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기자는 부산이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큰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와 HMM 본사 부산 이전, 해사법원 설립, 동남권투자은행 신설, 가덕도 신공항 적기 개항을 통해 부울경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고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됐다.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한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부산은 어떤 실익을 챙겨야 할까.
해수부와 HMM 부산 이전만 우선 살펴보자. 해수부 공무원들과 HMM 육상 노조의 반발을 잠재우는 것이 숙제다.
이들의 반대 논리를 보면, 해수부는 인접 부처·기관과의 정책·예산 협의에 부산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하고, HMM은 화주·선박금융 영업력 저하 우려가 크다고 한다. 직원과 가족들이 생활 근거지를 갑자기 옮겨야 하는 데 대한 반발은 공통적이다.
꼭 20년 전인 2005년 6월 24일.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을 발표했다. 그해 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른 조치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당위를 지금 더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 그의 혜안과 뚝심이 20년 세월이 지나서도 시행되지만, 한편으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 장벽은 오히려 높아진 것 같아 허탈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동안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이전 기관과 종사자들이 지역에 안착할 대책이 필요할 뿐이다. 금융·해양·영화 3대 분야 공공기관이 이전한 부산에선 다른 지역에 비해 그나마 낫다고는 해도 아직 나홀로 이주 비율이 높다. ‘공무원도 국민’이라는 관점에서 정주 여건 개선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과제다.
우리가 그동안 부족했던 점이 무엇일까? 이전한 공공기관들을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데 소홀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영도구 동삼동에 자리한 글로벌 수준의 해양 연구기관들을 지역 해양산업계와 연결하는 데 부산시와 지역사회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다. 부산에 유치했다고 실적 발표 잔치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유사 이전 기관들을 연결하고 그 연합체와 지역 산·학·연을 엮어내 명실상부한 클러스터를 만들어 냈다면 어땠을까. 자본은 차치하고, 우선 인력 면에서라도, 다양한 경험을 가진 우수한 지역 인재를 양성해내는 것만큼은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산업은행, 해수부에 매달릴 필요도 없이, 부산에 있는 금융·해양·영화 관련 기업들의 역량이 크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좀 더 비약하자면 수도권 관련 분야 기업들이 스스로 우수한 인재가 넘치는 부산으로 본거지를 옮기려 하지 않았을까.
압축성장에 익숙한 우리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20년인데 왜 아직 성과가 없냐고 이렇게 닥달이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 이전 기관으로서도 지역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들도록, 그래서 부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부산시와 지역사회가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면 된다.
그 전략의 첫걸음은 해수부가 기존의 ‘국가예산 1% 꼬마 부처’ 그대로 오게 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해양패권 경쟁 흐름에 맞게 해운 분야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조선과 국제 물류 산업 만큼은 더 관장하도록 하는 일이다. 서울에서 세종으로, 세종에서 부산으로 두 번째 이삿짐을 싸야 하는 해수부에게 ‘이번 기회에 부처 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위상이 강화된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외부 기관·부처와의 상시 협의가 필수적인 해수부와 HMM은 부산에 이전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서울·세종 사무소에 일부 인력을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통째로 오지 않느냐’고 성마르게 굴 일은 아니다.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해양 클러스터 구축이 충실히 진행돼 5~10년 내 인력과 산업 분야에서의 성과가 나온다면, 마침 그 무렵 북극항로 시대와 마주하게 된다. 지방이 아무리 외쳐도 불가능하던 거대 자본의 부울경 이전, 해외 투자의 부울경 집중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HMM이 만나야 할 해양금융기관이 여의도가 아니라 문현금융단지에 밀집하면, 서울사무소를 남겨둘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허황돼 보이지만 ‘남방항로의 요충’ 싱가포르 성공 사례를 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어떤 전략 아래 실천을 충실히 해 나가느냐에 달렸다. 물론 북극항로 시대가 온다고 부산항이 저절로 거점항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인프라 구축 같은 내부 준비는 기본이고, 세계 최대 화주인 중국, 유럽행 북극항로 절반 이상을 영해로 보유한 러시아, 아직은 최대 패권국인 미국 등과의 협력이 필수다. 부산항이 한국의 성장을 견인할 미래를 위한 5년, 부산에 오는 해수부에게 3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