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지역에 둥지를 튼 이전 공공기관·공기업들이 연간 단위로 KTX 4만여 석을 일반 예매보다 먼저 구매해 수 년째 주말 직원 상경을 지원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정착이라는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역행할 뿐 아니라 KTX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공공기관 특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일 〈부산일보〉가 각 공공기관·공기업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 이전 기관인 남부발전,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기관은 2017년부터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장기 단체 계약을 맺고 1년 치 표를 사전에 구매해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이들 공공기관은 금요일 오후 서울행 열차와 일요일 오후·월요일 새벽 부산행 열차로 직원들의 서울 통근을 돕고 있다. 기차 편당 30~40석 규모다. 이들 기관에게는 고정 열차가 배정돼 있고 기차 출발 1~2주 전 내부 시스템을 통해 희망자를 접수 받아 표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지역에 정주하지 않는 직원들의 주말 서울행을 사실상 장려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이전 기관의 서울행 지원은 부산 이전 기관 뿐만이 아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도읍 의원실이 코레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남 나주로 2014년 본사를 이전한 한국전력은 지난해 2만 30000석의 표를 코레일로부터 사전에 구매했다. 왕복 10편의 기차로 주말 직원들의 서울행을 돕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경북 경주 본사에서 서울까지 왕복 4편의 기차를 이용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동대구역에서 서울역으로 매주 왕복 2편을 배정해 연간 4000명의 직원이 KTX를 이용하고 있다.
코레일이 이들 기관에 별도로 판매한 표를 더해 보면 8개 기관은 연간 4만여 석을 코레일에서 산 것으로 나타났다. 남부발전은 SRT 표도 별도로 사전에 SR로부터 확보해 직원들에게 배부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이 같은 행태는 주말 기차표를 구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이 치르는 ‘예매 전쟁’을 거칠 필요가 없는 점에서 특혜라는 지적이 자연스레 제기된다. KTX는 출발 한 달 전부터 일반 예매가 가능한데, 코레일과 연간 계약을 한 공공기관 직원들 몫의 좌석은 일반 예매 전 이미 배정돼 있다. 대부분 주말 인기 시간대 좌석으로 KTX 표 품귀 현상에는 이 같은 방식의 공공기관 별도 판매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공공기관이 코레일을 통해 KTX 좌석을 수 년간 선점해왔고 이 같은 방식으로 예매를 하는 단체가 이들 기관 이외에는 없는 점도 특혜 소지가 매우 높다. 이들 기관 이외 공공기관들은 대부분 교통비를 실비 지원 형태로 지역 이외 주소지를 둔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지역 정착을 위해 이전한 지역 공공기관들이 지역 정주를 장려하기보다는 직원의 서울행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 취지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레일 측은 KTX 표의 연간 단위 단체 판매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코레일 여객마케팅처 관계자는 “기관의 요청으로 단체 판매를 시작했고 한국철도공사의 여객운송약관 등에도 위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KTX 표를 연간 구매한 기관들은 〈부산일보〉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거나 “KTX 표 예매를 직원 복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