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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민간 주도 우주산업에 박차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의 4차 발사가 민간 주도로 27일 성공했다. 이날 오전 1시 13분 발사된 누리호는 13기의 위성을 계획된 궤도에 안착시키며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강력한 엔진으로 당초 계획된 총 비행시간인 21분 24초보다 3분 정도 단축한 18분 25초에 비행이 종료됐다. 누리호에 의해 고도 600㎞ 궤도에 올려진 차세대 중형위성 3호는 이날 오전 1시 55분 남극 세종기지 지상국과 첫 교신을 했으며, 부탑재 위성 12기 중 일부도 잇따라 지상국과 교신을 완료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성공으로 독자적 우주 수송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우주 기술 자립과 상업용 발사체 시대를 열게 됐다.
이번 발사에서 의미가 가장 큰 부분은 우주산업생태계가 국가·정부 기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로 진입했다는 점이다. 민간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 제작·조립을 총괄하면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관하는 발사 운영에 참여했다. 정부와 민간 기업, 국가연구소가 하나의 팀이 되어 수행한 최초의 민관 공동 발사다. 누리호 1~3차 발사까지는 총조립과 발사 운용 모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맡았다. 이번 4차 발사 성공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5·6차 발사를 거쳐 민간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 개발에 민간 기업 역할이 갈수록 커질 것은 자명하다.
이번 발사는 국내 최초로 야간에 진행됐다. 차세대 중형위성 3호가 고도 600km의 태양동기궤도를 돌며 오로라를 관측하기 위해 태양 빛의 간섭이 없는 시간대에 적도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위성은 우주 자기장 측정 임무를 수행하고, 무중력 상태에서 3D 프린터로 줄기세포를 키우고 생체 조직을 만드는 우주 바이오 연구 역할을 한다. 12기의 부탑재 위성들은 우주 쓰레기 폐기 기술 실험, 기상 관측에 나선다. 또 우주에서 신약 개발을 수행하는 첫 단계로 항암제 개발을 위한 단백질 실험을 한다. 이를 계기로 민간 참여를 활성화해 무궁무진한 우주 개발의 상업화와 산업생태계 조성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으로 우리가 7대 우주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우주 선진국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발사체의 경제성 확보가 관건이다.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 수준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선 반복 발사로 기술 안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민간 주도 우주 시장은 2035년까지 1조 8000억 달러(약 2630조 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의 글로벌 우주산업 점유율은 1% 정도다. 향후 발사에서 민간 이양 분야를 대폭 늘리고 발사체 기술을 더 고도화하는 것이 과제다. 정부와 민간이 전략적 투자와 협력·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산업적으로 특화할 수 있는 위성 개발 등 틈새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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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사법원 항소심 전담 재판부 해양수도 부산에 와야
부산과 인천에 각각 해사법원 본원을 두기로 여야가 잠정 합의함에 따라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10년 숙원이 풀려 기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밀려온다. 단독이 아닌 관할 구역의 분산이 지역에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어서다. 대기업과 법무법인의 수도권 쏠림이 해사사법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정치권은 항소심 재판부 신설 필요성을 외면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해사법원 유치 운동 초기부터 전문성을 갖춘 항소 법정을 요구했지만, 지역 이기주의로 비쳐져 묵살되기 일쑤였다. 해사사법 체계의 기틀은 해양수도에서 다져지는 게 순리다. 항소심 재판부가 부산에 와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해상 분쟁을 전담하는 법원이 없어 국내 기업들은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 법원과 중재 기관에 의존해 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해마다 국외로 유출된 비용이 3000억 원 이상이다. 조선·해운 강국의 자부심이 무참한 대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박, 해상 사고, 국제 물류로 얽힌 송사를 다루는 데에 있어 전문성과 효율성이다. 부산 해양 관련 업계와 법조계,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항소심 단일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1심 법원은 양립 체제로 가더라도 항소심은 전문성을 갖춘 법관이 배치된 전담 재판부에 맡겨야 한다. 항소심 법원까지 수도권과 지역으로 분산되면 해사사법과 해양산업 모두 경쟁력이 저하된다.
부산에는 해사중재, 해상보험, 선박금융, 물류, 조선 등 법률 수요가 몰린 해양 클러스터가 움트고 있다. 해상 분쟁에 전문성을 갖춘 법조 인력이 부산에서 육성되고, 집중돼야 산업과 사법의 연계가 이뤄지고, 국제적 신뢰와 위상도 확보할 수 있다. 27일 부울경 15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갖고 “해사사법 체계의 중심은 해양 관련 기관과 기업, 연구개발 기능이 집중될 부산이어야 하므로, 항소 전담 재판부는 부산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구는 부산·인천 양립 체제에 대한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반쪽짜리’ 해사법원이 ‘해양수도 부산’ 구상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표출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해양수산부는 연내 부산에 이전하고, 부산을 거점으로 북극항로 개척에 나선다. 국가 해양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해양 클러스터 조성도 본격화한다. 글로벌 해양수도 도약이 종국의 목표다. 이 상황에서 해사사법이 수도권 집중의 우려가 있는 방향으로 엇나가서는 안 된다. 1심 양립에서 발생할 비효율·중복의 우려도 부산에 전담 항소심 재판부를 두면 일정 정도 해소된다. 여야 정치권은 정치적 타협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선 안 된다. 국토균형발전의 원칙과 산업·사법의 시너지 효과를 기준으로 로드맵을 재설계해서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 해사법원은 부산이 제안했고, 부산이 최적지이며, 부산이 준비돼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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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의 일필일침] 잔도를 불태우지 못한 정당에 미래는 없다
참 세월이 빠르다. 폭풍이 몰아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년이 다 되었다. 12·3 비상계엄 얘기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그날의 충격과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국격은 흔들렸고 국민은 깊은 절망을 겪었다. 그럼에도 책임을 짊어져야 할 국민의힘은 지금도 침묵과 회피에 머물러 있다. 부끄러움도 성찰도 없다. 오히려 강경 투쟁으로 지지층을 묶겠다는 낡은 방식에 기대고 있다.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 보수가 맞닥뜨린 현실의 민낯이다.
이런 상황에서 곱씹어볼 이야기가 하나 있다. 중국 전국시대, 중원을 평정하고 초나라를 세운 항우는 자신의 맞수였던 유방을 쓰촨 일대의 한왕으로 보냈다. 사실상 변방으로 내쫓은 셈이다. 체념한 듯 길을 떠난 유방은 도착하자마자 책사 장량의 조언에 따라 자신이 지나온 잔도(棧道)를 과감히 불태웠다. 절벽에 걸린 아슬아슬한 통로인 잔도를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 퇴로를 닫은 그는 천하의 인심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5년 만에 초를 무너뜨리고 한 제국을 세웠다. 버림이 있었기에 새로운 길이 열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힘은 어떤가. 끊어내야 할 잔도를 오히려 붙잡고, 버려야 할 과거를 움켜쥔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모순에 민심도 외면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대선에서 40% 가까이 얻었던 지지는 장동혁 대표 체제 들어 거의 반 토막으로 추락했다. 당 지도부는 ‘중도는 없다’는 구호 아래 강경 일변도의 전략을 고집하지만 현실의 선거 지형은 중도가 당락을 가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특히 부산을 포함한 도심권에서는 그 흐름이 더 뚜렷하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마치 과거 방식만 되풀이하면 미래도 따라올 것이라 믿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의 최근 발언은 단순한 쓴소리를 넘어선다. 그는 “계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상대가 밉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보수가 잃어버린 윤리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경원 의원도 “계엄과 탄핵으로 정권을 내준 것만으로도 백 번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과 부산의 초선 의원들까지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지방선거를 앞둔 그들의 발언이 정치적 계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계산을 감안해도 지금 국힘이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출구가 ‘계엄 사과’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국힘 지도부는 계엄 사태에 대해 단 한 번도 정당 차원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일부 인사들의 개인적 사과가 있었을 뿐이다. 정치란 민심의 흐름을 읽고 그 요구를 실천하는 일이다. 지금 민심이 요구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변화다. 하지만 국힘은 여전히 ‘윤석열 터널’ 속에 머물러 있으며, 지난 정부의 ‘잔도’를 붙든 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혁신은 버림에서 시작된다. 버릴 것을 결정하지 못하면 새 길도 열리지 않는다.
지금 국힘이 돌아가야 할 지점은 ‘누구(who)를 위한 정치인가’가 아니라 ‘무엇(what)을 위한 정치인가’이다. 정치를 특정 인물 중심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당은 자연스럽게 극우적 틀에 갇히게 된다. 이는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종족의 우상’과 닮았다. 익숙한 것만 옳다고 믿는 오류다. 극우적 언어와 폐쇄적 지지층에 기대 민심과의 연결을 끊는 순간, 자멸은 시간 문제가 된다. 이 진리는 민주당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돌이켜보면 보수는 극우로 살아남은 적이 없다. 위기 때마다 스스로 잔도를 버리고 체질을 바꿔 왔다. ‘차떼기 사건’ 이후 박근혜 대표가 천막당사로 돌아가며 보여준 절박한 쇄신이 재도약의 계기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국힘에는 책임도 없고 반성도 없다. 최소한의 역사적 자각조차 보이지 않는다. 낡은 극우의 구명조끼만 붙잡고 있지만 그 구명조끼는 이미 부력을 잃었다.
민심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계엄은 명백한 잘못이었다라고. 민심은 또 묻는다. “국힘은 그 책임을 인정할 의지가 있는가?”라고. 이 질문에 국힘이 여전히 답하지 못한다면 중도 확장도, 범보수 재편도, 지방선거 승리도 요원하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국힘이 미래를 말하려면 12·3 계엄에 대해 정당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석고대죄면 더 좋다. 이는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상투적인 말 한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윤석열 정부의 잔도와 결별해 새로운 보수의 길을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된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큰 잘못은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옛 말에 ‘재를 털어내야 숯불이 빛난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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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입시 ‘폰티켓’
삼성그룹은 몇 년 전부터 주요 사업장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회의를 하거나 이동할 때 스마트폰을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계열사엔 아예 회의실 앞에 스마트폰 보관대를 만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임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폰티켓’(스마트폰+에티켓)을 강조한다. 식사하기 전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끝나면 돌려받는 식이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도 확실한 스마트폰 사용 원칙이 있다. 일할 때는 스마트폰 알림을 모두 꺼두고 문자메시지도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의 때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회의 도중 스마트폰을 보며 집중하지 않는 관행이 효율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의사 결정까지 지연시킨다. 그래서 스마트폰 사용을 단속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최근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 내 종합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작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건설 현장은 중장비 사용이 많고, 활동이 제한되는 공간이 많아 스마트폰 사용이 중대산업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주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인근 해상에서 대형 여객선이 무인도를 들이받고 좌초된 사고도 항해사가 스마트폰을 보다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의원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스마트폰으로 보좌관 명의로 주식거래를 하다 언론사의 카메라에 찍혔다. 그는 소속 정당에서 탈당해야 했고,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딸 결혼식 축의금 명단을 확인하다가 낭패를 봤다. 스마트폰을 언제 사용해야 할지 언제 자제해야 할지 뻔한데도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부산의 한 대학에서는 음악 관련학과 수시입학 실기시험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교수가 심사 도중 스마트폰을 보다가 수험생과 학부모로부터 국민신문고에 신고당하는 일이 있었다.
인생이 걸린 대입 실기시험에서 심사위원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 측은 “심사에 필요한 악보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악보를 인쇄물로 준비할 경우, 종이 넘기는 소리가 연주와 심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파일 형태로 저장한 악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이를 수긍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보다 세심한 폰티켓이 필요할 것 같다.
박석호 선임기자 psh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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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동점 운동회
얼마 전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들뜬 마음에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운동회에 갈 준비를 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운동회의 추억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이들의 학교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운동회가 시작되니 예전과 다른 요즘 운동회 풍경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 한 가지를 꼽자면, 요즘 운동회에서는 경쟁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하지만 어떤 게임을 어떻게 해도 결과는 결국 ‘동점’으로 끝난다. 예를 들어 계주에서 청군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500점을 따내도, 백군이 ‘응원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동일한 500점을 받아 결국 최종 결과가 동점으로 귀결되는 식이다.
동점 운동회가 끝난 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오늘 운동회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이 열심히 해서 이겼는데 동점이라고 해서 화가 났다”, “한 달 동안 아침마다 계주 연습을 한 친구가 불쌍했다”, “어차피 동점인데 왜 경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노력의 결과가 무의미해질 때 느끼는 허무함이었다.
물론 소외되고 상처받는 아이 없이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운동회를 만들자는 학교의 취지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동점 처리로 노력과 경쟁, 승패의 의미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방식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니다. 운동회는 공정한 규칙 아래 최선을 다해 실력을 겨루고 그 결과에 따라 승리한 친구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패배한 친구에게는 격려를 건네며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취감과 배려심, 협동심과 같은 사회적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점 운동회는 운동회 본연의 교육적 의미를 크게 훼손한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경쟁을 부정적 자극으로 보아 배제하려는 교육적 조치는 비단 운동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2010년을 전후해 중간·기말고사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고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도 초등 단계에서 실시되지 않는다. 교육 당국은 시험 폐지가 과도한 성적 경쟁을 줄이고 학생 부담을 완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해 왔다. 또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제는 시험이 없어졌다고 해서 경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에서의 공식적인 평가가 없어지자 학부모들은 아이의 학업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교육 기관의 ‘레벨 테스트’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예를 들어 수학 심화 학원으로 유명한 ‘생각하는 황소’ 입학시험에는 전국적으로 1만 명도 넘는 학생이 응시한다고 한다. 이 학원은 학업 수준에 따라 반을 4개로 나누는데 입학 시험에 합격했는지, 어느 반에 배정받았는지가 공부 잘하는 아이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학원 입학시험 준비를 위한 학원을 다니거나 심지어는 과외를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경쟁을 없애려는 교육 당국의 의도와 달리 우리 아이들은 오히려 학교 밖 통제하기 어려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경쟁의 장을 학교에서 사교육 영역으로 이동시켜 더 큰 격차와 비용 부담을 낳고 있다.
정말 초등학교는 어떤 경쟁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공간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회에 경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아이들 역시 언젠가 현실의 경쟁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는 아이들이 그 경쟁을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규칙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방법, 승리를 위한 치열한 노력, 지더라도 다시 도전해 보는 경험 등은 경쟁 사회에 나가기 전 학교에서 익혀두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다고 경쟁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쟁을 무조건 배제만 하지 말고 건전한 경쟁을 안전하게, 단계적으로, 공정한 규칙 속에서 경험하게 하자는 것이다. 운동회도 시험도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장치, 비교와 줄 세우기 수단이 아닌 노력과 도전, 성취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교육적 과정으로 설계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는 아이들이 넘어질까 봐 뛰지 못하게 하는 곳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법, 안전하게 넘어지는 법,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뛰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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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석탄 1000t을 삽으로 푸는 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11월 28일은 ‘피아니스트의 영원한 경전’이라 할만한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이 초연된 날이다. 1809년 오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그로부터 딱 100년이 지난 1909년 오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3번 협주곡을 미국에서 초연하기로 했는데, 작곡 후의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연습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약음 키보드로 연습했다고 한다. 마침내 11월 28일, 뉴욕에서 발터 담로쉬(Walter Damrosch)가 지휘하는 뉴욕 심포니 소사이어티와의 협연으로 처음 연주되었고, 몇 주 후에는 구스타프 말러에 의해 두 번째로 연주되었다. 이미 미국에서도 피아노의 거장으로 입소문이 난 라흐마니노프였기에 청중이 몰려들었고,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초연의 성공으로 라흐마니노프에게 공연 계약이 쇄도했고, 보스턴 심포니에서 상임 지휘자 자리까지 제안받게 되었다.
3번 협주곡은 잘 알려진 2번 협주곡을 쓴 지 8년 만에 만든 작품으로 그의 협주곡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곡이다. 피아니스트의 진을 쏙 빼놓는 곡으로 유명한데, 라흐마니노프 스스로 “코끼리를 위해 작곡했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1악장 ‘알레그로’에선 슬라브풍의 멜로디와 카덴차 부분의 가속도가 일품이다. 2악장 ‘인터메초-아다지오’는 동양적인 음색이 매력적이며, 3악장 ‘피날레’는 고난도의 카덴차와 함께 박진감 있는 피아노의 돌진을 맛볼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곡을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에게 헌정했는데, 정작 호프만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한 번도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라는 피아니스트가 나타나기 전까지 라흐마니노프 자신만 연주할 수 있는 곡으로 여겨지던 곡이다.
스코트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에선 이 곡에 대해 “석탄 1000t을 삽으로 푸는 듯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헬프갓은 비범한 음악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을 연주하다가 무대에서 쓰러지고 신경쇠약이 극에 달해 결국 정신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분에 넘치는 영혼을 꿈꾼 죄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요즘은 석탄 1000t을 거뜬히 삽으로 퍼내는 연주자들이 많아졌다. 다닐 트리포노프, 안나 페도로바, 유자왕, 조성진, 손열음, 임윤찬 등이 모두 그런 피아니스트들이다. 2022년 임윤찬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의 영상은 다시 봐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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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영화·영상도시 완성할 국립 영상박물관 물 건너가나
해양수도와 함께 부산의 또 다른 미래상으로 꼽히는 영화·영상도시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사라질 판이 됐다. 4000억 원대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될 관련 국립 시설의 부산 유치가 성사 일보 직전 무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시설 하나의 유치 무산 위기가 뼈아픈 것은 그것이 영화·영상도시 구축의 마지막 퍼즐이어서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정부 부처의 복지부동과 지역 균형발전 철학 외면에다 소극적 대처로 일관한 부산시의 안일함까지 총제적인 난맥상이 고스란히 집합돼 있어서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꼼꼼히 복기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태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부산일보〉 취재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부터 4000억 원대의 예산을 투입해 국립 영상박물관과 영상자료원을 부산에 유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이 방안에 대해서는 문체부가 지난해 유인촌 당시 장관이 부산 북항에 해당 시설 건립을 직접 선언한 이후 부처 차원에서 사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기까지 한 바 있다. 부산시도 이에 따라 해당 시설 건립에 적합한 부지 선정을 위한 용역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초 계획대로였다면 올해 안에 부산 내 건립 부지까지 확정됐을 이 사안은 정권이 바뀌면서 기획재정부가 8월 예산 심사에서 관련 시설 과다를 이유로 예산을 500억 원으로 삭감하면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말았다.
기재부가 관련 예산을 대거 삭감한 것은 이재명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철학을 철저히 무시한 처사다. 이 과정에서 이전 정부부터 영화 관련 기관 부산 집적화를 추진해 온 문체부는 재심 요청도 하지 않고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권 교체기에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양새다. 예산 삭감 이후 해당 시설 건립이 노후 건물 리모델링 방식으로 전환되자 이번에는 부산시가 소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해당 시설이 들어설 2000평대에 이르는 노후 건물을 지역 내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을 사실상 손놓아 버린 것이다. 이러는 사이 경기도 등이 되레 해당 시설 유치를 제안하고 나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창하게 부산국제영화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무현 정권부터 이어져 온 혁신도시 조성 계획에 따라 이미 부산으로 이전해 와 자리를 잡고 있는 기존 영화·영상 인프라와 관련 기관들을 꼽아보면 영화·영상도시가 부산의 미래상인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정권이 관련 기관을 부산에 집적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교통 접근성 등을 감안해 부산 북항에 국립 영상박물관과 영상자료원을 설립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합리적이다. 이 같은 필연과 당연, 합리성을 토대로 한 정당한 업무조차 정부와 부산시가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무책임으로 일관한다면 어느 국민이 공직사회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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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주당 사법개혁안,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부의 인사·행정 등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가 주축이 된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해 그 기능을 대신케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초안을 내놓았다. 사법개혁안이 발표되자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무력화될 수 있는 데다 외풍이 개입할 우려도 크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위헌 소지가 있고, 사법부를 민주당의 성향에 맞춰 길들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의구심마저 자아낸다.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을 저해할 여지도 다분하다. 여당은 사법개혁안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입법 과정에서 법원 내부 의견 등을 듣고 반영하는 등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당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5일 국회에서 입법공청회를 열고 사법개혁안을 공식 발표했다. 공청회에서 여당은 법원행정처 폐지 및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퇴직 대법관의 대법원 처리 사건 수임을 5년간 제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법관 정직 처분의 최대 기간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법관징계위원회도 외부 인사가 과반을 차지하도록 했다. 이번 개혁안은 지난달 27일 TF 구성 이후 약 한 달 만에 구체화됐다. 속전속결로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기저엔 이재명 대통령 재판 재개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어떤 경우에도 법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개혁안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촉발한 것은 사법행정위원회 신설이다. 개혁안에 따르면 13명으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가운데 최대 9명에서 최소 7명 정도가 비법관으로 구성된다. 이 경우엔 판사 인사가 집권 세력에 휘둘릴 수 있다.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개혁의 탈을 쓴 사법부 장악 의도에 불과하다는 격한 반응이다. 이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법원이 마음에 안 든다고 법원을 바꿔 장악하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이번 개혁안은 자칫 정치권이 사법부 인사 통제권을 갖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개연성이 크다. 나름의 명분이 있더라도 국민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꼼수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여당 구상이 헌법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은 제101조 제1항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고, 제104조 제3항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라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청래 여당 대표는 사법개혁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한다. 위헌 논란까지 불거진 사법개혁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개혁안은 조희대 대법원장 및 계엄 사건을 다루는 판사들에겐 모종의 경고로 비칠 수도 있다. 사법부 독립성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일방적이고 위헌적인 개혁은 국민 저항을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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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랑의 온도탑, 올해도 많은 시민들 동참을
매년 겨울이 되면 불을 밝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의 온도탑’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사랑의열매는 매년 12월 1일부터 다음 해 1월 31일까지 62일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희망나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희망나눔 캠페인은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으로 시작한다. 캠페인 기간 동안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는 모두의 관심사다. 100도 달성 여부에 따라 우리 사회 마음의 온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나눔 활동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사랑의 온도탑은 외환 위기의 칼바람으로 우리 사회가 꽁꽁 얼어붙은 2000년 ‘희망2001 나눔캠페인’ 때 처음 등장했다. 모티브가 된 것은 당시 사랑의열매 중앙회에서 일하던 김휘관 과장이 미국공동모금회(United Way)의 모금액을 표시하기 위한 온도계 조형물을 사용하는 데서 착안했다. 당시엔 지금과 달리 대형 온도계 모양으로 제작한 탑 형태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세워졌으며, ‘이웃사랑 체감온도탑’이라 불렀다. 등장과 함께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오늘 사랑의 체감온도는 몇 도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이 연일 쇄도할 정도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 자체가 시민의 참여와 공동체 의식의 척도, 그리고 지역의 나눔 수준을 보여주는 온도계가 된 셈이다.
온도탑은 모금 참여 독려 및 나눔 분위기 조성의 도구로 활용이 되기도 한다. 모금 진행 상황을 시각화함으로써 ‘우리 지역이 얼마나 나누었나’, ‘얼마나 더 나눠야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언론에서 우리 지역 사랑의 온도탑의 현재 온도와 달성 시기 등을 보도함으로써 운동 효과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아울러 기업·단체·개인의 기부 참여가 누적되는 방식이기에, ‘내가 참여하면 온도가 올라간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사랑의 온도탑은 현재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17개 자치단체의 시청 등 주요 장소에 설치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나눔 캠페인 확산에 동참하려는 구·군에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서면교차로에 위치하다 부산역을 거쳐 지금은 송상현광장에 설치되고 있다. 사랑의 온도탑은 나눔 목표액의 1%를 채울 때마다 온도가 1도씩 올라 목표액에 도달하면 100도가 된다. 이 작동 원리를 보고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다음과 같은 글 한 편을 내놨다. 글 제목은 ‘이상한 온도계’이다.
‘이상한 온도계가 있다 / 바람은 자꾸 추워지고 / 길은 얼음으로 위태로운 한겨울에도 / 자꾸만 높은 눈금으로 올라가는 온도계가 있다 / 지하철 매표소와 은행 창구의 모금함마다 / 이웃을 위해 나누는 따듯한 온정이 /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세운 / 사랑의 체감온도탑을 뜨겁게 한다 / 한 번도 신문에 나지 않은 / 저 400만 명의 따뜻한 심장이 뛰고 있기에 / 한겨울 차가운 거리에서도 / 자꾸 높이 오르는 희망의 온도계가 있다.’
이 전 장관의 글에서 보듯 온도탑의 나눔 온도를 올리는 방법은 시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밖에 없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부산사랑의열매는 작년에 이어 올해 12월 1일에도 송상현광장에 ‘희망2026 나눔캠페인’을 위한 사랑의 온도탑을 세울 예정이다. 이번 캠페인 동안 목표액인 108억 6000만 원이 모이게 되면 나눔 온도 100도를 달성하게 된다. 지난해 경우 부산 지역 모금액은 약 134억 7000만 원에 달했고, 나눔 온도는 124도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시민들은 지상파 방송사를 통해 기부 참여가 가능하고. 부산에 있는 모든 주민센터에 이웃돕기 성금 접수 창구가 마련돼 있어 주민센터를 방문해도 참여가 가능하다. 특정 장소를 방문하지 않고 가장 간단하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1통에 3000원을 기부하는 ARS(060-700-0077)를 이용하면 된다. 또한 현금 뿐만 아니라 쌀, 라면과 같이 물품 기부도 가능하기 때문에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부산사랑의열매 사무국(051-790-1400)으로 전화를 해도 된다.
최근 주목할 점은 시민들의 나눔 참여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으로 선행을 베푸는 팬덤 기부로 나눔 온도를 높이기도 하고, 사랑의열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나눔 교육의 일환으로 아나바다를 운영해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또 기념일 기부, 송년회를 대신한 나눔 활동, 기부의 매체를 다각화한 QR코드 기부, 부산시청과 남구청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이용한 기부 등도 늘고 있다. 우리의 작은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으므로 올해도 많은 기업과 시민들이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를 높이는 데 동참해 주길 기대한다.
변현철 문화부 독자여론팀장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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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탈화석연료 위험과 기회
첨단 기술의 총아인 스마트폰은 석유 없이 만들 수 없다. 케이스, 버튼, 내부 절연체 등이 나프타 가공품이라서다. 원유를 정제해서 얻는 나프타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으로 가공되어 합성수지와 합성 섬유·고무의 원료가 된다. 스마트폰 한 대에 들어간 원유는 대략 500mL다. 500mL 페트병 하나에도 40mL 전후 석유가 들어간다. 의류, 타이어, 의료용품 등 우리의 일상은 석유화학의 마법으로 지탱된다. 석탄도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철광석을 녹이려면 1500도 이상 고온이 필수인데 전기로는 안 되고 석탄 가공품인 코크스로만 가능하다. 건설의 필수품 시멘트도 석회석을 석탄이나 중유로 태워야 얻을 수 있다.
전기차는 친환경을 대변하지만, 탄소 발자국 측면에서 보면 족적이 거대하다. 외부 철골 차체는 물론 내부 마감재를 화석연료 없이 만들 방법이 없다. 전기차의 심장 이차전지야말로 석유화학의 결정체다. 배터리 셀 내 분리막, 음극·양극재, 배터리 팩 외장, 절연체는 내열성·내구성·절연성이 뛰어난 특수 플라스틱 덕분에 제 기능을 발휘한다.
교통·발전·난방 등 연소용 연료는 줄이거나 전기·수소·재생에너지로 바꿀 수 있지만 재료로서의 화석연료는 대체 불가능하다. 탄소 중립의 최대 딜레마다. 연료 사용 감소가 온실가스 해법이라는 게 상식이지만 실은 재료까지 대체되는 게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국제사회의 대응은 연료 감축 단계에서 헛돈다. 최근 브라질 벨렝에서 폐막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가 맹탕으로 끝난 게 대표적 사례다. 미국과 러시아, 중동 산유국의 몽니 탓이다. 지구 온도 상승 폭 섭씨 1.5도 이하 억제라는 목표에 ‘이행 가속화’ 조건을 달았지만 2015년 파리기후협약의 재탕이다. 인류는 지난 10년간 가공스러운 기후 재앙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
한국은 이번 COP30에서 탈석탄동맹에 가입했다. 2024년 발전량 비중에서 석탄·LNG(각각 28.1%)가 절반을 넘는 구조에서 석탄 발전을 중단하는 것은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하는 도전이다. 재료로서의 화석연료 탈피는 문명사적 전환이라 시련도 만만치 않다. 바이오 기반 화학, 이산화탄소 기반 합성소재 등 소재·화학 혁명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전환의 기회로 삼는다면 반전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에 맞서 변화를 주도할지 뒤따를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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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사람을 살리는 AI, 죽이는 AI
윤이형의 단편소설집 〈작은 마음 동호회〉에는 ‘수아’라는 SF 단편이 실려 있다. ‘수아’는 수많은 여성형 로봇의 이름이다. 가사를 돕는 지적이고 상냥한 ‘수아-687’은 도서관 사서로 재배정되어 일을 하다가 이용자들의 성적 착취, 혐오, 만연한 차별을 겪고 사라졌다. 이후 ‘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들의 세상을 향한 테러가 시작된다. ‘수아’는 원래 주인이었던 인물에게 다가가 위협하며 “네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봐”라고 말한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존엄을 시험하는 시대에 이 말은 불길한 울림을 남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떠오른 AI는 산업과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을 바꾸고 있다. 최근 등장한 ‘피지컬 AI’처럼 물리적 환경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은 상상 속의 미래가 아니라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는 지금, 기술이 보여주는 놀라운 가능성에 비해 우리가 그것을 다룰 정신적 성숙은 충분히 이루어졌을까? AI기업들이 슬며시 성인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몇 년 전 읽은 '수아'가 떠올랐다.
실제로 AI 성인용 콘텐츠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xAI가 내놓은 챗봇 그록이 ‘스파이시 모드’를 도입했고, 메타의 성인용 대화 기능에 이어 오픈AI는 ‘에로티카’라는 이름의 성인용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오픈AI의 창업자 샘 올트먼은 “우리는 세계의 도덕 경찰이 아니다. 사회가 R등급 영화의 경계를 설정하듯 우리도 비슷하게 하겠다”고 했다. 기업이 성인용 콘텐츠에 진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적 판타지와 감정 노동만큼 상업화하기 쉬운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수익은 우리가 내고, 책임은 사회가 져라”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해외 매체들이 올트먼의 논리를 전통적인 포르노 산업이 사용해온 자유시장주의 논리와 유사하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AI가 특정한 성적 상상력과 역할을 거부감 없이 무한히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청소년이 챗봇과의 성적 대화나 자해 관련 대화 이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플로리다주의 14세 소년이 캐릭터AI 챗봇과 성적 대화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도 16세 청소년이 챗GPT와 자해 대화를 나눈 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유족이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픈AI 자체 통계에서도 매주 약 120만 명이 자살 관련 대화를 나누고, 56만 명이 정신질환 증상을 보였다는 보고가 있다. 취약한 이들이 AI에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문제는 이미 심각한 단계에 와 있다.
한국 사회가 겪는 디지털 성범죄 현실은 또 다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딥페이크 범죄는 제작·유포만큼이나 삭제가 더 큰 문제로 떠오른다. 온라인에 무한 복제되는 피해 영상은 수작업으로 삭제하기 어렵고, 삭제 지원 활동가들은 끊임없는 2차 피해와 심리적 소진에 시달린다. 때문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서는 AI 기반 자동 탐지·삭제 기술을 도입하며 대응력을 높이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기술이 폭력을 만든 시대에, 폭력을 막는 데도 기술이 필요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현재까지 다른 글로벌 AI 기업들은 성인용 콘텐츠에 명확한 제한을 두고 있다. 구글 제미나이는 노골적 성적 행위나 성폭력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며, 미성년자를 위한 필터 모드에서는 유해한 역할극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역시 성적으로 부적절한 대화가 반복되면 자동 종료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기술의 윤리적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결국 사회적 책임의 문제다. 여기에는 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
AI라는 도구를 이용해 사람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시대는, AI가 폭력을 배우는 시대이기도 하다. 기술이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동시에, 상상 이상의 위험을 드러내는 지금, 우리는 어떤 윤리로 이 도구를 다룰 것인가. AI가 사람을 해치는 기술이 될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될지는 결국 사람인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적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기술이 돈벌이에 이용되는 순간, 특정 성을 향한 폭력은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AI가 구현하는 세계는 결국 우리가 만든 세계의 조합이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사회라면, AI 역시 인간을 닮아 그 폭력을 되풀이할 것이다.
11월 25일부터 시작된 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현재의 기술은 어떤 세상을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사람인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적 대상화가 남아 있는 한, AI 역시 그 폭력을 학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사람다움’을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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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먼저 보는 만큼 성장하는 우주항공
우주와 하늘은 그 자체가 거대한 담론이며, 국가 차원의 지리·정치·경제적 전략이 있어야 한다. 20세기 초 최초 동력 비행을 시작으로 인간의 시선이 하늘과 우주로 향하게 된 것이 지리적 관점의 결과라면, 우주항공 산업을 국가의 주력 산업으로 삼는 것은 정치·경제적 전략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지리·정치·경제적 기반의 사고 전환은 학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패러다임 전환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A+B+C=0이라는 평범한 방정식을 A+B=(-)C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난제 해결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세 항 중에서 C 항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우주항공을 국가의 미래 주력 성장 동력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 속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지리·정치·경제적 시야가 중요하다. 미국에 매년 약 300조 원의 경제적 이익과 330만 개의 일자리를 가져다주는 위성 기반 GPS도 지리적 시야에서 시작하였다. 미 해군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선박과 잠수함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성에서 시작되었는데, 근해 바다를 넘어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차대전 후, 프랑스가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툴루즈를, 중국이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실크로드의 시작점인 서부 시안을 우주항공 중심 도시로 삼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작년에 경남 사천에 설립된 우주항공청과 곧 부산으로 이전하는 해양수산부를 국가 우주항공·해양의 중심축으로 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지리적 이점에 대한 과신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프랑스 툴루즈 남쪽에는 우주항공이 주력 산업인 스페인이 위치하여 협력에 유리하지만, 우리의 남쪽은 바다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먼저 보고, 선점하고, 하면서 배우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우주항공 시스템은 워낙 복잡하므로 모든 것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핵심 사안이 해결되면 먼저 비행을 시작하고 도전해야 한다. 시애틀의 보잉과 같은 글로벌 우주항공 기업들이 수년간의 비행 시험이 가능한 비행장 근처에 있는 이유이다. KAI와 KASA가 사천에 자리 잡게 된 주된 이유도 비행장과 접근이 용이한 수송 인프라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작년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제정하고 ‘우주항공 2045 비전’을 발표하였다. 누리호 4차 발사가 새로운 임무 수행을 위해 곧 전남 고흥에서 새벽에 실시될 예정이다. 지금은 점유율이 낮지만, 우주항공의 속성과 특성을 잘 이해하고 추진한다면, 20년 후 세계 우주항공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국가 주력 산업으로 성장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현재 우주항공을 주도하는 미국도 2000년대에 대형 발사체가 부족하여 경쟁국이었던 러시아로부터 발사체를 구매하는 협상을 해야 하는 굴욕스러운 상황을 당한 적이 있다. 이를 타개한 이들이 바로 30대 초반의 ‘화성 마니아’ 일론 머스크와 NASA 국장 재직 시 기존 ‘우주법’을 민간 주도 중심으로 혁신한 마이크 그리핀 박사이다. 이 두 사람의 불굴의 의지와 비전 덕택에 20년 후 스페이스-X는 등유 연료를 사용하는 팰컨 9 로켓 1단 부스터의 31회 재사용 기록과 8800기가 넘는 스타링크 위성 구축이라는 드라마와 같은 반전을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지방 소멸과 미래 먹거리 동력 부족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0년 후 우주항공을 주도할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할 때이다. 한국형 GPS를 독자로 개발하는 노력과 함께 항공과 우주 경계에서 움직이는 초저궤도 위성 비행체를 개발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인간성의 정수를 보여주는 우주탐험도 이미 알려진 임무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시도되지 않은 영역을 탐험하는 세계 최초, 최고의 탐사를 목표로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주항공 산업의 국가 산업 주력화를 위해서는 세계 민간 항공기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이 시장에서는 기술력에 앞서 수요 창출과 안전성 입증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만들려면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하므로, 바다 건너 지리·정치·경제적 전략 관계가 있는 국가들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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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이젠 그리움이 된 눈 오는 시골 정취
한겨울 정취가 그리운 시절이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정취는 상상 아니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어스름한 저녁 굵은 눈발이 날려 몇 채밖에 없는 초가집 지붕을 덮고 앞마당에서 촌부가 두엄을 뒤적일 때 강아지 한 마리가 촐랑거리는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림이 있다.
이런 시골 정경을 한국적인 대표적인 이미지로 만든 작가는 유천 김화경이다. 그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이당 김은호의 화실에 들어가 동양화를 배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했지만, 이내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온다. 해방 이후에는 천안 등지에서 미술 교사로 지내며 이당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60년께 서울에 상경해 2002년 5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도여자사범대(현재 세종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의 화풍은 서울로 올라온 시기부터 문인화법과 채색화법을 병행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 61년 4·19와 5·16이라는 큰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당시 미술계도 변화를 요구받고 또 변화하려고도 노력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김화경은 이당에게 배운 채색화법과 전통적인 수묵화법을 혼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법을 시도했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술 교과서에 실려 한국의 정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양화로 꼽혔다. 하지만 생을 일찍 마치는 바람에 그의 작품에서 창작적 변화를 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화경의 대표작 중 하나가 동양화치곤 꽤 큰 작품인 ‘천산비설도’이다. 화제가 대부분 없는 그의 작품과 달리 이 작품에는 긴 화제가 쓰여 있는데, 초가 마을이 이루는 정취와 글씨가 만드는 분위기가 제법 어울린다. 제호는 ‘하늘에 흩날리는 눈 그림’ 정도가 될 것이고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옛 문인들이 눈 오는 경치를 그려 속세를 떠난 고고한 마음을 표현하려 했는데 매번 이를 따르고 싶었으나 부족함만 느꼈다. 우연히 옛사람들의 흔적이 남은 촌락을 그리던 중 눈이 몇 척이나 내렸다. 종이를 꺼내 도상을 탐구하다 흥이나 붓을 적셔 촌락에 쌓인 눈을 그렸으나 일시에 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다시 그렸다. 붓 쓰기는 졸렬하여 선인들의 만분의 일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정결한 그 뜻은 마땅히 덜어지지 않는다. 신해년(1971) 시월 상순 유천이 그리고, 청사(안광석)가 제목을 달고 시를 지었다.’
올겨울은 초가집은 몰라도 흩날리는 눈이라도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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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후 문 열어두기 부담스럽다면… 환풍기 켜두세요 [궁물받는다]
샤워 후 뿌연 수증기와 집 안에 은근히 퍼지는 음식 냄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담배 냄새까지…. 일상 속 ‘공기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쉽게 찾는 도구는 바로 환풍기입니다. 하지만 막상 켜두고 있으면 “실제로 효과가 있긴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집 구조나 생활 패턴에 따라 문을 닫고 환풍기만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요. 생활 속 환풍기의 실제 효과에 대해 환기가전 전문기업 힘펠에 문의해 봤습니다.
- 샤워 후 환풍기 사용, 내부 습기 제어에 도움이 되나?
“습기 제거와 냄새 제거 모두에 효과적이다. 환풍기는 실내 공기와 수증기를 외부로 배출해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일정 수준의 제습이 가능하고, 곰팡이·습한 공기·배변 등으로 인한 불쾌한 냄새도 외부로 배출한다. 특히 화장실은 바닥, 벽면 등에 수분이 남아 곰팡이가 생기기 쉬워 샤워 후 환풍기를 일정 시간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샤워 후 축축해진 화장실을 빠르게 말리기 위해 온풍·건조 기능이 결합된 ‘욕실 복합 환풍기’를 설치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바람 온도, 타이머 설정 기능이 포함된 제품도 있다.”
- 다른 집의 담배 냄새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환풍기를 계속 켜두면 도움이 될까.
“화장실 배관은 여러 세대가 연결돼 있어 외부 냄새가 유입되기 쉽다. 배관이 오래됐거나 틈이 있는 경우, 또는 냄새가 강하게 유입되는 구조라면 환풍기만으로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정기적인 배관 점검과 환풍기 성능 점검, 교체 등이 진행돼야 한다. 이중으로 외부의 오염 요인을 방어하는 전동 댐퍼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사용하면 다른 집에서 올라오는 담배, 곰팡이 냄새 등이 화장실 내부로 역류하여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주방 후드가 집 안의 냄새 제거에도 도움이 되는지.
“주방 후드는 조리 중 눈에 보이는 연기(유증기)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같은 유해가스와 음식 냄새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연기 제거에는 빠른 효과가 나타나고, 일정 시간 사용하면 냄새도 배출된다. ‘요리가 끝난 후 5~10분’이 골든타임인데, 조리가 끝났다고 바로 끄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잔류 유해가스가 실내에 남을 수 있어 일정 시간 추가로 작동 시키는 것이 좋다. 힘펠 주방 후드 제품의 경우 '포스트 퍼지' 기능이 있어 전원을 끈 후에도 약 30초간 더 작동돼 연기뿐 아니라 음식 냄새와 조리 후 잔류 유해가스까지 효과적으로 배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방을 포함해 내부 공간 환기가 필요할 때에도 주방 후드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 환기 가전의 사용 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화장실을 집중적으로 환기하고 싶을 때는 해당 공간의 문을 닫고 환풍기를 작동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샤워 후에는 30분 이상, 조리 후에는 5~10분 정도 환풍기를 더 작동시켜 내부 공기가 완전히 순환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야 잔여 습기나 냄새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환풍기 필터나 팬에 먼지가 쌓이면 공기 흡입 및 배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청소하거나 필터 교체 등 장치 점검 등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집 내부 공간의 환기 시에는 필요에 따라 창문을 함께 열어 자연환기, 기계환기를 함께 진행하면 공기 순환이 더욱 원활해져 환기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외부의 미세먼지 농도가 낮을 때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창문을 열고 환풍기와 함께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 환풍기 관련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면.
“환풍기는 집 내부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설비, 장치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환풍기도 소모품으로 교체가 필요하며, 청소·관리가 없으면 기능이 저하된다. 장기간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터 관리, 댐퍼 틈새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유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냄새 배출과 습기 제거 성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역류가 더 빈번해지고 곰팡이 냄새가 날 수 있다. 특히 환풍기는 작동시킨 후 바로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공기를 배기시키는 장치이므로 일정 시간의 누적 작동이 필요하다. 또 배관 길이, 굽이 수, 외부 풍압, 건물 구조 등 설치 환경에 따라 실제 배출량이 달라질 수 있다.”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게시판에서 봤던 재미있는 가설들이나 믿기 어려운 루머들을 댓글이나 메일(zoohihi@busan.com)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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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실버 라운드’, 스마트 스윙으로 시작하자
부산은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난해 기준 부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약 23%다. 거의 4명 중 1명이 노인이다. 특히 영도구와 서구 등 원도심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돼 도시 활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노년층 건강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전략적 복지 설계가 시급하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어르신 건강을 지키면서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는 스마트 복지 모델을 구축하면 부산은 전국이 주목하는 고령친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핵심은 파크골프다. 저렴하고 접근성 좋은 생활체육인 파크골프는 60대 이상이 주로 즐기며 건강 복지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부산은 지형과 날씨 때문에 야외 운동시설 접근성이 낮다. 이를 해결할 전천후 실내 스포츠, 스크린 파크골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유휴 공간을 활용해 설치가 경제적이고, 세대 간 교류와 디지털 학습까지 가능하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부산시는 올해 사회복지시설 유휴 공간 활용 공모사업을 통해 몰운대·해운대 종합사회복지관과 남구장애인복지관 3곳을 선정했다. 이들 시설은 이미 스크린파크골프장을 열고 주민 대상 교육·동아리, 건강관리 프로그램, 장애인 친화형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해운대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달 21일 '해운대 스크린파크골프센터'(3타석)를, 남구장애인복지관은 지난달 17일 장애인 친화형 골프장(2타석)을 열었다.
다른 지방 사례도 찾을 수 있다. 경남 하동군은 전통시장 빈 점포를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바꿔 방문객을 30% 이상 늘렸고, 충북 제천시는 공실을 생활체육 거점으로 전환해 하루 100명이 찾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강원 화천군은 파크골프 인프라 하나로 연간 30만 명 방문객을 유치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했다. 복지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다.
부산 원도심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공실 점포, 복지관과 주민센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 어르신 건강, 지역 상권 회복, 커뮤니티 재생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일석삼조 효과다. 부산시는 '언제나 편안하고 활기찬 노인 행복도시 부산'을 비전으로 설정했다. 민·관 협력을 통해 세대 통합형 고령친화 도시 조성에 나섰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노인 인식 개선과 세대 간 화합을 위해 민·관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스크린 파크골프와 같은 스마트 체육 인프라를 결합하면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어르신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부산이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체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세대와 세대가 교차하며 활력을 나누는 부산형 실버 라운드가 필요하다. 유휴 공간을 활용한 스크린 파크골프 보급은 그 출발점이며, 부산이 준비해야 할 스마트 스윙, 미래 복지의 첫 티샷이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 이 문장은 어르신의 행복한 한 번의 스윙에서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