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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민이 건강한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다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더 오래 살거나 일찍 죽는 것이 결정된다면 정상적인 공동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부산은 너무나 오랫동안 ‘단명 도시’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통계상으로 7대 대도시 중 사망률 1위, 기대수명 7위로 꼴찌 수준이다. 〈부산일보〉가 건강사회복지연대와 함께 1985년부터 2024년까지 통계청 생명표를 분석한 결과, 부산과 서울의 기대수명 차이는 40년째 2.5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부산 시내 생활 권역별 수명 격차가 최대 6세까지 벌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건강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마을사업이나 마을건강센터 운영 등으로 노력했는데도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셈이다.
부산 시내에서 점차 커지는 건강 양극화는 고령화나 소득 수준 범주를 벗어난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시내를 62개 생활권으로 나눠서 2020~2024년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결과, 해운대구 반송석대와 우동의 차이는 최대 6세까지 벌어졌다. 서구의 아미충무 생활권은 2010~2014년 81.39세였던 기대수명이 2020~2024년 80.60세로 하락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시대에 되레 단명으로 역행하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미충무권에서 고위험 음주율과 흡연율이 낮아졌고, 걷기 실천율도 평균을 상회한 점에서 저소득 고령 1인 가구 밀집 지역의 열악한 거주 여건 등에서 수명 단축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미충무와 반송석대 같은 취약 생활권은 40대부터 사망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60대에 이르면 비교 지역보다 네 배가량 높은 초과 사망률을 보였다. 이는 수명 격차가 단순히 고령화 때문만은 아니며, 젊은 연령대부터 누적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소득 수준과 경제적 여건이 건강 지표와 연관성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영구임대주택 밀집지, 고지대 산복도로, 기초수급자 비율이 높은 지역과 신도시와 전통적 부촌의 지표는 대비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강 불평등은 경제적 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 지표를 높이려는 공공의료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개인의 책임을 넘어선 사회적 구조 문제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다.
부산의 기대수명이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한 지 오래다. 게다가 도시 내 거주지에 따른 수명 격차도 커지고 있다. 우선 그간의 건강 정책에 허점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의료 접근성 향상, 건강 거버넌스 구축, 생활 기반 인프라 정비 사업에서 어떤 한계점이 있었기에 ‘건강 최악 도시’에서 탈피하지 못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1인 가구의 증가 등 변화된 조건에 적합한 건강 돌봄 모델이나 지역 커뮤니티 회복 또한 필요하다면 적극 추진해야 한다. 건강 지표가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함께 잘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이다.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일은 지역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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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인기 북한 침공' 논란 한반도 안보 위기 고조 안 된다
북한이 한국의 무인기 침투를 주장하며 한반도 안보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은 한국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인기 도발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 여부도 없이 무조건 우리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더욱이 북한은 2022년 무인기를 보내 우리 영공을 침범한 전력이 있다. 그동안 북한의 주장엔 항상 자신들의 입지 강화 등의 노림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주장을 방치할 경우 한반도 안보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북한의 주장에 대한 진상을 정확하게 규명, 한반도 긴장 완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9일 ‘한국 무인기가 주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변인은 지난 4일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공중목표를 포착해 개성시 개풍구역 묵산리에 강제 추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9월에도 한국 무인기를 개성시 장풍군에 추락시켰다고 밝혔다. 북한은 무인기들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남쪽 지역에서 이륙했다는 점 등을 들어 우리 군을 배후로 단정했다. 국방부는 무인기를 침투시켰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남북 공동조사를 제의했다. 원칙적이고 바람직한 대응이다. 북한이 공동조사에 참여해 이번 논란을 빠르게 매듭짓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합당하다.
이번 무인기 논란은 북한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있지만 민간 소행일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민간의 무인기 운용 가능성에 대해 신속·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무인기 침투가 민간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 군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군이 민간의 무인기 활동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안보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나 다름 없다. 북한과의 접경 지역에서의 민간 무인기 도발 가능성 여부 등을 파악해 원천 봉쇄하는 것이 시급하다. 북한의 상시적인 무인기 위협에 대한 감시·정찰 요격시스템 등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업그레이드도 필요하다.
특히 북한의 ‘무인기 성명’이 한중 정상회담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 북한의 이번 무인기 침투 주장은 안보 불안감을 키운다. 이번 논란을 감안할 때 섣부른 남북대화 추진 대신 신중한 분석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뜩이나 중일 센카쿠 열도 갈등 등으로 국제 정세는 불안하다. 정치권도 이번 무인기 논란을 두고 불필요한 정쟁을 자제하는 모습이 요구된다. 남북이 더 이상 무인기 공방과 논란으로 갈등을 키우지 않길 바란다. 발 빠른 조사와 신속한 결과 공개가 필요하다. 지금은 굳건한 안보 의지를 바탕으로 남북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쌓는 실질적인 조치와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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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CES 2026이 국내 제조업에 던진 숙제
‘CES 2026’도 눈부신 첨단 기술의 향연을 풀어냈다. 빅테크들이 제시한 일상으로 깊숙히 들어온 인공지능(AI) 기술에 감탄하는 한편으론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 약진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제조업과 AI 간에 산업 경계를 넘어 진행되는 결합 시도들이었다.
세계 AI 산업을 이끄는 혁신 기업인이 한국 조선기업의 변화를 언급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번 CES 기조연설을 맡은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한국 HD현대의 디지털 트윈 기반 조선소를 호평한 것이다. 전통 제조업이자 동남권 산업 주축인 조선업이 AI 기술 기반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엔비디아와 여러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 사례 가운데 HD현대를 콕 집어 “우리가 협력해 온 디지털 트윈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고 극찬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기술이 아닌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공개로 피지컬 AI 사업 청사진을 제시하는 ‘변신’을 선보였다. 키 190cm, 몸무게 90kg의 아틀라스가 56개 관절을 360도 회전하며 부품을 옮기고 자연스럽게 작업대 사이를 오가는 장면에서 머지않은 시기에 숙련공을 뛰어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을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대차는 그 시점을 2년 후라고 못박았다.
AI 기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 시점에 한국 제조업에 주목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세계인이 글로벌 빅테크들이 선보이는 첨단 AI 기술에 홀려 있는 사이 그들은 실험실 속 AI를 구현할 현장이자 학습의 최적지로 한국 제조업을 지목한 것이다. 한때 국가 위기의 대상으로 지목되던 우리 제조업이 화려한 부활 기회를 맞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제조업 중심인 부산·울산·경남 기업에도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CES는 AI 혁신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국내 제조 기업들이 고민해 온 결과물을 풀어놓은 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구, 뷰티, 장난감, 주방기기 등 그동안 AI와 거리가 멀 것 같던 소비재 기업들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됐다. AI 기반 분석 기술을 중심으로 맞춤형 케어 설루션을 선보인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이나 전자 피부(e-skin) 기반 기술로 단순 미용을 넘어 새로운 영역 확장에 나선 한국콜마 같은 기업의 행보는 이른바 ‘B뷰티’ 산업을 꿈꾸는 지역 화장품 업계도 눈여겨봐야할 움직임이다.
‘제조업 르네상스’가 예고된 상황에서 다시 우리 제조업, 특히 부울경은 어떤 준비를 해왔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부울경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CES에도 지역 혁신기업들과 손잡고 별도 전시관을 마련했다. 부산은 전년보다 확대된 30개 전시부스를 갖춘 통합부산관을 갖추고 박형준 부산시장이 직접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참여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했다. 부울경의 여러 기업이 올해의 최고혁신상 또는 혁신상을 수상하는 성과도 냈다.
문제는 CES의 화려한 쇼 뒤에 가려진 부울경 제조기업들의 곤궁한 처지다. 국내 대·중견기업은 인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연합이나 새로운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에 AI 전환은 ‘필요는 알지만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일’이다. 정부 지원을 받거나 간혹 운이 좋아 대기업 낙점을 받은 경우에만 AI 전환이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이참에 몇몇 기업 지원기관과 단체에 지역 기업 AI 전환 상황을 문의했더니 개별 기업의 AI 도입 여부는 통계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국내 중소기업의 스마트 공장 도입은 적극적인 정부 지원으로 가속화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고도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경남과 부산은 스마트 공장 구축이 빠른 편이지만 AI를 실행할 ‘고도화 단계’에 이른 경우는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데이터와 전문 인력,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만이 가진 자산인 다양한 제조 기업 현장을 찾아 먼저 다가서는 이때, 산업 현장에서의 부족함을 채울 주체는 국가 말고는 없어 보인다. 제조업 현장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공동 제조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기업이 확보한 AI 노하우가 중소기업으로 흐르는 통로를 내는 일들이 국가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일상과 전 영역의 산업 현장에서 AI 기술을 얼마나 빨리 수용하고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제조업 르네상스는 결국 현장의 작은 변화까지 이끌어내야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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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윤 전 대통령과 장 대표의 사과
“과연 대통령께서 무엇에 대해서 사과를 했는지 국민은 어리둥절할 것 같습니다.”
2024년 11월 당시 지지율 하락세를 겪고 있던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고 김건희 여사 등을 둘러싼 스캔들, 총선 패배, 정책 실패 등에 사과했으나 〈부산일보〉 기자로부터 돌아온 답이다.
지난 7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며 12·3 비상계엄 1년을 훌쩍 넘긴 시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라도 큰 결단을 내린 점에 대해서는 높게 사지만 지금으로부터 14개월 전 윤 전 대통령이 오버랩되는 것은 기자의 기분 탓일까.
그동안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결단(?)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난해 10월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대통령은) 힘든 상황에서도 성경 말씀과 기도로 단단히 무장하고 계셨다”며 “우리도 하나로 뭉쳐 싸우자”고 강조했다. 또한 비상계엄 1년을 맞은 지난달 3일에는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고 당위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상계엄에 대한 확고한 자신만의 신념을 드러내 온 장 대표였기에 그가 쇄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을 때 국민의힘을 응원하는, 대한민국의 보수를 지지하는 많은 이들은 ‘정치인 장동혁’의 결단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날 장 대표의 사과는 2024년 12월 3일, 그 날에 그쳤다. 계엄 자체에 대한 사과만 있었을 뿐 수많은 지지자들과 국민을 실망시켰던 ‘정치인 장동혁’과 ‘국민의힘 당대표’, 본인의 과오와 관련한 말은 없었다.
2024년 총선에서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입법 권력을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은 2025년 대선까지 승리하며 행정 권력까지 소유하게 됐다. 이제는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지방 권력까지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김병기, 강선우 의원의 논란에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굳건하기만 하며, 여당의 각종 헛발질에도 ‘여당 견제론’보다는 ‘정부 안정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기에는 국민의힘 역할이 톡톡했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중론이다. 이는 일반 국민들은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주장으로 보인다. 장 대표의 사과 자체를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다. 다만 국민의힘이 다시 건강한 정당으로 태어나기 위해 본 기자는 지금으로부터 1년 2개월 전 당시 〈부산일보〉가 윤 대통령에게 했던 질문을 이번엔 장 대표에게 하고자 한다. “과연 장 대표가 무엇에 대해서 사과를 했는지 국민은 어리둥절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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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산복도로 계획도
부산 중구 영주동과 대청동 사이에 영선(營繕)고개가 있다. ‘영선’(營繕)은 ‘집을 짓거나 수리한다’는 뜻으로 신선을 뜻하는 영도구 ‘영선’(瀛仙)과는 다르다. 중구 영선고개는 동래부사 행렬을 그린 18세기 그림에 나온다. 1670년 무렵 동구 수정동에 있었던 ‘고관’으로 불리던 왜관은 용두산 일대로 옮겨 가게 됐다. 집채 기둥, 지붕, 짐을 용두산 왜관으로 옮기려는데 영선산이 가로막으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급히 산길을 내기 위해 나무를 베었고, 괜찮은 나무는 왜관 신축건물 자재로 썼다. 영선고개는 조선 시대 동래에서 왜관으로 가는 국제 교류를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고 한다. 350여 년의 역사를 품은 옛길인 영선고개는 오늘날 ‘부산 산복도로의 토대’가 되었던 셈이다.
산복도로는 ‘산의 배(腹)를 연결한 도로’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과 부산의 산업화라는 근현대사 질곡을 담고 있다. 산복도로 주변 산동네는 일제강점기 1910~1930년대 부두와 방직 노동자들의 거주지였고, 1945년 해방 후에는 귀환 동포들이 정착했던 곳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했고, 1960~1970년대 산업화 시절엔 부산으로 몰려든 이주민들이 터를 잡았다. 1964년 10월 20일 부산의 첫 산복도로 ‘망양로’가 개통했다. 1967년 동구 수정동 방면으로 500m가량 연장됐고, 1971년 3월까지 연장 공사가 진행돼 지금의 동구 범천교차로에서 서구 서대신교차로까지 길이 8.9㎞의 모습을 갖췄다. 현재 부산의 산복도로 길이는 30㎞가 넘는다고 한다. 부산진구·동구·중구·서구·사하구·사상구·영도구 등 산지를 따라 조성돼 있다.
일제가 1937년 부산에 최초로 수립한 도시계획인 부산도시계획도면이 최근 복원됐다고 한다. 근대도시 부산의 초기 구상을 담은 평면도에는 북항 매립, 택지, 주요 교차로와 터널, 현재의 산복도로와 유사한 도로 계획 흔적이 나온다. 특히 범일·수정동 경계부에서 시작해 대청공원(현 중앙공원)을 거쳐 대신동에 이르는 산복도로가 계획됐음을 보여준다. 부산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 산복도로는 역사적, 지역적, 생활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요즘은 K컬처 영향으로 부산의 산복도로와 원도심 등 역사성을 품은 장소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영선고개가 국제 교류의 물꼬를 튼 길이었던 만큼, 산복도로가 350여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역사적 명맥을 이어갈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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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수부 부산 이전과 해양 정책의 새로운 지평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개최된 제55회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이전을 국토의 균형적 발전과 부산 도약의 중대한 계기로 평가하였다. 대통령은 부산을, 대한민국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제·산업·물류 중심 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 재정과 행정 등 모든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항만 시설을 확충하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제공 및 지역 산업 성장 지원을 통해 부산과 동남권을 북극항로 시대를 이끄는 주역으로 만들겠다며 범정부 차원의 역량을 총집중할 것을 선언하였다.
역사는 바다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는 일본의 조선 침탈을 좌절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일본에 침탈당한 배경에는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 일본이 승리하며 한반도 주변의 제해권을 장악한 사실이 있다. 한반도 주변 해역의 제해권 상실은 열강 간 균형을 무너뜨렸고, 결국 일본의 한반도 지배로 이어졌다. 일본의 제해권 장악은 대만과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만약 일본이 한반도 주변 해역의 제해권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청·러시아·일본 간 삼국의 균형이 쉽게 깨지지 않았을 것이며, 이는 당시 조선에 또 다른 기회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단순히 이야기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 있어 바다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다. 현재에 있어 이러한 중요성은 한반도 삼면에 인접한 근해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부산은 동북아시아 밖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적합한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정부에서 부산을 기점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국가 중요 정책으로 수립한 데에는 이러한 전략적 이점이 반영되어 있다.
지구에서 바다는 육지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어느 나라의 관할권에도 속하지 않는 공해와 심해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공해는 전체 해양 면적의 약 64%를 차지한다. 이러한 사실은 해양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우리의 시야를 보다 넓힐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북극항로 개척이라는 해양 정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계기로 이제 우리나라의 해양 정책 지평을 공해와 심해저로 확장하는 것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대양에 대한 우리나라의 비전과 정책 수립 고민이 절실하다. 그 넓은 공간과 미지의 자원을 현재의 국제해양법 질서에 맞추어,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할 것인지, 그리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담보하기 위한 해양 환경 보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략적이며 체계적인 국가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해양 개발과 이용에 치우친 정책이 아니라, 해양 생태계 기반의 해양 환경 보전을 전제로 하는 지속 가능한 이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의 해양 과학 기술 경쟁력이 뒷받침된 균형 잡힌 보전과 개발 정책이 요구된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우리나라 해양 정책의 중요성과 바다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이 추진하고자 하는 국가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한 물리적 시설 확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관련 국가와 갈등, 그리고 갈등으로 인한 분쟁 해결을 위한 외교적·규범적 대응을 포함한 다각적인 차원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북극항로의 경우 북극항로를 둘러싼 러시아의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에 대한 유엔해양법협약상 관할권 행사,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 전략과의 경쟁 등 복잡한 국제법과 외교 및 정치적 변수들이 존재한다.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물류 중심 도시 발전을 위한 항만 시설 확충, 고부가가치 서비스 제공, 지역 산업 성장 지원은 우리나라 해양 정책의 추진·발전·확장을 위한 바탕이다. 이러한 안정적 기반을 토대로 드넓은 대양의 지속 가능한 이용과 해양 환경 보전에 있어 우리나라가 추구하여야 할 목표와 방향성을 포함하여 다각적인 요소를 고려한 국가의 장기적 대양 정책 수립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삼면이 바다라는 점을 강점으로 배웠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정책이 국가의 중요 정책으로 수립되고 추진된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 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해수부의 업무 특성상 해상 교통과 물류, 해양 환경 보호, 수산자원의 개발과 이용, 해양 외교 등 다기능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1차관을 두고 있는 현재 해수부 조직으로는 이러한 역할에 한계를 가질 것이다. 부산 이전을 계기로 다기능적 역할 수행이 가능한 조직으로 확대 개편해야 본격적인 해양수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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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빛과 어둠
새해의 분위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나는 요즘 ‘어둠’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빛이 사라진 시간에 대해서, 혹은 의도적으로 빛을 제거한 상황에 대해서. 그 생각은 여행 중에 경험했던 체험형 전시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빛을 낼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입구 사물함에 맡겨둔 채 지팡이 하나에만 의존해 완전한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두운 공간 어디라도 미량의 빛은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간이 지나면 공간의 형태나 사물의 모습이 대략 분간되기 마련인데, 그곳은 내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완벽한 암흑 속이었다. 길을 안내해주는 가이드가 있었지만 그의 설명만 듣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도 막막해서 발걸음이 자꾸 멈칫거렸다. 시각적 정보가 차단되니 시간도 공간도 모두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나에게 익숙했던 빛의 세계가 해체되고 모든 것이 모호해졌다. 그런데 그 상황에 조금씩 적응이 되자 두려움과 막막함이 점차 사라지고 다른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가며,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손가락 끝으로 만져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낯선 사물의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도 여행지의 풍경을 충분히 누리고 기억할 수 있음을, 오히려 더 집중하고 깊이 느낄 수 있음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100분 동안의 전시 체험이 끝날 무렵 가이드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그곳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각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던 내가 오히려 문제였다. 그곳은 빛이 없는 세계였고, 그 세계에서 그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었다. 다양한 감각들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세계를 지각할 줄 아는 유능한 사람이었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최근에 김숨 작가의 〈무지개 눈〉이라는 연작소설집을 읽다보니, 어둠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리고 모든 감각과 온 마음을 다해 대상에 다가갈 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무지개 눈〉은 시각장애인 다섯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선천성 전맹, 후천적 시력 상실, 저시력 장애 등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세계를 체험하는 방식을 다양한 문학적 형식으로 보여준다. 파도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서 인식하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손끝의 감각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사람, 저시력 장애로 인해 한 번에 한 글자밖에 읽지 못하고 읽는 속도가 무척 더디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문장을 읽을 때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는 사람.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삶을 결핍이라 규정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편협한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보편적이라고 믿어온 인식의 체계는 그저 편파적인 하나의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각적 이미지와 단편적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이미지와 정보들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쉽게 판단하고 모든 것을 너무도 빠르게 확신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것처럼 ‘윤리는 확실성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전시장의 암흑 속에서 나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모호함과 막막함과 불확실성을 견디며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감각하려는 태도야말로 인간을 윤리적이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는 어둠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자주 생각하며,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구석구석 만져보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겠다. 그 무엇도 섣불리 확신하지 않고, 느리게 걷고 천천히 감각하며, 오래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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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이 외국인 유학생을 동반자로 맞이하려면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 해답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외국인 유학생을 지역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정주 유도 정책이다. 지역을 살리는 인재,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서 맞이하겠다는 뜻이다. 부산시는 ‘스터디 부산 30K(Study Busan 30K)’라는 비전 아래 2028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3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부산대학교는 라이즈(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를 기반으로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학업과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며 지역 발전의 든든한 동반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생활, 진로, 문화적 통합을 포괄하는 실질적 정주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이 부산으로, 부산대로 오는 것만으로 정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주는 경험에서 비롯되고, 그 경험은 사람 간의 태도와 관계 속에서 쌓인다.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회의 자세와 포용이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개념이 바로 ‘암묵적 차별’이다. 이는 의도적인 배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배제나 미묘한 신호로 나타나는 차별을 뜻한다. 예를 들어 토론에서 발언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거나, 대화 중 눈맞춤이 적고 사무적 응대만 이어질 때,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당사자에게는 배제의 신호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차별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멤피스대학교 크리스틴 P 존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암묵적 차별의 경험은 노골적인 차별보다 더 깊은 악영향을 미친다. 노골적인 차별은 가해자의 의도가 분명해 상대의 잘못임을 인식할 수 있지만, 암묵적 차별은 그렇지 않다. 은연중에 무시나 배제를 암시하는 태도를 마주하면, 사람은 그것이 차별인지 아니면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인지 끝없이 의심하게 된다. 미국 라이스대학교 미키 헤블 교수는 이러한 모호한 차별이 인지적 스트레스를 유발해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학업과 성장에 써야 할 인지 자원이 차별의 의미를 해석하고 감내하는 데 낭비되는 셈이다.
즉, 암묵적 차별은 단순히 불쾌함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을 지속 가능한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역량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위험 요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식 개선에 그쳐서는 안 된다. 라이스대학교 이든 킹 교수는 차별 완화를 위해 구체적 행동 변화가 필요하며, 타인의 경험을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공감 기반 접근과 차이를 인정하는 접근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조직 차원에서는 다양성 친화 목표를 설정해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노력과 함께 변화는 결국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시작된다. 대학에서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먼저 말을 거는 동료, 어색한 한국어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교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는 조교의 태도 등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유학생에게 정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이런 사소한 배려는 단순한 친절을 넘어,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이곳의 구성원이라 느끼게 하는 힘이 된다. 누군가의 미소, 따뜻한 인사, 짧은 대화의 순간들이 쌓여 낯선 곳을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으로 바꾼다.
우리는 이제 외국인을 정책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갈 사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캠퍼스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같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공동체, 내 삶에 의미를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그런 미래를 부산에서, 대한민국에서 그릴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주 유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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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로운 시즌 시작, 지속 가능 패션 설계하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패션산업에는 또 하나의 시즌이 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컬렉션이 바뀌고, 쇼윈도의 풍경이 달라지듯, 연초는 기업이 새로운 방향과 전략을 점검하고 올해 목표를 구체화하는 시기다. 해가 바뀌는 순간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옷을 만들고 어떤 가치를 시장에 제안할 것인지 다시 정의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산업 속에서 수십 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은, 시작의 순간이야말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학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2026년을 향한 출발선에 서 있는 지금, 패션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소비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트렌드의 생명 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동시에 기술은 디자인과 생산, 유통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최근 전국 대학교수 7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가 선정된 것처럼, 세상은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패션기업은 속도와 방향, 유연함과 지속성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패션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트렌드는 매 시즌 달라지지만, 브랜드가 지켜야 할 기준과 철학은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 단기적인 유행에만 반응하는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반면 오랜 시간 축적된 브랜드의 미학과 가치 위에 변화를 더해가는 기업은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옷은 소비되지만, 브랜드의 정체성은 축적된다. 그 축적된 신뢰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힘이 된다.
기술 기반 변화는 패션산업의 경쟁 구도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디자인 프로세스, 데이터 기반 수요 예측, 스마트 생산 시스템은 이미 업계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소재 개발과 지속 가능한 공정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통해 어떤 감성과 경험을 소비자에게 전달할 것인가이다. 패션은 결국 사람의 삶과 가장 가까운 산업이며, 기술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
글로벌 시장을 향한 도전 역시 새해 경영의 핵심 과제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해외 소비자들은 디자인 완성도는 물론, 브랜드의 스토리, 생산 과정의 투명성, 환경과 사회적 책임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제 패션기업의 해외 진출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제안하는 일이다. 변화의 폭이 큰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치밀하고 세련된 전략과 유연한 조직 운영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 경영의 중요성은 패션산업에서 특히 더 크게 다가온다. 환경을 고려한 소재 선택, 과잉 생산을 줄이기 위한 생산 구조 개선, 지역사회와의 상생은 더 이상 부가적인 가치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옷의 디자인과 가격뿐 아니라, 그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기업의 태도까지 함께 바라보고 있다.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브랜드의 신뢰와 미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이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또한 새해 경영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원자재 가격 변동, 물류 리스크, 환율과 금리 변화 등 다양한 변수들이 기업의 수익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기적인 대응 능력과 함께 중장기적인 전략적 시야가 동시에 필요하다. 안정적인 경영 기반 위에서만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기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패션기업의 길은 언제나 선택과 결단의 연속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시장에서, 때로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세정은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2026년을 준비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서 패션기업으로서의 본질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부산을 대표하는 패션기업으로서 산업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한다. 중심은 단단히 지키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는 기업이 되겠다. 새해가 모든 패션 종사자와 기업, 그리고 독자 여러분에게 새로운 영감과 도약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026년이 지속 가능한 패션의 가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며, 여러분의 가정에도 건강과 평안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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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베네수엘라를…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수도 카라카스에서 전격 체포해 압송한 군사작전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취임 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마약 유입의 중요 통로로 보고 마두로 정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고조시켜 왔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지 나흘 뒤인 7일(현지시간)에는 베네수엘라 석유 판매와 수익 창출, 수익 사용처까지 관리하며 원유 통제권을 장악했다. 베네수엘라산 석유 판매처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베네수엘라와 연계된 러시아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서반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차단에도 나섰다. 힘에 의한 서반구 장악이 노골화되는 형국이다.
■ 거침없는 ‘돈로 독트린’
마두로 축출 작전과 베네수엘라 석유자원에 대한 관할은 트럼프 대통령의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 현실화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천명한 ‘서반구 패권 회복’ 의지를 실제 무력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다. 서반구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경도 0도)을 기준으로 서쪽 방향 경도 180도까지의 반구를 의미한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와 유럽·아프리카 서쪽 일부, 아시아·호주 동쪽 일부를 포함한다.
돈로 독트린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 ‘도널드’와 19세기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패권을 강조한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재임 1817~1825년)의 외교 정책 ‘먼로 독트린’을 합성한 단어다. 중국과 러시아의 서반구 영향력을 억제하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단일 패권을 회복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4일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도 서반구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중요한 과제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부터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쿠바, 멕시코, 덴마크령 그린란드 등 서반구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골적으로 꾀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에너지·광물 등 공급망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면서 단거리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베네수엘라 때린 이유는
베네수엘라는 3030억 배럴의 원유를 지닌 세계 1위 원유 보유국이다. 하지만 서방의 오랜 제재와 경제난으로 관련 인프라가 크게 낙후된 상황이다. 또 차베스 정권과 마두로 정권의 현금성 무상복지 정책과 석유 기업 국유화 조치로 인프라 재건에 차질을 빚고 있다.
베네수엘라에는 과거 미국의 엑슨모빌·걸프오일 등이 진출했지만,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07년 자원 민족주의를 앞세워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면서 미국 석유기업 자산 일부가 강제 몰수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가 안정적인 새 정권으로 이양될 때까지 미군이 주둔하며 통치할 것이라며 미국 석유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 인프라 재건 및 수익 창출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체제 변화에 대한 진전된 구상을 내놓았다. 대 베네수엘라 정책을 안정화, 회복, 전환 3단계로 나누고 미국 영향력 하에 정권 교체까지 시사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에 친미 정권을 세워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베네수엘라가 새로 체결한 석유 거래로 받은 자금으로 미국산 제품만 구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제재로 수출이 막힌 베네수엘라 원유를 인수해 대신 팔고 그 수익금의 사용처까지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하면서 베네수엘라 원유 통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석유 패권’ 행보가 급가속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한 것도 베네수엘라 공습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2007년 이후 베네수엘라 인프라에 약 670억 달러(약 97조 원)를 쏟아붓는 등 베네수엘라를 중남미 ‘일대일로’의 교두보로 활용했다. 베네수엘라 원유의 약 80%를 사들이는 국가가 중국이다. 특히 2023년 9월 마두로 대통령의 방중 이후 양국 관계는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가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적대 세력과 밀착해 아메리카 대륙 내 반미 교두보 역할을 해온 것을 국가 안보의 핵심 위협으로 간주해 왔다. 마두로 축출은 미국의 허락 없이 외부 세력과 손을 잡는 세력에게는 가차 없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본보기식 경고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는 ‘현대판 제국주의’의 첫 번째 대상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 그린란드까지 눈독
트럼프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향한 영토 야욕도 노골화하고 있다. 하지만 미 의회가 “위험한 도발”이라며 우려하고, 유럽 주요국들도 ‘그린란드 연대’를 표명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미국은 냉전기부터 매입 등의 방법을 통해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그린란드를 향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린란드는 북미와 유럽의 가운데에 자리해 공군과 미사일 전력 운용 측면에서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 네오디뮴·디스프로슘 등 희토류, 니켈·리튬·티타늄 등 전략 광물, 천연가스와 원유가 풍부하다. 특히 희토류는 반도체, 배터리, 방위산업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필수적인 원자재로 중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는 미국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린란드는 자원과 안보 측면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모두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선 전략적 요충지이다.
■ 힘의 세계질서 가속화?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서반구 지배권을 얼마나, 어디까지 공격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자국 이익을 앞세운 관세 전쟁으로 자유무역 체제를 와해시킨 것처럼 이제는 외교·안보의 국제질서까지 바꾸고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장악은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힘의 세계질서를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에서 ‘서반구의 경찰’로 물러나는 ‘돈로 독트린’ 폭풍이 거세지면 그 여파는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 미국이 유럽에선 러시아, 아시아에선 중국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소위 ‘강대국 결탁의 시대’ 서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나라한 힘의 논리 앞에서 인류 공동 번영이나 상호 협력의 가치가 점점 축소되는 상황이다.
전후 70여 년 동안 유지돼 온 국제질서가 무너지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드는 듯하다. 우리 정부도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을 지녀야 한다. 트럼프의 ‘자기 앞마당 영역 표시’가 동북아시아의 안보·외교·경제 지형에 불러올 나비효과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만반의 대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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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인가, 부산 디지털금융 도약의 계기로
부산의 제도권 금융과 기술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컨소시엄이 토큰증권(STO) 유통 사업자 선정을 눈앞에 두게 됐다. 토큰증권은 실물·무형 자산이 블록체인 기술로 암호화된 뒤 거래되는 디지털 증표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7일 열린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심의에서 한국거래소(KDX)와 넥스트레이드(NXT) 컨소시엄을 선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금융위 의결을 남겨 두고 있지만 금융업계에서는 두 곳의 확정이 유력시되는 분위기다. 디지털금융에서 부상하고 있는 조각투자 유통 플랫폼 공모에서 지역 기업 연합체의 인가가 확정되면 부산은 디지털금융 도시 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이번 장외거래소 인가는 디지털금융에서 급부상하는 토큰증권 유통 부문에서 지역 기업이 주역이 될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부산은 블록체인특구일 뿐만 아니라, 금융 공공기관이 집적된 금융 중심지라는 점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KDX 컨소시엄에 BNK금융그룹(부산은행·경남은행·BNK투자증권),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Bdan·비단), 세종디엑스, 비댁스(BDACS) 등 지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이유다. 부산의 관련 산업 생태계는 한우·농수산물·원유·위스키 같은 실물 자산과 영화·음악 등 지식재산권(IP)은 물론 항만·물류·해양 산업 기반의 디지털금융 상품까지 설계·검증하는 데 있어 강점을 갖췄다.
장외거래소 인가의 다른 의미는 금융의 구조 전환이다. 그간 조각투자 시장은 하나의 플랫폼에서 상품의 발행과 유통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이해 상충과 투자자 보호에 허점이 제기됐다. 기존 플랫폼은 발행에만 집중하되, 유통이 장외거래소에서만 이뤄지면 투명성과 공정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행과 유통의 분리를 통해 조각투자가 투기성 거래가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 실험적 단계를 벗어나 실제 시장을 형성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무대로 도약하는 것이 관건이다. 디지털 자산의 유통 구조가 형성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장외거래소 출범의 의미는 작지 않다.
부산의 전략은 명확해야 한다. NXT 컨소시엄이 수도권 금융 주축인 점에서 지역 연합체인 KDX 컨소시엄은 항만·물류·해양·수산 등 지역 산업 금융화의 강점을 내세워야 한다. 지역 산업과 무관한 거래만 오가는 유통 플랫폼은 지역에 뿌리내릴 수 없다. 또 부산 기업들이 컨소시엄 내에서 하청이나 보조 역할에 머문다면 디지털 금융 도시 도약 기대는 허상에 그친다. 부산시와 참여 기업들은 미래 금융의 주체라는 인식이 확고해야 한다. 어떤 자산이 발행되고, 어떤 산업이 성장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부산은 파생 금융에 더해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선도함으로써, 서울과는 다른 금융 미래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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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산 위기 넘긴 대형선망, 국민 생선 지킬 근본 대책 필요
국내 고등어 유통의 90% 이상을 공급하는 대형선망수협이 조합 해산이라는 최악의 국면은 일단 피했다. 업종별 수협 해산 기준을 완화한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최근 시행되면서 조합원 수 감소로 존폐 기로에 섰던 조직은 가까스로 고비를 넘긴 셈이다. 국내에 유통되는 고등어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 온 핵심 생산 주체가 제도적 허점 탓에 하루아침에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그 점에서 늦었지만 수산자원 감소, 어선 고령화 등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은 어디까지나 급한 불을 끈 임시방편에 가깝다. 조합 해산을 막았다고 해서 고등어 산업의 근본 문제가 해소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형선망이 해산 위기에 놓이자 업계에서는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이나 중도매인·항운노조 조합원 등 배후 인력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으로 조합원 최소 인원 요건이 15명 미만에서 7명 미만으로 낮아지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법 조항 하나로 덮을 수 있을 만큼 녹록지 않다. 가령 현재 감척 대상인 2개 선단이 추가로 탈퇴할 경우 조합원 수는 다시 줄어들어 위기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대형선망이 처한 위기는 조합원 수 몇 명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구조적 변화 없이 기준만 낮춘 결과는 불안정할 뿐이다.
더 큰 위기는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어장이 이동하면서 중대형 고등어 어획량은 급감했다. 그 빈자리를 메우던 수입산 고등어마저 주요 수출국의 쿼터 감축으로 불안정해졌다. ‘국민 생선’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격은 치솟고 식탁에서의 존재감은 옅어지고 있다. 한일어업협정 중단으로 대체 어장은 막혀 있고 선박 배출 규제 강화는 노후 선단의 교체를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 부산을 거점으로 한 대형선망이 흔들리면 부산 항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도매, 물류, 노무 인력까지 연쇄 타격을 입는다. 이는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해양수산업 전반과 지역 경제의 기반을 잠식하는 위험 신호다.
대형선망이 이번 고비를 넘긴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 모른다. 단기적 수급 대책이나 법 조항 손질만으로는 위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는 수산업계의 말처럼 불합리한 규제를 점검하고 어업 현실에 맞는 지원책으로 고등어 산업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실효성 있는 감척과 충분한 폐업 지원, 어선 현대화를 위한 금융·제도적 장치가 함께 맞물리면 좋다.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한 시범조업 재개와 대체 어장 조사 등 중단된 협상 타개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안전복지 펀드와 리스제도 도입으로 어선 사고를 줄이고 어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놓치면 부산 어업의 붕괴는 가속화될 것이다. 또한 ‘국민 생선’ 고등어의 내일도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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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의 디지털 광장]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
한때 어설픈 채식주의자 노릇을 한 적이 있다. 한때라고는 하지만 따져 보면 11년 정도 고기를 끊고 살았으니 짧지만은 않다. 몇 년 전부터 태도가 바뀌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한 주에도 서너 번 돼지국밥집을 갔다. 한 선배가 “그동안 어찌 참았누? 혹 집에서 몰래 먹은 거 아니가?”라고 물을 정도였다. 10년 전 느낀 고기 맛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채식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습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신문을 보는 습관 이야기다. (종이)신문업계 종사자로 평생을 살았다. ‘종이신문은 곧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가 온다’ ‘신문은 사양산업이다’ 등등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신문사들이 근 10년 이상 화두로 삼고 있는 주제가 있다. 범상치 않은 주제였지만, 어제의 수많은 고민은 현상유지의 오늘과 겪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위기감은 무뎌졌다. 또 새로운 ‘디지털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도 여기에 한몫했다.
신문업계 시니어들은 대체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역시 신문은 종이로 읽어야 해. 침 발라가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맛이 있어.’ ‘우리는 고유문자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야. 읽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하는데 신문만 한 매체가 어디 있나?’ ‘인터넷 뉴스는 중구난방이야. 가짜뉴스를 어떻게 구분해? 신문은 편집을 하지. 어젠다를 던져주는 거야. 사람들은 이것을 더 좋아할 걸?’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종이신문은 오래갈 거야. 누가 신문이 망한대. 쓸데 없는 소리라곤.’ ‘봐 바 디지털이 돈이 되냐고? 어차피 돈이 안 되잖아. 우리나라는 뉴스가 공짜인데 뭐가 되겠어?’
신문의 미래를 다들 고민하고 걱정했지만 언론사 선배층 ‘범생’의 수준은 이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언론계 지각이 급변하고 있다. ‘방송마저 무너지고 있다’가 최근 몇 년 전의 상황이다. 공룡 같던 포털도 흔들리고 있다. 유튜브가 언론의 자리를 차지해 여론을 지배하고 있다. 포털의 검색시장은 너무나도 똑똑하고 다양한 인공지능(AI)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다. 오락 분야는 넷플릭스, 왓차, 티빙 등 OTT가 떡하니 차지했다.
미디어 시장이 용광로처럼 들끓는 와중에서도 신문은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일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문 사랑이 유독 찐한지, 우리나라 신문시장만 독특한 것인지 분석은 학자들이 해야겠다. 독일 지역신문의 디지털 전환 사례를 보기 위해 꾸린 ‘2019년 독일언론 신사유람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금은 본보에서 날카로운 필력으로 맹활약 중인 김승일 논설위원이 기획했고, 취지에 공감한 언론재단이 동참한 대규모 조사시찰단이었다.
회사 디지털TF의 일원으로 참가했지만, 철저한 종이신문주의자였던 어제의 사고는 그 이후로 180도 바뀌었다. 익숙한 기자입력기를 버리고 통합CMS(콘텐츠관리시스템)를 도입하는 태세 전환을 한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 독일신문은 젊은층의 신문 외면, 배달 비용 상승, 광고 감소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독일은 신문사를 유지하는 구독료와 광고 수익의 감소로 인해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렉티브 보도, 심층보도 등 언론 기본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 서비스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권역 도시의 디지털 독자가 얼마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지 분석하고, 해당 지역의 접속수가 떨어지면 즉각 관련 기사를 올려 대응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을 물었다. “종이신문이 10년 안에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는데 PDF서비스는 대안이 되나요?” 답은 분명했다. “PDF는 답이 아닙니다. 종이신문과 함께 몰락할 것입니다.” PDF신문으로 디지털화를 꾀했던 내면의 의도가 박살 났다. 그런데 최근 다른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가지 않겠다는 PDF신문 구독의 길을 독일신문은 택했다. 2024년 기준 독일의 지역신문은 전국 1350만 부가 발행되는데 ‘이페이퍼 PDF신문’ 구독자도 260만 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왜 홈페이지 기사를 유료 독자에게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영미식 로그인월 방식만 택하지 않고 지면처럼 생긴 디지털 신문을 내세웠을까. 생각건대 이것은 어제의 향수에 기댄 전략이다.
PDF신문으로는 밥상을 덮거나 라면 냄비 깔개를 할 수는 없지만, 종이신문에 있는 독특한 내음과 맛이 있다. 넘길 때의 쾌감, 한눈에 들어오는 지면, 크고 작은 제목의 편집 의도 등이다. 〈부산일보〉가 부울경 독자의 사랑을 받는 지역신문에서 더 나아가, 전국의 독자들이 구독할 수 있는 신문이 되는 지름길이 PDF신문이다. 이 신문은 종이신문과 완전히 다르다. 채식주의자가 먹는 콩고기가 고기가 아니듯이, PDF신문은 신개념 디지털 신문이다. 콘텐츠 그룹 〈부산일보〉는 한층 고도화된 〈이페이퍼 PDF신문〉을 이달 말 전세계 독자에게 선보인다. 기대하시라.
이재희 디지털국 국장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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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패권에서 다극화로
미국은 도대체 왜 저럴까. 요즘 국제뉴스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미국은 글로벌 경찰국가를 자처하던 유일 패권국이자, 겉으로나마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같은 근원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으로 보이려 애썼던 나라다. 지금은 굳이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석유, 그린란드 희토류와 북극. 자원이 있는 서반구와 북극까지 노골적으로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유가 많겠지만 결국 나라 살림이 팍팍해진 탓이 클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1000조 원 넘는 국방비보다 나라 빚 이자를 더 많이 지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퍼거슨의 법칙’에 따르면 쇠퇴가 본격화된 것이다. 세계 최대 자원 보유국인 러시아 국력을 소모시키려 나토 동진으로 충동질한 우크라이나 전쟁도 소득 없이 패전만 기다리고 있다.
전쟁 후 과거 유럽으로 향하던 러시아 자원은 중국과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G7 국가 대부분이 휘청대는 사이 중국은 이미 2010년대 중반 이후 IMF(국제통화기금) 평가 구매력(PPP) 기준 세계 1위다. 인도는 지난 연말 명목GDP 기준 일본을 추월한 세계 4위 국가가 됐다. 러시아 역시 2022년 PPP기준 GDP 유럽 1위, 세계 4~5위권으로 평가됐다.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이집트, 인도네시아, 베트남,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같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미·중·러와의 관계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자국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다극화 질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패권 시대의 허울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200년 전 대통령의 아메리카대륙 세력권 유지 정책(먼로주의)이 다시 회자되는 것도, 이제 유라시아까지 관여할 힘이 없어진 현실의 완곡한 표현이다.
목하 다극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문제는 견제와 균형으로 다자질서가 자리잡을지, 더 복잡해진 이해관계 속에 혼돈 속으로 빠져들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이 혼란 속에 한국은 또 어떻게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미국의 퇴조가 한반도의 소통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재회를 고대한다. 러시아와도 관계 정상화를 꾀한다. 멀리 있는 여러 적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 전 반전을 꾀하려면 4월 중국 방문 전후가 골든타임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한 원칙과 유연한 외교, 다양한 국가와의 네트워크가 절실하다.
이호진 선임기자 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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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AI 시대의 평가 방향
최근 국내 최고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에서 생성형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부정행위 사례가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됐다. 서울대에서는 ‘통계학실험’ 대면 중간고사 과정에서 다수의 학생이 AI를 이용해 답안을 작성한 정황이 확인됐고, 연세대와 고려대에서도 온라인 비대면 시험 중 많은 학생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사례가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다. 이제 일상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은 AI가 대학의 평가 영역에까지 빠르게 침투해 대학가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지고 있다.
AI 활용 부정행위로 인한 혼란에 대학들이 선택한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시험과 과제에서 생성형 AI 활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다. AI 생성물 탐지 프로그램을 활용, 생성형 AI 사용이 의심되는 결과물을 식별하고 적발될 경우 0점 처리나 징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사용 범위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접근이다.
대학서 AI 활용한 부정행위 사례 충격
시대 흐름에 맞는 평가 시스템 준비를
이해도·기초 지식 묻는 영역에선 제한
이용한 결과물엔 설명 요구 방식 필요
그러나 생성형 AI 활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첫 번째 방식은 현실적으로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재의 AI 생성물 탐지 프로그램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 단어나 문장을 일부 수정하는 것만으로도 의심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또 반대로 학생 스스로 작성한 글이 AI 생성물로 오인돼 부정행위로 판단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에 비해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올바른 사용을 유도하자는 두 번째 방식은 첫 번째 방식보다 유연하고 근본적 해결 방식으로 보이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큰 효용이 없다. 대부분의 가이드라인은 AI를 보조적 도구로만 활용해 참고만 하고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학생에게 있다는 원칙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이처럼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은 원론적 선언 이상의 의미를 담보하기 힘들다.
결국 기존의 평가 틀을 유지한 채 AI 활용을 통제하려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AI 시대 대학이 고민해야 할 질문은 AI 사용에 대한 통제 여부가 아니라, 이 시대에 학생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있다. 다시 말해 대학 교육은 AI 시대에 학생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중심으로 교육의 목표와 평가 기준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이에 걸맞은 평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에도 학생은 여전히 자신의 학문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과 핵심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타당한지, 오류나 할루시네이션은 없는지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이를 사용하는 인간의 지식과 비판적 사고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 지식과 비판적 사고가 전제되지 않은 AI 활용은 학습이 아니라 단순한 의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문 분야의 기초 지식과 이해도를 평가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생성형 AI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핵심 개념과 원리, 기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AI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설명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대면 시험이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평가를 통해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느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AI 시대의 대학 교육에서는 학문 기초 지식에 더해 AI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중요한 역량으로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AI 활용 능력은 단순히 AI를 사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질문을 설계하고 생성된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이를 자신의 사고와 결합해 창의적 결과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AI를 활용해 도출한 결과물과 함께 그 과정과 판단 근거를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 특히 결과물 제출에 그치지 않고 구술 설명이나 발표, 토론 등을 병행해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다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
물론 구술 시험을 비롯한 발표, 토론 중심의 평가는 기존의 평가 방식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담을 이유로 평가 방식의 전환을 미루는 한 대학 교육의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 강좌의 소규모화와 교수 인력 확충 등 구조적 투자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AI 활용 정책이나 가이드라인도 교육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