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 압박이 의약품으로 확대되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고민이 깊어졌다. 국내 업체들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의약품에 대해 최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200%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관련 발언은 백악관에서 주재한 내각 회의에서 나왔다. 그는 기자들에게 의약품, 반도체 등에 관한 관세를 발표할 것이라며 구리 50%, 의약품 200%의 관세율을 제시했다.
의약품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여서 미국의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충격이 예상된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이 한국에서 수입한 의약품 규모는 39억 7000만 달러(약 5조 4500억 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의약품 분야로 확대하자 국내 바이오업계에서는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셀트리온은 9일 주주 서한을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을 기간별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2년분의 재고 보유를 완료했고 향후 상시 2년분의 재고를 보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기 전략으로는 미국 판매 제품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현지 CMO(위탁생산) 파트너와 계약을 완료했다고 전했다. 장기 전략으로는 미국 생산시설 보유 회사의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셀트리온 측은 “미국 내 의약품 관세 정책이 어느 시점에, 어떤 규모로 결정되더라도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없도록 내년 말까지 준비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SK바이오팜도 “미국 내 FDA 승인을 받은 생산 파트너를 확보하고 있어 관세가 확정될 경우 미국 생산으로 전환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캐나다 소재 위탁생산(CMO) 업체 등을 통해 미국에 수출된다. 자체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위탁생산을 이용하는 만큼 향후 캐나다 등에 대한 관세 부과가 확정되면 미국 현지 CMO 업체를 이용하는 등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설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정부의 발표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은 공개하지 않았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기업 삼성바이오에피스도 관세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 관세 관련 발언이 수시로 바뀌고 있어 국내 바이오업계도 관세율과 유예기간 등이 확정된 후 본격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의약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는 미국 내 의약품 가격 인상을 초래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미국민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타협안이 마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