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음악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써 사용되었으며,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며 변화했다. 음악은 인간의 본연이다. 최초의 한자 사전으로 꼽히는 〈설문해자〉에서 ‘음은 소리인데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그 음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다. 그래서 전쟁과 같은 인간성 말살의 시기에도, 노예로 끌려갔던 비참한 시기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시기를 견뎌내며 인간의 삶과 고뇌를 음악에 담았고, 인간의 사고를 더 풍요롭게 하며 삶의 본질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음악은 문화와 마찬가지로 물 흐르듯이 흘러 다닌다. K클래식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피케팅’(피를 튀기는 티케팅)을 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예매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몇몇 인기 있는 공연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객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이 시대 살아있는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와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의 부산 공연(6월 29일)도 객석의 반을 조금 넘긴 정도였으니 말이다.
2026년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 예정
클래식 분야는 전용 극장의 역할 막중
숨은 인재들 모아 획기적 공연 준비를
클래식 음악은 음반을 사용해서 듣던 시기를 넘어, 소셜미디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고급 취향의 대명사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정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생활 장르는 영화로 52.4%였고 서양 음악(클래식)은 1.9%에 그쳤다. 클래식 음악 티켓 판매액 비중은 서울이 73.7%, 대구 6.8%, 부산 6.5%, 인천 5.1%, 대전 2.8%, 울산 1.2%였다. 음악 소비도 어김없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여전히 소수이지만 지역 클래식 전용 극장들의 개관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2016년에 시작된 ‘부산오페라위크’는 부산 지역의 오페라 축제다. 2026년 예정된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에 앞서 시민들에게 오페라의 매력을 알리려고 만들었다. 2022년부터 오페라 자체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부산오페라시즌’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부산시는 오페라 전문 관련 청년 일자리와 무대 경험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취지로 매년 오디션을 통해 ‘오페라시즌 오케스트라·합창단’을 공모했다.
‘2024 부산오페라시즌’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과 ‘사랑의 묘약’을 무대에 올렸다. 여느 해보다 깊어진 관심으로 극장이 가득 찼다. 특히 금정문화회관의 ‘사랑의 묘약’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출이 돋보였다. 작품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위트 넘치는 자막과 가수들의 적절한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게다가 경성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학생 26명이 합창단 의상을 만드는 협업은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방법 모색과 오페라 관심의 증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시도라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날 공연에서 ‘2024 부산오페라시즌 합창단’은 첫 공연 때보다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페라는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다. 1976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초연 당시 전통의 규칙을 벗어던진 새로운 구성과 로버트 윌슨의 혁신적 연출이 화제였다. 이후에 국제 투어를 위해 재구성되었고, 2012년 프랑스 몽펠리에의 르 코룸 오페라 베를리오즈 극장에서 시작해 2015년 한국의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마무리되었다. 잘 팔리는 공연 상품이 된 것이다. 미술비평가 존 록펠러는 〈뉴욕타임스〉에서 ‘보고 또 보고 음미해야 하는, 평생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경험’이라 격찬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공연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때 극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연을 고르는 기획력과 창의력, 즉 상상력이다. 상상력이란 앉은 자리나 직위 때문에 저절로 만들어지거나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끊임없이 공부한 사람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예술적 안목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야 공연 예술이 살아난다.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진정한 상상력은 튼튼한 지식의 기초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단지 상상력만 있다면 그것은 우연한 일과성에 머무르고 만다. 새로 생기는 부산의 클래식 전용 극장에는 안목과 전문성을 겸비하고 상상력 가득한 이들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하지 않던가. 곳곳에 숨은 고수들은 많다. 창의적인 상상력은 수많은 문화 소비자를 공연장으로 부르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