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는 기후 위기와 함께 인류 실존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1991년 소련 해체에 따른 사회주의 몰락으로 핵탄두 증강 경쟁은 막을 내린 듯했다. 하지만 신냉전 시대를 맞아 최근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데다 군사력 충돌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핵보유국들이 다시 핵무장 강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사실상 핵군축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다. 현재 인류는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실시간 연결된 세계화 시대를 맞았지만 핵전쟁으로 한순간에 절멸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감내해야 하는 아이러니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최근 발간한 2025년도 연감은 올 1월 기준 핵탄두를 보유한 9개 나라의 재고를 1만 2241개로 추산했다. 국가별로는 5459개를 보유한 러시아가 1위, 5177개인 미국이 2위로 나타났다. 1·2위가 전체의 90%에 달하는 압도적인 보유량을 보이고 있다. 3위는 600개인 중국으로 집계됐다. 나머지는 프랑스(290개), 영국(225개), 인도(180개), 파키스탄(170개), 이스라엘(90개) 등의 순으로 보유량이 많았다.
SIPRI는 북한도 50개의 핵탄두를 지닌 것으로 추산하면서 “추가로 최대 40개를 더 생산할 정도의 핵분열 물질을 보유한 채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SIPRI는 또 중국이 2023년 이후 핵탄두를 매년 100개씩 추가하는 등 가장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인다고 짚었다. 이 연구소는 특히 핵무장 국가 대부분이 기존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등 핵 현대화 프로그램을 2024년에도 이어갔다는 점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았다. 기존 핵무장 국가들이 보유량 증강에 나선 것은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경쟁이 노골화된 것도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이와 함께 핵무장 국가들은 비축 경쟁을 본격화한 한편으로 핵탄두 비 보유국의 핵무장을 막는 데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무기 개발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최근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두 나라의 충돌에 미국은 물론 이란의 우방국이자 이슬람권 유일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이 개입 가능성을 내비치며 중동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SIPRI가 경고했듯이 우발적 핵전쟁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요즘의 국제 정세를 지켜보는 마음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