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사그라질 기세가 아니다. 앞으로 겪게 될 여름 중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하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열대화 시대가 왔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된다. 연일 열대야까지 이어지니 자다 깨기 일쑤다. 덕분에 자다 깬 밤에는 파리 올림픽과 함께한다. 때마침 휴가다.
파리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무성한 말과 잇단 실수로 여기저기서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처음 도입됐던 골판지 침대가 이번 파리 올림픽에도 등장하고, 에어컨 없는 버스와 숙소, 채식 위주의 식단은 올림픽 개최지인 파리가 올림픽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심심찮게 보인다. 일리는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합에 임해야 하는데 그럴 환경이 제공되지 않으니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의 친환경 건축,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 탄소 제로 등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알게 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올림픽’이라는 선한 의지에 공감함에도 계속되는 질문은 ‘선수들과 현장에서 올림픽을 즐기려는 사람 모두의 건강과는 상관없는 결정이 맞느냐’ 하는 것이다. 조금 선선한 시기로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최대 수익을 얻고 있는 TV 방영권료가 걸려 있어 일정 조정이 힘들다는 의견에 슬쩍 동의하게 된다. 선함을 등에 업은 자본의 논리에 익숙해진 탓도 한몫했다. 봄에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스포츠 리그, 가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나 유럽 프리미어리그 같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스포츠 리그가 열리기에 TV 방영권료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남녀 선수의 성비 비율을 맞춘 ‘성평등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아닌 야외에서 열리는 개막식 등 파리 올림픽은 그동안 진행됐던 올림픽 개최국의 관습을 거부했다. 절정은 센강을 중심으로 파리 곳곳에서 펼쳐진 개막 행사였다. 도시 전체가 무대로, 유료 관람객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열린 공연은 무료 관람객도 함께 즐기기에 충분해 보였다.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콩코르드 광장, 에펠탑 등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훌륭한 배경이다. 근대5종 경기와 승마 경기는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리니 ‘올림픽의 프랑스혁명’이라는 평을 받았다. TV로 개막식을 보는 동안 ‘역시, 프랑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개막식 이후 일부 장면은 논란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프랑스니까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2030 월드엑스포 유치를 성공했다면 부산은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가덕신공항 건설은 삐걱대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북항은 엑스포를 개최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엑스포 유치가 불발됐다고 부산이 부산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
부산의 핵심 현안은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 특별법’ 제정이다. 더불어 글로벌 허브도시가 되기 위한 인프라와 산업경제, 인재 양성, 공간 혁신, 문화관광 등의 여건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산시는 2030년 온실가스 발생량을 40% 감축해 ‘기후위기 없는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올해 7월 25일 부산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모한 ‘스타트업 파크 조성사업’에 북항 1부두가 ‘글로벌 창업 허브’ 조성지로 최종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시는 북항 제1부두 물류창고를 원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리모델링해 글로벌 창업 허브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북항 1부두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끈 창업의 발상지인 부산항 제1부두에 조성되는 글로벌 창업 허브는 저출생 등으로 인한 잠재성장률 저하를 극복하고 부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의 거점”이라 말했다.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맞아 부산세관 옛 청사를 복원하고 북항 1부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북항 제1부두 물류창고를 리모델링해서 글로벌 창업 허브로 만든다고 하니 북항에 조금씩 부산의 미래가 담기는 것 같다. 그 위에 ‘탄소제로 북항’ 혹은 ‘탄소중립 북항’을 더해 큰 그림을 그려 가면 기후위기에 맞서는 부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다.
목표가 선하다고 과정이 모두 선한 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부산을 만들기 위해 부산에서 뿌리내린 기업들을 지켜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침내 “역시, 부산이다!”라고 누구나 말할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