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구 20대 여성 살인 사건이 살인 욕구에 의한 장기간에 걸친 계획범죄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피의자 정유정(사진·23)은 자신이 완벽 범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1일 부산경찰청과 금정경찰서 등에 따르면 정유정은 범죄 관련 소설이나 범죄 수사 프로그램을 보며 호기심을 갖게 됐고, 최소 석 달 전부터 살인 관련 정보들을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정 씨는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외부인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 생활 속에서 살인 범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신도 미디어 등에 나오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입증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 씨는 올해 초부터 인터넷 등으로 살인 범죄를 검색했고, 사건 발생 이틀 전인 지난달 24일 과외 중개 앱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해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경찰은 정 씨가 과외 강사 여러 명에게 과외 앱을 통해 문자로 연락을 시도했고, 피해자가 혼자 거주하고 있다는 걸 파악한 뒤 범행 대상을 확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에서 정 씨는 피해자에게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지난달 26일 구매한 교복을 입고 피해자 집을 방문했다. 이런 식으로 신분을 감추고 위장을 하면 향후 경찰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자신의 신분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
정 씨는 피해자 거주지에서 또래 여성인 과외 강사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고 갔던 흉기를 휘둘러 빨리 살인을 시행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흉기는 미리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피해자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정 씨는 자신의 주거지와 주변 마트 등에서 여행용 가방과 락스 등 장비를 구해와 시신을 훼손하고 범행을 은폐하려고 시도했다. 이 과정이 매우 잔인했는데, 정 씨는 냉정한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힌 정 씨는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시간을 끌기도 했다. 또 경찰 조사 초반에 변호사가 오기 전까지 진술을 하지 않겠다며 조사를 거부했으며, 이후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해왔다. 범행 계획 단계에서부터 체포 뒤 변호사를 요구하는 것까지의 일련의 행동들은 대부분 범죄 미디어에서 자주 소개되거나 언급되는 형태들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정 씨가 미디어에서 학습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은폐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애초 미디어에서 나오는 범행을 따라 하다 보니 곳곳에서 범행 허점이 드러났다.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노출이 됐고, 유기 장소도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아 살해 후 평소 자신이 자주 산책하던 곳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미디어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시신 유기를 시도하다 보니 택시 기사의 의심을 사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정 씨가 구상했던 완벽 범죄는 현실에서는 실현이 안 되는 ‘망상’이었던 셈이다.
경찰 초기 조사에서 정 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는데 환경이 여의치 않아 진학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나, 나중에서야 이 같은 사실이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시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상담에 이어 관련 진술을 분석하고 있으며 사이코패스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며 “살인과 시신 유기 등 대략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범행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