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민주주의의 군중 - 안토니 곰리와 도시의 감각

입력 : 2026-06-10 17: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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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곰리, Still Being, 2012-13, CCBB Brasilia 설치 전경. Joana Franca, ⓒAntony Gormley Studio, 비평·교육 목적의 공정 이용. 안토니 곰리, Still Being, 2012-13, CCBB Brasilia 설치 전경. Joana Franca, ⓒAntony Gormley Studio, 비평·교육 목적의 공정 이용.

39년 전 1987년 6월 10일,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대학생과 노동자, 회사원과 시민들, 이름 없는 군중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군중성을 가장 인상적으로 시각화한 동시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안토니 곰리다. 곰리의 조각은 전통적 기념비 조각과 다르다. 그는 영웅이나 지도자를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 곳곳에 익명의 인간 몸을 반복적으로 배치한다. 여기서 그의 인체들은 특정 개인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몸’,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특히 그의 ‘여전히 존재하는 몸들, Still Being/Corpos Presentes’(2012)는 각 4~40㎝ 크기, 2만 4000여 개의 테라코타 인물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은 말과 행위의 근본 조건이며, 그것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라고 말한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란 동일성을 강요하는 체제가 아니라, 차이를 지닌 존재들이 서로를 견디며 공존하는 형식인 것이다. 더 나아가 1980년대부터 90년대를 거쳐 전 세계의 사상, 문화, 예술을 장악한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는 보편성과 동일성을 넘어,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21세기 동시대에서 차이는 점점 공존이 아니라 분열로 변하고, 공동체는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들로 해체된다. 모두가 자신의 진실만을 주장하는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양성의 존중’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바디우는 차이와 상대성만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 사유를 비판한다. 그는 차이의 상대주의를 넘어 공통의 보편성을 다시 제기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단순한 차이의 승인만으로는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타자의 존중’만으로 정치는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란 어떤 ‘사건’ 이후, 사람들이 기존의 이해관계를 넘어 새로운 보편성에 참여하는 과정이다. ‘사건’이란 기존 질서가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 순간이다. 68혁명, 파리 코뮌, 사랑의 만남, 혁신적 예술뿐 아니라, 우리로 말한다면 ‘87년 6월 항쟁’, ‘빛의 혁명’ 등이 그것이 될 수 있다.

곰리의 테라코타 군중, ‘광장’을 가득 메운 익명의 몸들은 모두 다른 얼굴과 자세를 지니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그의 군중은 단순한 인파가 아니라, 정치적 주체가 생성되는 순간의 ‘감각적 형상화’로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광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곰리의 군중은 그 불안하고도 위대한 가능성의 형상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