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경남(PK) 산업 대개조의 핵심이자 지역 숙원 사업으로 꼽혀온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6·3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주요 대선후보들이 잇따라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다. 여기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의를 주도한 국민의힘은 구체적 계획 없이 공약 재탕만 하는 상황이다. 이에 지역에서는 PK 정치권의 무기력한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21대 대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온 14일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부산을 찾아 그간 논란이 돼 온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 침묵을 깼다. “주변에서 이 얘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고 운을 뗀 이재명 후보는 “부산이 산업은행 이전 때문에 속을 많이 끓이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작심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좋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한쪽이 원한다고 일방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수도권 민주당 의원들과 산업은행 노조의 반발을 거론한 대목이다. 이어 “(산업은행 이전)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윤석열 전 대통령 3년 동안 말만 했지 뭐했나”라며 “우리(민주당)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서울에 있는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 싹다 부산으로 가져다주면 좋겠는데 그게 되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저는 불가능한 약속을 하지 않는다. 약속했다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가능하다는걸 알면서도 표를 얻기 위해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며 “그게 이재명 강점이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그간 부산 방문 과정에서 취재진으로부터 산업은행 이전과 관련한 질문을 여러번 받았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이 부울경 염원인 국책은행 지역 이전을 반대한다는 프레임을 우려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 후보가 이처럼 직접 거론하고 나선 것은 이번 대선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거친 기세로 거대 양당 후보를 추격 중인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도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옮기는 데 대해 반대 입장이다. 그는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경제 논리에 따라 기업이 옮겨갈 이점을 먼저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는 점을 부산 일정에서 수차례 밝히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부산 금정구 범어사를 방문한 뒤 취재진과 만나 “부산 금융 수도 발전에 자꾸 기관을 부산으로 옮겨 오겠다고 말들 하는데, 경제라는 것은 규제가 적은 곳으로 세금이 적은 곳으로 돈이 흐른다”며 “부산에 많은 금융기관이 이전할 수 있도록 증권거래세를 부산 본사 기업에게 감세, 이를 바탕으로 많은 증권사들이 부산으로 이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대선의 주요 후보 3명 중 2명이나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사업은 난망해졌다. 문제는 유일하게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밝히고 있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에게서도 입법 사안인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국회 반대를 돌파할 구체적인 전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김 후보는 전날(13일) 공식 선거운동 후 첫 부산 일정으로 다른 후보들이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부정적인 만큼 이에 대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금융단지를 찾았다.
하지만 그의 해법은 “제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가 열리면 첫 번째로 민주당에 요청하겠다”에 그쳤다. 부산 의석 18석 가운데 17석이 국민의힘이지만 산업은행 이전을 위해 국회를 설득하겠다는 3년 전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의 말이 되풀이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지역에서는 부울경 정치권이 그동안 무엇을 했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한 상공계 관계자는 “산은법 개정을 촉구하는 국회 청원부터 여러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까지 3년 동안 부울경 각계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며 “그러면 지역 정치권이 대선 때라도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상황은 3년 전 산은 부산 이전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산업 체질 개편 실패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라고 비판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