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린 ‘제16회 부산커피쇼’를 찾은 관람객들이 커피와 차 등을 시음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은 오랫동안 만들고 실어 나르는 도시였다. 항구가 있었고, 그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 시대 부산의 힘은 ‘생산’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한 도시를 찾는 이유는 달라졌다. 우리는 더 이상 물건만 사지 않는다. 그 공간의 공기와 태도, 그 지역이 품은 이야기까지 함께 경험한다. 커피 한 잔도 마찬가지다. 맛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어떤 산지에서 왔는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내렸는지, 그 도시가 어떤 풍경을 가졌는지까지 함께 마신다. 결국 지금 시대의 경쟁력은 ‘브랜드를 만드는 힘’이고, 도시 역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모모스커피가 화려한 도심이 아니라 영도 봉래동의 기름 냄새 나는 물양장 한편에 로스터리를 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조선소와 선박, 일하는 바다가 펼쳐진 그 풍경이야말로 부산을 먹여 살려온 ‘진짜 부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스팅 공장을 닫힌 작업장이 아니라, 유리창 너머로 생두가 볶이고 포장되어 출고되는 과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볼거리’로 만들었다. 동래 온천장의 오래된 골목, 영도의 원도심 바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현대적 풍경까지, 같은 부산이라도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한 잔의 커피에 담으려 했다. 그 바다와 산을 세계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부산에 뿌리내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 믿는다.
관광도시 부산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머무름’이 ‘정주’로 이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살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볼거리와 경험만이 아니라 교통과 생활 인프라 같은 구조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우리가 영도에서 주민에게 할인된 값으로 커피를 내리고, 주민 커피 교실을 열고, 봉래산과 금정산을 무대로 트레일 러닝 대회를 연 것도 잠깐 다녀가는 도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그렸기 때문이다. 커피박을 재활용해 시니어 일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지역과 함께 나이 들어갈 방법을 고민하는 일까지가 관광도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셜티 커피는 부산을 세계와 잇는 가장 좋은 언어다. 우리는 2012년부터 매년 산지를 직접 찾아 농부와 거래하고, 다이렉트 트레이드와 비영리 경매를 통해 공정한 거래 구조를 넓혀 왔다. 2019년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도, 최근 유럽 최대 커피 축제에서 ‘세계 최고의 카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부산이라는 작은 출발점에서 한 걸음씩 쌓아 올린 결과였다. 좋은 커피라는 본질 위에 부산의 풍경과 문화를 입힐 때, 커피는 비로소 부산만의 브랜드가 된다. 부산이 세계 스페셜티 커피의 중심 도시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런 작은 천착들이 켜켜이 쌓인 덕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과 로컬이다. 좋다는 것은 전부 서울로 향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부산에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직접 와야만 경험할 수 있도록. 실제로 모모스에서 일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온 동료가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청년이 부산에 머물게 하려면 멋진 공간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하고 싶은 회사,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함께 많아져야 한다. 모모스가 커피 한 잔을 위해 건축·조경·디자인·브랜딩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온 것처럼, 좋은 브랜드 하나가 단단히 자리 잡으면 그 주변으로 연관 산업과 창작자가 모이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F&B와 디자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일하기 좋은 공간’이 도시 곳곳에 늘어날 때, 비로소 청년은 떠나지 않고, 도시는 지속 가능해진다.
부산은 대한민국 남쪽 끝의 도시가 아니다.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한 잔에 담아 세계로 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다시 해석하는 것. 다시 해석한다는 것은 없던 것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다. 기름 냄새 나는 물양장과 오래된 온천장 골목, 일하는 바다처럼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온 풍경에서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그 시선 하나만 바뀌어도, 도시는 이미 가진 것만으로 충분히 새로워질 수 있다. 그 재해석이 더 큰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들고, 결국 ‘우리 동네 브랜드’를 자랑스러워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