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아파트’가 키운 틈새 시장, 사전 점검 대행업

입력 : 2024-02-12 1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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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시공 우려한 입주민 겨냥
전문 장비 동원해 샅샅이 점검
입주민 “수십만 원 들지만 안심”
시공사 “사소한 하자까지” 난감

삽화=류지혜 기자 birdy@ 삽화=류지혜 기자 birdy@

직장인 김 모(35) 씨는 이달 초 부산 강서구의 한 신축 아파트 사전 점검 기간에 전문 대행업체를 불러 점검을 맡겼다. 전문가 3명으로 이뤄진 점검팀은 2시간가량 집안 곳곳을 샅샅이 살폈고, 84㎡ 면적 아파트에서 하자만 90여 개를 잡아냈다.

김 씨는 “점검 내내 옆에서 설명을 들었는데, 일반인이 했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었던 하자들까지 발견해 줬다”며 “30만 원 정도 비용을 치렀는데 수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전에 꼼꼼히 점검했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소위 ‘순살 아파트’라 불리는 부실 시공 논란에다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는 경향 등이 맞물려 아파트 사전 점검 대행업체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건설업계 종사자들이 전문 장비를 동원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살핀다는 측면에서 호응이 좋다. 시공사들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라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는 않았다.

아파트 사전 점검 대행업체들은 열화상 카메라, 라돈 측정기, 수직·수평을 측정하는 레벨기, 공기질 측정기 등을 갖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신축 아파트를 위주로 사전 점검을 대행한다. 이들은 열화상 카메라로 난방기나 배관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상 발열을 식별해 누수, 고장 등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일반인들이 장비 없이는 측정하기 어려운 라돈, 포름알데히드 등의 수치도 확인하고, 눈대중으로만 파악했던 수직·수평 이상 유무를 레벨기로 정확히 재볼 수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사전 점검 대행업체 4~5곳이 현재 전국 단위로 영업을 펼치고 있다.

대단지 신축 아파트는 입주민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공동구매로 저렴한 가격에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온다. 업체들은 입주 설명회 등 입주민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특히 전현직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대행업체에 포함되는 추세라 입주자들이 더욱 신뢰를 보낸다. 직장인 박 모(46) 씨는 “최근까지 시공사에 계셨다는 분이 나와 꼼꼼하게 점검을 해주니 더욱 믿음이 갔다”며 “줄눈시공 여부, 앞으로의 집 관리 노하우, 입주 청소 ‘꿀팁’ 등도 알려줘서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전 점검 업체들은 점검뿐만 아니라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시공사 하자 신청 앱에 일일이 접수하는 업무도 대행한다. 역시 비용이 붙지만, 추후에 하자 신청 내용이 제대로 반영돼 수리까지 완료됐는지 점검하는 일종의 A/S 서비스도 대신한다.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서비스로 어필하고 있지만, 불필요한 비용을 추가로 지출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유튜브 등을 통해 ‘사전 점검 체크리스트’가 워낙 자세하게 나와 있는 데다가, 자잘한 하자는 신청 건수만 늘릴 뿐 제대로 고쳐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시공사가 제대로 하자 보수를 해줘야 하는데, 고쳐지지 않는 불필요한 하자들을 들춰내는 격이라 괜스레 마음만 불편해진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아파트를 짓는 시공사들은 사전 점검 대행업체들의 성행이 달갑지만은 않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시공사 입장에서는 하자라고 보기 어려운 작은 부분까지 들춰내며 하자 보수를 신청해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세세한 하자 신청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보수 일정이 늦춰지면서 정작 필요한 하자 보수가 늦어지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공사 관계자는 “최근 신축 아파트에서 인분이 발견되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종종 있었고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이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불편하고 난처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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