 감소했다. 2024년 10월에는 처음으로 4만 명이 깨지며 지역 소멸 위기감이 극대화됐다. 하지만 지난달 말 기준 인구는 4만 1091명으로 집계됐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역으로 선정되기 이전인 지난해 9월 말 3만 9296명 대비 1795명, 약 4.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자연감소’ 수치는 502명이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전입한 인구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상승을 이끌었다. 더욱이 전체 증가 인구 1795명 중 22.6%인 405명이 10대인 것으로 나타나 성인 단독이 아닌 가족 단위 인구 유입이 많았다는 것을 내비쳤다.
농어촌 기본소득 제도의 인구 유입 효과는 남해군과 함께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충북 옥천 등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년 동안 한시적으로 도입된 농어촌 기본소득 제도의 조속한 확대 실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이날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농어촌 기본소득 영구 도입과 금액 상향 의지를 내비친 것은 무척 고무적이다. 이 대통령은 주식시장 활성화로 급증한 농어촌특별세를 재원으로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는데 현실화될 경우 국토 균형발전과 고질적인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집값 폭등 등의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농어촌 기본소득 확대를 위해서는 섬세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농어촌 기본소득 재원은 국비 40%, 도비와 군비 각 30%로 마련된다. 제도를 확대하면 도와 군의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경남도의회가 남해군 기본소득 시범사업 도비 예산 126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가 주민 반발로 복원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도 이런 이유다. 국비를 최대한 늘리는 정책 결단이 필요하다. 남해군에서 확인됐듯이 교육과 일자리 등 종합적 정주 여건 마련을 위한 지원도 절실하다. 대도시가 아닌 인접 소멸 지역에서 이주해오는 ‘풍선 효과’를 차단할 한층 정교한 제도 보완책 마련도 서둘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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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 외국인 관광객, 국제선 공급만큼 늘었다
최근 부산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 해운대, 광안리 등 관광지는 어디라도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체감할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은 얼마나 늘어난 걸까.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부산의 인기가 올라간 걸까.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통계는 기관별로 차이가 난다. 집계 방식이 달라서다. 부산시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부산을 찾은 외국 관광객은 147만 5889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9% 늘어난 수치다. 부산시는 부산항과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에 '타지역 경유자'를 더해 통계를 낸다.
한국관광공사가 집계한 올해 1~4월 부산 방문 외국인 수는 534만 2009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72만 6065명)에 비해 43% 늘어났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렙은 SK텔레콤 가입자 정보를 이용해 하루 2시간 이상 부산에 체류한 외국인 방문자를 집계한다. 하루 방문자에 체류일이 곱해져 부산시 통계보다 수치가 크다.
두 기관이 공통적으로 제시한 부산 외국인 관광객 40% 증가는 이례적인 수치다. 한국을 찾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부산시 자료에 따르면 1~4월 한국 전체의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부산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도 1~4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이 24% 늘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부산 외국인 관광객 증가 폭이 절반 정도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부산을 방문하는 비율도 독보적인 상승세를 보인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서 지난 1~4월 전체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부산 방문자 비율은 9.5%였다. 전년 동기 대비 1.4%포인트(P) 늘어난 수치다. 부산 방문 비율 증가는 전국 최고로 서울(1%P 증가)보다 높다. 전년 동기 대비 외국인 관광객의 지역 방문 비율이 늘어난 광역지자체는 부산, 서울, 제주(0.7%P 증가), 인천(0.1%P 증가)뿐이다. 경기도는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비율이 1.2%P 줄었다.
부산시 통계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은 늘었다. 지난 1~4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22%가 부산을 방문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19%만 부산을 찾아 3%P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산의 인기가 올라간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다.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과 관련해 주목할 사실은 항공 이용객 비율 증가다. 부산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김해공항을 이용한 비율은 40%였다. 올해는 공항 이용 비율이 42%로 2%P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이 약 2%P 오른 것과 일치한다. 반면 타지를 경유해 KTX 등으로 부산을 찾은 비율은 44%로 지난해와 같았다. 항만을 이용한 비율은 2%P 줄었다(16%→14%).
묘하게 일치하는 수치가 하나 더 있다. 지난 1~4월 우리나라 국제선 좌석 공급량 가운데 김해공항 국제선 좌석이 차지하는 비율은 12.1%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0.7%였다. 김해공항 국제선이 전체 국제선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P 증가한 셈이다. 이는 한국관광공사 통계에서 지난 1~4월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 증가폭(1.4%P)과 정확히 일치한다. 2년 전과 비교해도 수치는 마찬가지다. 1~4월 한국의 국제선 공급에서 김해공항 비율은 2년 전에 비해 2.5%P 늘었다. 이 기간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은 2.4%P 늘었다.
이 수치만으로 김해공항 국제선 확대가 외국인의 부산 방문 비율 확대를 이끈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 원인과 결과를 바꿔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김해공항 국제선 확대가 외국인 방문객 비율 확대에 선행한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인천공항 일원화' 영향으로 국제선 운항이 크게 줄었던 김해공항은 2022년부터 국제선 좌석 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22년 우리나라 전체 국제선 항공 공급량(좌석)의 5.9% 수준이던 김해공항 국제선은 2023년 9.2% 2024년 9.9% 2025년 11.2%로 늘었다. 한국관광공사 통계 기준 외국인 관광객의 부산 방문 비율은 2022년 6.1%에서 2023년 7.3% 2024년 7.7% 2025년 8.6%로 서서히 늘었다. 국제선 공급 비율이 먼저 늘어나고 외국인 방문 비율이 뒤따라 늘면서 두 수치의 간격이 줄어드는 모습이다. 내국인 해외 관광을 위해 확대한 국제선 노선이 외국인 국내 관광을 이끈 셈이다. 국제선 노선 등 항공 서비스 확대는 지역의 관광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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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선출되지 않은 지방 권력
158명 중 32명(20.25%). 부산 구·군의원을 뽑는 6·3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5명 중 1명 이상이 투표를 거치지 않고 당선증을 받았다. 2명을 뽑는 16곳의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후보만 등록해 나란히 무혈 입성한 경우다. 후보자 수가 의원 정수를 넘지 않으면 투표를 실시하지 않고, 선거일에 그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정책 경쟁과 상호 검증이 생략돼 유권자의 선택권이 박탈된다는 측면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이다.
지방선거의 경쟁 실종은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기초의원 지역구 당선자 중 무투표 비율은 서울(24.02%)이 가장 높고, 부산과 인천(16.81%), 경기(15.66%)가 뒤따른다. 양대 정당의 대결 구도가 소수 정당 후보에게 진입 장벽이 된 탓이다. 소속 정당에 충성할 수밖에 없는 자동 당선 의원들에게 공약 이행과 지역민에 대한 책임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자부심이 무색한 대목이다.
올해 9회 지선에서는 모두 511명의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후보자가 경쟁 없이 선출됐다. 이는 직전 8회 때의 490명보다 늘었고 1998년 2회 지선 때의 738명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다. 대표성 없는 지방 권력의 문제가 반복되자 2인 선거구를 3~4인 선거구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오래다. 민주당과 국힘이 정수 2명인 선거구를 독식하는 구조를 깨뜨려 소수파에도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또 찬반 투표나 일정 투표율과 과반 찬성 요건을 두자는 제안도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개선 요구는 번번이 무위에 그쳤다.
문제는 결정권을 쥔 중앙 정치권이 요지부동이라는 데 있다. 선거구 획정과 의원 정수 결정권은 지방의회가 아닌 국회에 있다. 양당 모두 현행 제도의 수혜자이므로 개혁할 이유가 없다. 비유하자면 반대편 사이에 이뤄지는 ‘구조적 공모’에 가깝다.
6·3 지선 때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해 공분을 사고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참정권 침해다. 반면 지선 무투표 당선은 제도 안에서 반복되는 보이지 않는 선택권 박탈이다. 후보를 비교하고 선택할 기회를 빼앗긴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유권자가 아니라 정당 공천에 줄을 선 지방의원이 늘수록 지방 정치는 중앙 정치의 하위 복제물에 그친다. ‘지역의 일꾼’이 아닌 ‘정당의 일꾼’이 뽑히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지방자치가 꽃을 피우겠는가.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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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부산의 미래는 ‘다시 해석하는 힘’에서 시작된다
부산은 오랫동안 만들고 실어 나르는 도시였다. 항구가 있었고, 그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 시대 부산의 힘은 ‘생산’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한 도시를 찾는 이유는 달라졌다. 우리는 더 이상 물건만 사지 않는다. 그 공간의 공기와 태도, 그 지역이 품은 이야기까지 함께 경험한다. 커피 한 잔도 마찬가지다. 맛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어떤 산지에서 왔는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내렸는지, 그 도시가 어떤 풍경을 가졌는지까지 함께 마신다. 결국 지금 시대의 경쟁력은 ‘브랜드를 만드는 힘’이고, 도시 역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모모스커피가 화려한 도심이 아니라 영도 봉래동의 기름 냄새 나는 물양장 한편에 로스터리를 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조선소와 선박, 일하는 바다가 펼쳐진 그 풍경이야말로 부산을 먹여 살려온 ‘진짜 부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스팅 공장을 닫힌 작업장이 아니라, 유리창 너머로 생두가 볶이고 포장되어 출고되는 과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볼거리’로 만들었다. 동래 온천장의 오래된 골목, 영도의 원도심 바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현대적 풍경까지, 같은 부산이라도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한 잔의 커피에 담으려 했다. 그 바다와 산을 세계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부산에 뿌리내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 믿는다.
관광도시 부산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머무름’이 ‘정주’로 이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살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볼거리와 경험만이 아니라 교통과 생활 인프라 같은 구조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우리가 영도에서 주민에게 할인된 값으로 커피를 내리고, 주민 커피 교실을 열고, 봉래산과 금정산을 무대로 트레일 러닝 대회를 연 것도 잠깐 다녀가는 도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그렸기 때문이다. 커피박을 재활용해 시니어 일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지역과 함께 나이 들어갈 방법을 고민하는 일까지가 관광도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셜티 커피는 부산을 세계와 잇는 가장 좋은 언어다. 우리는 2012년부터 매년 산지를 직접 찾아 농부와 거래하고, 다이렉트 트레이드와 비영리 경매를 통해 공정한 거래 구조를 넓혀 왔다. 2019년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도, 최근 유럽 최대 커피 축제에서 ‘세계 최고의 카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부산이라는 작은 출발점에서 한 걸음씩 쌓아 올린 결과였다. 좋은 커피라는 본질 위에 부산의 풍경과 문화를 입힐 때, 커피는 비로소 부산만의 브랜드가 된다. 부산이 세계 스페셜티 커피의 중심 도시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런 작은 천착들이 켜켜이 쌓인 덕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과 로컬이다. 좋다는 것은 전부 서울로 향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부산에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직접 와야만 경험할 수 있도록. 실제로 모모스에서 일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온 동료가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청년이 부산에 머물게 하려면 멋진 공간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하고 싶은 회사,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함께 많아져야 한다. 모모스가 커피 한 잔을 위해 건축·조경·디자인·브랜딩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온 것처럼, 좋은 브랜드 하나가 단단히 자리 잡으면 그 주변으로 연관 산업과 창작자가 모이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F&B와 디자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일하기 좋은 공간’이 도시 곳곳에 늘어날 때, 비로소 청년은 떠나지 않고, 도시는 지속 가능해진다.
부산은 대한민국 남쪽 끝의 도시가 아니다.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한 잔에 담아 세계로 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다시 해석하는 것. 다시 해석한다는 것은 없던 것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다. 기름 냄새 나는 물양장과 오래된 온천장 골목, 일하는 바다처럼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온 풍경에서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그 시선 하나만 바뀌어도, 도시는 이미 가진 것만으로 충분히 새로워질 수 있다. 그 재해석이 더 큰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들고, 결국 ‘우리 동네 브랜드’를 자랑스러워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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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작은 것들을 위한 정치
곧 부산을 찾을 BTS의 월드투어 공연으로 부산이 들썩이지만 선거야말로 우리 일상에 가장 흥미롭고 스펙터클한 잔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투표율이 저조해져서 무관심과 냉소를 우려하던 때와 달리,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할 만큼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열기는 뜨거웠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저서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에서 정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보다는 희망적 사고와 주관적 열정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고, 그 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가장 많이 닮아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선거도 그랬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써내려 갔다.
먼저 절망의 기록부터 이야기해 보자. 〈부산일보〉가 짚었듯이 이번 부산 지방선거는 여성·노동·인권 감수성이 ‘증발’한 선거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국민의힘 여성 구청장 후보는 0명을 기록했고, 여야에서 내세운 청년 후보 역시 소수에 불과했다. 노동·장애·인권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후보 역시 드물었다. 개혁신당이 청년 후보를 내세워 부산시장에 도전한 것은 유의미한 성과지만 유세 중 음료 테러를 당해 청년 정치의 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무관심·냉소 우려했던 이번 지선
투표 용지 부족할 만큼 열기 후끈
여성·노동·인권 감수성 부족 유감
후보·공약·선거운동 모두 퇴행적
그래도 곳곳서 소소한 희망의 싹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남게 되길
한편 부산 북갑 선거운동 과정에서 튀어나온 ‘오빠’ 발언은 거대 양당의 정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지방자치제 시작 이래 30여 년이 됐지만 기초단체장 여성 후보 공천 비율이 여전히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 이를 강력히 뒷받침한다.
여성신문이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제작한 ‘성평등공약.zip’ 사이트에서는 전국 지방선거 후보자의 공약과 공보물 자료를 바탕으로 성평등 공약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는데, 광역단체장 후보 5명 중 1명은 성평등 공약이 하나도 없었으며, 있는 공약마저도 대부분 출산·보육 정책에 쏠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선거의 패인 중 하나라는 분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응원봉 물결로 정치 공간에서 주목받았던 2030 여성 유권자를 집토끼 취급하며 이들에 대한 분석과 고민 없는 정책과 선거운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여성 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 환경과 조건을 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투표의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란 투표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 어디에 투표할지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체제이다.” 이는 정치사상가 보비오의 말이다. 다른 선택이 배제된 상태의 높은 참여는 민주주의와 관련이 없다. 투표에 대한 참여보다 정치적 대안을 조직할 자유가 먼저이며 그런 대안이 의미 있는 복수로 존재해야 투표 참여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작용했던 소수 정당들의 선전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다.
놀라웠던 성과 중 하나는 서울시장 선거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여성의당이 인적, 물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원내정당 후보를 제치고 4위를 기록한 사실이다.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보다 1만 표를 더 얻어 유권자들의 공감을 산 것은 물론 ‘룸살롱 없는 서울’이라는 슬로건으로 의제 정당으로서의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던 경북 안동에서 녹색당 시의원 후보가 당선된 것 또한 기록해야 할 중요한 성과다. 선거의 역동성과 마을 정치의 가능성을 동시에 실감할 수 있었다. 선거의 결과와 관계없이 연제구의 경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로 단일화에 성공하여 소수 정당에도 공정한 기회가 열렸고, 부산진구의 경우 기초의원 선거에서 노동당 김상희 후보가 3%가 넘는 득표율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여당 후보이긴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로서 최영아 후보는 수영구에서 지역구 시의원에 도전하여 장애인 의제를 가시화했다.
각자의 삶에서 비롯된 의제를 가진 사람이 정치 공간에 들어올 때, 정치는 비로소 다수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처리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담는 그릇이 된다. 여성이 여성 의제를, 청년이 청년 의제를, 장애인이 장애 의제를, 성소수자가 성소수자 의제를 직접 다루는 것이 당연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대안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정치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BTS의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대의와 큰 가치보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일상을 돌보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정치에도 거대 양당의 대의명분과 거대 담론에 의한 정치적 양극화의 싸움보다는 작은 정당과 보다 많은 의제들이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서 우리 곁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방식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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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민주주의의 군중 - 안토니 곰리와 도시의 감각
39년 전 1987년 6월 10일,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대학생과 노동자, 회사원과 시민들, 이름 없는 군중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군중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시각화한 동시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안토니 곰리다. 곰리의 조각은 전통적 기념비 조각과 다르다. 그는 영웅이나 지도자를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 곳곳에 익명의 인간 몸을 반복적으로 배치한다. 여기서 그의 인체들은 특정 개인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몸’,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특히 그의 ‘여전히 존재하는 몸들, Still Being/Corpos Presentes’(2012)는 각 4~40㎝ 크기, 2만 4000여 개의 테라코타 인물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은 말과 행위의 근본 조건이며, 그것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동일성을 강요하는 체제가 아니라, 차이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견디며 공존하는 형식인 것이다. 더 나아가 198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쳐 전 세계의 사상, 문화, 예술을 장악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는 보편성과 동일성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21세기 동시대에서 차이는 점점 공존이 아니라 분열로 변하고, 공동체는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들로 해체된다. 모두가 자신의 진실만을 주장하는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양성의 존중’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바디우는 차이와 상대성만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유를 비판한다. 그는 차이의 상대주의를 넘어 공통의 보편성을 다시 제기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단순한 차이의 승인만으로는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타자의 존중’만으로 정치는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란 어떤 ‘사건’ 이후, 사람들이 기존의 이해관계를 넘어 새로운 보편성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사건’이란 기존 질서가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 순간이다. 68혁명, 파리 코뮌, 사랑의 만남, 혁신적 예술뿐 아니라, 우리로 말한다면 ‘87년 6월 항쟁’, ‘빛의 혁명’ 등이 그것이 될 수 있다.
곰리의 테라코타 군중, ‘광장’을 가득 메운 익명의 몸들은 모두 다른 얼굴과 자세를 지니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그의 군중은 단순한 인파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가 생성되는 순간의 ‘감각적 형상화’로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광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곰리의 군중은 그 불안하고도 위대한 가능성의 형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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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흐름 위에 선 동남권
지난 3월 경남 김해시 구산동 고인돌 유적지를 특별 허가를 받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HiBA(Hidden Busan Adventures) 회원 34명이 함께 현장을 찾았다. 당시 유적은 일반 공개를 앞두고 정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걸 어떻게 옮겼죠?” “이 시대에 이런 사회가 있었나요?” 외국인 참가자들은 3000년 전 거대한 상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단순히 유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부강하고 조직된 고대 사회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중요한 질문이 떠올랐다. 이 유산을 부산과 동남권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세계에 보여줄 것인가. 350t에 달하는 상석은 청동기 시대 높은 수준의 조직력과 권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특정 지역을 넘어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유산이기도 하다. 김해는 가야 건국 이후 약 500년 동안 동아시아 해양교류의 중심지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약 7000년 전 선사인들의 삶과 바다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암각화를 넘어 해양 문명의 기록으로 읽힌다. 김해의 고인돌이 조직과 권력을 보여준다면, 반구대 암각화는 삶과 교류, 그리고 확장을 보여준다.
부산은 지금도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도시다. 고인돌의 선사 문명, 반구대 암각화의 해양 문명, 가야의 국제성과 해양 교류, 그리고 오늘 부산이 가진 글로벌 도시의 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부산·울산·경남은 선사 문명에서 글로벌 도시로 이어지는 독특한 서사를 갖춘 셈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반구천의 암각화’는 2025년 7월 1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되었다. 이는 동남권의 선사·해양 문명 자산이 세계적 보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오는 7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동남권의 역사·문화 자산을 세계와 연결할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유산보다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힘이다. 김해는 출발점이고, 울산은 확장의 증거이며, 부산은 현재의 플랫폼이다. 이 세 축이 연결될 때 동남권은 단순한 지역을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제 부산은 단순히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도시를 넘어, 세계유산과 문명 서사를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 관광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상상하는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산과 동남권은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이미 세계의 흐름 위에 서 있는 공간이다. 김해의 돌과 울산의 바위는 수천 년 전부터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제 그 의미를 읽고, 연결하고, 확장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