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28일부터 대남 오물 풍선을 대거 살포했다. 최근 10여 일 간 전국에서 1000개 넘는 풍선이 발견됐는데, 개수와 규모 등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역대급이다.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4일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을 전면 정지시키고 북한의 적대행위에 상응하는 군사행동 의지를 곧추세웠다. 이어 6일 탈북단체가 대북 전단 20만 장을 북한 지역에 살포했다. 9일에는 북한이 그토록 싫어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도 재개됐다. 이에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맞불을 놓을 태세다.
불과 열흘 사이 몸집을 불린 이번 사태는 너무나 급작스럽다. 지금 남북 양쪽은 군사적 충돌까지 불사하겠다는 듯 격앙돼 있다.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최소한의 완충장치조차 사라졌으니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과거 남쪽에서 보낸 대북 전단에 북한이 고사포를 발사해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다. 저급하고 치졸하며 비인도적인 행위임이 분명하다. 우리 국민들에게 큰 혼란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용납하기 힘들다. 미사일 발사 같은 고강도 무력시위에 치중하던 북한이 어째서 저강도 도발에 나선 것일까.
일단 남쪽 정부와 국민의 관심을 환기하려는 저의가 있는 듯하다. 그동안 계속된 무력 도발은 생각만큼 큰 이슈로 떠오르지 못했다. 한편, 북한은 대북 전단을 문제 삼는다. 오물 풍선을 보낸 직접적 원인을 대북 전단으로 돌리고 있다. 속임수 같지는 않다. 북한 정권은 치를 떤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대북 전단에 민감하다. 2020년 전단 살포를 이유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한 바 있다.
제3자는 이번 남북 갈등 상황을 어떻게 볼까.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객관적 시각’이 중요하단 뜻이다. 우리는 북한의 풍선 살포 행위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고 규탄한다. 풍선이 남쪽으로 넘어왔고 그 안에 각종 오물이 담겨 있으므로 당연한 비판이다. 그런데 이는 북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북쪽으로 살포된 대북 전단 뭉치는 정권 타도와 주민 봉기를 촉구하는 적대적이고 위협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어떤 명분에서도 역외 혹은 국경을 무단으로 침범하는 행위는 국제법과 정전협정에 위배된다. 국제법의 토대인 유엔 헌장에는 모든 회원국의 주권평등 원칙이 명시돼 있다. 상대방 영토와 영공에 전단이나 오물을 보내는 것 자체가 주권 침해일 수 있다. 국가 간 상호 주권 존중은 국제 규범의 기본 원칙이다. 마찬가지로 상호 비방이나 중상도 국제법으로 금지된 사항이다. 그러니 제3자가 보기에, 남북이 모두 잘못이고 국제법 위반인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국제법 준수가 사태 해결의 열쇠라는 의미가 된다. 국제 규범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는 상식의 문제다. 양쪽 모두 자제해야 옳다.
사실 오물 풍선을 막는 길은 간명하다. 대북 전단이 북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하면 된다.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를 통제할 수 있는데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를 제지하지 못하는 근거로 드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다. 헌재는 지난해 9월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결정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 보장을 위해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통해서도 전단 살포의 제지가 가능하다는 점, 살포 전 관계 기관 신고 의무화 같은 대체 입법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함께 포함돼 있다. 헌재는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규정했지만 당국이 이를 제지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명시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표현의 자유’만 강조해 대북 전단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 의도적으로 방기하고 있다거나 아예 충돌을 유도하는 것은 아니냐는 등의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오물 풍선은 어쩌면 북한이 우리를 얕잡아 보고 던져 놓은 덫 혹은 미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목적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있다. 우리가 여기에 말려들 이유가 없다. 오히려 오물 풍선 같은 저급한 심리전에 기대는 북한의 처지를 측은히 여겨야 한다. 역사적으로 북한이 대결을 부추겼지만 우리는 의연히 대화를 주도해 왔음을 기억하자. 힘에 의존하는 압박을 고집해서 얻을 이득은 별로 없다. 감정을 자극하는 적대행위가 쌓이면 위험한 상황으로 갈 뿐이다. 만일 불필요한 갈등과 충돌이 계속된다면 그건 정부의 무능을 뜻한다. 세상에 부끄러운 일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