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 대형마트에서 9세 남자아이에게 손을 대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배심원들 앞에서 “아이 의사에 반해 가슴을 움켜쥐었다”고 주장했고, 피고인이 된 60대 남성은 “아이가 귀여워서 볼을 만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정에서 CCTV 영상과 증인 신문 등을 지켜본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부산지법 형사7부(신형철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 A 씨에게 2일 무죄를 선고했다. 평의를 거친 배심원 7명 모두 무죄라 평결했고, 재판부도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날 국민참여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배심원들에게 “재판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무죄 추정의 원칙, 증거 재판주의 원칙, 자유 심증주의 원칙에 의하여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하며 본격적인 심리를 시작했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 의사를 고려해 법률 전문가가 아닌 국민을 배심원이나 예비 배심원으로 선정해 진행하는 재판이다. 이번 재판에는 배심원 7명과 예비 배심원 1명이 선정됐다.
검찰이 밝힌 공소사실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8월 29일 오전 10시 33분께 부산 남구 한 마트 안에서 9세 남자아이인 B 군을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 씨가 화장실 앞에 서 있던 B 군 옆을 지나면서 오른손으로 갑자기 B 군 가슴을 움켜쥐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허락 없이 다리를 쓰다듬거나 볼에 뽀뽀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강제 추행이라 평가한다”며 “이러한 행동을 13세 미만 아동에게 했을 때 성폭법 제7조 3항을 위반해 13세 미만을 강제 추행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A 씨 측은 아이 가슴을 움켜쥔 적이 없다고 즉각 반박했다. A 씨 변호인은 “대형마트 입구 쪽에 서 있던 아동을 보고 안쓰럽고 귀여운 마음에 얼굴 턱부위를 한번 쓰다듬으려 한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 재결합한 아들이 티본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부탁해 사건 당일 마트에 가게 됐다”며 “아들의 성장 과정을 보지 못한 A 씨는 B 군을 보고 ‘내 아이도 저랬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안쓰러움에 신체 접촉을 한 번 한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사건 당시 CCTV 영상을 공개하며 A 씨가 B 군 가슴을 만졌고, 아이를 귀여워하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고 재차 주장하고 나섰다. 영상에서 A 씨가 B 군에게 잠시 손을 대고 지나가는 모습은 포착됐지만, 카메라가 B 군 등 쪽을 비춰 가슴을 움켜쥐는 장면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A 씨 변호인은 “아이 볼을 만지려다 손이 어깨 쪽에 닿은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주장에 즉각 반박했다. 그는 “사건 법정형이 최하 징역 5년인데 과연 저 행동이 그에 맞는 행동인지 유심히 살펴봐 달라”며 “이 장면은 가슴을 움켜잡는 행동이라 보기 어렵고, 성적 만족을 얻으려고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에선 B 군을 면담한 해바라기센터 진술 분석 전문가 C 씨, 사건 당시 마트에 있었던 A 씨 부인 D 씨 등에 대한 증인 신문도 진행됐다. B 군이 ‘A 씨가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하는 영상과 B 군 어머니 증인 신문은 방청객 없이 배심원들에게만 공개했다.
아동심리 분석가인 C 씨는 검찰 신문에서 B 군 진술에 일관성이 있었고, 내용이 구체적이었다고 답했다. 사건 보고서를 ‘B 군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취지로 적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A 씨 변호인은 반대 신문을 통해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B 군이 사건 이후 약 10일이 지나 센터에서 진술을 했다”며 “가족이나 외부인 영향을 받아 진술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지 않냐?”고 C 씨에게 묻기도 했다.
뒤이어 증인 신문에 나선 D 씨는 “남편이 두 손가락으로 아이 볼을 스치듯 건드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CCTV 영상을 다시 재생하며 A 씨가 아이를 만진 시점에 부인인 D 씨는 등을 돌린 상태라 상황을 목격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피고인 신문까지 마친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구형했다. 또 성폭력 예방 교육 이수, 신상정보 공개, 아동기관 취업제한 10년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A 씨 측 변호인은 “(B 군 측이 주장하는) ‘꽉 잡았다’, ‘꼬집었다’, ‘매우 아팠다’는 내용과 CCTV 영상은 배치된다”며 “B 군이 시간이 지나 진술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억이 조금 왜곡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고 최종 의견을 밝혔다. 이어 “A 씨는 10여 년을 떨어져 살던 아들과 아내와 사건 두 달 전 재결합했다”며 “A 씨가 미성년인 아들과 아내를 부양하고 있고, 구속이 되면 또다시 아들은 아버지가 없는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A 씨는 최후 진술을 통해 “여러 사건에 연루되면서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내게 했다”며 “떨어져 있는 동안 아들이 너무 그리웠고, 지나가는 남자아이만 보면 아들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B 군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 없이 큰 아들의 모습이 생각났다”며 “‘힘내라’고 위로해 주고 싶어 얼굴 부위를 한 번 건드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종 변론이 끝나자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을 최대한 따르겠다며 신중한 판단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최근 대법원에서 배심원이 한 재판에 대해 판사들이 함부로 결론을 짓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며 “저희도 여러분들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따를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종 변론을 경청한 배심원 7명은 평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A 씨가 무죄라고 평결했다. 재판부는 배심원 의견을 받아들여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