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어설픈 ‘상호관세’ 돌멩이에 지구촌 피멍

입력 : 2025-04-29 18:06:51 수정 : 2025-05-07 1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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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지난 1월 취임 직후부터 미국의 무역 상대국을 상대로 날선 반응으로 일관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3월부터 철강·알루미늄에, 4월부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3일 트럼프 대통령은 5일부터 모든 수입품에 10%의 소위 ‘보편 관세’를, 그리고 9일부터 57개 주요 무역상대국에 소위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3일 발표된 ‘상호관세’에서 중국 34%, EU 20%, 일본 24%를 필두로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는 한국도 25%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그리고 9일 상호관세 부과가 시작된 지 13시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은 이후 관세 인상 치킨 게임을 벌여서, 중국은 미국산 수입품에 최대 125% 관세를,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145%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의 절반 수준만큼 미국이 관세를 매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백악관이 공개한 산출 방식에 모두가 경악 내지는 폭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산출 방식은 미국이 해당 무역상대국에 받는 무역적자를 해당국의 대미 총 수입으로 나눈 것을 상대국의 보호무역 장벽이라는 어떤 경제학 이론도 설명하지 못하는 정말 기괴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미국이 관대하기에 이들 무역장벽의 절반 수준만 ‘상호관세’로 받겠다고 한 것이다.

경제학 이론 뒤엎는 트럼프식 관세

미국이 만들어온 질서 스스로 파괴

대만은 LNG 투자에도 관세 덤터기

한국, 무너진 질서 속 대응책 '숙제'

현재 WTO에 기반한 다자주의적 무역질서의 성립 배경은 1929년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과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미국을 필두로 각국이 채택한 보호무역주의가 정치적인 극단화를 낳았고 결국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데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자주의적 무역질서의 탄생을 주도한 건 미국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 만든 다자간 무역질서를 미국의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파괴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이시바 총리는 2월 7일 트럼프 대통령과 개별 정상회담을 통해서 최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미국이 부과하는 24%의 상호관세를 피하지 못했다. EU는 트럼프 집권 초기 미국의 관세 압박에 미국 빅테크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것을 포함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가,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 90일 유예를 결정하자 미국과 현재 양자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관세압박 상황과 차이점은 미국과 중국의 관세 갈등이 관세 치킨게임으로 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 치킨게임을 진행하다가 현재 대미 수출관세는 최대 145%까지 인상된 상황에 직면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7가지 희토류 광물의 수출 제한을 발표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알래스카 LNG투자 문제로 한국, 일본,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알래스카 LNG사업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추진했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야생동물 보호지역 환경파괴 문제로 중단시켰던 사업이어서 리스크가 크다. 대만은 트럼프의 알래스카 LNG개발 참여 압박에 굴복해 알래스카 LNG 구매·투자 의향서(LOI)를 체결했지만 32% 상호관세를 피하지 못했고, 이후 미국과 상호관세를 낮추는 협상을 진행할 때 알래스카 LNG를 더 이상 레버리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였다. 미국의 LNG 투자 참여 요구와 방위비 인상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만의 선택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아시아-태평양 공급망 질서 구축을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2022년 5월 23일 출범했다. 그리고 미국, 한국, 일본, 호주와 뉴질랜드, 브루나이,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이 회원국으로 참여하여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공급망 질서 재편 전략에 동참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공급망 질서 구축에 협력해 온 IPEF 참여국가에도 가혹한 ‘상호관세’를 부과했고, 미국 스스로 ASEAN 지역에서 구축해온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섣부른 조치로 발생한 미국과 ASEAN 국가들 간에 균열을 활용해 중국 시진핑 주석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잇따라 방문했다. 중국의 영향력이 큰 캄보디아 이외에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은 시진핑 주석의 방문을 적극 환영했다.

미국에 실망한 ASEAN 국가와 중국 간 협력이 확대될 경우, ASEAN 국가와 협력 강화에 노력을 기울여 온 한국의 입지가 보다 좁아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무너뜨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기존 국제질서 변화에 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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