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은 반백과 희미해진 지문 앞에서,/손 흔들 사이도 없이 빠져나간 시간 앞에서,/나라고 외치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지상에서 나의 기거를 증명해온 기록이여/숨 가쁘게 달려온 내 삶의 향방이여/수십 번 넘어지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이여.’ 이우걸 시조시인의 ‘주민등록증’이란 시다. 시에 나오는 것처럼 주민등록증은 개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징표다.
주민등록증의 역사는 1950년 6·25전쟁 무렵으로 올라간다. 당시 각 시도에서 발급한 시·도민증이 주민등록증의 전신이다. 시·도민증에는 본적, 출생지, 주소는 물론 직업, 신장, 체중, 혈액형까지 적혀 있었다. 1962년 주민등록법이 만들어졌지만, 주민등록증은 1968년에 탄생했다. 그해 1월 21일 청와대를 급습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계기가 됐다. 1·21 사태 이후 정부는 주민등록법 개정을 서둘렀다. 주민 동태를 파악하고 간첩이나 불순분자 색출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1968년 11월 21일부터 주민등록증이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발급되면서 시·도민증은 폐지됐다. 이때 주민등록증은 가로가 아닌 세로 형태였고, 번호는 12자리였다.
1975년 주민등록증의 주민번호는 13자리로 바뀌었고, 발급 대상자 나이도 18세에서 17세로 낮아졌다. 당시 주민등록증은 종이를 코팅해서 발급해 물에 젖을 때 훼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위·변조가 쉽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1999년 9월 플라스틱형 주민등록증으로 변경됐다. 정부는 2006년 위·변조 방지 강화를 위해 형광인쇄 기술을 적용했다. 2020년 1월부터 주민등록증 재질을 폴리염화비닐에서 폴리카보네이트로 교체하고 위·변조 방지용 장치를 추가했다.
지난 14일부터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주민센터에서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이 시작됐다. 1968년 주민등록증 탄생 이후 57년 만에 모바일 발급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세종 등을 시작으로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 지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다. 스마트폰으로 발급받는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실물 주민등록증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는다. 생활 속 편리가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관공서, 병원, 투표소에서 사용하고, 계좌 개설 등 모바일을 통한 비대면 서비스에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암호화 등 보안 기술도 적용됐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모바일 운전면허증, 국가보훈등록증에 이어 모바일 주민등록증까지 발급되면서 일상의 디지털화는 대세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