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충격과 건설 경기 불황, 고금리 장기화 등의 여파로 부산에서 빌라(다세대·연립 주택) 착공의 씨가 말랐다. 빌라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전·월세 가격이 상승해 결국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가 무너진다. 지역 중소 건설사들의 먹거리도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1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부산지역 다세대·연립 주택 착공 실적은 12동에 그쳤다. 특히 지난해 11월의 경우 부산에서 착공에 들어간 다세대·연립 주택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 2021년 12월 부산의 다세대·연립 착공 실적은 244동이었다. 매달 현장 사정에 따라 들쑥날쑥했지만 그래도 200여 동 가량의 착공 실적은 꾸준히 유지했다. 그러다가 최근 건설 경기 악화로 인해 물량이 20분의 1 수준 또는 그 이하로 급감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와 고금리 장기화, 공사비 상승 등으로 모든 유형의 주택 공급이 감소했지만 빌라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 오피스텔과 함께 빌라가 전세사기의 온상이 되면서 빌라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부산 수영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예전 같았으면 같은 돈으로 오래되고 비좁은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기 보다는 역세권 신축 빌라에 들어가려는 젊은 층들이 상당히 많았다”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중소 건설사도 빌라 공급 감소로 타격을 입고 있다. 부산의 한 주택 건설업체 관계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할 것을 목표로 빌라를 짓는 지역 업체가 적지 않았는데, 지난해 매입 요건이 강화되면서 신축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중소 규모 건설업체가 많이 짓는다. 가뜩이나 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매매든 임대든 아파트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빌라는 오랫동안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주거 취약계층은 물론 1인 가구, 청년, 신혼부부 등 서민층은 일정 기간 빌라에 거주하며 ‘목돈’을 모아 아파트 등 상급지로 이동했다. 아파트 가격이 치솟을 땐 ‘대체재’로서 역할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빌라 공급이 한꺼번에 급감하면 지금은 괜찮더라도 몇 년 뒤 심각한 빌라 공급 부족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부산의 경우 앞으로 4~5년간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라 대체재인 빌라로 수요가 더욱 몰릴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부산의 다세대·연립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2022년 8월 102.6을 기록한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해 12월 97.7을 기록했다. 반면 빌라의 월세가격지수는 2021년 12월 100.3과 대동소이한 100.2(지난해 12월)를 기록하며 보합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월세지수가 100.9까지 치솟기도 했다. 빌라 공급이 줄어들면 월세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동의대 강정규 부동산대학원장은 “아파트값이 치솟으면 무주택 서민들은 저렴한 빌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빌라 공급이 안되면 임대료가 상승하는 등 주거 사다리가 깨지게 된다”며 “그런 뒤에야 규제 완화로 빌라 공급을 늘리면 공급 부족과 공급 과잉의 사이클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주거난이 심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