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약 700억 원 규모의 횡령 이슈로 금융권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우리은행에서 또다시 거액의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조작된 대출 서류로 수차례에 걸쳐 대출금을 빼돌린 직원은 이를 가상화폐와 해외선물 등에 투자해 큰 손실을 봤다. 우리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금융당국은 긴급 현장 점검에 착수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경상남도 김해의 한 지점에서 100억 원가량의 고객 대출금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지점 대리인 직원 A 씨는 올해 초부터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빼돌린 뒤 이를 가상화폐와 해외 선물 등에 투자했다. A 씨는 빼돌린 대출금 100억 원 중 약 60억 원 규모를 이미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고를 자체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 적발했다고 밝혔다. 은행 여신감리부 모니터링을 통해 대출 과정에서 이상 징후를 포착한 뒤 A 씨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동시에 특별검사팀을 해당 지점에 급파한 상태다.
A 씨는 회사의 소명 요구 이후 경찰에 자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까지는 A 씨의 단독범행으로 추정되지만 심사·집행에 있어서 까다로운 은행 시스템을 감안하면 내부나 외부에 공모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 2022년 본점 기업개선부 소속 차장 B 씨가 8년 동안 회에 걸쳐 무려 697억 3000만 원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된 바 있다. 700억 원에 육박했던 당시 횡령 사고 이후 우리은행은 물론 전 금융권에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 움직임이 있었지만, 2년여 만에 1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중론이다. 지점에서 대출이 나갈 경우 담당자는 물론 지점장과 전임 감사 등이 서류를 중복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이를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반적 은행의 시스템을 감안하면 수차례에 걸쳐 이 같은 횡령이 반복될 수는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금융감독원은 긴급 현장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횡령) 금액이 크기 때문에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직원 개인의 일탈로 이뤄지는 횡령을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걸러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출을 담당하는 이가 서류를 치밀하게 조작하는 등 마음만 먹으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철저한 조사로 대출 실행 과정의 문제점을 파악해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할 것”이라며 “관련 직원에 대한 엄중 문책과 전 직원 교육으로 내부통제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